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 엡 4:30 / 찬송가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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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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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새벽을 깨워서 이 곳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주일날 말씀을 다시금 되새겨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공개하여 주셨음에도, 우리는 전혀 예수님께 우리의 죄악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라합이 붉은 줄을 매달았던 것처럼, 이제 예수님께 구원받은 성도로서, 세상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공개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공개된 예수 복음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오늘부터 목요일까지 연구소에 가서 성경연구를 하는 담임목사님, 필요한 체력과 집중력을 허락하여 주셔서, 온전히 이 시간에 예수님께 몰입하고, 영적으로 민감하여 질 수 있도록, 예수 복음으로 충만하여 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우리는 만달란트 갚음을 받은 사람임을 기억하며, 예수님께 받은 그 은혜에 반응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셔서, 그 은혜에 감격하여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책을 읽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세상에 수많은 가짜 진리들 속에서 이 책을 통하여 분별력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교회에 올해를 잘 마무리하고, 내년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넘치도록 부어주셔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교회가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추워진 날씨 가운데 성도들을 지켜주시고, 감기와 같은 작은 방해물들을 주님께서 치워주셔서, 예수님께 더욱 집중하는 연말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환우들, 주님께서 어루만져 주시고, 치료하여 주시고, 함께 하고 계심을 더욱 믿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은혜가 차고 넘쳐서, 고통의 늪에서 오히려 담대하게 예수님께 자신의 죄악을 자백하고, 예수님께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며, 예수님께 더욱 가까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행복이 사라진 이 땅 가운데, 가짜 축복, 가짜 행복들이 판을 치고 있는 시대 가운데, 진짜 축복이신 예수님이 임재하여 주시고, 우리 성도들의 삶을 예수님께서 항상 붙잡아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시간 말씀 듣습니다.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고, 들은 말씀으로 오늘을 살아내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묵상하며 받은 은혜를 담대하게 공개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서론
서론
오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4장 30절 에베소서 입니다. 우리 같이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읽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배의 자리에 오신 성도 여러분들을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4장 30절만 읽었지만, 4장 25절부터 32절까지의 말씀을 같이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한 가지 이야기입니다. 어떤 성경 본문이 재미가 없다면, 그것은 당신의 실력이 없어서 입니다. 이 이야기를 다양하게 바꾸어서 말할 수 있겠지요. 어떤 성경 본문을 읽었는데, 은혜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경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문제이다. 요한계시록을 읽었는데, 어렵고 난해하고, 무섭게 느껴지면, 그것은 요한계시록이 문제가 아니라, 읽고 있는 우리 자신이 문제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예수 계시 책을 같이 사서 읽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요한계시록을 곧바로 읽으면 계속 무섭고, 어렵고, 이해가 안 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속아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죠. 예시 계시 책을 잘 소화시킨 후에, 요한계시록을 읽으면, 은혜가 되고, 기쁨과 감격이 넘쳐나는 겁니다.
이처럼 오늘 말씀도 그렇습니다. 성도분들 중에서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채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저는 바울이 쓴, 바울 서신이라고 하죠. 로마서, 골로새서, 고린도서, 오늘 본 에베소서. 이러한 성경을 바울서신이라고 부르는데, 저는 이 바울서신을 굉장히 어려워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를 할 때도 주로 복음서나, 창세기 같은 사건 중심, 이야기 중심의 본문들을 많이 선택하는 것이죠. 바울 서신은 저에게는 무척 어렵습니다. 대표적으로 에베소서를 읽을 때에, 뒤쪽 4장 부분을 읽을 때에, 부담이 되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 마라. 해라. 명령으로 가득한 본문들을 읽게 되면, 자연스럽게 부담이 되고, 읽기 어려운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와서 이건 에베소서, 바울서신이 문제가 아니라, 누구 문제 입니까? 저의 문제라는 것이죠. 제가 에베소서를 잘 모르기 때문에, 바울 서신을 잘 모르기 때문에, 부담을 느끼고, 어렵게 느끼는 것이죠.
25절을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거짓을 버려라. 이웃과 참된 것을 말하라. 정말 부담이 됩니다. 그러면서 아내 생각이 나는 것이죠. 과연 나는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정말 사랑하는 게 맞을까? 사실 아내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아내를 사용하는 게 아닐까? 아내를 이용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죠. 아내를 내 일을 위하여 사용하면서, 겉으로 말로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도 이런데, 이웃에게는 말할 것도 없지요. 과연 거짓을 버릴 수 있을까? 참된 것을 말할 수 있을까? 매우 부담이 됩니다. 26,27절도 제가 읽겠습니다.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과연 이럴 수 있을까? 화가 나면 곧바로 기도하는커녕 원망의 마음을 품고 곧바로 죄를 짓는데, 이럴 수 있을까. 부담이 됩니다. 또 저희 군목 친구들 중에서 두 명이 서로 싸웠습니다. 멀리서 보면 별 거 아닌 걸로 싸운 것이지만, 어쨌든 싸워서 8개월 정도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구요. 다행히 제가 중간에 껴서 화해하게 되었는데, 저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죠. 해가 지도록 분을 품는 저의 모습, 분노를 풀지 않고 계속해서 담아 놓는 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마귀에게 틈을 주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참 이 말씀이 부담이 되었습니다.
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도둑질 하지 말라, 돌이켜서 구제하도록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선한 일을 해라. 그냥 계속 부담이 됩니다. 맞는 말인데, 너무나도 부담이 됩니다.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이걸 읽자마자 정말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일부러 더러운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일부로 상처주는 악한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말을 하다보니 상처도 주고, 악한 말도 나오게 되는 것이죠. 덕을 세우기는커녕 오히려 무너뜨리고 있는 모습. 선한 말을 조금도 하지 못해서 은혜를 끼치지 못하는 모습이 자꾸만 눈에 보이면서 정말 부담이 되었습니다. 30절은 잠깐 건너가서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이렇게 에베소서의 말씀들이 저에게 너무나도 부담이 되는 말씀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에베소서를 쓰게 하신 이유는 율법의 짐을 지게 하려고 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바울은 이렇게 살아라. 이건 하고, 저건 하지 말아라. 이렇게 윤리를 강력하게 말하면서 구원 받으려면 이렇게 살아야 해. 구원 받기 위해 이런 삶을 살아야 해. 이러한 목적 윤리를 말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또한, 이렇게 거룩하게 살아가서 공로를 쌓아야 하는 거야. 열심히 공로를 쌓아서, 천국에 상급을 받아야지. 이러한 공로주의나 상급론을 말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윤리를 강력하게 말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30절 말씀에 들어있는 것이죠.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바울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이 명령을 단순히 명령으로 받아들이선 안 됩니다. 이 명령 안에는 엄청난 복음이 담겨 있는 것이죠.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것은 우리 안에 이미 성령님이 내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성령님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정체성을, 우리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던 겁니다. 지금 여러분들 안에는 성령이 내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성령의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과거를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지금 우리는 성령이 내주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에는, 이전에는, 과거에는 우리가 어떤 존재였습니까? 끔찍한 죄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앞에서 말했던 모든 잘못된 죄악을 일삼으며,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육체의 열매를 맺고 있었던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죽었던 우리를 예수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제 성령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의 사람으로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그렇게 영적 전쟁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냥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구원에 감격하며, 기쁨으로 영적 전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패배하였지만, 아직 그 찌꺼기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를 방해하곤 합니다.
무엇을 방해합니까?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기 때문에, 성령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공개하는 것이죠. 성령의 사람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열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마귀가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은혜에 반응하여, 그 구원에 감격하여, 기쁨으로, 빚진 자의 태도로 자연스럽게 25절부터 32절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원 받으려고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 구원 받았기 때문에, 성령의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공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겁니다. 공로를 쌓으려고, 상급을 받으려고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예수님이 주시는 천국이라는 상이, 새 하늘과 새 땅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이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흔들릴 때도 있겠지만, 다시금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성령이 내주하고 있음을 기억하며, 성령의 사람으로서, 오늘 하루도 계속해서,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공개하고, 예수님께 집중하는 저와 여러분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 이제 예수님께 구원받은 성령의 사람으로서, 이제 날마다 예수님께 집중하며, 예수님께 공개하지 않았던 죄악을 날마다 회개하며, 그렇게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예수님 조금이라도 닮아 갈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이 시간 다같이 주여 한 번 부르짖고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