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은혜가 기억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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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게 하는 시간이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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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3:14–19 NKSV
사실은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고 또 하신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뿐입니다. 사람이 꿈을 꿀 때에, 밤의 환상을 볼 때에, 또는 깊은 잠에 빠질 때에, 침실에서 잠을 잘 때에,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은 사람들의 귀를 여시고,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경고를 받고,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하십니다. 교만하지 않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을 파멸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며, 사람의 목숨을 사망에서 건져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질병을 보내셔서 잘못을 고쳐 주기도 하시고, 사람의 육체를 고통스럽게 해서라도 잘못을 고쳐 주기도 하십니다.

1. 허영의 시대

허영의 뜻 : 자기 분수에 넘치고 실속이 없이 겉모습뿐인 영화(榮華). 또는 필요 이상의 겉치레.
한자 뜻: 비어있는 영화(화려함)
좋은 것들만 자랑하고, 좋은 것들만 보여주력는 시대
좋은 일과 고난 중에 선택해서 나의 것으로 만들려는 마음들
또한 어떤 보여지는 결과를 통해서만 전체를 이해하려는 사회의 모습이 반영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과를 통해서 전체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의 심리
보여지는 것을 통해서 모든 것의 가치를 판단하려고 한다.
예시) 사진 비교 sns사진과 현실사진
현실 고난과 화려함이 다 공존하는데, 자신의 삶은 화려함과 평안만 있는 것처럼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그런 화려함만이 있는 sns의 사진들이 현실이라고 착각합니다.
청년세대, 젊은 세대의 박탈감이 이런 sns로 인함도 무시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습니다.
남들은 저렇게 멋지게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지?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 살아가는 자신은 실패자인 것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그런데 사실 현실에서는 평안과 화려함과 동시에 고난도 존재합니다.

2. 성경에서 축복만 골라보는 우리들

오늘 말씀은 엘리후라는 사람의 말입니다.
성경에는 엘리후가 어디에서 왔고, 어떤 사람인지를 명확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욥과 친구들보다는 젊은 사람이라는 것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경외함을 가진 사람인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하는 모습을 비판을 하면서 자신의 말을 시작합니다.
갑자기 이야기의 마지막에 튀어나온 사람이라서, 많은 분들이 욥의 세친구만 알지 엘리후라는 사람을 잘 모르고 지나갈 때도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 엘리후라는 사람은 욥과 친구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화) 성화 (욥과 친구들에 대한 그림을 찾아보면, 이렇게 한 명이 더 듣고 있음을 표현하는 그림들이 있다.
엘리후는 평가를 받지 않는 사람이다. 친구도 아니다.
아무 이야기가 없는 미스테리한 사람.
그러나 그에게 배울 것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인간에게 좋은 것으로 이끄실 수도 있다는 견해입니다.
고난= 죄의 결과 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관점 하나는 우리가 눈여겨 봐야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사람을 이끌기 위해서라는 것도 말을 합니다.
고난이 내게 왔다고 하나님에게 악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엘리후는 말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평안’만이 하나님의 축복이며, 인도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무속신앙, 즉 점을 쳐보는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칩니까?
‘고난’을 피해가기 위해서 입니다.
고난은 무조건 피해야하는 나쁜 것 이라는 전제를 하고 점을 보러갑니다.
점을 보러가면서, 사주 보면서,
‘고난을 이겨낼 힘을 얻기 위해서’ 점을 치거나, 굿을 하지 않습니다.
피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믿는 이들도 무속신앙을 믿는 사람들처럼 무조건 고난과 어려움은 피해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고난의 한 가운데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이 말처럼 냉정하고 야속하게 들리는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평안과 풍요함을 누리는 것처럼, 고난과 환난도 당연히 삶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축복만을 말하는 인물은 없다.
-아브라함
-요셉
-다윗
-욥
고난과 환난을 빼고 이들의 삶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명예와 부유함만을 가지고 이들의 삶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고난과 환난도 이들의 삶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되게 하는 중요한 것들입니다.
다만,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가 축복만 보고싶어할 뿐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복 만을 구하는 이유이다.
고난은 무조건 주님의 벌이라고만 생각하지는 말아라.
나를 사랑하시기에, 성장하도록 고난 가운데 내버려두실 때도 있다.
그런데 성경의 위인들이 겪은 어려운 일들을, 징계라고만 말하지 않는다.
때로 죄 때문에 징계를 하실 때가 있습니다. (다윗이 우리아 장군의 아내를 빼앗음)
하지만 다윗의 삶 가운데 많은 부분에서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감당하기에 합당하도록 하나님께서 키우고 자라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자녀는 어릴 때 고난의 현상만을 봅니다. 그것이 사라지면 또 즐거워합니다.
어려움이 사라졌는데, 부모님의 도움과 고마움에 눈물흘리는 아이들은 없습니다.
그냥 마냥 좋습니다. 고마워서 흘리는 것이 아니라, 신나서 흘리는 눈물입니다.
그러나 장성한 자녀는 고난을 겪으며, 때로 징계를 받을 때에도 자신의 감정만이 아니라 자신의 태도와 행동 때문에 마음아파하신 부모를 생각할 줄 압니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 사랑을 발견하고 기억합니다.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회개했다고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떠 넘기지 않습니다.
다툼과 갈등의 결과를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잘못된 회개입니다.
성숙한 자녀는 나의 행동과 다툼으로 인해서 가슴아파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단순한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실 성숙한 자녀가 되기를 바라며,
기꺼이 고난 가운데 성장하기를 택합니다.
남의 탓하는 것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오늘 욥기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하는 것은, 고난과 어려움을 무조건 남들 탓으로 돌리려는 친구들과 엘리후의 태도의 무지함과 무례함입니다.
욥의 친구들, 엘리후의 태도를 보십시오. 욥의 탓만을 하면서 이 문제들을 해석하고 이해하려고만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시고, 사랑하는 자녀가 자라가며 성숙해가도록 기다리시는 것들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난의 죄의 결과로만 생각하고, 고난을 남의 탓만을 하는 사람들은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하나님이 축복주셨다고 기뻐하지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하나님 왜 이러시냐?” 라며 분노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이유는 풍성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숙한 자녀는 고난 가운데,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들을 발견해나가기 시작합니다.
처음 고통 때는 정신차리지 못하지만, 점점 지난 고난의 때에도 나를 도우시고 일으키셨던 하나님을 생각하고 묵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풍성함을 주셔서 우리가 믿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자녀는 고난 가운데서도 여전히 자신이 사랑받는 자녀임을 믿습니다.
믿음의 이유가 부유함도 명예도 아닙니다.
내가 믿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강조) 사랑이 믿음의 이유가 됩니다.

3. 고난도 삶을 만들어간다.

고난 받지 않는 것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고난을 이겨내고 인내할 줄 아는 능력이 있음을 자랑해야한다.
고난이 없이 오늘의 내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생명이 탄생하기 위한 고통은 저주인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기 때문인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것은 의미없는 고통이며 저주인가?
벌을 내리실 지라도 징계 안에서 깨닫고 성장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고난 없이 평안함만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성장하기를 포기하는 행동입니다.
“학교가기 싫어요.” “공부하기 싫어요.” “잔소리 듣기 싫어요.”
예화) 아이들의 관점 : 잔소리와 조언의 차이점
너무 웃긴데, 이것이 성숙하지 못한 자녀의 생각이라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나를 성장을 기다리시는 고난의 시간도 더 기분나쁘게만 보이고 들립니다.
그리고 고난과 환난을 피하고만 싶어합니다.
고통스럽지 않은 성장의 시간이란 이 땅에 없습니다.
편안하게 살아가며 성장하기를 바라는 요행을 버리십시요.
평안과 풍요함이 하나님의 축복의 유일한 증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때로는 안락함과 풍요로움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다가가려는 애씀과 고난을 기뻐이 감당하려는 성숙함이 필요합니다.
저는 저희 아이들에게 가장 냉정합니다.
착한 게 아니라, 남의 집 아이들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장하기를 가장 바라는 자녀들이기에, 고난과 시련도 때로는 내버려둡니다.
가슴아프고 힘들어도 그것이 아이를 올바르게 성장시킵니다.
요한계시록 3:19 NKSV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너는 열심을 내어 노력하고, 회개하여라.
욥기를 보면 욥의 절규에도 하나님이 대꾸를 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잔인해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창조주의 사랑을 보아야합니다.
마지막에서야 하나님의 자신의 뜻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가장 선한 계획과 사랑이 있음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4. 사랑과 은혜가 기억되고 드러난다.

내가 누리는 삶의 축복은 ‘고난’이 기반이 되고, 고난을 이겨낸 인내를 통해서 선물처럼 받은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된다.
고난은 내가 받은 사랑을 기억나게 한다.
고난은 내가 얻고 누리는 것들이 조건없이 받은 은혜임을 깨닫게 합니다.
은혜를 깨닫는 순간은, 인생의 화려한 때가 아니다.
가장 어렵고, 힘든 때에 내가 사랑 받았음을 깨닫게 된다.
오늘의 내가 스스로 있을 수 없었음을 깨닫게 된다.
예화) 어머니가 가장 많이 생각나고, 감사했던 시간은 평안의 시간이 아니다.
캐나다에 와서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하고, 도시락을 걱정하고, 매달 렌트비를 낼 수 있을 지를 고민하던 초기 정착시기이다.
공장에서 일을 잘못했다고 혼나고, 사람들이 짜증내는 순간이었다.
지하실 썩은 사료들을 퍼내면서, 이런 것들을 혼자 견디고 키우셨던 사랑을 깨달았다.
우리는 고난의 때에 ‘사랑’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시간은 내가 누린 은혜들을 드러나게 하는 시간이다.
고난가운데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님의 사랑 그리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걱정 없이 누렸던 은혜를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야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고난의 시간을 아무 의미없게 허비하고,
성장하지 않고 우리의 연락함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과 세상을 탓하고,
갈등과 어려움의 이유를 남 탓 만하면서, 더 고집스러워 질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의 시간을 의미없게 보내지 마십시오.
어려운 상황이 된 것에 남 탓 만을 하면서 분노하지도 마십시오.
고난이라는 결과와 상황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음을 신뢰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평안과 부요한 시간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시간을 “사랑과 은혜가 기억되는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성숙한 자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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