제목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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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중요성
행 2:41-47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헌송 전도사입니다.
첫인상, 제목이 중요합니다.
전도사님 첫인상이 우리 친구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네요. 좋게 보이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친구들 아이돌 좋아하나요? 전도사님도 원래는 아이돌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군대를 다녀오니까 아이돌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요새 4세대 아이돌 누가 있어요? 뉴진스, 에스파, 르세라핌,
그럼 팬덤 조사 한번만 해볼게요
에스파 vs 르세라핌
그럼 다시 물어볼게요.
성경이 인정한 광야의 딸이 도도독따위 쉽게 이기는 거 당연한거 아님?
전도사님이 웹툰을 좋아하는데, 요즘 보면 웹툰 제목들이 죄다 이상해요.
전도사님이 우리 친구들 나이 때 읽었던 웹툰 제목들은 ‘신의 탑’, ‘노블레스’, ‘마음의 소리’ 이런 간단한 제목이었는데, 요새는 제목이 이렇더라고요? 카카오페이지에서 실시간 랭킹을 눌러봤는데, 제목들이 이래요.
그런데 제목들이 왜 이렇게 서술형으로 기록되었는지 궁금해서 전도사님이 한 번 찾아봤어요.
‘봄이 오면’ 이라는 웹소설 작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을 바꾸자마자 조회수가 2.5배로 올랐다고 합니다. 바뀐 제목이 ‘공작의 병약 미소녀 노예를 내가 구할 때 까지’ 작가들도 자본주의 안에서 살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죠. 이게 돈이 된다니까.
제목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버리니까요.
전도사님이 고전 명작을 현대식 웹툰 제목으로 바꿔놓은 자료를 들고 와봤어요. 재미로 한번 볼게요.
그럼 성경의 제목들도 한번 바꿔볼 수 있겠죠.
‘감옥에 있는 내가 양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들켜버렸다’-디모데 전후서.
‘100살이 넘는 아빠가 날 죽이려고 한다’ - 아브라함과 이삭
오늘 설교제목 다시 읽어볼까요? 제목의 중요성. 우리 친구들 유튜브 영상볼 때 뭐부터 봐요.
썸네일, 제목. 그래요 눈에 들어오는 썸네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 친구들은 삶을 통해 이미 알고 있어요. 썸네일 낚시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자극적인 썸네일 얼마나 많아요.
그럼 제목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요소를 전도사님이 3개 정도 준비해왔어요.
(1) 제목은 언제 중요할까? 항상 중요합니다.
(2) 제목은 언제 쓸까? 글을 작성한 마지막에 작성합니다.
(3) 흥미를 끄는 제목은 어떤 제목일까? 전도사님도 이게 궁금해요. 이걸 알았으면 재미있게 제목을 지어봤을텐데, 오늘 제목 봐봐요. ‘제목의 중요성’ 얼마나 재미없는 제목이에요.
근데 제목을 이렇게 지은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오늘 설교는 전도사님의 사역에 있어서 제목 같은 설교에요. 유튜브 썸네일 같은 설교에요. 서울남교회 안에서, 또 우리 고등부 안에서 처음을 여는 이 제목과 같은 설교를 준비하는데 있어 많은 마음을 쏟고 한 달 전부터 준비해왔던 설교입니다.
오늘 설교가 제목같은 설교이길 바랍니다. 우리 친구들이 평균적으로 80살까지 산다고 계산해보면 대략 일생에 4천 번의 주일이 있습니다. 고 3친구들은 5번, 고1친구들은 대략 100번 정도 전도사님과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될텐데, 전도사님은 소망이 있습니다. 바로 날이 갈수록 설교에 대한 우리 친구들의 반응이 뜨거워지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이 우리 고등부 안에 보여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태까지 제목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우리 친구들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교회 왜 다녀요? 천국 가려고? 예수님이 좋아서?
정답은 그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창1:26-28]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을 다스리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고요,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렇게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가장 기쁜 친구들 있어요? 다시 물어볼게요. 에이 이게 예배 드리는 것보다 더 낫지 싶은게 하나라도 있나요? 예배 드리기 위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예배드리러 나온 친구들 있어요? 그런 표정들이 아닌데?
1647년 믿음의 선조들이 작성한 신앙고백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서는 사람의 가장 제일된 목적에 대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로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우리 공과, 하나바이블은 이 소요리문답에 대해 배울 거에요. 스포하는 겁니다.
Q: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A: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로 즐거워 하는 것.
많은 말씀들이 이렇게 말하고, 또 믿음의 선조들도 이렇게 말했는데, 왜 우리는 예배가 가장 즐겁지 않은 것일까? 이게 다 죄 때문이에요. 그러면 죄는 또 뭘까요? 내 마음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가는 길을 막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죄는 가능성이에요. 행동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틀어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모두 죄인이에요. 안 그런 사람이 어딨냐고요? 없어요. 그래서 성경이 말하잖아요
[롬3:10-12]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래서 내 것이 생기고, 내가 잘한 내 의가 생기는 거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 같고, 내가 중요해지는 거예요. 내가 중요하니까 뭐야, 내가 재밌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제일 우선으로 하고 싶은 것이에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사니까 아무도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배가 즐겁지 않은 것이고요.
그럼 어떻게 될까요? 다 하나님께 갈 수 없는 거죠. 하나님이 없는 곳이 어디에요? 거기가 지옥이에요. 영원히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곳. 지금 우리의 눈이 가려져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우리가 괴로워하지 않는 것이지,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부재가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알게 될 거에요. 영원히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영원히 불타는 유황불? 그것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천국은 어떤 곳이겠어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 이 땅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그 사람은 가는 곳마다 천국이에요. 교회가 천국이고, 학교가 천국이고, 병원이 천국이고, 고문을 당하더라도 그 곳이 천국이에요. 그러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살았죠. 하나님을 영원히 만나며 누리는, 하나님으로 영원토록 즐거워할 수 있는 그곳이 천국입니다.
그럼 다시 물어볼게요. 교회를 왜 다녀요? 하나님을 만나려고. 그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니까. 여기에 제가 이끌어가고 싶은 고등부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전도사님의 사역의 목표는 즐거움에 있습니다. 어떻게 즐거운 사역이냐? 이에 대해 세 가지로 이야기 해볼게요.
(1) 학생이 즐거운 부서 (2) 선생님이 즐거운 부서 (3) 교회가 즐거워하는 부서
먼저 우리 친구들이 즐거운 부서는 당연한 이야기에요. 여기 고등부는 우리 친구들을 위한 부서에요. 부서의 당사자, 주인공들이 즐거워야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 친구들은 어떤 것을 할 때 즐겁나요? 이따가 다 같이 해볼거지만 전도사님 MBTI는 ENFP에요. 그래서 막 사람들 만나서 떠드는 게 너무 즐거워요. 우리가 함께 교제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노력하는 그것이 제일 기다려졌고, 이 자리에 서서 친구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을 기다려왔어요. 사실 무섭기도 했어요. 우리 친구들 앞에서 내가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나라는 사람이 못나서, 우리 친구들에게 제대로 된 말씀을 전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고민은 전도사님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더라고요. 말씀을 한 구절이라도 더 돌아보게 만들고, 우리 친구들이 어떤 것을 좋아할지 고민하게 만들고, 아직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우리 친구들을 향한 사랑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끼며, 지금 이 순간을 기다리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전도사님은 우리 친구들이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너무 좋아서, 친구들을 막 데려오고 싶은 그런 곳이 우리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전도사님에겐 지론이 있어요. 친구는 좋은 것을 함께 해야 친구다. 내 친구를 안좋은데 데려가려고 힘쓰는 사람을 보고 뭐라고 하는 지 알아요? 다단계나 사기꾼이에요. 진짜 친구라면 가장 좋은 것을 줄 수 있고, 가장 좋은 곳에 함께하려고 해야 해요.
누구나 바보라고 말하는 스폰지밥의 캐릭터 뚱이의 명언이 있어요.
자기가 가장 아끼는 카드를 주면서 하는 이야기에요.
‘소중한 친구에게 하찮은 것을 내 줄 순 없잖아’ 이게 우리 하나님 마음이고, 우리 선생님들의 마음이고 제 마음입니다. 가장 귀한 하나님을 내주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데, 그 외의 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친구들이 즐거운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로, 이건 우리 선생님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선생님들께서도 이 고등부에서 즐거움을 얻어가셨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지만, 우리는 그 사랑의 한계가 있어요. 노력으로도 갈 수 있는 한계가 있고, 뱃속에서 10달 간 품었던 내 자식도 사랑할 수 있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일로, 봉사로만 사역을 하신다면 반드시 그 끝이 있습니다. 고갈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우리 친구들을 사랑하는 게 조금 힘 든 일인가요? 영적인 자녀를 품는 것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선생님들께서도 고등부의 사역이 즐거워, 주일이 기다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 친구들도, 저도 끝없이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세 번째는, 우리만 즐거워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교회의 즐거움이 돼야하고, 우리가 가정의 즐거움이 돼야합니다. 올바른 즐거움은 전염됩니다. 흘러가요. 사람의 그릇에는 한계가 있어서 내 즐거움의 그릇이 넘쳐나면 다른 사람에게도 흘러가게 되어있어요. 그 즐거움이 가정으로 교회로 학교로 흘러가, 우리 고등부가 교회의 자랑, 가정의 기쁨, 학교의 모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즐거움이란 무엇일까요?
2. 즐거움이란 무엇인가
(1) 함께 할 때 즐겁다.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산해진미를 먹는다 해도, 혼자 먹는 것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것이 더 즐거울 것입니다. 전도사님 몸을 보면 알겠지만, 전도사님이 먹을 것을 되게 많이 좋아해요. 근데, 전도사님은 혼자 먹을 때는 메뉴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함께 먹을 때 너무 맛있어요. 중등부에 계신 이인재 전도사님이 증인이 되어 주실 수 있으실텐데, 전도사님은 집에 손님 초대해서 함께 먹고 그래요. 좀 자주 그래요. 돈이 조금 들긴 한데, 돈 보다도 더 많은 것이 남으니까 초대해서 함께 먹습니다. 그게 너무 즐거워요.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셨어요. 혼자 있는 아담이 안쓰러워 하와를 만들어주셨고, 그 둘 사이에 자녀를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 함께 갑시다. 함께 놉시다. 함께 먹읍시다. 전도사님이 서울남교회 오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우리 친구들 밥 사주는 일입니다. 자판기가 되려고 왔어요. 자판기 뭡니까 누르면 나와요. 우리 친구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싶을 때, 심심할 때, 외로울 때, 같이 놀 사람이 없을 때, 고민이 있을 때 다 좋아요. 맛있는 게 먹고 싶을 때도 이야기해주세요. 같이 먹어요. 전도사님 올해 목표가 그겁니다. 여기 우리 고등부 모두랑 밥 같이 먹기. 그래서 우리 친구들이 함께 할 때 얼마나 즐거운지 알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 사랑하는 자와 함께 있을 때에 그 기쁨
두 번째 기쁨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기쁨입니다.
[아2: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여기 혹시 지금 연애중인 친구들 있나요? 손들지 말고, 아니면 연애해봤다. 처음에 막 손만 스쳐도 짜릿하죠. 전도사님 첫 연애 때 깜짝 놀랐잖아, 시간이 너무 빨리 가가지고. 함께 있을 때 어때요. 너무 즐겁잖아요. 우리가 고등부 안에서 그런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서로 연애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서로 사랑할 때 누리는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리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고, 그 과정에서 느끼신 감정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우리를 완성시켜 가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가는 것을 보시며 심히 즐거워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즐거움.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 즐거움은 세상 그 어떤 즐거움보다 즐겁습니다.
우리 친구들, 우리는 원래 죄 때문에 이런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계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랑의 원인이시고, 예수님만이 모든 사랑의 결과이십니다. 전도사님은 예수님께 받은 사랑이 너무 커요. 그리고 그 사랑은 전도사님이 값을 치루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그 값을 치러주셨죠. 전도사님이 받은 복음은 거저 받은 복음입니다. 전도사님이 예수님께 받은 사랑은 거저 받은 사랑이에요. 전도사님이 잘난 게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전도사님은 우리 친구들에게 그 복음을, 그 사랑을 거저 줄 것입니다. 전도사님은 우리 친구들에게 베푸는 만큼 예수님께 더 받을 거예요. 받은 은혜가 많으니 그 은혜를 흘려보낼 것이다.
아까 사람의 그릇 이야기를 했죠? 은혜도 마찬가지에요. 사람이 담을 수 있는 은혜의 그릇은 한계가 있어요. 예수님께서 부어주시는 큰 은혜를 나라는 그릇에 열심히 담아봤자, 그 그릇은 반드시 차게 되어있어요. 그럼 그 은혜는 어디로 갈까요? 샘물처럼 우리 친구들에게 갑니다. 전도사님의 주변으로 흐르게 되어 있어요. 결국 우리 고등부 공동체를 은혜 가득 채우게 될 줄 믿습니다. 전도사님은 이 것을 은혜의 낙수이론이라고 불러요. 은혜뿐만 아니라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의 통로, 사랑의 통로가 되는 것이에요.
근데 은혜의 수도꼭지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면? 예수님께 은혜를 받는 사람이, 전도사님 뿐만 아니라 우리 이 자리에 있는 친구들도 예수님의 은혜를 직접 받는다면 우리 고등부의 은혜의 그릇은 더욱 빨리 차게 될 것이에요. 내가 가끔 은혜를 받지 못한다 해도, 내 옆의 친구 때문에 은혜를 받고, 서로 서로 은혜를 부어주며, 서로 서로 사랑을 나눠주는 그런 공동체, 그런 공동체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이었고, 전도사님이 꿈꾸고 있는 우리 서울남교회 고등부의 모습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함께 식사를 나눴어요. 성찬을 나눴습니다. 친해지기 제일 좋은 것은 음식을 같이 먹는 것이에요. 초대교회 성도들이 나눠먹었는 이 음식들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함께 떡을 떼며 그 떡을 함께 먹었다는 사실이에요.
전도사님들이 설교를 준비하며, 신학자들의 책을 많이 읽는데 그 책들을 가운데 나온 표현을 들고 왔습니다.
‘사도들의 교제는 상당히 많은 실제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었는데, 그 가운데 두 방식이 42절에서 떡을 떼고 기도하는 것으로 언급된다. “떡을 떼는 것”은 아마도 음식을 정기적으로 함께 먹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칭하는 것 같다. 즉 주의 만찬으로 불리게 된 것을 정기적으로 준수하는 것이 여기에 나타나는 “떡을 떼는” 모습인 것 같다. 이 준수는 보통 식사의 일부분이었던 것 같지만, 루돌프 오토 (Rudolf Otto) 에 따르면, “그 자체로는 전적으로 사소한 것”인 떡을 떼는 처음의 행위에 대한 강조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암시한다. 즉 이것은 “축하의 중대한 요소였다’
음식을 먹고 난 다음 친해졌어요. 그 다음으로 이어진 것이 서로 가진 것을 나눠 필요에 따라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좋아보였으면 공산주의자 마르크스가 이 개념을 차용했어요. 하나님 없이도 우리는 이런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했던 핵심은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마르크스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공산주의가 무너졌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랑이 가득한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전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랑으로 뭉치는 우리 고등부 공동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론입니다.
[요2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와서 먹으라. 예수님을 배신한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셨습니다.
전도사님도 우리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겠습니다. 너희도 와서 먹으라. 우리 친해집시다. 우리 서로 예수 안에서 하나 됩시다. 이 곳에서 우리가 즐거운 것들을 많이 만들고, 우리의 추억을 많이 쌓고, 우리가 이 공동체에서 누리는 즐거움으로 예수님을 바로 알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합시다.
이 시간 우리를 이 곳으로 모으시고 우리를 한 교회로, 한 공동체로 모으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누리며 ‘오늘 이곳에 계신 성령님’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2) 이 곳의 예배의 삶이 즐거움이 되게 하옵소서.
(3) 주님을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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