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살아가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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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14–16 NKRV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크리스마스 저녁에 모든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나누어 줄줄 모르는 구두쇠 끝판왕인 스크루지 할아버지가 혼자 외롭게 잠이 들었습니다. 잠이 든 스크루지 영감에게 천사가 찾아 왔습니다. 천사는 스크루지 영감에게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 줍니다. 천사는 스크루지 영감에게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스크루지 영감을 데리고 자기 가게 직원인 봅의 집으로 데려 갑니다. 6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봅의 집은 너무나 가난했지만 행복한 얼굴로 크리스마스 저녁을 가족들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6명의 아이들 중 막내가 얼마 전 다리를 다쳤는데 수술비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봅의 가족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식탁에 모여 크리스마스 저녁을 먹기 위해 둘러 앉아 식사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혼자 외롭게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고 있는 스크루지 사장님에게도 축복을 내려주세요.’ 그 모습을 보는 스크루지 영감은 봅 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때 월급을 주지 않아 먹을 것도 없고, 다친 아이를 치료하지도 못하는데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봅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라는 말씀 입니다. ‘축복하라’ 라는 성경 원어의 의미에는 ‘기도하다’ 라는 의미가 포함 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44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라고 예수님이 말씀 하십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을 다시 말하면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기도하라’ 라는 것 입니다. 우리는 때로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위해와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초대 한국 교회사에서 박해는 심각했습니다. 아마 예수 믿는 것으로 인해 집안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박해를 받아 보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예전과 같이 눈에 보이는 박해는 없지만 그렇다고 교회를 박해 하는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른 형태의 박해로 교회는 세상의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 가장 심했던 시기가 코로나 때였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헌금 때문에 예배를 드린다고 하기도 하고, 어디에서 코로나 걸려도 이상하지 않는데 교회에 가면 코로나 걸리는 것처럼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직장인들과 공무원들은 직장에서 교회에 가지 않도록 하기도 했고, 학생들은 교회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 하고 숨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코로나의 여파로 코로나가 끝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대면 예배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주 이용식 집사님이 오실 때 함께 오신 기독문화선교원 대표님도 코로나 이후에 간증집회를 다녀보면 교회마다 코로나 전보다 20-30%정도 성도들이 줄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오늘 말씀이 기록되어지고 있는 그 당시에도 교회에 박해가 있었습니다. 특히 로마교회는 그 당시 세계를 정복한 로마 황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클라우디스 황제는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의 논쟁을 이유로 모든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가 기록되고 난 이후, 클라우디스 황제 다음으로 황제가 된 네로는 미치광이 네로 라고 불렸습니다. 그가 황제로 있을 당시 로마의 대화재가 나서 로마의 대부분이 불타 없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네로가 직접 불을 지르라고 명령을 내렸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게 되는데 그 희생양이 바로 그 당시 로마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네로는 수 많은 기독교 인들을 잡아 다가 고문을 하고 개에게 찢겨 죽고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심지어는 기독교인들을 십자가에 매달고 그들이 불에 타기 쉽게 해놓고 밤이 되면 불을 붙여 횃불처럼 타오르게 했습니다. 역사가들의 말에 따르면 네로의 박해때에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박해를 피해 카타콤 이라는 지하 무덤에 들어가 예배를 드렸고, 소아시아 갑바도기아 지역에서는 데린구유라는 지하 8층 깊이의 땅굴을 파서 그곳에서 기독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생활하고 예배를 드리고 기독교 교육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14-16절 말씀을 통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의 외부적인 관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공동체 내부적인 관계 속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 보고자 합니다. 14절에 바울은 왜? 교회의 박해 가운데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기도해주라고 했을까요? 첫째는 세상이 교회를 박해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의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것 입니다. 예수님도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교회를 박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 입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일에 우리가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을 저주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고 도리어 우리가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축복하고 기도하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로마서 12장 14절 말씀을 읽을 때 복음을 전하다가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 집사님이 생각나지 않으셨습니까? 사도행전 7장 50절에 스데반 집사님은 죽기 직전에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마음이 예수그리스도의 마음 입니다. 이 마음은 우리의 노력과 행위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만 그 일이 가능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마음은 숨기고 드러나는 행위는 안 그러는 척 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척, 공감하는 척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가 않아서 저 사람이 나를 진짜 사랑하고 있는지 보여지는 행위로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몸의 할례를 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구원의 징표로 삼고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척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시험을 통해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고 따르겠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십니다. 그런데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 40일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자 출애굽기 32장에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이게 우리를 출애굽 시킨 하나님이라고 하며 우상을 섬깁니다. 하나님은 자신과의 약속을 파기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진노를 거두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큰 약속을 주십니다.
그 약속이 모세의 고별 설교인 신명기 30장 6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마음에 할례를 베푸셔서 너희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 이라고 더 큰 약속을 주십니다. (신30:6절) 그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은혜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주시고 마음에 할례를 베푸셔서 우리로 하여금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어쩌면 세상의 박해는 우리에게 믿음의 ‘시험’ 일 수 있습니다. 그 시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진짜 인가? 라는 시험 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저주 하지 않고 축복하고 기도하는가? 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 모두에게 복음의 은혜로 마음에 할례를 베 푸셨고 우리의 마음이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을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하신 복음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시고 우리 안에 주신 복음이 다시 살아나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배우 차인표씨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모태신앙인 차인표씨는 평생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었지만 단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서 지저스, 지저스 라는 뮤지컬에 4년 동안 예수 역할로 출현도 했지만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에 2006년도에 아내인 신애라 씨가 한국 컴패션 대표로 인도 콜카타 지방으로 아이들을 만나러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사정이 생기게 되어 못 가게 되고 남편 차인표 씨에게 대신 가줄 것을 부탁 했다고 합니다. 차인표씨는 갖은 변명으로 안 갈려고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끌려 가게 되었습니다. 가면서 다른 컴패션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얼굴 섞이는게 싫어 가지고 자기 혼자만 비행기 1등석을 타고 갔답니다.
그렇게 인도에 도착해서 먼 길을 차를 타고 들어가서 인도 시골 마을로 들어가는 중에 컴패션 팀을 인솔해간 대표 목사님께서 차인표 씨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인표씨가 지금부터 만날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아이들 입니다. 이 아이들을 만나시면 꼭 좀 안아 주시고, 너희들은 귀한 존재다,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다.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다고 해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차인표 씨가 그거는 충분히 할 수 있고, 그렇게 하겠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앞쪽에 있는 인도 6,7살 되는 남자 아이가 차인표 씨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손을 잡는 그 순간 차인표 씨가 수십년 동안 듣고 싶었던 예수님의 음성을 그 아이를 통해서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인표야 잘왔다. 내가 너를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다.’ 차인표씨는 그날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고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다고 간증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차인표 씨만이 아니죠.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고 우리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 졌습니다. 사람의 행위와 노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우리의 마음이 변화를 받아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의 현장 속에 여러분 모두에게 주신 은혜의 복음이 작동 되어져서 날마다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축복하고 기도하는 우리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14절을 통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의 외부적인 관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았다면15,16절을 통해서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공동체 내부적인 관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15절에 교회의 성도들은 서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한 가족 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몸 된 지체라고 말씀합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아프면 온 식구가 아픕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에 한 부분이 다치거나 아프면 온 몸이 아픕니다. 반대로 가족 중에 누가 즐거운 일이 있으면 가족 모두가 같이 즐거워 하고 기뻐합니다. 이 모습이 교회 입니다. 세상에서는 사촌이 땅 사도 배가 아픕니다. 성공한 사람을 축하 하는 것보다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 하는게 더 쉽다고 합니다. 성공한 소식을 들으면 배가 아플 정도로 질투가 나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조야 교회는 복음 안에서 한 가족임을 명심하십시오. 마지막 때인 지금 이 세대는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습니다. 너무 바쁘다 보니 감정이 메말라 지고, 서로를 돌아 보지 않습니다. 자기가 제일 중요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것만 최고로 여기고 관심이 없는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무정하고, 사랑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 속에 살다가 교회에 와보니 너무 위로가 되고,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되라고 교회라는 공동체로 불러 주신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는 16절에 교회는 서로 마음을 같이하고, 연합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무조건 같은 의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겸손하여 서로의 의견을 맞춰가고, 의견을 일치 시켜 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 입니다. 세상은 같은 사람 끼리도 급을 나눕니다. 그리고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적으로 여기고 상종 못할 사람으로 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다 죄인 입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교회 안에 복음의 원리가 작동하여 서로 마음을 같이하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여 서로를 높여주고 조화를 이루어 갈 때 교회는 이 세상 가운데 선으로 악을 이기는 믿음의 공동체가 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롬12:2]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믿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이 우리 마음에 작동 되어져서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교회 되기를 소망합니다.
21세기,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교회가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교회 안에서 함께 슬픔과 기쁨을 나누어 한 몸이 되어 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을 같이 하여 서로를 높여주고 세워 가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우리 조야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참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성도님들의 삶이 쉽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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