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길3

Nehemiah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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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이루가는 회복

환영

오늘도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회복 시키시는 은혜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옆에 계신 분들에게 인사하시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참 소중한 사람입니다.’ , ‘주 안에서 함께 회복을 이루어갑시다.’
성도가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상생하면서 우리의 회복이 곧 나의 회복이 되고 너의 회복이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Introduction

나라가 어려울 때, 시대가 어두울 때 우리는 백성들이 힘을 모아 국난을 극복했던 일들을 알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금모으기를 통해서 과거에는 국채보상운동을 통해서 나라의 빚을 갚고 나라의 주권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역사적 일들을 기억합니다.
이런 경제적인 상황 뿐만 아니라 전쟁시에도 그 나라의 백성들, 시민들이 힘을 모아 나라를 지키고자 애썼던 일화도 많습니다. 다시 말해 시대가 어려울 때, 혼란스러울 때 사람들은 서로 힘을 모아 고난을 극복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특별히 신앙공동체가 어떻게 사회를 회복해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은 회복 두 번째 시리즈로 느헤미야 3장을 어떻게 공동체가 회복을 이루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느헤미야 3 은 우리가 읽기에 쉬운 본문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읽으면서 도통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도 어렵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통 성경을 읽을 때 어려운 본문은 한 편으로 지루하게 느껴지는 본문들입니다. 가령, 족보가 그렇고, 또 레위기의 제사법이 그렇고, 인구를 계수하는 본문 등이 그러합니다. 오늘 본문도 성벽재건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누가 어디를 지었는지를 단순 나열함으로써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본문을 읽어나가기 어렵게 합니다.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성경은 무의미하게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도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분명한 메시지가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한 가지 특별한 사실은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이렇게 사람이나 지파나 종족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자세하게 그 지은 장소와 범위를 제시하는 본문은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다윗이 여부스 족속에게서 예루살렘 지역을 빼앗고, 예루살렘 성을 지은 것이나 후에 솔로몬이 약 7년에 걸처 성전을 지은 것이나 본문을 보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처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화려하고 완벽하게 지은 건물로서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을텐데 그 기록들은 아주 짧게 기록되고 끝이 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마치 족보를 읽는 것처럼 매우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자세히 기록한 것은 성도에게 전하고자 하는 분명한 영적인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그 안에 담겨있는 영적인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 메시지는 성벽 재건의 과정을 통해 신앙 공동체가 이루어가는 회복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느헤미야서를 읽어서 결론을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힘을 합쳐 이 성벽재건에 헌신했을 때 그 효과는 엄청났습니다. 21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한 사람이면 할 수 없는 일이 기적처럼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한 권력에 의해 십수년간 멈춰있었던 일이 순식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을 당시에도 여전히 적들의 압박이 있었음에도 서로 협력하여 재건의 일이 중단되지 않고 힘차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로 신앙 공동체가 헌신하여 이루어진 회복은 가속도가 붙고, 강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 공동체가 이 회복의 원리를 따라 헌신할 때 우리 역시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고, 우리도 그 안에서 회복을 경험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회복을 이루어갈 때 그렇게 강력하고 온전한 회복을 이룰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Main point 1: 영적인 회복의 추구

먼저, 느헤미야 3:1 을 읽어보겠습니다.
Nehemiah 3:1 NKRV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우리는 방금 읽은 1절에서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먼저 회복의 일을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리더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재밌는 사실은 느헤미야가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먼저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은 영적 리더들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들이 먼저 시작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이 일의 영적인 의미가 있음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난 주에도 제가 말씀을 드렸지만, 이것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일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만약 단순히 건물을 짓는 일이라면 성벽을 짓던, 집을 짓던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런 단순한 노동의 개념이 아니라 성벽을 짓는 일은 분명히 영적인 차원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을 더 자세히 보시면 건축한 후에 ‘성별하였다'는 표현이 두 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성별하다, 곧 구별하다. 거룩하게 하다라는 이 표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면 상당히 본문과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후로는 다시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건물을 짓는 일에 굳이 성별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카도쉬라는 거룩함을 나타내는 단어와 카라쉬와 같이 단어의 모양이 다른 것으로 ‘오기’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만큼 건물짓는 일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이어 나오는 사람들은 그런 일에 참여하지 않았음으로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느헤미야 전체 맥락에서 볼 때 영적 리더십의 솔선수범하는 헌신과 거룩하게 함은 어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성벽 재건은 남은 유대백성들에게 단순히 건물이 아닌 영적인 재건을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떠나간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돌와오기를 염원하는 믿음의 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로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의 우선적인 헌신과 성별은 그들이 백성들을 대표하여 이 재건이 영적인 헌신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인 우리들은 공동체적으로 회복을 추구할 때도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반드시 먼저 영적인 회복에 헌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 근본적인 회복은 영적인 회복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회복은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삶의 진정한 회복은 성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성벽이 일시적으로 그들을 보호해주지만, 진정으로 그들을 보호해주는 것은 절대 무너지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표면적인 문제 해결이 진정한 해결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해결해주실 수 있습니다. 진정한 회복의 길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믿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개인만이 아니라 공동체가 하나님을 향해 영적인 회복을 추구할 때 그 공동체는 더욱 강력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 진정한 돌봄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힘을 합쳐 세상을 개선하기 위해 애쓰고, 회복을 추구하더라도 하나님 없는 추구는 결국 진정한 회복에 이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회복은 모든 것이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아무리 철옹성과 같은 탑을 쌓고 성을 짓더라도 그 영혼은 쉼을 얻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결국은 망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오늘 본문을 따라 영적인 회복을 갈망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겠습니다.

적용1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들입니다. 공동체가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우리가 속한 가정, 교회, 사회를 회복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을 기대하는 영적인 자리의 회복입니다. 마치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먼저 헌신하고, 건물을 지음에도 그곳을 성별하여 드렸던 것처럼 가장 먼저 영적인 자리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벽재건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것이기에 영적인 회복을 위해 헌신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영적인 회복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삶의 가장 첫 자리에 영적인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일(말씀, 기도, 복음 전함 등)을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다시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영적인 일을 위해 재조정하시기를 축복합니다.

Main point 2: 하나됨의 회복

이제 두 번째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공동체가 연합함으로 이 일을 행했음을 보여줍니다. 본문의 연합의 특징인 다양성의 존중과 눈부신 동역의 힘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먼저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음을 깨닫게 합니다. 2절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3장2절 입니다.
Nehemiah 3:2 NKRV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이어지는 2절을 보시면 1절의 종교지도자들이 지었다는 기록 이후에 이제 이어서 누가 지었는지를 설명합니다. 단순히 종교지도자들이 짓고 백성들이 지었더라가 아닙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누구 어디까지 무엇을 건축했는지 나열식으로 계속 기록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3장 2절에 첫 번째 단어인 ‘그 다음은' 이라는 표현이 31번이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약 31번이나 바꿔가면서 인물이나 족속이 등장합니다. 31하니까 유명한 아이스크림 브랜드가 생각이 납니다만, 아주 다양한 아이스크림 종류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브랜드 아닙니까? 그런 것처럼 제사장들까지 포함하면 총 32의 매우 다양한 가문이나 집단이 참여해서 이 성벽 재건의 일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다양성이 잘 드러나는 것 중에 하나는 거기에는 2절처럼 여리고 사람들도 있고, 7절을 보시면 기브온 사람들도 있고, 미스바 사람들도 있습니다. 즉,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 일에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8절과 9절을 함께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Nehemiah 3:8–9 NKRV
그 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 등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 등이 중수하되 그들이 예루살렘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의 절반을 다스리는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
그렇습니다. 8절을 첫부분을 보면 누가 중수했나요? ‘금장색’입니다. 그 다음은 누가 중수했나요? 향품 장수입니다. 즉, 상인들도 동참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9절을 보시면 누가 중수했습니까? 예루살렘 지방의 절반을 다스리는 지도자였습니다. 정치 지도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야기가 됩니다. 사람만 다양했던 것이 아니라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동참해서 성벽 재건의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교회 공동체가 회복을 추구할 때는 모두가 동참할 수 있고 동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원하기만 하면 누구라도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참여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이 일깨워주는 것은 몇명의 유력한 사람들이 이 일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동참하기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함께 동참했음을 보여줍니다. 힘이 있고 재물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더 많은 책임을 졌겠지만, 일부를 한정지어서 참여할 것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공동체의 아름다움을 깨닫습니다. 세상은 차별과 차등, 구분이 존재합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사람에게조차 가치의 등급을 매깁니다. 물론 어려울 때는 누구라도 도움이 필요하고 세상도 그렇게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교회는 단순히 어렵기 때문에 함께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다른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곳이고 복음 안에서 한 형제 자매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그리스도가 피로 값주고 산 사람이라면 누구도 소중하지 않은 지체가 없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강력한 힘이고, 문화의 충격을 주는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동중하게 부르셨기에 나 같은 사람이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힘으로 그 일을 이루어가시지 않고 하나님 자신의 힘으로 이 일을 이루어 가시기에 그런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는 마치 조연인 것처럼 아예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헌신을 기뻐받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십시일반 헌신했을 때, 결국 그것이 성벽재건의 역사를 이룬 것입니다.

적용2

이제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이 원리 또한 우리가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혼자 열심히 성벽을 쌓은 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머지 영역은 무너진 채로 있으면 우리가 쌓은 성벽은 얼마나 연약하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강력한 유혹이 있습니다. 강력한 도전이 있습니다. 압박이 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나 혼자 믿음을 지키려고 발버둥쳐도 넘어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주일에 말씀처럼 삼겹줄로 묶여 있으면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동역자와 함께 신앙의 생활을 세워나갈 때 우리는 더욱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결국 그것은 나 개인의 신앙을 세울 뿐만 아니라 우리 전체의 신앙과 사회를 회복하는 지름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본문에 나타난 대로 십시일반 함께 동역하여 여러분 자신과 주변 이웃을 함꼐 세우는 기적을 체험하시길 축복합니다. 특별히 이제 앞으로 성탄절과 특별새벽기도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 함께 나와 자리를 지킴으로 여러분의 가정, 사랑방, 마을, 교구공동체가 세워지는 기적을 체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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