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다고 지혜가 없을까?

성산교회 청년부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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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2:1–10 NKRV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이 말을 그치니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 엘리후는 그들의 나이가 자기보다 여러 해 위이므로 욥에게 말하기를 참고 있다가 세 사람의 입에 대답이 없음을 보고 화를 내니라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므로 뒷전에서 나의 의견을 감히 내놓지 못하였노라 내가 말하기를 나이가 많은 자가 말할 것이요 연륜이 많은 자가 지혜를 가르칠 것이라 하였노라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말하리라
꼰대
노인, 기성세대나 선생을 뜻하는 은어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 흔히 꼰대라고 하면 연령대와는 상관없이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윗사람 또는 연장자를 비하하는 멸칭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신기한 것은 이러한 꼰대스러운 분들은 어떠한 공동체에 가도 최소한 1명씩은 꼭 계신다라는 것입니다. 꼰대 뿐만이 아니죠. 이런 사람 저런사람들이 있죠.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건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겁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청년으로써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욥기의 말씀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젊지만 지혜로운 엘리후

욥의 긴 변론이 끝나고 나서 젊은 사람인 엘리후가 말을 합니다. 엘리후는 어른들의 말을 들으면서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는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합니다.
욥기 32:6 NKSV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말하였다. 나는 어리고, 세 분께서는 이미 연로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께 선뜻 나서서 내 견해를 밝히기를 망설였습니다.
젊은 엘리후는 예의를 갖추어서 자신이 말할 타이밍을 기다렸습니다. 인내심을 갖고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있었던 것이죠.
지혜의 중요한 면 중 하나는 바로 기다릴 줄 아는 것입니다. 기다릴 때와 나설 때를 확실하게 아는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있어야 지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젊은이들, 청년들, 저도 포함일수 있겠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른들의 말, 특히 꼰대 같은 어른들의 말을 듣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듣기 싫은건 사실이니까요.
본문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하는거 같아요. 인내심을 가지고 사람들의 말에 경청하는 사람이 지혜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나이가 어리다 할지라도, 지혜로운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도 무관하겠죠.
엘리후가 바로 이런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다릴줄 아는 지혜, 뻔한 소리일지라도, 내가 듣기 싫은 소리일지라도 들을 인내심을 가지는 지혜가 바로 엘리후에겐 있었던 겁니다.
Q1.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 가운데, 어떤 사람인가? 꼰대? 아니면 엘리후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사람?

그러나 거기서 거기

엘리후가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던것 까지는 참 좋은것 같아요.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어요. 이후에 엘리후는 어른들의 말에 대해서 ‘화’로 반응을 했습니다.
욥기 32:2–3 NKSV
욥이 이렇게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잘못을 하나님께 돌리므로, 옆에 서서 듣기만 하던 엘리후라는 사람은, 듣다 못하여 분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엘리후는 람 족속에 속하는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이다. 엘리후는 또 욥의 세 친구에게도 화를 냈다. 그 세 친구는 욥을 정죄하려고만 했지, 욥이 하는 말에 변변한 대답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여러분은 주로 어떤 상황일 떄에 화를 내십니까? 바로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엘리후의 말이 욥의 세 친구들의 말과 비교해서 조금은 나은 면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엘리후가 ‘화’로 반응했다는 점으로 봐서는 엘리후가 욥의 세친구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울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엘리후는 비록 ‘젊은 지혜자’이기는 하지만 ‘거기서 거기'라고 볼 수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사실 사람은 전부 ‘거기서 거기’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의 지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아무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생의 문제에 대해 정답을 다 가진 사람은 없을겁니다.
그래서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사람은 누구나 다 ‘거기서 거기’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욥의 친구들도 욥의 말에 대한 자신의 답답함을 말했고, 엘리후도 네 명의 어른들의 말에 대한 자신의 답답함을 말했을 뿐입니다.
다들 남에게는 답답함을 느끼죠. 그리고 자신은 조금 다를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까보면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왜? 기독교 기준으로 풀어보자구요. 사람은 예외없이 누구나 죄인이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답을 찾으려 하다가는 실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사람에게는 답이 없어요. 답은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하나님 자체가 답이신 거죠.
Q2. 나는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으로 인해 답답함을 느껴본적 있는지?! 그때 어떻게 대처했는지!?(학교, 위로는 어르신 선생님, 아래로는 학생들)

그래서 어떻게 해야할까?

사람은 모두 거기서 거기니까 나와 다르다해서 무시해도 괜찮을까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최고로 교만한 것이 되겠죠. 사람을 무시해서도 안되고, 그 사람의 말을 무시해서도 안됩니다.
사람에게 정답이 있지는 않지만, 내가 보지 못하는 면을 상대방이 볼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그럴수도 있겠다.)
젊은 사람은 어른의 말을 통해서 자신이 볼 수 없는 면을 보는 지혜를 얻을 수도 있고, 어른은 젊은 사람의 말에서 스스로는 얻을 수 없는 통찰을 얻을 수도 있더라구요.
때로는 젊으나 늙으나 동일한 관점에서 배우고 느끼는 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완벽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없어도 자신만의 지혜를 가지지 않은 사람도 없습니다. 결국 서로에게서 배울 바는 배우고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은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공동체를 세워 나가는 가운데서의 참된 지혜가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

그런데 왜 하나님꼐서는 빨리 나타나셔서 이런 상황을 정리해주지 않으시고 욥과 친구들이 길게 논쟁하도록, 엘리후가 이렇게 울분을 토하게 놔두시는 걸까요? 실제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구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꼐서 우리에게 주시는 특별한 메세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메세지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들려주신 말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2:32 NKRV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주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세번 부인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할 베드로에게 돌이킨 후에 형제를 굳게하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를 굳게하는 사명은 완벽한 의인이 받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약점 많은 죄인이 다른 죄인을 굳게 세워가도록 하시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죄인을 세워가게 하십니다. 의인이나 완벽한 사람이 죄인을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죄인이 다른 면에서 연약한 죄인을 세워가게 하시고, 다른 연약한 죄인을 세워가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연약함이 세워져가는 기적을 서로 누려가게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욥과 친구들의 논쟁이 쓸데 없어 보이고 심지어 엘리후가 화를 내며 하는 말도 들어보면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꼭 필요한 상황이라는걸,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꼐서는 서로를 세워가도록 하신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무엇이 하나님 나라입니까? 죽어서 가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까? 아니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살아가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나의 부족함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의지하며 나갈 수 있는 우리 청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우리를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삼아 주시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귀한 사명을 가진자로 불러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함께 나눈 엘리후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우리의 삶의 모습이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능력과 지혜를 덧입혀 주시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 충만하신 역사가 지금 이시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를 세워가겠노라 다짐하는 성산의 청년들의 머리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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