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08 금요기도회: 데살로니가후서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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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들으며 찬양하는 이 모든 것이 저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기 때문에 할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저희의 삶이 죄로 인한 악한 행동은 사라지고 오로지 하나님을 예배함만이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저희가 있는 모든 곳이 천국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기도회 자리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천국이 되어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데살로니가후서 1:3-12 의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3–12 NKRV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이야기 할 때 너무나 즐겁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듯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될 때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이 기도의 시간은 너무나 즐겁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죄가 있어 기도가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기도가 즐거워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제목들이 참 많습니다. 먹을 것을 주시고, 입을 것을 주시고, 지낼 곳을 주시는 등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에 대해 감사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은 타인에 의해서 하나님께 감사해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내가 아닌 타인과 관련된 감사를 드릴 때는 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됐다거나, 질병에서 나음을 받았을 때 감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바울도 이와 비슷한 감사의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제목입니다. 바울이 어떤 것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했을지 함께 살펴보고 감사와 더불어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보내는 위로와 도전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지킨 믿음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3절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라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감사의 내용은 “너희를 위하여”라고 말하는 것처럼 데살로니가 교회와 관련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한” 것을 두고 감사합니다. 바울은 다른 감사할 것들이 있었겠지만, 그가 가장 하나님께 감사한 부분은 바로 성도의 믿음이 성장하고 성도들이 서로 풍성한 사랑을 나눴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바울은 자신을 비롯한 동역자인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를 자랑거리로 삼는다고 4절 끝에서 말합니다. 심지어 그냥 자랑거리가 아니라 데살로니가 교회 외의 다른 교회에 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친히’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이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어떤 부분 때문에 자랑을 하냐면, 바로 4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도 인내하고 믿음을 지킨 것을 자랑합니다.
당시 데살로니가는 그리스에 있는 도시로 교통의 요충지이며 상업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로마 정부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던 도시였습니다. 이 당시 사람들은 상업을 잘 되게 해주는 신을 예배하는 것이 일종의 문화였습니다. 그리고 만일 그 신을 예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지역이 잘되지 않길 바란다는 뜻이 되었고, 그것은 곧 반 지역적인 행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상업의 수호신을 예배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에게 지역 주민들은 박해했습니다. 아마 이런 상황 속에서 성도들은 수호신을 예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계가 끊어질 위험 속에 노출되어 있었을 겁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상업의 수호신이 아닌 오로지 하나님만을 예배하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2:14 에서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4 NKRV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인과 그리스인이 주로 살고 있던 도시였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동족으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 데살로니가는 회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많은 수의 유대인들도 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케도니아인과 헬라인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유대인들에게도 박해를 받는 아주 극심한 박해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우리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앙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제 자신을 볼 때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인내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믿음이 더욱 자라고 서로 풍성하게 사랑했습니다. 믿음을 지킨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 상황 속에서도 성장했습니다. 이것을 두고 바울은 감사하고 자랑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한 것인데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너희가 믿음을 잘 지켰다. 잘 인내했다.”가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4절에서 바울이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하고 있듯이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선한 일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교회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아무리 데살로니가 교회가 칭찬받을만한 모습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삶 속에서 선한 일을 행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감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이에 따라 그가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3절에서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그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믿음과 사랑이 자라는 일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라는 든든한 사람이 있어 그에게 감사를 표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저 자기가 한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고 의무이며 책임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감사는 하나님을 향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감사의 주제는 데살로니가 신자들입니다. 바울의 이 말은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엄청난 위로가 되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칭찬받을만한 모습을 두고 감사만했을까요? 바울은 감사와 함께 박해받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위로와 소망을 전달합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받은 박해를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박해받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하나님께서 두 가지를 갚아주실 것을 말합니다. 첫째는 6절에서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신다.”라고 말합니다. 바로 박해하고 괴롭힌 자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환난을 가져다 준 그 환난을 고스란히 똑같이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7절에서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신다.”라고 말합니다. 환난을 받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과 함께 안식에 들어가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는 뜻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박해로 인해 평안함이 없었을 겁니다. 그들은 불안하고 염려로 가득 차 있었을 겁니다. 이런 그들에게 바울은 “안식”, 다른 말로 휴식으로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환난을 준 자들에게는 환난을, 환난을 받은 자들에게는 안식을 주신다는 이 두 가지가 바로 ‘하나님의 공의다.’라고 바울이 말합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이 두 가지가 5절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라고 말합니다. 바로 현재 받는 환난이 미래에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는 보증 수표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미래에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복을 누리는 합당한 자가 되는 보증 수표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너희가 받는 그 환난. 내가 언젠가 갚아준다는 표다. 환난을 준 자들에게는 너희가 받은 것과 똑같은 환난을 내가 주겠고, 환난으로 인해 안식이 없던 너희에게는 내가 안식으로 갚아줄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가 통치하는 복을 누리는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겨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박해받는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요? 그들은 박해 상황 가운데서 그저 저항할 수 없이 박해만 받았을 겁니다. 그들은 박해 상황 가운데서 지치고 고단한 삶을 살았을 겁니다. 어쩌면 여러번 하나님이 아닌 수호신을 믿어야 하나 라며 타협의 마음도 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그분이 직접 갚아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받는 박해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박해받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마음에 자신이 갚아줄 것에 대한 믿음을 굳게 심을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어떻게 갚아주실 것인지 7절 중간에서부터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게 나타나셔서 환난을 제공한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환난을 제공한 자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고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도 이 형벌을 받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이 자들에게는 그냥 형벌이 아니라 9절에서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형벌을 내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다고 하는데, 이것은 맹렬한 화염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노여움을 보여줍니다. 바로 환난을 제공한 자들에게 내려질 형벌은 하나님의 노여움이라는 무시무시한 형벌입니다. 그것도 영원히 말입니다.
그러나 10절은 환난을 제공한 자들과는 대조적인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는 그때 불신자들은 그의 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심으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받으시는 것, 즉 성도들은 그리스도께 영예를 돌리게 됩니다.
이것이 박해받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것들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지금 박해를 받고 있어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일진 몰라도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는 그 날에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시는 그 날에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약속된 것은 불신자들이 받게 될 하나님의 진노의 영원한 형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고 그분께 영예를 돌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약속된 심판으로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박해 속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기도하면서 도전을 주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11-12절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바울이 기도하는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인내하지 못하고 믿음을 지키지 못했기 떄문이 아니라 앞에서 살펴봤듯이 지금처럼 잘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11절을 “이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앞의 내용들이 바로 바울이 기도하는 이유가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실” 것을 기도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너희가 믿음을 잘 지켜야 한다, 너희가 꾸준히 인내해야 한다가 아니라 앞에서 바울이 자신이 감사하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선한 일을 하셨기 때문임을 말했듯이 여기에서도 하나님께서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주시고, 모든 선을 기뻐하고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하실 것을 기도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얼마든지 부르심에 맞지 않는 자가 되고 모든 선을 기뻐하기 보다 악을 기뻐하게 되고, 믿음을 저버리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간절히 도와주실 것을 바라는 이유는 바로 12절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영광 받으시고, 데살로니가 교회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 받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이것보다 더 큰 복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나라의 영광은 오직 왕만이 차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자신의 백성, 즉 성도에게도 주십니다. 그분은 너무나도 좋으신 왕이시기에 자신이 누리고 있는 좋은 것을 자신의 백성에게도 기꺼이 나누어 주고 싶으신 분이십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도전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과 약속된 복이 있으니 자신들이 얼마든지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음을 도전받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때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바울의 말을 통해 믿음이 더욱 자라고 서로 사랑함이 풍성했을 겁니다.
우리는 이상 오늘 본문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의 세 가지 메시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박해 상황 가운데서도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것. 둘째는 박해받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환난을 하나님께서 언젠가 반드시 갚아주신다는 것으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위로를 주었다는 것. 마지막 셋째는 바울은 박해 속에서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지켜주실 것과 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영광받으시고 이들도 영광을 받게 될 것이라는 기도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물리적인 박해를 받진 않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종교의 자유의 시대에 살고 있어 아주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우리가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류만으로 박해하고 부당하게 대우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만큼은 아니더라도 다른 모습으로 박해 상황 가운데에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우리는 물리적인 박해는 받지 않지만,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사상과 가치관의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정보가 물밀듯이 몰려오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가치관이 차지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한다 등 이 세상의 많은 가치관들은 “하루라도 일을 더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짓밟으면서라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라며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듭니다. 이 가치관들은 우리를 박해합니다.
오늘날 이 박해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 오늘 본문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박해받고 있다는 것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분이 갚아주십니다. 더 나아가 박해 뒤에 우리에게 약속된 영광이 있습니다. 그 영광은 이 세상에서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박해 상황 속에서 우리는 넘어지고 타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실 겁니다. 하나님께서 박해 상황일지라도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시고 서로 풍성한 사랑을 하도록 만들어주실 겁니다. 안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 세상의 가치관들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안식할 수 있게 만드십니다.
혹시 이 자리에 세상의 가치관 때문에 걱정과 근심에 싸인 분이 계십니까? 그러면 오늘 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현실 앞에 자신이 타협하진 않을까 염려가 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주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것을 기억할 때 염려가 사라지게 될 겁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박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언젠가 갚아주실 하나님께 의지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충분히 박해 상황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타협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오늘 말씀처럼 우리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인내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주변에 혹시 세상의 가치관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쉬지 못하는 성도가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 그 성도를 위해 기도합시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박해받는 성도 또는 교회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두 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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