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장 22-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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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찾아오는 예수님을 신뢰해요.

A 무서워하여
B 소리 지르거늘
C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A`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B` 소리를 질러
C`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글렌 슐츠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화학 전공입니다. 고등학교 교사, 대학교 교수로 살아가면서 신학 전공을 하고, 신학교의 교수로도 활동했습니다. 또한 아버지이면서 교육 행정가의 일도 겸하고 협력 목사로, 또 국제 기독교 학교 협회의 이사로 활동하면서 기독교 교육 디렉팅을 담당했던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글렌 슐츠는 현재 기독교는 심각한 상황에 빠져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지적한 내용을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절대적인 진리의 교회가 포스트모던 사상에 억눌려 상대적인 진리에서 갈피를 못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글렌 슐츠가 말한 내용을 잠깐 봅시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통제하거나 사회 발전에 협력하는 데 좀처럼 적합하지 않은 지성을 소유한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그들은 세상의 풍속에 순응하며 의미 없는 것들을 찾아 헤매는 방랑자와 비슷하고…. 그들은 진리, 선함, 아름다움에 거의 무관심하고 일정한 성취와 가치를 평가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최종 목표를 설정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 세상의 모든 것은 절대적인 관점이 배제된 상대적인 것이 되고 만다. 그들에게 진리란 눈에 보이는 사실, 대중이 선호하는 것 또는 대중에게 편리하고 인기 있는 선, 그 이상이 아니다. 학교는 역경 속에서도 도전하고 성취를 이루는 다음세대가 아닌 정신적, 도덕적으로 의지가 박약한 세대만 배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런 말을 합니다.
1950년대 아이들은 순수함을 잃어버렸다.
이 시기의 청소년은 고소득 직업과 비싼 차를 원하고, ‘세대 차이'같은 용어가 생겨나게 한 노래를 즐겨 부르며, 부모의 권위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했다.
1960년대 아이들은 존경할 권위를 잃어버렸다.
1960년대는 저항의 10년이었다. 교회와 나라, 부모의 권위 등 권위가 있는 모든 것은 질문과 불만족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모든 권위가 거절 당하고, 어떤 권위도 그 자리를 채우지 못했다.
1970년대 아이들은 사랑을 잃어버렸다.
1970년대는 ‘자기 자신'으로 시작하는 단어인 ‘자아상', ‘자존감', ‘자기주장'이 만연한 ‘자기중심적' 시대였다. 이 때문에 세상은 외로움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아이들은 성과 관련한 모든 것을 배웠지만,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잊어버렸다. 그리고 이 두 단어의 차이점을 말할 만큼 용기를 가진 사람도 없었다.
1980년대 아이들은 희망을 잃어버렸다.
순수와 권위와 사랑을 빼앗기고, 핵무기의 악몽과 같은 공포로 전염된 시대 속에서 아이들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중단해버렸다.
1990년대 아이들은 진리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1990년대는 국가 지도자들이 진리를 단지 명확하게 합법적인 것으로만 다시 정의를 내린 10년이었다. 대중의 여론이 도덕적 진리를 규정할 때, 교회는 이 새로운 진리에 관해 침묵하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글렌 슐츠의 말은 환경이 변할 때 우리도 영향을 받을 수 있으나, 기독교의 정체성을 내어줄 만큼 변화를 받으면 안 되는데, 그러지 못한 현실이 지금 기독교의 위기를 만들어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이죠. 이런 세상의 풍조와 이념에 순종할 것이 아니라, 만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메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의 이념을 따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까?
본문에서 뭐라 말씀하는지 봅시다.
오늘 본문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패턴이 두번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따름. 세상의 풍파를 만남. 두려움으로 반응. 예수님이 찾아와 구해주심.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배를 탔습니다. 환경의 문제를 만났습니다. 두려워했습니다. 비명을 질렀습니다.
두번째로 예수님을 따라 베드로는 물 위를 걷습니다. 환경의 문제를 만났습니다. 물에 빠지기 시작하며 두려워했습니다. 비명을 질렀습니다.
즉 패턴을 보면 이렇습니다.
A. 예수님의 명령으로 배를 탐
B 무서워하여(제자들)
C 소리 지르거늘(제자들)
D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예수님)
A` 예수님의 승낙으로 베드로가 물 위 걸음
B`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베드로)
C` 소리를 질러(베드로)
D`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예수님)
오늘 본문은 이 패턴을 볼 때 우리에게 주는 말씀은 ‘내니 두려워 말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주변 환경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심하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하고 불평하는 우리를 안심시키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 패턴은 성경 전체에서 메아리 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예를 찾아볼까요?
먼저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15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2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이번엔 출애굽 이야기입니다.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이번엔 여호수아 이야기입니다.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14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리고 성을 정복, 아이 성을 정복, 아모리의 모든 왕과 땅을 정복, 가나안 북방을 정복

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오늘 본문의 패턴과 똑같죠?
A. 예수님의 명령으로 배를 탐 - - - 명령
B 무서워하여(제자들) - - - 세상의 풍파에 대한 반응
C 소리 지르거늘(제자들)
D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예수님) - - - 찾아와 안심
A` 예수님의 승낙으로 베드로가 물 위 걸음
B`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베드로)
C` 소리를 질러(베드로)
D`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예수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어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가이드를 받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분 따라 살아냅니다.
그러다가도 갑작스런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좀 전에 나눈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이전처럼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어렵고, 집중이 잘 안되고, 기도도 잘 안되면서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져버릴 수 있다는 것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릴에게 찾아와 ‘내니 두려워 말고 담대하라' 말씀하시지 않나요?
그런데 우리는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안정을 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해 주시러 오시는 그분을 신뢰하거나 기다리지 않고 의심만 하며 불평만 하는 모습이 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그 문제에만 집중하는 경향까지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의 패턴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고, 가슴에 새기길 권합니다.
A. 예수님의 명령으로 배를 탐
B 무서워하여(제자들)
C 소리 지르거늘(제자들)
D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예수님)
A` 예수님의 승낙으로 베드로가 물 위 걸음
B`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베드로)
C` 소리를 질러(베드로)
D`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예수님)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고난이 왜 없겠습니까? 하나님이 모르시겠습니까? 욥기를 보면 고난을 주시는 것도 허락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왜 허락하시는 지 다 알 수 없지만, 욥기를 통해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떠한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끝에 선하심으로 은혜를 이전보다 갑절로 보답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감당치 못할 고난을 허락하지 않으시며, 그러한 고난일 때마다 피할 길도 만들어 내시어 능히 감당케 하신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고난에 있습니까? 어떤 어려움이나, 어떤 것에 중독되어 있습니까? 하나님 이외의 것. 세상의 풍조에 잠식되어 중독 된 것도 모른채 살고 있진 않습니까? 그리고 그 모든 것 또한 하나님을 탓하며 어쩔 수 없는 거라 말하며 살아가고 있진 않습니까?
어찌보면 오늘 본문에는 불평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아 의아해 할 수 있겠습니다만, 베드로는 불평 대신 의심을 했습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인간이었다는 것이에요. 예수님을 만났기에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그도 분명히 우리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그 상황에 예수님이 찾아오지 않으셨더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이상한 선생을 따라왔다가 죽게 생겼구나. 아이고 팔자야..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예수님을 원망하지 않았겠습니까? 창조자가 물 위를 걷는 모습을 눈으로 똑똑히 보고 살갗으로 와닿는 그 순간을 경험하면서도 의심을 했던 자인데 우리와 다르겠습니까?
이뿐만 아닙니다. 사도니깐 훌륭한 사람이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안일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무려 3년입니다. 무려 3년 동안 사람이 할 수 없는 기적을 수 없이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들으며, 자신의 입으로 그분과 실제로 대화한 자였습니다. 그런 자가 십자가 형에 처한 예수님 앞에서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도망갔습니다. 도망쳤습니다. 자신의 목숨 하나 부지하기 위해, 물론 마음은 아팠으나 자신의 지성과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니깐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무슨 제스처를 취하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장사하고 사흘 만에 부활하여 그 베드로를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이해하며 만지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못난 모습 하나님은 게의치 않아하십니다. 그러한 모습도 이해하시며, 잘못된 모습을 책망하시지만 미워하지 않고 다시 찾아와 위로하시며 다시 살아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말하는 세상 가운데 살아가고, 살아내는 여러분.
어떤 고난이 올지라도 ‘내니 두려워 말고 담대하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신뢰하겠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풍조에 맞추어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 외치고, 내 생존과 내 삶의 안위만을 위해 살아가겠습니까?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성경에 말하는 그 말씀은 거짓이라 외치고, 찾아오시는 예수님은 없다고 말하며 내 처지를 봐라 외치면서 살아가겠습니까? 아니면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보며 인내하고, 기다리며 그분을 신뢰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여러분을 찾아오고, 찾아가시는 예수님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어떠한 상황 가운데 처한지 저는 모두 알 수 없지만 스스로 무엇에 중독되었는지, 무엇에 복음이 가리워지는지 점검하고,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하며, 그 두려움 속에 예수님 제 마음에 찾아와 해결해달라 의탁하는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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