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0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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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후의 발언

여러분들 한주 잘 보냈나요? 오늘도 우리가 함께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다들 돌아오는 주가 시험이라고 알고 있는데, 준비 잘 하고 있죠? 여러분들이 준비한 만큼 시험에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분들이 한해 마지막 고난으로 나아갈 이 시기, 우리도 고난의 성경 욥기를 보고 있습니다. 이제 꽤나 오랜시간 이 욥기 말씀을 듣고 있는데요, 이제 중반부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지난 몇주간 계속 욥과 친구들의 토론을 몇 라운드를 거치면서 보았는데요, 오늘은 오랜만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등장하는 이 인물이 또 나와서 어떤 말들을 하게 될지,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난주까지 욥과 친구들의 좋게 말하면 토론, 나쁘게 말하면 말싸움을 살펴보았는데요, 그 내용들은 31절까지의 욥의 발언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욥이 길게 이야기를 하니 이제 친구들도 지쳤는지 이야기를 이어나가지를 못합니다.
그때 오늘 본문에서의 인물이 새롭게 등장합니다. 바로 엘리후라는 사람이죠. 말씀은 그를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갈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등장하면서부터 화를 냅니다. 그 이유는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고 말하고, 친구들도 명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하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 부분을 보면서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죠. 바로 욥과 친구들 옆에 듣는 청중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까지 욥기에서 욥과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들만이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그들만 모여서 그들끼리 이야기 하는 것으로 느껴졌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던 것이죠. 엘리후라는 사람도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이전의 내용을 가지고서 화를 낼 정도였으니 어느정도 토론의 내용도 듣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결국 우리는 이 장소에 욥과 친구들, 그리고 엘리후와 혹시 있을지 모를 플러스 알파가 있을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자. 엘리후는 등장하면서부터 화를 내었는데, 왜 그럼 이전까지 계속 가만히 말없이 있었을까요? 그것은 엘리후가 나이가 어렸기 때문입니다.
아마 유교문화권에 있는 우리는 어느정도 이해를 할 수가 있겠죠. 욥과 친구들의 나이가 원체 있다보니 엘리후가 자신이 끼어들 틈을 못찾은 것이죠.
소위 말하는 ‘어른들이 이야기하니 기다려야 한다’라는 분위기 속에서 엘리후는 욥과 친구들의 말을 들으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욥의 마지막 말에 친구들이 이야기를 하지 못하니 드디어 기회로 여기고 화를 내면서 등장을 한 것입니다.
엘리후는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먼저 전제를 둡니다. 바로 자신이 나이가 어리지만, 어리다고 해서 지혜가 없는 것이 아니니 나도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이죠. 바로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얼마나 답답했는지 자신이 봉한 포도주통 같고 터지게 된 새 가죽부대 같다고 말합니다. 말을 꼭 해야지 시원할 것 같다고 말하기까지 하죠.
그리고 33장부터 자신의 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욥 당신은 자신이 깨끗하고 악인이 아니고 순전하고 불의도 없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적대하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크신 하나님을 대답하지 않으신다고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인간이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구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십니다. 하지만 인간은 듣지도 않으니 고난의 길로 가게 됩니다.’
‘만약 천사 중 하나가 중보자로 있어서 정당함이 보인다면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실 것이고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구덩이에서 벗어나 생명의 빛을 비추시기 위함입니다.’
엘리후의 첫 발언을 정리하면 무엇을 볼 수 있죠? 일단 첫 번째로, 욥이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반박합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시지 않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지 않으시지도 않는다. 오히려 계속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신다.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엘리후는 욥에게 죄가 있다고 여길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엘리후 역시도 친구들과 같이 욥에게 죄가 있다고 여깁니다. 그도 기본적으로는 욥과 친구들 같은 보응신학의 관점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는 것이죠.
하지만 엘리후가 그들과 살짝 다른 점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바로 고난의 이유에 대해 욥과 친구들과 다른 이유를 덧붙인다는 것입니다. 아까 엘리후가 뭐라고 주장했다고 했죠?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이유가 사람들이 구덩이에서 벗어나 생명의 빛을 비추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교육하시기 위해 고난을 주신다는 또 다른 이유를 제시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확실히 엘리후가 욥과 친구들과는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이어서 34장부터 또 엘리후가 발언합니다. 이번에는 뭐라고 하냐면, 사람들에게 선포합니다. ‘지혜 많은 여러분, 들어주십시요. 욥이 자신의 의롭고, 하나님께서 자신이 허물이 없는데도 상처를 주신다고 말하는데,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않고 불의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행위에 따라 각각 갚아주십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시기에 왕도, 지도자도, 고관도 가난한 자도 모두 동일하게 대우하십니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도 일을 맡기시지 않고 스스로 모든 세상을 통치하시고 운행하십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가리심으로 모든 이들을 평가하고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고난 당하는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죄악에 대해 가르쳐달라고 말하며 그것을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욥 당신도 그렇게 행해야 합니다.’
엘리후의 이어지는 발언은 어떤 내용인가요?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것이죠. 단지 우리는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셨기에 알 수 없을 뿐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은 반드시 그의 정의를 이루실 분이시고, 그렇기 때문에 욥도 자신이 모르더라도 그것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고 엘리후는 주장하는 것입니다.
지난 말씀에서 욥이 주장했던 내용을 반박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멀리 계시기에 전혀 인간들의 일에 관심이 없으시다고 했었죠. 하지만 엘리후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오히려 더욱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모든 일들을 주관하십니다. 엘리후의 말이 그래도 옳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이어지는 35장에서도 엘리후는 말을 이어갑니다. ‘욥 당신은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아무런 영향도 없다. 당신이 의롭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신이 범죄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피해를 입으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도움을 구하지 않는 이들에게 대답하시지 않는다. 욥 당신도 마찬가지다. 그저 하나님을 기다리겠다고 말하는데, 당신의 그 말은 헛된 말일 뿐이다.
이번 엘리후의 말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요? 지난주에 나누었던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이죠?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를 통해 어떤 이득을 얻거나 피해를 보시지는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라고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엘리후가 이어서 말하는 것은 뭐에요?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으신다. 욥도 구하지 않았으니 답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죠.
여기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고난이 있음에도 하나님을 부르짖지 않고 자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들은 성경 이곳저곳에도 많이 등장을 하죠.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이어지는 36장에서도 엘리후는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러면서 2절에서 자신을 용납해 달라 아직 할 말이 있다고 말하죠. 아무래도 이전의 욥과 친구들의 대화때보다도 길게 이야기하는 것이 눈치가 보였는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엘리후는 자신의 이 모든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것이라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이어가죠.
그러면서 말합니다. ‘하나님은 악인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통해 자신의 행위를 깨닫고 돌이키면 그에게 다시 형통한 날과 즐거운 해를 줄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면 칼에 망하고 지식 없이 죽게 될 것입니다. 악한 이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행하셔도 도움을 구하지 않으니 결국 그들은 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 당신에게도 이처럼 행하셔서 당신을 넓은 곳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그러니 재물에게 유혹받거나 스스로를 의지하지 말고, 어디에 숨지 마십쇼. 지금 당신은 악한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엘리후의 이번 말은 어떤 이야기냐,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벌을 주신다는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방금 이야기했던 하나님께서 교육하시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면서 욥에게도 하나님께서 이 때문에 고난을 주신 것이니, 죄에 길로 가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등장인물 중 이 엘리후가 욥에게 찾아온 고난의 이유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엘리후는 이어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높으신 분이시고 누구도 그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운행하시고 폭풍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 폭풍이 너무나 커서 내가 떨었고 그 음성으로 천둥과 번개처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그가 세상을 지으셨음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엘리후의 이번 말은 어떤 것인가요? 욥이 지금 대적하려고 하는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큰 분이심을 이야기합니다. 폭풍을 다스리시며 천둥번개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통해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바로 길었던 엘리후의 발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또 다른 존재가 등장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등장하시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이번 욥기의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일 수 있는데요, 그 내용은 다음주에 확인해보도록 할게요.
오늘은 우리가 새로운 등장인물인 엘리후를 만나보았습니다. 엘리후는 확실히 이전 욥과 친구들의 대화의 내용보다는 조금 발전된 수준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그의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몇가지를 함께 나눠볼거에요.
가장 먼저 나눌 것은 지난주에도 이야기했던 멀리 계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에요. 엘리후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분이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온전하셔서 그 자체로 상관없으신 분입니다. 하지만 지난주에 뭐라고 했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시고, 그의 모든 세상을 주관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죠. 하나님은 그의 세상과 사람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십니다. 그렇기에 멀리 혼자 계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며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우리 각 사람의 계획을 이끌어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항상 하나님 곁에서 함께하고 있으며, 그와 함께 연합되어 늘 교제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 죄를 감당케 하심으로 스스로 우리와 연합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신 교회가 되었죠. 우리는 늘, 어제도 지금도, 그리고 내일도 함께 하나님과 연합하고 있음을, 그렇기에 우리와 교제하시며 우리의 모든 기도와 필요를 아시는 주님이심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또 나눌 것은 나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오늘 엘리후는 자신의 이야기가 하나님의 이야기인 것처럼 말을 합니다. 물론 그의 이야기들이 욥과 친구들의 이야기보다는 확실히 나은 모습을 보이긴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진정 하나님의 말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에는 우리가 벌써 그의 부분에서 잘못된 것들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욥도 분명 죄로 인해서 고난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가 어른들 사이에서 말을 하기 위해 하나님의 권위를 사용한 것일 수 있으나, 하나님의 권위는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처럼 나 스스로를 너무 과신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제가 하나님의 말을 전합니다!’와 같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어찌보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는 거에요.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우리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라는 말씀을 배운거에요.
그러면서 그것을 적용하겠다고 남들한테 이러는 거에요. ‘너 어떻게 안식일인데 쉬고 성경만 볼 것이지 왜 다른일을 하는거야?’ 그러면서 자신은 성경도 안보고 잠만 자면서 안식하는 거라고 이야기 한다고 해봐요. 그럼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겠죠.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이 이런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다고 하여 수많은 것들을 지키도록 강요했는데, 오히려 예수님께서 그 유대인들을 꾸짖으셨죠.
우리는 말씀을 듣고 적용하며 살아갈 때,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정말 말씀을 잘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남에게 먼저 적용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먼저 적용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함께 나눠볼 주제는 바로 폭풍속에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엘리후는 마지막에 하나님의 크심을 말하면서 폭풍도 주관하시고, 천둥번개도 주관하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하신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어때요, 맞는 이야기 같나요? 그렇습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요즘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보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워낙 과학기술이 발달하다보니,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그저 분석하고 예측하고 하려고만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듯이, 인간의 과학기술은 큰 재난 앞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합니다. 결국 뭐겠어요? 하나님의 능력이 크심을 보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들, 요즘 이 세상이 어떤가요? 좋게 흘러가나요? 나쁘게 흘러가나요? 그렇죠 계속 안좋은 방향으로 진행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걱정하며 대책을 세우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대책을 세우는 것 중요하죠.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지속적으로 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그것은 결국 지금 우리가 종말의 때를 살아가고 있다라는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막 사이비들처럼 막 종말을 대비하고 이러는 것은 아니겠죠. 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이 절대로 좋은, 선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항상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않고, 늘 기도하며 우리의 삶을 주님 뜻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또한, 죄 속에서 빠져 허우적대는 이들에게도 하루빨리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그들이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를 통해서도, 그저 에이 왜 이런게 있어 라고 끝내는 것 보다는, 지금까지 우리가 교회의 소중함, 공동체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구나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고, 이태원 참사를 통해서도, 이 할로윈 문화라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깨닫는 그러한 인식이 우리 가운데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많은 것들을 나누었는데요, 이 말씀들을 통해 우리 친구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더욱 생각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에게 시험이라는 또다른 고난이 찾아오게 될텐데, 그 모든 고난 속에서도 주님이 언제나 함께하심을, 우리 친구들의 필요를 아시고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모든 세상과 모든 사람들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신뢰함으로 앞으로의 한주간을 하나님과 함께하는, 우리 공동체와 함께하는 우리 한조고 친구들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찬양: 비 준비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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