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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론-배경; 혼합주의 가운데서 믿음을 지킨 에베소 교회
1서론-배경; 혼합주의 가운데서 믿음을 지킨 에베소 교회
0) 도입; 첫사랑의 설렘
0) 도입; 첫사랑의 설렘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첫사랑이 있으신가요? ‘첫사랑’이란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어떻나요? 첫사랑이라고 하면, 풋풋하고 또 두근거리고, 미숙하지만 열정적인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사랑의 느낌을 줍니다.
제 아내와 처음 연애를 할 때 제가 경기도 서쪽인 고양시에 살고, 아내는 잠실 아내쪽에 수서에 살았어요. 그 당시 연애 초반에는 제가 차가 없어서 대중교통을 타고 그녀를 만나러 갔는데 거의 한시간 반에서 두시간 정도 걸렸던 거 같아요. 거기서 만나서 밥먹고 카페가고 산책하고 또 한시간반 내지 두시간 정도 걸려서 돌아오고. 거의 이런 삶이 반복이었어요. 그 때 또 제가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었을 때인데 수업을 다듣고 난 뒤에 일을 제처두고 매일 같이 만나러 간거지. 시간도 안아깝고, 돈도 안아깝고, 오직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일념하에 달려갔죠. 그때는 그냥 그게 너무 좋았습니다.
요즘도 참 좋지만, 연애 초반에 가졌던 마음이랑은 좀 다른 거 같아요. 그렇게 힘과 정성을 다 쏟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거 같다는생각을 합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좀 쉬고 싶은데, 아내는 저를 부르죠. ‘여보 아기좀 봐줘’ 저는 곧바로 자는 척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저를 좀더 크게 부르면 그제서야 가서 아기를 보죠.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아,야근을 해야하나’ 이런 생각을 가끔씩 합니다. 아주 가끔씩합니다. 또 그런 마음이 들때는 ‘아 내가 참 부족한 남편이구나. 아내에게 잘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며 다시 잘 해보고자 노력을 합니다. 사랑을 유지하는 것, 또 조금 식은 마음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힘과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지요. 그러나 그 일이 가치있는 것은 바로 내가 정말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존재와의 관계를 지키는 일이고, 이 일이 내 삶에 정말 중요하고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1) 에베소 지역의 특징;부유하고 종교적이며 문란한 도시
1) 에베소 지역의 특징;부유하고 종교적이며 문란한 도시
오늘우리 본문에도 주님을 정말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그들의 신앙을 정말 뜨겁게 지켰습니다.
에베소라는 지역에 대해 소개하자면 에베소는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은 항구 도시로 소 아시아 지역의 거대한 무역 통로 역할을 하는 상업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아시아의 상업과 수출의 중심지로 번성한 에베소는 그 당시 도시의 인구가 20-25만명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굉장히 거대해지고 부유한 도시가 되었죠.
에베소는 상업뿐만 아니라, 황제 숭배가 정말 강한 지역이었어요. 로마시에서는 재밋는 정책을 펼쳤는데, 매년 황제를 잘 숭배하는 도시를 선별해서 그곳에 황제 숭배를 위한 신전을 지어줬습니다. 이 신전이 왜 중요하냐 하면, 지금으로 치면 스타필드와 백화점과 같은 곳입니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 됩니다. 사람들이 구경오고 와서 거래하고 그런 곳이 생기는 것이지요. 에베소에는 이런 신전이 3-4개나 있었습니다. 정말 로마 황제의 호의를 얻기 위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황제를 숭배했던 곳입니다. 황제 숭배와 더불어서 에베소는 제우스, 포세이돈, 아프로디테, 아폴로 등 50명이 넘는 신들을 숭배했습니다. 특별히 그중에서도 아르테미스 여신을 굉장히 사랑했고 그녀를 위한 거대한 신전을 세웠는데 이 신전은 지금도 어떻게 건축했는지 영문을 알 수없는 7대 불가사이 중 하나로 그 크기가 길이 130m, 너비 70m, 높이 18m나 되었고 기둥이 120여개나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 중 36개는 금과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정말 거대한 신전이 있었던 것이죠. 이곳에는 매우 성적으로 문란한 제사가 행해졌습니다. 음란한 문화가 도시 전체에 흐르고 있었고 그들은 이런 제사행위를 신을 위해 드리는 행위라 생각해서 죄로 보지 않았습니다.
2) 에베소 교회의 믿음;인내와 수고
2) 에베소 교회의 믿음;인내와 수고
이런 부유하고, 황제 숭배가 강하고, 음란한 문화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정착한 도시에서 믿음을 지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을 거에요. 왜냐하면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황제 숭배와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다면 도시에서 상업행위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먹고 사는 일에 직접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쉽게 예를 들면 이거죠. 여러분이 먹을 게 없어. 그래서 밖에 나가서 빵이든 핫도그든 마라탕이든 뭘 사먹고 싶은데 사먹으려면, 자신이 길드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되, 근데 길드에 가입하려면 황제나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되야해.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황제랑 우상을 섬겨 그래서 편하게 핫도그도 먹고 와플도 먹고 그렇게 삽니다. 근데 이 당시 에베소 교인들은 그러지 않았어요. 마라탕? 핫도그? 와플? 떡볶이? 그까짓꺼 안먹어 나 내가 가진 신앙 지킬 거야’하고 사먹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리고는 자신들끼리 모여서 직접 농사도 짓고 서로 나눠주며 사는 공동체를 만듭니다. 대단한 신앙을 가졌지요.
그들은 2-3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믿음을 지키고자 수고하고 인내했습니다. 2-3절 함께 읽어볼까요?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예수님도 믿고 황제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고 그런 식으로 사는게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을 사랑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믿음을 넘어뜨리려는 거짓된 가르침으로부터 굳건히 이겨냈습니다. 그들의 이런 행동은 복음의 진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로 헌신적이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해 참고 견뎌냈죠.
2본론-회개하고 회복하라
2본론-회개하고 회복하라
1) 사랑이 사라진 에베소 교회
1) 사랑이 사라진 에베소 교회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런 헌신적인 교회를 향해 칭찬을 더 못해줄 망정 책망을 하십니다. 4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너희가 처음 가졌던 그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붙잡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들이었지만 정작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잃어버린 채 맹목적으로 말씀을 고수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진리의 수호자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속 알맹이는 텅빈 껍떼기에 불과했습니다.
4절에서 사용된 ‘버렸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사랑이 식었다, 마음이 멀어졌다’는 수준의 표현이 아니라 ‘법적인 관계를 끊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과 왕과 백성의 관계를 맺으셨죠. 그리고 구원의 역사 가운데서 점점 더 그 관계를 발전시키셔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발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계시록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발전합니다.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는 자신들이 믿음을 아주 잘 지키고 있다고 확신했지만 그러나 정작 그들을 신랑되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본질을 잃어버린 이혼한 신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도 모르고 그들은 ‘나 믿음 좋아, 우리 교회 하나님 사랑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주님을 믿었던 에베소 교회의 열심을 굉장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이 누구보다 더 뜨거웠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삶을 위협하는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그것을 견뎌낼 수 있었지요. 하지만 그러다보니 정작 그들 안에 있어야 할 사랑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무엇을 위한 열심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며 그저 형식적인 모습만 남게 되었습니다. 본질은 잃어버린 채 모양만 남은 이런 모습은 우리 주님께서 회칠한 무덤같다고 비난한 바리새인들과 같은 모습이었죠.회칠한 무덤이란 겉모습은 깔끔하게 정돈되었지만 안에는 시체가 썩고 있는 그런 곳, 그런 더러운 곳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사라졌으니 당연히 자연스럽게도 형제들을 향한 사랑도 사라졌을 것입니다. 사랑이 사라진 곳에 날카로운 비난의 칼날이 들어와 서로를 찌르고 있었을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절 함께 읽어볼까요?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라! 너희들이 있었던 곳은 너희들이 가졌던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지위는 너무나 고귀한 지위였다. 그러나 너희는 그 지위를 걷어차버리고 본질을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남았다. 파혼한 상태다. 지금 너희의 비참한 상황을 인식하고, 회개하고, 처음의 행위; 처음 가졌던 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세요.
그들의 이런 껍데기만 남고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진 이런 모습은 우상숭배와 다를 바없습니다. 무엇이 같냐고요? 하나님이 아닌 믿음을 잘 지키고 있는, 굳건한 신앙을 가진 자신을 높이며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이지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는 것. 1계명의 말씀을 어긋나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매춘부라고 강력하게 비판하시고 그 상태에서 돌이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상태에서 회개하지 않는다면 너희를 무너뜨리겠다고 말씀하시죠. 5철 후반절의 말씀에도 ‘너의 촛대를 옮기겠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촛대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촛대를 옮기겠다는 것은 교회를 무너뜨리겠다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교회를 세우는 것은 자신들의 어떠한 믿음, 그들의 대단한 형식, 겉모습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본질이 있냐 없냐에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주님께서 하십니다.
2) 사랑을 회복하라; 하나님을 알자
2) 사랑을 회복하라; 하나님을 알자
회개한다는 것은 돌이킴을 의미합니다. 본질은 없고 껍데기만 있던 그들의 모습을 반성하고 다시 그들이 자신들을 구원한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에는 현재의 모습에 대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변화가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의 시작은 바로 본질의 회복, 사랑의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맺으신 신랑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의 관계 회복은 어떻게 이뤄질까요? 그 방법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그분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알 때 다시 이 관계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구원의 주님을 알 고 믿게 될 때 그리고 그분의 은혜와 사랑에 마음 깊이 감사할 때 우리가 회복됩니다.
구약시대에 호세아 라는 선지자가 있었어요.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불러 그에게 매춘부인 여인과 결혼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런 모습으로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비판하고자 하셨죠. 호세아는 매춘부 아내와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았는데 그녀는 과거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떠납니다. 재 스스로 집을 떠난 그녀를 호세아는 붙잡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떠난 아내를 데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그녀를 찾아가 자신의 집으로 데려옵니다. 그녀에게 자신의 변하지 않는 사랑을 표현한 것이지요. 분명 진심을 담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들지만, 하나님께 순종한 호세아의 모습을 통해 그의 행동은 그녀를 향한 온전한 사랑에 대해 물음표를찍게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사랑은 정말 분명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후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데요, 하나님과 결혼한 이스라엘이 하나님 당신이 아닌 다른 것들; 다른 강대국들과 다른 우상들을 섬기는 것은 다른 사람과 바람 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선포합니다. 이제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호세아는 이런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호세아 6장 3절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여호와를 알자! 하나님을 알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자!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알자’고 선포하십니다. 본질을 잃어버린 그들이 다시 돌이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이 알다 라는 단어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전 인격적으로;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체득하는 것이지요. 삶을 돌아보며 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은혜 베푸시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마음을 다해 아는 것, 그래서 그분을 우리가 다시 사랑하는 것이 본질을 떠나서 법적인 관계를 끊어낸 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끊어 내야할 법적인 관계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로마서 8장 2절이 말하고 있는 우리를 얽매는 죄와 사망의 법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이미 끊어내셨고 우리가 그분께 더 다가가고 그분을 더 사랑할 때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의 잔뿌리마저 없어질 것입니다.
3) 사랑에 빠져라; 몸과 마을을 다해
3) 사랑에 빠져라; 몸과 마을을 다해
우리를 돌아봅시다. 우리는 과연 처음 사랑을 가지고 있나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늘 기억하며 그분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몸과 마음을 다해 깊이 누리고 계신가요? 에베소 교회의 모습처럼 우리 안에 진리를 지키려는 모습, 형식은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본질이 사라지진 않았나요? 우리 안에 사랑이 없다면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겉모습이, 형식이 우리의 신앙과 교회를 지켜주지 않습니다. 1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오른 손에 일곱 별; 교회를 다스리는 천사를 의미합니다. 그들을 붙잡고 계시고 일곱 금 촛대;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 교회 사이를 거니시는 분 즉 모든 교회를 다스리시는 분이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행위가 아닌 그 마음의 중심인 사랑으로 교회를 판단하십니다. 그래서 사랑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5절 후반절처럼 촛대를 옮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6절처럼 그들에게 니골라 당이라는 거짓 이단을 미워하고 분별하는 행동도 있었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본질이 중요합니다.
3 결론; 이기라 그리하면 하나님 나라레 살게 되리라!
3 결론; 이기라 그리하면 하나님 나라레 살게 되리라!
여러분, 이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십니까? 지금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사랑하십니까? 차갑게 식어버려서 딱딱해진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온 몸과 마음으로 그분께서 베푸신 은혜를 알고 기억하며 사랑하는 새음 고등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세요. 7절 말씀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귀있는 자들 모두가 다 들으라고 하십니다. 그들에게 부드럽지만 강하게 이기라고 권하세요. ‘이기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하나님의 낙원이라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곧바로 에덴동산을 떠올립니다. 그곳에 생명나무 열매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있었는데 우리 인류의 대표였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동일하게 되고자 하는 죄악때문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고 낙원에서 쫓겨나 버렸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죄를 지은 상태에서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영원히 살게 될 것을염려하시고 그들을 동산에서 내보내시고 그곳에 들어갈 수 없게 그 곳의 문을 닫아버리십니다.
하나님 낙원의 생명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로인해 실패한 역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던 그들의 과오를 생각나게 하죠. 지금 현재 그들의 상태와 비슷하죠. 본질을 잊어버린 채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를 짓고 있는데 죄에 빠져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그런 상황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죄에서 회복되는 것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을 그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영원한 생명; 하나님 나라에 사는 것;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사는 축복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사는 것이 왜 축복일까요? 사라지고 변하는 것들이 우리의 인생의 기준과 목표가 아니라 영원히 변치않으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이 우리 삶의 기준과 목표가 되셔서,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그분과 함께 살게 되며 이 땅에서 우리의 생명이 끝나더라도 죽음 이후에 주님과 함께 할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큰 감사와 행복이며, 축복인 것입니다.
귀한 새음고등부 여러분, 학생들과 선생님 여러분 우리 함께 본질을 회복합시다. 처음 주님을 알게 되고, 그분의 사랑을 경험했을 때의 감격 그 은혜가 우리 안에 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사랑은 매마르고 형식만 남은 겉모습만 남은 우리의 모습을 회개하고 다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놀라우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우리 마음 깊숙히 알아 그분과 함께 하는 것이 좋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 좋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좋고 행복해서 그 사랑 안에 빠져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이땅에서 이미 하나님 나라에 사는 것; 즉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본질을 회복하고 우리 주님을 사랑합시다.
마무리 기도
마무리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