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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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에 대하여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의 경우, 눈에 보이는 육체와 더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 있을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계실까요?
천사의 존재가 과연 있을까요?
이에 대해 한국 사람들의 경우 양극단의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앟는 영적인 존재가 아예 없다. 세상에 물질만 있을 뿐이다. 유물론입니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물질의 최소 단위를 소립자라고 말합니다.
이 소립자 안에 16개의 입자가 있고 이 소립자에 질량을 부여 하도록 하기 위해 사라지는 입자가 하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발견한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힉스 입자라고 합니다.
눈에 보이게 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게 사라지는 입자가 있다는 것이지요.
과학에서도 눈에 보이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 하나는 있다. 귀신이 있다. 그 귀신은 사람의 죽은 원혼인데 사람의 모든 질병은 귀신의 문제다. 그러니 액땜을 해야 한다. 조상신을 잘 섬겨야 한다. 영적인 존재를 매우 두려워 합니다. 샤머니즘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입장입니까?
본론
본론
성경에서 말하는 것을 들어보겠습니다.
성경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고 천사들과 사람에게 영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천사들도 창조하셨습니다.
골로새서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천사들과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천사들과 사람들을 선하게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의 일부가 범죄하여 타락하였습니다.
베드로후서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유다서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그들의 타락 이유는 교만입니다.
디모데전서 3: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타락한 천사들은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요한계시록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사탄과 그의 사자들은 특징이 거짓말 하는 자들입니다.
베드로전서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첫 사람 아담을 속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였고 결국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보다 사탄의 말을 더 신뢰함으로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말았습니다.
사탄과 그의 사자들은 특징이 비방하는 자, 고소자들입니다.
스가랴서에 나타난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사탄에게서 비난을 받습니다.
이는 타락한 이스라엘의 악한 행동에 대한 사탄의 비난입니다.
악한 행동의 근본적인 문제는 죄 때문입니다.
사탄과 그의 사자들은 특징이 문화를 통해 합리적 유물론으로 영적인 존재를 무관심하게 하거나 두려움을 심어주어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게 합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합니다. 또는 핼러윈처럼 귀신 복장을 통해 악귀를 물리치려는 기괴한 행동을 하게 하고 별자리나 점괘를 통해 길흉화복을 통해 사람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줍니다.
사탄과 그의 사자들은 우리보다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하나님처럼 전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하나님처럼 전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탄과 그의 사자들이 사람을 부추겨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이 기술을 이용하여 전지 전능의 자리로 올라가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아 크게 분내며 분주하게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그러나 사탄과 그의 사자들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기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실패하였으나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묘하게 속이는 사탄을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함으로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으로서 마귀를 꾸짖으시며 쫓아내실 때 진리의 말씀을 사용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예수님께서는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을 말씀으로 쫓아 내십니다.
에베소서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사탄을 결박하여 그의 정죄 아래에 묶여 있던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2:14–15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예수님은 죽으셨을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시어 당신의 의를 증명하셨습니다.
우리는 비록 허물과 죄로 불에 그을린 자와 같은 누더기 옷을 입고 있었으나 예수님의 의로운 깨끗한 옷을 입혀 주시며 의롭다고 인정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영적 전쟁에서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전쟁은 전투보다 큰 개념입니다.
2차 세계 대전은 이미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45년 5월 5일 독일군이 항복할 때 전투가 끝났습니다. 이미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해방하였지만 동남아 여러 섬들에서는 여전히 일본군들이 전쟁이 끝난 줄 모르고 있다가 십수년 뒤에 이를 알게 되어 전투가 종료되기도 하였습니다.
큰 전쟁은 이미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밀림 속에 들어가 게릴라 전을 펼치는 잔당들이 남아 맹렬하게 싸우고 있는 것처럼 아직 영적 전투가 남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탄을 정복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교회를 통해 드러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에베소서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게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그 계획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교회를 통해 영적 세계에 드러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교회가 하나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은 복음 사역을 약화시키거나 정체시키는 분열을 조장합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한 영적인 전투로 부름받았습니다.
전투에서 중요한 것은 피아식별입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싸우거나 그리스도인들끼리 싸워서는 안 됩니다.
지리멸렬, 스스로 무너지는 것은 사탄의 흉악한 계략입니다.
우리는 거짓된 진리로 사람들을 사로 잡아 왕노릇하고 있는 사탄이 영적 전투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거짓된 사상, 곧 세상의 문화를 통해 영적인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자유를 추구하는 문화의 물결이 거센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아 새로운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육체가 있는 동안에는 육체의 정욕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육체와 세상과 마귀의 유혹에 대항하여 복음 안에서 믿음을 지키는 일이 우리가 치러야 할 영적 전투입니다.
이 영적 전투를 위해 사도 바울은 강해지도록 우리를 무장시킵니다.
에베소서 6: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에베소서 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이미 복음으로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과 연합된 우리 또한 강하고 담대해지도록 우리를 무장시키십니다.
우리는 이미 새 사람을 입었습니다.
에베소서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었습니다.
에베소서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사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직 힘이 남아 있습니다.
에베소서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버티고 승리하려면 복음을 굳세게 믿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하나님의 전신 갑주의 항목은 무엇입니까?
의, 평안, 믿음, 구원의 확신, 하나님의 말씀
이 항목들은 우리의 도덕적인 행동을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려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지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사탄의 권세를 십자가에서 이기셨음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사탄의 공격에서 승리하려면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1. 의-진리의 띠를 띠는 것, 의의 호심경을 붙이는 것
에베소서 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이사야 11: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신 삶은 의롭고 성실한 삶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의로운 삶을 믿는 우리에게 의를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사야 59:17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이것 또한 예수님의 의로운 생애를 보여줍니다.
사탄이 율법을 들먹이며 우리를 정죄하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고 의지하여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복음을 믿는 것이 의의 호심경을 붙이는 것입니다.
2.평안-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음
에베소서 6: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이사야 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우리에게 좋은 소식, 곧 복음을 전하러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화평, 사람과의 화평을 이루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림으로 평안이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화평을 누리기 위해 편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을 신고 전도할 수 있습니다.
3.믿음
에베소서 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잠언 30: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아버지만을 의지하셨습니다.
사탄은 끊임없는 불신의 불화살을 우리에게 쏟아부어 하나님 아버지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합니다.
의심을 버리고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할 때 우리는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4.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에베소서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이사야 59:17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과 떨어질 수 없습니다.
나의 유일한 구원자는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으로 버티십시오.
이사야 49: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사용하셔서 사탄의 궤계를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입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이 검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날마다 자신에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날자복선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의로우신 삶을 사셔서 제가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아들되심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나는 용서받은 죄인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나의 부활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승리가 나의 승리를 보장합니다.
예수님의 승천하심이 나를 이 땅위에서 천국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나의 구원을 완성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강해질 수 있는 첫 번째,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복음을 굳게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강해질 수 있는 두 번째,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기도입니다.
에베소서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기도를 강조하기 위해 All이라는 단어를 모든, 항상, 여러라고 번역된 단어에 동일하게 반복해서 네 번이나 사용합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곧 성령 충만을 의미합니다.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는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전신갑주라면 충분히 읽고 묵상하면서 나의 것으로 소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을 수 있습니다.
기도 또한 하나님의 전신 갑주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도우심을 구하며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전신갑주인 말씀고 기도가 우리를 강하게 하고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게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이 일을 도우십니다.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의심이 들 때나 교회의 하나 됨을 뒤흔드는 긴장이 발생할 때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의 공적이거나 사적인 모임의 시작과 끝을 기도해야 합니다. 하루의 시작과 마침의 시간에 기도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를 수시로 해야 합니다.
여러 성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가족을 축복하고 목회자와 환우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더라도 고통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지역 교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19–20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탄은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자신의 패배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결론
결론
우리는 싸우는 것을 싫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전투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편에 서든지 사탄의 편에 서든지 선택해야 합니다.
영적인 것에 무관심하거나 너무 두려워하는 편에 서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미 영적 전쟁을 승리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적 전투는 승리를 보장합니다.
이미 이긴 싸움에 우리는 실패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전투를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주일은 세상에서 싸우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축구나 야구에서 패배하는 것도 마음이 아픈데 영적인 전투에서 패배한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나의 영적인 전투 장소는 먼 곳이 아니라 나의 마음입니다.
나의 마음 안에서 이는 폭풍과 같은 전쟁터는 너무나도 치열한 곳입니다.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가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어서 육체의 상태에 따라 마음이 약해지기도 합니다.
마음과 생각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자신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나의 입으로 귀에 들리게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선포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나에게 정죄함이 없습니다.”
나의 가까운 영적인 전투 장소는 가정과 일터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는 사소한 일들을 통하여 영적인 전투를 벌입니다.
내 말을 하고 싶고 내 주장을 하고 싶고 내가 이기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내 말을 아끼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들어주고 상대가 이기도록 져주어야 합니다.
사랑이 영적 전투의 기본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의 영적인 전투 장소의 두 번째는 내가 공부하는 자리, 보고 있는 텔레비전의 드라마, 스마트폰의 컨텐츠들입니다.
세상의 문화는 물과 같아서 매우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놓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의 기준을 삼아야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시대, 인공지능시대의 물결은 매우 거셉니다.
이 파도를 잘 분별하고 피하거나 탈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왜? 어떻게? 언제? 어디에서? 누가?
나의 영적인 전투 장소는 이단과 같은 거짓 진리를 가르치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곳에 가서도 안되지만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단을 피하거나 때로는 맞서 싸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잘 무장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우들입니다.
주 안에서 신뢰하며 서로 하나되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면 패하겠거니와 둘이면 능히 당하나니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서로를 위한 기도는 진리에 기반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승리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이 일을 드러내도록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부르심 앞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립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