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성령의 임재를 구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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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기도>
사랑이 많으신 삼위 하나님, 이 시간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밝히시고, 우리의 귀를 열어 주옵소서. 우리 마음 안에 부정한 것들 깨닫게 하시고, 십자가의 보혈로서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깨끗케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심령 가운데 역사하시고, 주의 크신 능력으로 동행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전하는 자나, 듣는 우리 모두 연약한 심령입니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충만히 역사하여서 이 말씀이 증거될 때에, 주의 말씀으로 증거되게 하시고, 듣는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또한 듣게 하옵소서.
이 시간 저희들이 드리는 감사의 마음과 예물을 받아주옵소서. 주께서 기뻐 받으시고, 주의 나라가 확장되는데 귀히 사용되게 하오서. 주님께서 모든 영광 받으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현실 감각>
여러분들은 삶의 자리에서 막막함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정말 최선을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더 이상 무엇을 더해야 하는지 알지 못할 때에 막막함을 느낍니다. 우리에게는 이처럼 때로는 불가항력적인 어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겔 37:1-14는 허황된 이야기가 아닌, 성취된 것>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령의 임재는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것입니다. 지난 2주에 이어서 우리는 에스겔의 비전 속에서 마른 뼈가 살아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상징이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 땅 가운데 반드시 성취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성취>
먼저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성취되었습니다. 세계 패권을 잡고 있던 바벨론이 하루 아침에 페르시아 정권으로 바뀌면서, “고레스 칙령”에 의해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함도 다소 갑작스럽게 맞이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처럼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놀랍게 회복되어 갑니다. 귀환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였고, 성전이 재건되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성벽이 재건되는 것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여러분들이 에스라, 느헤미야서를 읽어보면, 이것이 정말 성경이 말하는 역사구나를 알게 됩니다.
<신약에서 성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고, 사망을 향한 대속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어둠에 있던 우리를 건져내셨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성령을 우리 모두에게 주시고자 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참 이스라엘의 회복과 이들에게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생령’이 되는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사명>
여전히 교회적으로 여전히 우리는 사명이 있는데, 그것은 여전히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일을 전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고, 그 분의 사역이 왜 내게 큰 구원인지 전하는 사명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현 주소>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사명을 논하면서,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서도 충분히 ‘구원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충분히 알고 있는 지체들도 있지만, 내일 우리가 이 땅의 삶을 다해서 죽게 될 때, 하나님의 나라로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세상의 영향을 참 많이 받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에만 너무 큰 영향을 받는 것일 수 있습니다. 조금더 눈을 들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최근 교회 내 구원의 확신이 어떤가 조사한 설문이 있습니다. 4명 중 3명은 확신이 있고, 4명 중 1명은 확신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 또한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목회자로서 이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힘만으로는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본문의 화두, 부흥>
우리는 오늘 성령이 처음으로 교회에 충만하게 임재했던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을 살핍니다. 이 사건을 한편으로는 박물관에 보관된 과거의 유물로만 바라보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을 여전히 우리가 사모해야 할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바라보길 촉구합니다.
본문은 에스겔의 궁극적인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의 이야기 또한 우리 힘으로 회복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간구했던 역사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소위 우리는 ‘부흥’이라고 말합니다. ‘리뉴얼’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리바이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무엇이 되었든 쇠하였던 것을 완전히 새롭게 하는 것을 ‘부흥’이라고 말합니다. 마치 에스겔의 마른 뼈가 생령이 된 것과 같은 것이 ‘부흥’입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이러한 부흥의 역사를 함께 간구하기 원합니다.
1. 성령의 임재가 새롭게 한다.
사도행전 2장 6-7절
6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제자들 원래 모습은 막막하고 상황은 매우 거칠었음
그러나 성령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소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됨, 모든 사람들이 놀라게 됨.
이 기도는 집안에서 드려지지만, 주변에 충분하게 들릴 정도로 크게 드려짐.
물론 120명의 사람들이 일시에 기도하니 크게 들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2:11이다.
사도행전 2장 11절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이들의 방언은 아무도 알아들 수 없는 방언이 아니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였다. 이 예루살렘에 명절로 말미암아 다양한 나라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모두 모였다. 페르시아, 헬라, 이집트, 등 다양한 나라에서 모였는데, 이 언어가 각 나라의 언어들로 방언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사실 창세기 11장에서의 바벨탑 사건 이후 언어가 흩어진 사건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언어가 흩어짐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갈등이 생기고, 결국은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서로 소통되고 화평하게 되고, 화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들이 이방의 언어로 무엇을 이야기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큰 일이다. 하나님의 큰 일이란, 결국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친히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소식이다. 예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용납되고, 하나님의 품으로 안겨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놀라운 소식이다. 이 소식이 각국 방언으로 증거되는 것이다.
사도행전 4장 31절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또 한편 이 성령의 강림으로 말미암은 중요한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이 담대하게 전파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전파할 수 있게 되었다. 왜 그런가.
요한복음 16장 33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살아있게 하시고, 이 말씀을 더욱 적극적으로 의지하고, 믿으며 담대하게 살아가도록 한다.
물론 오순절의 사건이 오늘날 완전히 동일하게 재현되지는 않는다. 가장 핵심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령님의 주권적인 임재하심이다. 그러할 때에, 우리 인생의 터닝포인트처럼, 우리가 담대하게 살아가게 된다. 돈을 많이 벌되, 돈에 지배받지 않은 삶을 살게 되고, 우리의 삶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살아가게 된다. 나를 지향하고, 나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우리 공동체적으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날마다 보게 되며, 생기 있는 공동체를 경험하게 된다. 단순히 즐거운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함께 불타오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오늘 제목과 같이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먼저는 우리가 임재 자체를 구해야할 것이다.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을 우리가 간절히 구해야한다. 왜냐. 우리 힘으로 되지 않기에, 우리의 상황에서 막막함을 느낄수록 하나님의 임재를 구해야한다.
그렇다면, 임재를 구할 때, 우리 공동체에는 어떠한 특징들이 나타날까?
2. 임재를 구할 때, 다시 기도하게 된다.
사도행전 1장 14절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예루살렘에 모여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더 상세한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으셨으나,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제자들은 모였을 때,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고 말한다.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공동체에도 정말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간구한다면, 우리는 계속 기도함을 멈춰서는 안된다. 하나님 임재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 공동체 가운데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먼저 우리 개개인의 마음을 새롭게 하옵소서. 현재의 상황과, 내 현재의 마음 상태는 참으로 막막한 상황이오니, 하나님 임재하여 주옵소서.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체적으로 임재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사도행전 1장 14절에서도 이렇게 기도에 오로지 힘 쓸 때에, 오순절이라는 날에, 성령의 특별한 임재로서 강림하였다.
비단 오순절의 사건만이 아니라, 4장에서도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거했을 때에, 당국자들, 최고 권위자들이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도록 입막음을 하였다. 물리력과 공권력이 동원되었다. 그러할 때에도 이들은 다시 기도로 나아갔다.
사도행전 4장 29-30절
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간절히 기도할 때에, 다시금 성령의 충만함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달라는 기도하는 가운데서 역사함이 나타난 것이다. 만약에 이들이 하나님의 역사와 임재를 갈구하지 아니하고, 좌절하고 멈춰섰다면, 사도행전의 이후 기록들은 보기 어려운 일이 되었을 것이다.
사도행전 4장 31절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기도할 때에, 성령이 충만히 임재하게 되고, 세상이 우리를 등 돌리듯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담대히 나아가게 된다.
또한 이어서, 중요한 교훈은 다시 성경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성령의 임재를 구할 때, 우리는 기도의 능력 안으로 들어갈 뿐만 아니라, 성경에 대해서도 더 깊이 사모하게 된다. 기도는 깊어지는데, 성경과 멀어질 수는 켤코 없다.
3. 임재를 구할 때,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게 된다.
사도행전 1장 20절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놀라운 것은 사도행전 14절에 이어서 별도의 사건이 하나 기록되어 있는데, 제자들이 성령을 기다린 것 외에 더 한 가지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진행한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12제자들 중에서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자살을 하였는데, 그 빈 한 자리를 다시 뽑는 일이다.
그런데 이를 채우는 과정에서 베드로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시편 69편과 109편을 인용하여 다시 세우게 된다. 이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감동이 온 것이다. 더욱더 기도하게 되고, 또한 동시에 더욱더 성경의 말씀으로 돌아가게 된다.
사실 이러한 역사 이후에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부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 14장 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이 말씀을 보면, 성령의 사역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말씀들을 생각나게 한다고 말한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기록된 것인데, 그렇다면, 모든 말씀에 대해서 깨닫게 되고 사랑하게 하시는 역사가 성령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성령님이 충만하게 우리 가운데 부어지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연속적인 사역 속에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부흥을 간구하면서, 실천적인 권면들은 다시금 우리의 삶의 자리를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은 것에서 그치며, 기도의 자리로, 말씀의 자리로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오순절의 사건이 그랬다. 그들은 기다렸다. 기다리며 기도했고, 기다리며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했다.
이러한 부흥의 역사는 세계 역사 속에서 다양하게 일어났다. 한국 교회 또한 평양대부흥의 결과로서 이처럼 교회의 성장이 있었다. 그 뒤로도 다양한 부흥의 현장들이 있었다. 그 모든 과정과정 마다 기도와 말씀이 더욱 깊어지는 가운데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나타났다.
종교개혁 또한 동일하다. 루터 또한 카톡릭이 성경을 떠나서 다른 것으로 이를 대체할 때에, 더욱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간구하며, 말씀으로 돌아가자고 간절하게 외쳤다. 우리 또한 동일하다. 역사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진정어린 기도, 특히나 회개의 기도와 더불어 말씀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점차 하나님의 생명의 빛과 사랑의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되어 간다.
*말씀-결단찬양-기도제목1-기도제목2-축도-송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