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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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23 은 아마도 가장 사랑 받는 본문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기에 더이상 두려움도 부족함도 없다는 고백은 가만히 읽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함께 묵상하면서 심오하고 깊은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묵상하는 시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 세 가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함께하는 목자입니다. 두 번째는 징벌하는 목자입니다. 세 번째는 추적하는 목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 시는 다윗의 시입니다.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평안함과 안정감일 것입니다. 그런데 시가 전체적으로 편안한 분위기 임에도 불구하고 알고보면 이 시가 굉장히 큰 위기 속에서 쓰여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깊은 영적 침체에 빠진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3절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말은 다윗이 영적으로 깊이 침체되어 있고 거의 죽어가는 상황에 처해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심폐소생술이 필요할 만큼의 깊고 어두운 상황에 빠져있는 것일까요?
다윗은 도대체 어떤 상황 속에 있었길래 영혼의 소생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그에 대한 단서는 4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고 있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거닐고 있다는 말일까요? 먼저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를 거닐고 있다는 것은 다윗이 무언가 커다란 죄를 지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원어로 보면 “걷는다”라는 단어는 시편에서 거의 대부분 “행하다”로 해석되고 있는데요,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사망과 죄의 길을 걷고 있는 상태, 다시 말해 죄를 짓고 있는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절에서 3절은 모두 하나님이 주어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보호해주고, 하나님이 다윗을 인도해주고, 하나님이 다윗을 양육하시는 내용이지만, 4절은 이상하게 다윗이 주체입니다. 다윗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고 있습니다. 다윗이 무언가 실수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무엇인가 가서는 안 되는 길목으로 들어서서 큰 위기에 처해진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다윗은 어쩌다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도 같은,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 만큼이나 커다란 범죄가 다윗에게 있었던 것이죠.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밧세바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밧세바를 범하고 나서 다윗은 처절한 절망 가운데 빠져있었습니다. “이제 나는 버림 받을 수 밖에 없어.” “하나님이 날 떠나실거야”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준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큰데, 나는 이렇게 끔찍하게 배신하고 말았어.” “이제 난 끝이야.” “도저히 회복할 수 없고 도저히 고개를 들을 수도 없도 없어” 라고 다윗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혹시 성도님들은 이런 적이 있으신가요? 내가 하나님을 너무나 많이 실망 시켜버렸다고 느꼈던 적 말입니다. 이제는 도저히 회생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에 빠져본 적이 있으신가요? 하나님과 너무나 멀어진 나머지 성령께서 나를 떠나셨다고 믿게 된 적은 없으신가요?
그런데 여기서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깊은 절망 가운데 있는 다윗은 “내가 해를 두려워하지 말는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해”는 어떤 손해를 의미합니다. 죄를 짓고 낙담한 다윗은 비록 실패하고 실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심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돌이킬 수 없는 실수에 빠져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손실이나 패널티와 손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 이유가 이어서 등장합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 내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실수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나를 떠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시편 51:11 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밧세바 사건을 저지르고 고백한 기도문입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 함께하시는 목자
첫 번째 주제입니다. 함께 하시는 목자입니다.
다윗은 너무나 낙담한 나머지 하나님이 나를 떠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성령이 내게서 떠나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내 다윗은 깨닫습니다.
시편 51:12 (NKRV)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주님이 구원의 즐거움을 소생시켜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여러분 성령께서는 영원히 저와 여러분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떠나고 거룩하게 잘 살면 다시 돌아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 약속하신 것 처럼 마태복음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하신 다는 사실입니다.
이 믿음 때문에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가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이죠. 성도의 삶은 때로 넘어지고 실수해서 일시적으로 낙심하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잠깐 낙담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넘어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큰 실패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놓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사랑”에 대한 약속은 다윗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구절인데요, 다윗 언약의 핵심 구절이기도 합니다. “다윗 언약”의 관점을 가지고 시편 23 을 볼 때 더욱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다윗 언약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바로 사무엘하 7 장에 14절 15절에 나오는데요, 그 핵심 내용은 바로 “영원한 사랑”의 약속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무엘하 7:14–15 (NKRV)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죄를 범하면 사람의 매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는 하지만 사울처럼 버림받지는 않는다는 약속입니다. 실제로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는 끔찍한 죄를 저질렀지만, 버림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윗을 사람의 매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는 하셨죠. 사울은 죄를 지었을 때 버림받았지만, 다윗은 버림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매와 채찍으로 징계는 받습니다.
2. 징벌하는 목자
두 번째 주제인 징벌하는 목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다윗과 동일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 사울처럼 버림받지는 않지만, 사람의 매와 인생채찍으로 징계는 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그 매와 인생채찍이 목자가 양을 인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시편23:4 에서 말하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23편에서 말하는 막대기와, 사무엘하 7장에서 말하는 사람의 매가 원어상 똑같은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 가운데 양을 인도하는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하나님의 징계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인도하시기 위해 때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사용할 때가 있으실 것입니다. 그게 바로 양을 인도하는 목자의 역할입니다. 그 징계는 영원한 사랑의 표현이며,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굳은 의지라는 사실이지요. 시편23:4 을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시편 23:4 (NKRV)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혹시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의 징벌을 경험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다윗도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죠.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칠 때 징벌하듯, 목자가 양을 인도할 때 막대기와 지팡이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사랑 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혹시 징벌과 징계가 너무나 힘들지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징벌을 할 때가 있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는 너무나도 끈끈하고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프고 괴로워도 아버지와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영원한 사랑의 약속이 다윗 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성령께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 과정이 비록 아프고 괴로울지라도, 그 걸음은 쉴만한 물가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비록 고통스러울 지라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목자의 손길이라는 사실입니다.
3. 추적하는 목자
마지막 주제인 ‘추적하는 목자’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을 보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른다고 합니다. 여기서 뭔가 이상함을 느끼지 않으시나요? 목자가 앞서가는 모습이 아니라 양이 앞서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목자의 모습은 양들 앞으로 앞서가는 이미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보여주고 있는 이미지는 양이 앞서가고 목자가 양을 따라가는 모습입니다. 왜 양이 목자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양을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인자하심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헤세드를 사용하는데,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마치 결혼처럼 언약적으로 변할 수 없는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두 번째로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는 “라다프”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추적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양이 때때로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하는데, 하나님의 영원히 변치않는 신실한 사랑이 양을 추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번 선택한 사람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비록 다윗처럼 실수하고 하나님을 떠나도, 그 분의 사랑이 끝끝내 추적해옵니다. 내가 넘어져서 낙담하고 있을 때도, 하나님의 사랑이 추적해옵니다. 그 사랑으로 부터 피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결국 우리를 설득하시고 회복될 때까지 따라오십니다. 때로는 징벌하시고, 때로는 위로하시면서 의의 길로 인도해 가십니다. 하나님의 추적하는 사랑은 우리가 영원히 여호와의 집에 거하며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우리 인생을 추적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려보시겠습니까? 저는 “너무 멀리왔나요”라며 죄책감에 허덕이고 있을 때 늘 먼저 저를 찾아오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돌아갈 면목이 없어”라고 느낄 때마다 먼저 “내가 너를 사랑한다”며 찾아오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저한텐 그런 추억이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따라갈 힘이 없을 때, 하나님이 저를 따라오셨다는 경험들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들을 떠올리며 다윗처럼 고백해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그 추적하는 영원한 사랑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십자가 사건이야 말로 “추적하는 사랑”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살해했음에도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저의 약함과 악한 행실에도 불구하고 심판 당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 대신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심판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대가로 하나님은 영원한 사랑을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누더기가 된 우리의 영혼을 다시 소생케 하시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화목제물로서 죽임당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에 죽으셨고, 우리 대신에 버림 받으셨고, 우리 대신에 심판 받으셨습니다. 그 대가로 우리 모두의 죗값이 지불되었고, 모든 빚이 청산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영원한 언약적 사랑을 약속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시23:6 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