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04 새벽기도회: 에베소서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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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시겠습니다. 찬송가 435장 함께 찬송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도 한 주의 시작을 새벽기도회로 시작하게 하심 감사합니다.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되게 하심 감사합니다. 이번 한 주도 저희의 마음에 죄악이 틈타지 못하도록 지켜주시고, 언제나 저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한 주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고난 중에 있는 성도가 있다면 사람이 되셔서 모든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고난 중에 있는 성도의 마음을 잘 아시오니 위로와 평강을 주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기쁜 일이 있다면 이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희가 되길 원합니다. 이처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번 한 주도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4:1-6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 자리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어느덧 2023년도 새벽기도회도 4주 정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남은 4주 동안에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을 누리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인간에게는 자기중심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중심성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나를 중심으로 맞춰졌으면 좋겠고, 내가 하고 있는 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풀리길 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상대방과 싸우는 이유도 바로 이 자기중심성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방이 해주지 않거나 나는 이만큼 했는데 상대방은 이에 따른 반응을 해주지 않을 때 서운함을 느끼거나 싸우게 됩니다. 일 또한 그렇습니다. 내가 계획한대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사람은 짜증을 느끼고 심지어 화가 나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대로 부모님이 해주시지 않을 때 아이들은 울거나 짜증을 내고, 심지어 부모님께 화를 내기도 합니다. 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하게 부모님이 막으시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것은 비단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나 직장 동료들, 그리고 배우자에게까지도 우리는 이런 모습을 나타내곤 합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흘러가길 원하는 자기중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내가 마땅히 내 권리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단순히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말한 것일까요? 바울이 어떤 것을 근거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말씀을 함께 살펴보길 원합니다.
먼저, 바울은 1절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라며 에베소교회가 부르심을 받은 자답게 살 것을 권면합니다. 바울은 3장까지 에베소교회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뜻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성도임을 말하였습니다. 또한 1절 앞부분에서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바울이 말하는데, 당시 에베소교회는 감옥에 갇힌 바울을 보고 “나도 바울처럼 감옥에 갇히게 되면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하고, 낙심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자신이 감옥에 갇힌 것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리고 에베소교회 너희를 위해 감옥에 갇힌 것이라며 낙심하지 말 것을 3장 13절에서 말합니다. 이것을 근거로 바울이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1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는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4가지를 말하는데요.
첫 번째로는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라고 합니다. 겸손이라고 하면 우리는 나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 뜻도 맞지만 오늘 본문에서의 더 정확한 의미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3절 을 보시면 겸손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여기에 바울은 다툼이나 허영과 반대되는 말을 겸손임을 말하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 겸손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겸손은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온유는 공손함이라고 바꿔도 무방합니다. 따라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라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자세와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될 상황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친절하고 관대할 수 있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이것이 겸손과 온유의 태도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오래 참음으로 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상황이 어렵더라도 확신을 계속해서 견지하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오래 참음은 화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참고 인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뜬금 없이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화를 낼만한 상황 속에서도 그 화를 참는 것을 말합니다.
세 번째로 바울은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고 말합니다. 용납하는 것은 성가시거나 해로운 어떤 것도 참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교회 안에서 불평과 불만이 항상 있는 성도가 있습니다. 이 성도를 우리는 성가시게 여길 수 있습니다. 제발 불평이나 불만을 말하지 않으면 좋겠고, 아니면 심지어 제발 좀 떠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아닌 교회 밖에서도 우리는 이런 상황들을 마주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그저 꾹 참습니다. 내가 참는 것이 내키지 않고 싫으면서도 참습니다. 이렇게 참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참다보면 그것이 쌓여서 결국 폭발하게 됩니다. 그저 참기만 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사랑 가운데서”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단순히 마지못해서 하는 참음이 아니라 누가 누구에게 불평을 한다하더라도 서로 관용하고 용서하고, 더 나아가 사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서로 용납할 수 있게 된다고 바울이 말합니다.
네 번째로 바울은 3절에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앞의 세 가지가 향하는 목표점이기도 합니다. 바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고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것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이죠. 당시 교회에는 자유인과 노예,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 유대인과 이방인 등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서로가 너무나 달랐고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이들을 하나로 만드셨으니 열심을 다해 하나되게 하신 것을 유지해야 한다고 바울이 말합니다. 또한 바울은 4장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교회를 하나되게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되게 만드신 이 교회를 성도들은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 바울은 평안의 매는 줄로 하라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옷을 지탱하기 위해 단단히 고정시킬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줄로 옷을 고정시켰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빌려와 평안이라는 줄로 단단히 고정시켜 하나됨을 유지하라고 말합니다.
교회 안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불만이 있을 수도 있고 도저히 상대방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 가운데서 다른 사람의 약점을 용납하고, 상대가 나를 화나게 만드는 상황 속에서도 공손하고 온유함으로 하고, 그리고 겸손함으로써 힘써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교회를 하나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지킬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이것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꾸만 자기중심적인 인간으로 돌아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성이고,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교회가 어떻게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고 서로 용납함으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지 4-6절에서 말합니다.
4-6절은 다양한 말들이 있지만, 강조점은 ‘하나’에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라는 것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말합니다. 바로 언제나 하나가 되게 만드시는 하나님께서 계시니 에베소교회 너희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2장에서 하나가 되게 만드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먼저 말했었습니다. 에베소서 2:11-18 입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교회를 한 몸으로 만드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기꺼이 바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과 멀어져 한 몸이 되지 못하고 서로 나뉘어져있던 우리를 자신의 몸으로 삼으시고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목적 중 하나는 바로 ‘하나됨’입니다. 그분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만물을 통일시키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통일은 획일화가 아닙니다. 획일화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똑같은 사람으로만 만드는 것이지만, 통일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이 통일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나되게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이 하나 됨을 유지하시기 위해 교회 안에 사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기억할 때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셨듯이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을 가지게 되고 내가 하지 않아도 됨에도 다른 사람에게 친절과 관대를 베푸는 온유함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화를 내실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셨듯이 우리는 오래 참을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사람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향해 불만을 쏟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용납하셨듯이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으로 용납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평안의 매는 줄로 힘써 지킬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새순교회가 이것을 기억하고 실현하게 될 때 우리교회에는 천국이 펼쳐지게 될 겁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한분이신 하나님을 닮아 성령께서 교회를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새순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겸손과 온유함으로 하고, 오래참고, 사랑 안에서 서로를 용납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저희에게는 이것을 지킬 힘과 능력이 없습니다. 저희는 나만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한 몸으로 만드시기 위해 죽으셨으니 우리에게 능히 이것을 지킬 힘이 있음을 믿습니다. 교회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저희를 도와주셔서 언제나 하나가 되는 것에 힘쓰는 저희 교회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더 나아가 저희에게 허락하신 공동체가 많습니다. 그곳에서도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을 두고 기도하시고 자유롭게 기도하신 후에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