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창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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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창31:1-16)
<서론>
살다보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 것 살아 왔고, 문제없었던 일들과 현실이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정당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적당한 곳인지 의문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이 지금 그렇습니다.
20 여 년 전, 어머니 리브가와 공모하여 아버지 이삭을 속여, 쌍둥이 형 에서의 장자 축복을 훔친 야곱은, 에서의 살기를 피해 고향 브엘셀바를 떠나, 지금 살고 있는 곳 외가이자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하란으로 도망 오게 되었습니다(창28:10).
이곳 하란(밧단아람; 아람의 평원)으로 오는 여정도 그렇고, 사는 동안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하시면 놀라운 은혜와 복을 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곳 하란에서 야곱에게 네 아내와 열한 아들을 얻게 하셨고, 매우 번창하여 많은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를 주셨습니다(창 30:43).
그런데 야곱이 이곳에서 20년을 살았으면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살만도 하고, 또 이곳의 원주민들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길 만도 합니다.
문제는 야곱 자신도 그렇고, 심지어 그의 외사촌들도 그렇게 여기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본문 창 31:1-3은 말합니다.
1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2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사촌들은 야곱을 가족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사기꾼 내지 도둑놈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외삼촌도 야곱을 대할 때, 전과 같이 않게;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보는 눈빛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곳을 떠나, 네 조상 땅; 네 족속(가족)에게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20년 전에는 분명히 이곳 하란으로 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데, 지금은 분명히 이곳을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하나님의 뜻을 아는 길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과거가 아닌 현재, 지금 하나님을 뜻을 따라 살 수 있을까요?
<본론>
1. 일상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일상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지금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야곱은 평온한 듯한 일상을 살다가 야곱은 자신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섭리)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계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20년 전, 고향 가나안 브엘셀바에서 도망자로 메소포타미아 밧단아람의 하란으로 왔던 그가, 이제 다시 그곳에서 도망자가 되어 하란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외사촌들이 야곱을 자신들의 재산을 훔쳐간 도둑내지 사기꾼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라반의 안색이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야곱을 대하는 외삼촌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입장에서는 라반과의 임금협상대로 양이 새끼를 낳을 때 점이 있고 얼룩진 것을 삯으로 받았는데, 하나님이 복 주셔서 온 양이 나는 새끼마다 얼룩진 것을 낳아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외삼촌과 사촌들이 생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래서 계속 이곳에 머무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물론, 잘되다가 갑자기 안 되면 무조건 이사를 가야하고, 사업을 접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상황 윤리처럼 과거에 하나님의 뜻 이었던 것이, 지금의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될 수 있다는 말도 압니다.
그 계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 은혜에 파묻혀 지금 하나님의 역사를 무시해서 안 되고, 과거의 체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지금도 여전이 그 추억 속에서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진짜 위기는 갑작스런 사고나, 사업과 직장의 불통, 건강과 자녀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발견하고 있습니까?
삶의 모든 상황과 사건을 통해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야곱이 라반과 사촌들의 적대 행위를 보면 떠날 때를 감지했듯이, 때때로 우리는 어떤 상황이 생겨나면, 혹시 하나님의 뜻이 거기 있지 않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합니다.
물론 어렵다고 다 접고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려워도 참고 이겨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여러모로 보아도 환경이 전혀 허락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 전하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행16:6~10입니다.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하나님의 다스림은 우리가 예상하거나 계산한데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예상하고 계획했던 거시 어그러진다고 실망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이 일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에 순종하여야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에 순종하여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들었고 그 명령과 언약을 붙들고 순종하였습니다. 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3)
이제, 외삼촌과 사촌들의 영향에서 벗어나야하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언젠가는 여기를 떠나야한다는 것을 야곱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갈 것인가’하는 장소가 문제였습니다. 그 시점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고 특정 장소를 지정해 주십니다.
그것도 문제였습니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요? 야곱은 지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형 에서로부터 도망쳐온 신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후에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기 전에 떼를 두 패로 나누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는 몸부림을 합니다.
그리고 화해는 했으나 고향 가까이 가지 않고 남하를 멈추고 서북쪽 세겜에 장막을 치고 밭을 사고 정착하려다가, 딸 디나가 강간 사건을 당하면서 그곳에서 쫓기듯 도망하여 비로소 남쪽으로 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메소포타미아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야만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 때문입니다.
창세기 28:13-15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형까지 등지고 하란가지 도망온 이유는! 자신의 조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이 언약과 복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렇게 까지 해서 얻은 언약의 제정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돌아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언약은 야곱의 생애를 이끄는 원동력이고 비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돌아가라는 명령과 언약을 붙들고 순종하여 귀향을 단행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생을 좌우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무엇입니까?
야곱이 돌아가기 힘든 정황이었지만 고향을 향하여 떠나게 만들었던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듯이, 여러분 생을 좌우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까?
이것 때문에 살고, 이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비전이 있습니까? 그리고 아직, 그것을 붙들고 있습니까?
처음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주의 자녀 된 자로서 하나님이 주셨던 은혜와 감격, 그리고 비전을 간직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있다면, 우리는 "this or that" 선택의 순간에 아주 쉽게 결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상황과 정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말씀으로 역사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로 살고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에 순종하여 성도로서 가야할 길을 바로 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으로 축원합니다.
3. 순종하면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과 명령에 순종하면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놀라운 것은, 야곱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자,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야곱이 고향 행을 단행하는 데에는 큰 두 개의 문제가 현실적으로 나타납니다.
우선, 아내들이 동의 할 것인가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4절부터 16절까지 자세하고 길게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아, 당사자인 야곱이 귀향하기로 결정한 것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내들은 아버지와 함께 머무는 것이 더 좋을지 모릅니다. 특별히 야곱과의 결혼이 매우 불행했던 레아에게는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분별력 있게 다른 가족이 들을 수 없는 “들”로 아내들을 불러냅니다. 그리고 장황하게 이 상황을 설명합니다.
자신이 그들의 아버지를 충실히 섬긴 것과 반면에 라반이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임의로 변경하였지만”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5)을 상기시키면서, 라반이 야곱에게 해 끼치지 못한 것은 하나님 때문이었고(7), 야곱에게 얼룩진 양들을 선택적으로 번식하게 하신 이는 하나님으로서 “그대들의 아버지의 짐승들을 빼앗은 것도” 하나님 이셨고, 그 하나님께서 지금 “이 곳을 떠나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13)”라고 말씀하셨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야곱의 염려는 그냥 기우였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아내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야곱을 따라갈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놓으셨습니다.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업이나 있으리요...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14-16)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라반의 추격과 방해입니다. 라반의 만류를 피해 달아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라반은 과거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가나안으로 데려가려 했을 때, 지연시키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이제 그의 아들 야곱을 붙잡고, 거의 20년이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연시켰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야곱이 떠나게 해달라고 말한다면, 또 라반은 야곱이 머물러야 하는 또 다른 그럴듯한 이유를 찾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따라서 야곱은 말없이 도망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라반의 모든 남자들이 양털을 깎느라고 때를 이용하여 3일 길을 도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일가가 떠난 지, 3일 만에 라반은 추격대를 조직하여 7일 길을 달려서 10일만에 야곱을 붙잡는데 성공합니다.
그래서 라반은 어쩌면 야곱과 그 딸들을 납치하듯 다시 강제로 끌고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라반은 몹시 화를 내며 야곱의 행동을 비난은 했습니다.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네가 내 딸들을 칼로 잡은 자 같이 끌고 갔느냐! ... 어찌 내 선을 도적질하였느냐”라고 따졌지만, 그게 다 입니다.
라반이 이상은 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라반은 추격 몇일 째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나안 경내에 들기 전인 요단 근처 길르앗(31:23)에서 숙영합니다.
그날 밤 하나님이 라반을 찾아오십니다.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24) 하셨기 때문입니다.
충청도 표현대로 하면, ‘너 야곱한테 손만 데 봐! 내가 절단 낼겨!’ 이러한 하나님의 조치는 라반조차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야곱의 편이며 자신이 야곱을 손 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했습니다.
오늘 말슴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에 순종하는 당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야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실 것이며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지키실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28:15).
또한 이 사건은 그의 후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는 사건의 그림자가 됩니다.
그리고,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영적 후손들에게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주께서 원하는 자리로 돌아갈 결심과 순종’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순종하고자 결단하고 결행한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 순종하려 할 때, 많은 장물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장애물에 의한 방해나 열려 걱정이 아닙니다. 과감한 결단과 실행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라헬과 라헬 그리고 라반에게 하셨듯이, 주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시고, 기꺼이 동의하고, 동참하도록 하게 하실 것입니다.
좌편 팔과 우편 팔이 되어 적극적인 협력자로 세워 주실 것이고, 방해자도 종국에 가서는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막아주시고 화해자로 세워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결단하고 순종을 결행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매일 매일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야곱의 귀향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역사는 결코 우연에 의해서나, 전적으로 인간의 의지에 의해 진행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사는 분명 창조주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에 따라 움직이는데, 이것은 전인류사와 개개인의 역사에까지도 해당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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