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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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8장 1-17절 /‌ 찬송가 38장, 35장
“왕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기도제목>
1. 예수님의 오심을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복음으로 말미암은 기쁨이 교회와 지역 사회 가운데 넘쳐 주님께 영광되게 하소서.
2. 연말 가운데, 주님의 은혜가 더욱 온 교회에 가득히 부어지길 기도합니다. 특별히 환우분들과 함께 하셔서, 아픈 곳이 치유되시고, 깨끗케 되시는 은혜 주옵소서. 연약한 심령과 육신 가운데 주님의 능력을 덧입혀 주옵소서.
3. 예배와 목장의 처소를 더욱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세워주소서. 진리와 은혜의 말씀들이 풍성하게 증거되게 하시고, 목장에서 더욱 진실한 사랑이 피어나게 하소서.
<광고>
24년도 달력 포장을 해야하는데, 시간의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10분 정도, 함께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배 마치신 이후 새가족부실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인사>
어느덧 12월이고, 곧 23년 한 해가 마무리 됩니다. 에스더서가 총 10장이지요. 올해 수요예배는 에스더로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벌써 8장입니다. 오늘을 포함해도 3번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참 시간이 빠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범사의 형통함이 있는 줄 믿습니다.
함께 인사하겠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형통합니다”
8장의 특징은 유다인의 승리입니다. 사실 유다인 전체가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싸움의 대표자들이 있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이지요.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하만과 싸우고 왕에게 간곡히 탄원하는 이유는 민족을 위한 것입니다. 이들의 승리가 유다인 전체의 승리로 이어지는 겁니다.
7장까지의 내용은 하만과 에스더의 영적 싸움 속에서 에스더의 승리였습니다. 사랑과 지혜, 그리고 인내와 진실로서 싸운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7장까지에서 에스더 말씀이 끝났다면, 어느 한 개인의 승리로 그치고 말았을 겁니다. 그러나 여전히 추가적인 승리가 필요했습니다. 유다인 전체의 승리가 필요합니다. 8장은 이러한 측면에서 유다인 전체로 확장되는 승리를 조망합니다.
에스더의 역할은 왕의 호의를 얻어내고, 왕이 유다인들을 신뢰하도록 만들었다면, 이제는 모르드개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습니다. 유다인 전체의 승리를 위한 정무를 볼 수 있는 모르드개가 필요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의 승리의 초석들은 이미 놓여져 있었습니다. 모르드개가 왕을 암살하려던 두 내시(빅단과 데레스)를 고발함으로서 왕의 생명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왕도 모르드개가 한 일을 뒤늦게 알고서 왕복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을 전체에 존귀한 자로 공포했니다. 왕이 그를 중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전까지 공개하지 않은 일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에스더에게 모르드개는 친척이자 가족이라는 겁니다. 서로 사촌이자, 실질적으로는 에스더를 양육한 양부의 관계입니다. 양부라고 하면, 한층 더 묵직하지 않습니까. 마치 장인 어른이 된거 같고 말입니다. 그렇기에 왕은 하만에게서 거두어 들인 반지를 신뢰할 수 있는 모르드개에게 줍니다. 하만이 제국의 2인자로 신뢰받았다면, 이제는 모르드개가 제국의 2인자로 신뢰를 받게 되었습니다.
민족 전체를 위한 승리는 초석은 이처럼 마련되었습니다. 왕후 에스더가 왕의 호의를 얻었습니다. 또한 모르드개는 왕의 인장 반지를 가짐으로 국무총리와 같은 위치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유다인의 승리는 여기서 얻어지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왕의 허락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에 에스더가 다시금 절박하게 나아갑니다. 에스더가 참 지혜로운 여인으로 여겨지는 것은 왕의 호의를 얻었고, 양부가 중역을 맡았다고 해서 안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위치가 무엇인지 잊지 않습니다. 잠시 높아졌다고 해서, 진정으로 높아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겸손한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겁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에스더가 다시 왕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거하기를 울며 구하니” 여전히 철저하게 왕의 발 아래 엎드려 간구합니다. 철저하게 낮아진 자세로 왕의 은혜를 구하는 모습입니다. 이미 왕은 왕비에 대해서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여러 차례 말하였습니다. 충분히 당당히 요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유다인들을 대신하여 간곡하게 요청합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그만큼 왕의 허락과 권한이 절대적임을 인정하는 겁니다. 열쇠는 왕이 쥐고 있습니다.
에스더의 간구에 물론 왕은 금 규를 내밀어 허락합니다. 금 규를 내민다는 것은 허락한다는 뜻입니다. 왕후의 세세한 요청의 내용5절에 있습니다. “이르되 왕이 만일 즐거워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좋게 여기시며 나를 좋게 보실진대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지방에 있는 유다인을 진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철회하소서”
이 내용을 보면, 크게 3가지의 내용으로 압축됩니다. 먼저는 “왕이 즐거워하신다면”. 즉 왕이 이 일 자체를 원하신다면 허락해달라는 겁니다. 철저하게 왕의 권한을 존중하고 인정해드리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왕후 에스더가 왕에게 은혜를 입었다면 허락해달라는 겁니다. 세 번째는 “왕이 이 일을 좋게 여기시며”라고 말합니다. 유다인들을 살리시는 일이 좋게 여겨진다면 허락해달라는 겁니다. 내용은 3가지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왕이 마음에 드시면 허락해달라는 거지요. “왕이, 왕의 목전에, 왕이” 거듭해서 왕이 강조됩니다. 하지만 그 안에 설득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겁니다. 나는 당신의 뜻을 철저하게 존중합니다. 동시에 내가 당신의 마음에 드신다면, 또 이 일이 정말 정당하게 여겨지신다면. 이러한 내용들로 부드럽게 설득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지혜로운 간구로 말미암아 왕은 에스더의 청을 들어주지만, 독특한 방식으로 들어줍니다. 왜냐하면, 페르시아의 법으로는 왕의 조서는 철회될 수 없는 것입니다. 8절 끝에서 말하듯, “왕의 이름으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유다인들이 바로 이러한 왕의 조서로 죽여도 좋다. 이러한 위기에 있습니다. 철회할 수 없는 위기에 있는 겁니다. 하만이 이토록 간교한 꾀를 낸 겁니다. 왕의 이름으로 유다인들을 죽여도 좋다. 12월 13일에 죽여도 좋다. 이렇게 공포된 조서가 취소가 안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왕이니깐, 왕이 취소하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신뢰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철회할 수 없다는 법이 필요한 겁니다. 만약 여러 차례 취소되는 경우가 반복되면 사람들에게는 “왕의 명령은 곧잘 취소되곤 해”. 이러한 인식이 생기는 겁니다. “어차피 취소될 건대, 천천히 행동하자.” 이런 의식을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12월 13일에 유다인들을 진멸해도 좋다는 법’은 철회될 수 없는 겁니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다인들을 위한 새로운 조서를 내리는 겁니다. 그래서 모르드개가 진두지휘하면서 이 조서를 새롭게 써내려 갑니다. 조서의 내용은 11절과 같습니다.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려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을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12월 13일 동일한 그 날에 유다인들이 모여서 스스로 방어하고, 또한 공격하려는 이들을 역으로 죽일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겁니다.
자칫 이것을 보면, 두 법이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전의 법을 이용하여 더욱 탁월한 법이 선포된 겁니다. 유다인을 죽기고 탈취하려는 사람들이 노출되었을 때에, 오히려 그들을 죽이고 탈취할 수 있는 법이 선포된 겁니다. 이전 법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마치 악인에게 함정과 같이 되어서 역전의 법이 선포된 겁니다.
그러나 이 법이 진정으로 힘을 얻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왕의 힘뒤의 법을 지지하고 응원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A와 B를 싸우게 하는 겁니다. 유다인을 죽이라는 법과 유다인이 역으로 방어하고 공격하라는 법이 싸우는 겁니다. 이러한 A와 B가 싸우는데, B에게만 모든 지원을 준다고 봅시다. 그러면 B가 이길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사망의 법이고, 하나는 생명의 법입니다. 그러나 사망의 법에는 아무런 무기를 쥐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법에는 강력한 무기들을 잔뜩 쥐어줍니다. 그러면, 반드시 생명의 법이 이길 수 밖에 없는 싸움이 됩니다. 생명이 법이 도무지 질 수 없는 싸움이 된 겁니다.
이러한 이해가 로마서에서도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우리는 에스더서를 읽으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에 대한 풍성한 비유로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로마서 8장 1-2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기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이길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님의 내주하심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기에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더욱 강력하고 새로운 법령이 선포되자, 이제 승리는 단순히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승리가 아닌, 전 민족들의 승리가 되었습니다. 물론 모르드개가 대표자였습니다.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나옵니다” 왕이 자신의 권한을 대리하는 자처럼 세워준 겁니다. 여기서 금관“아타라”라고 하는데, 면류관이라고도 합니다. 왕의 능력과 권한이 모르드개에게 있음을 수산 성에 공포하는 겁니다. 유다인인 모르드개에게 왕의 능력과 권한이 있음을 온 나라에 드러내는 겁니다.
그러하기에 16절에 보면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영광즐거움기쁨존귀함이 있습니다. 유다인의 승리에는 왕의 기쁨이 함께 합니다. 17절을 보면 왕이 유다인의 승리의 날을 “명절”로 삼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종국적으로는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이 되는 자가 많았다”고 말합니다.
놀라운 역전입니다. 원래수치가 가득했던 민족입니다. 에스더 앞부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에스더가 왕후의 후보로 나아가면서도 자신의 출신을 숨겼습니다. 왕후가 되고서도 유다인의 신분을 숨겼습니다. 이것을 드러내어도 하나도 이로울 것이 없기에 드러내지 않았던 겁니다. 그 정체성을 잊지는 않았지만, 하나도 이로울 것이 없기에 드러내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왕의 호의가 이처럼 함께 하기에 슬픔과 혼란과 두려움이 아닌,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역전입니다. 또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과 지혜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에스더서를 읽으면서 역사의 배경에서 충만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한편으로 만나게 됩니다.
어떻게 유다인들 스스로 자신을 존귀하게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하고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법이 선포될지라도, 이를 선용하셔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새롭게 선포되어서 역전케 하시는 능력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참으로 역전케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나아갈 길은 무엇입니까. 에스더왕의 은혜를 간절히 구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간구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찾고, 또한 찾는 겁니다.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할 때에, 우리의 수치는 사라지고,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본문에서 역전이 가능하게 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왕인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31절 이하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에스더에서 역전을 가능케 했던 것이 아하수에로 왕이라면, 우리에게는 진정한 왕이자 하나님께서 로마서의 말씀처럼 함께 하십니다. 정말 비교할 수 없이 좋으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유다인들의 영광과 존귀가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더욱더 좋은 것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에스더를 향한 왕의 사랑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에게 함께 있습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조차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기에 그 무엇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기에 우리가 더욱 철저히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구하며 나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성도의 승리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심을 알며, 그 분의 품에 안겨 살아가는 삶이 우리의 승리의 비결인 줄 믿습니다.
함께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더욱 겸손함으로 주님만을 붙잡으며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저희들에게 에스더와 같은 지혜를 주소서.
오직 승리함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며, 하나님만을 철저히 붙잡게 하소서.
우리 삶의 여러 어려움에 응답하시고, 사망의 법이 아닌, 생명의 성령의 법이 승리케 하옵소서.
주여 이름 부르며, 이렇게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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