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라갑시다
김성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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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views말씀에 주파수를 맞추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시작합시다
Notes
Transcript
슬픔 가운데 내려가고 있는 제자!
슬픔 가운데 내려가고 있는 제자!
오늘 본문은 엠마로로 내려가고 있는 제자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 한명의 이름은 18절에 글로바 하고 합니다.
그들은 왜 슬퍼하고 있을까요?
글로바는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직접 보았던 자입니다.
그래서 글로바는 놀라운 희망을 품었습니다.
글로바 뿐만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을 꿈 꾸었던 세상을 기대했습니다.
그들이 꾸었던 세상은 행 1:6 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바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
이 분이라면 그 동안 우리들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왕이 되실 것이다.
드디어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 날 것이다.
옛 솔로몬의 영광이 회복 될 것이다.
그렇게 부품 기대를 꾸었는데....
그들이 목도 한 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 아니라 그토록 믿고 따랐던 예수님이, 그 메시야가, 십자가에서 죽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에겐 깊은 절망이 임했습니다.
축 쳐진 어깨에,,
세상의 모든 짐을 홀로 진 듯한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렇게 글로바는 예루살렘에서 약 25km 떨어진 엠마오로 향해 내려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여기 계시는 분들도 예수 그리스와 함께 꿈 꾸었던 때가 있지는 않으셨습니까?
지금도 그 꿈을 꾸고 계시는지요?
글로바는 그 꿈을 잃어 버려서 깊은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그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 버렸습니다.
자신들의 메시야를 잃어 버렸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9-24절을 보면 그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4장)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글로바는 자신들의 메시야 나사렛 예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절망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갑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독일을 패전으로 막을 내릴 때 연합군은 독일의 포로수용소로 진격을 했습니다.
그리곤 한 동안 그들은 꼼짝을 하지 못했습니다.
수용소 안의 모습은 너무나도 처참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도망쳐 버린 독일군으로 수용소 안엔 많은 유대인들이 남겨 졌지만 움직이는 자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연합군의 수장이었던 장군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샅샅히 찾아라!
단 명이라도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있다면 반드시 찾아서 구출해라!
연합군은 포로수용소 안은 샅샅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 둘 수용소 안 가스실 한 벽에 멈춰셨습니다.
점점 더 많은 연합군이 그곳으로 몰려왔고 한동안 그들은 그곳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의 시신이 있었던 가스실 한쪽 벽엔 한 유대인이 손가락을 깨물에 벽에다 이 고백을 적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는 글로바와
포로수용소 가스실에서 마지막을 맞이 했던 이름모를 한 성도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없고의 차이였습니다.
글로바에겐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없었을까요?
오늘 같이 읽지는 않았지만 누가복음 24장 15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글로바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4장)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글로바는 깊은 절망에 빠져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글로바와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문제는 글로바가 정말 예수님을 인지하고 있는가? 입니다.
성경은 16절에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눈이 가리어졌을까요?
25절입니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글로바는 길에서 만나 예수님께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설명할 정도로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절에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 은 구약 성경입니다. 특히 모세 오경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27절에 그 말씀을 다시 가르치십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유대인들은 모세 오경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성인식을 치루기 위해서는 모세 오경을 암송해야만 했습니다.
글로바도 그런 과정을 거쳤을 겁니다.
그러나 암송만 했지 … 그는 마음에 더디 믿는 자였습니다.
말씀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는 믿지 못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부활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의 부활 앞에서 믿지 못한 글로바는 절망과 함께 엠마오로 내려갔던 겁니다.
지난 주 처음으로 인사 드리고 난 뒤 찬양으로 은혜 받았다는 분들이 많으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감사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서는 우와 목사님 성량이 참 좋습니다 라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계비전교회는 달랐습니다.
함께 찬양했고 함께 은혜를 누렸습니다.
찬양의 영이 열려 있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대가 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고집을 조금만 더 하나님 앞에서 내려 놓는다면…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관하신다면 우리 앞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많은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믿음은 어디 있습니까?
담임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 중에서 좀더 각별히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토요 놀이방을 소개 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을 통해서 그 동안의 배경을 듣고 실제로 토요 놀이방을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두근 거렸습니다.
요즘 교회 교육부서에 가면 아이들의 거의 95%가 직분자 가정입니다.
불신 가정에서 나오는 아이들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토요 놀이방에서는 95%가 불신 가정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장년들은 찬양과 기도의 영이 깊습니다.
중고등부 아이들도 예배를 드리는데 찬양을 드리는 것을 보고 놀랬습니다.
뭐 고작 찬양을 드리는 것으로 그러느냐 싶으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다른 교회들을 가 보십시오.
중고등부 예배 시간에 아이들 얼굴 보는 것도 힘든 교회가 많습니다.
초등부 예배와 유치부 예배도 가 보았습니다.
활발하고 씩씩한 아이들의 모습에…
그리고 예배 시간엔 말씀에 집중하는 모습에 마음이 설랬습니다.
청년부는.... 아직 가 보지 못해서 모르겠습니다만 청년부도 내일이 기대되는 멋지 예배자일 줄 믿습니다.
글로바의 고백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까?
32절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절망에 빠져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던 글로바가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그의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바는 그 즉시 일어나 다시 올라갑니다.
떠나왔던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이 놀라운 복음을 선포합니다.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주님의 기쁨이 되시는 셰계비전교회 성도 여러분
다시 올라갑시다.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소망을 누립시다.
특별히 오늘의 적용은 한걸음 더 나아가 몇몇 분들에게 강조하고자 합니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엠마오로 내려가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글로바의 심정으로 그 분들께 권면합니다.
누가복음 24:28–29 (NKRV)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충분한 이유가 있으심을 압니다.
봉사하지 않는 합당한 이유가 있으셔서 겸손한 마음으로 사양하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더 가려 하시는 예수님을 붙잡던 글로바처럼 저도 권면합니다.
혹 봉사하시다가 받으신 상처 때문은 아니신지요?
내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러신 것은 아니신지요?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이 과정입니다.
실패 조차도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십니다.
정상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선 끔찍한 산행을 경험해야 합니다.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골리앗 앞으로 나아가는 다윗의 마음이 즐겁고 행복했을까요?
그 역시 골리앗 앞에선 두려웠을 겁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앞에 섰던 느헤미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여전히 죄악 가운데 울며 외쳤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마음은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던, 그래서 제사장의 뜰어서 뛰쳐나와 펑펑 울었던 베드로의 심정은요?
복음을 전할 때마다 돌아온 것은 온갖 욕설과 비방,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며 날아오는 돌들 앞에서 바울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그 모든 것이 다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이겨낸 그들은 놀라운 영광을 맛보았습니다.
우리도 과정입니다.
다시 올라가십시다.
다시 올라가십시다.
지금 낙심하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도 주님은 함께 하시니. 우리는 다시 올라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