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께 감사하며 말씀 순종하는 우리가 되자ㅎㅘㅇ인화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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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분석; 성막 제작 재료의 차이- 거룩성&친밀성

‘우짜면 좋노’라는 설교 제목을 가지고 말씀 전하겠습니다. ‘우짜면 좋노’란 제 고향이었던 경상도에서 난처한 상황에 빠졌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성막을 제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 성막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살펴보면 약간 난처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함께 본문을 들여다 보며 어떤 난처한 상황인지 한번 살펴 보도록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볼 출애굽기 36장의 본문은 앞에 기록된 출애굽기 26장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으라고 명령한 성막을 말씀대로 제작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칭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성막’을 덮는 천은 8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 천사들을 정교하게 수를 놓아 만든 천입니다. 그 천을 길이가 28규빗, 폭이 4규빗인 휘장 열 폭을 붙여 만듭니다. 이 열 폭은 다섯 폭씩 한조를 이루어서 각 조의 끝에는 다섯 폭짜리 두 조를 연결할 청색 고리구멍 50개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구멍들에 50개의 금으로 만든 갈고리를 통해 두조의 휘장을 연결하여 성막 천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막 위에다 염소털로 만든 천을 덮었습니다. 14절을 보시면 수놓은 천을 충분히 덮을 수 있게 각폭의 길이를 30규빗, 폭이 4규빗인 휘장 열 한폭짜리로 보다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이 휘장은 다섯폭과 여섯폭으로 두 조를 나눠 끝 부분에 50개의 연결 구멍을 만들어 놋 갈고리로 두 조의 휘장을 연결해서 한 천막이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붉은 물을 들인 숫양의 가죽 천으로 막을 덮었고, 맨 바깥 부분에는 해달의 가죽으로 만든 천막을 덮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보아야 할 점은 성막을 만드는 천의 재료와 갈고리의 재료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막, 즉 성소와 지성소를 포함하고 있는 이 곳의 가장 안쪽에는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 이 삼색 실로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를 놓은 천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금고리로 열폭의 천을 연결했지요. 그 위에 덮은 천은 염소털을 만들었고, 놋 갈고리로 열한 폭을 연결하였습니다. 그 위를 덮은 천은 붉게 물들인 숫양의 가죽 천이었고, 맨 윗부분은 해달의 가죽 천이었습니다. 이 재료들 모두가 다 귀한 것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데나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이것들 사이에는 상대적인 가치 차이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가장 안쪽은 가장 귀한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가장 바깥의 막은 상대적으로 가장 덜 귀한 재료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재료의 차이를 통해 하나님은 거룩의 차등성을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이런 현상은 성막의 다른 구성물들의 경우에도 다 적용되며, 재료들 이외에 다른 요소들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성막은 지성소, 성소, 성막 뜰 이렇게 삼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 각각의 장소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차등적으로 제한됩니다. 우선 일반 백성들은 성막에서 바깥 뜰까지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성소는 주로 제사장들만 다가갈 수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 레위인들이 특별한 사역을 위해 접근할 수도 있었지요. 마지막으로 가장 거룩한 곳인 지성소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오직 한번, 속죄일에만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막의 모든 사항들은 ‘거룩의 차등’개념을 정교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막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임재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는 거룩의 임재를 수반합니다. 성막의 가장 거룩한 곳인 지성소로부터 멀어짐에 따라 재료가 가장 귀한 것으로부터 점점 덜 귀한 것으로 차등이 있고, 또 성막의 각 부분마다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제한되어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거룩 그 자체이시고 거룩의 원천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성막이 이렇게 하나님의 거룩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성막은 굉장히 아이러니한 공간이 됩니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그들 가운데 내려오신 곳입니다. 그래서 성막은 다가오시는 하나님, 다가갈 수 있는 하나님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거룩의 차등성’은 이와는 반대로 다가갈 수 없는 하나님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성막의 각 영역마다 다가갈 수 있는 사람과 시기가 제한되어 있었던 것처럼 재료의 차등 현상들도 하나님의 이런 속성을 상징해줍니다. 이처럼 성막은 접근 불가능한 하나님, 인간이 결코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서두에 말씀드린 난처한 상황 성막의 아이러니입니다. 다가오신 하나님이지만 또한 그분은 거룩하셔서 다가갈 수 없는 분이시죠.

2. 적용(1) 두려워말고, 두려워 하라

우리는 이 성막의 아이러니를 통해 하나님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가까이 다가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애굽에서 건지시고, 광야 사막에서 먹이시고 입히신 분입니다. 그들을 더위와 추위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어미 독수리가 자기의 새끼를 날개로 품는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품으셨습니다. 그들을 너무나 사랑하셨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셔서 감히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분이기도 했습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 그들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소리에 압도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며 모세에게 ‘당신이 대신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또한 황금송아지를 만든 뒤 모세가 돌판에 다시 말씀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갔다 내려왔을 때 그를 본 백성들은 그의 얼굴의 광채로 인해 그를 똑바로 볼 수 조차 없었습니다. 모세는 그저 하나님의 뒷모습만을 본 것 뿐이었지만, 그것 조차도 너무나 영광스러워서 모세의 얼굴에 반사된 그 찬란한 영광에 백성들은 눈을 뜰 수 조차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셔서 가까이 할 수 없는 두려운 분이십니다.
이 두가지 자세가 성막을 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야 했으며, 오늘 이 성막 본문을 묵상하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임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독생하신 아들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가 임마누엘의 은혜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의 몸을 입어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만큼 친밀하게 가까이 오셨죠. 그리고 그분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를 믿는 자들에게 임하셔서 그의 안에 거주하십니다. 그렇기에 지금 주님을 믿는 우리 안에도 살아 계시며, 우리가 그분 안에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를 당신의 성전이라고 말씀해주십니다. 너무나도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그리고 우리가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자녀삼으셔서 우리 안에 있는 삶의 어려움들을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게 해주셨고, 또 우리가 말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의 어려움을 아시고 우리의 삶을 다독이시며 보살피시고 도우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길 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삼으신 것,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안에 거주하신 것,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을 삼아주신 것, 그래서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귀 기울이시고, 우리의 너무나 작은 어쩌면 사소해보이는 고통에도 집중하시고 도우시는 것에 감사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임을 기억합시다. 우리를 성전삼으셨다는 것은 거룩하신 분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극도로 미워하시고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는 분입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죠.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이 다른 곳을 향한다면 하나님은 매우 분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와 불의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이상 죄인이 아니며, 우리 안에는 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몸에는 여전히 죄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 습관적으로 죄를 좇아가려고 합니다. 우리를 성전삼으셔서 거룩하다고 하신 주님은 우리가 날마다 거룩해져가길 원하십니다. 이미 우리를 거룩케 하셨으며, 이 거룩한 삶을 날마다 누리고 살아가서 더욱더 거룩하게 되길 원하십니다.
오늘 이 기도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의 습성들을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이번주일의 말씀처럼 참된 진리를 좇는 제자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를 방해하는 죄의 습관은 무엇이 있는지 살피며, 그것을 놓고 회개하고, 그것을 끊어내어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적용(2)다가오신 하나님께 감사; 작은 일에 순종함

또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한가지 사실을 더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26장에 기록된 성막 건설에 대한 본문이 36장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혹자는 출애굽기의 반복되는 본문들을 근거로 성경의 기록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기도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반복’이라는 문학적 기법을 너무나 즐겨 사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복되는 현상을 문제 삼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반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알려주고자 하시는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성경은 동일한 내용의 본문을 두 차레나 반복하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데칼코마니의 축처럼 26장과 36장 사이에 껴있는 황금 송아지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에 대한 명령을 받은 뒤 곧바로 성막을 건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마땅한 영광을 황금 송아지에게 돌려버렸습니다. 이 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완전히 멸절당할 위기를 겪었으나, 모세의 혼신을 다한 중보기도로 그들이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을 겪은 뒤 성막을 건설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마음 자세가 단순히 명령하신 것을 실행하는 수준이 아니라 죽음에서 건져주신 용서와 은혜에 대한 감사로 철저히 순종하는 자세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라 놀라운 감격의 순종입니다.
이러한 순종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길 원합니다. 우리를 죽을 위기에서 구해주신 은혜에 대한 순종이 우리 삶에 있길 원합니다. 단순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기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따르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그런 감사와 감격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세세한 것들 모두를 힘써 지켰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우리의 마음을 다해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4. 결론 우리에게 다가오신 예수님,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의 삶!

이시간 함께 기도하도록 합시다.
첫번째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자녀 삼아주시고, 우리가 그분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해주신 것 감사합시다. 그리고 우리 안에 거주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신 것 감사합시다. 우리안에 계셔서 우리의 모든 고통과 신음에 귀 기울이시고 우리를 보살피기 원하시는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두번째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임을 기억하며, 우리 안에 남아있는 죄의 찌꺼기, 우리가 과거의 습관을 따라 좇아가는 죄의 습성을 끊어내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길,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가서 죄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시다.
세번째로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의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 기꺼이 진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 살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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