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 주일저녁 예배
마틴로이드 존스(구약)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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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예배 순서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 오늘 주일 저녁에도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셔서 하나님 아버지를 경배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우리가 많은 사역들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은혜들을 경험하는 한달이 되게 하여 주시고, 또한 내년에 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한 달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사역가운데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만이 유일한 주인되게 하여주시고, 우리의 마음이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날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하시는 말씀을 듣습니다. 전하는 자와 듣는자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참여하게 하여주시고, 성령님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지금도 살아계신,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 봉독
창세기 3:1-8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서론
우리 앞뒤좌우 성도님들과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자리로 초대하셨습니다. 반대쪽으로 보시고 그 초대에 응답하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의지로 이 경건의 자리로 나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셨고, 그것에 우리가 응답하여 여기 나온줄로 믿습니다. 아멘
오늘은 성탄절을 기다리며,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그것을 생각하고 묵상하다가, 구원이 필요하게 된 시점, 즉 타락한 출발점을 보면서 우리가 알아야하고 교훈 받아야 하는 것은 없는가 생각하다가 이 본문을 정하게 됐습니다. 바로 그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그 첫 시작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창세기! 저는 창세기를 읽다보면 아담과 하와를 보다보면 화가 가끔 납니다.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같이 따라해보실까요? 어떻게 그럴수 있어?
그런 생각 해보신적 없으세요? 아니, 삼위의 하나님께서 너무나 섬세하게 너무나 공들여서 만든 완벽한 피조물이 너무 쉽게 유혹된 느낌이에요.
기대했던 격투기 선수가 마치 상대 선수의 펀치 한방에 나가떨어진 느낌이에요. 실망과 좌절을 감출 수 가 없습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그것을 먹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러한 다이어트라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족쇄를 가지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그렇죠?
매일 맛있는 것 먹어도 상관없었을텐데! 그리고 우리를 그렇게 괴롭히는 속상한 마음이나 분노하는 마음, 나는 맨날 화가나! 하는 분들 계시잖아요
본론
만약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우리를 힘들게 괴롭혔던 그 감정들도 사실은 느껴보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럼이제 한번 생각 해보는 것이죠. 우리 인간을 만드실때, 표현을 보면 창세기1:
창세기 1:26 (NKRV)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라고 표현하시죠? 바로 삼위의 하나님께서 심사숙고하셔서 만든 존재가 우리라는 것이죠. 하나님은 인간을 포함한 이 모든것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았더라라고 축복의 선언을 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이 안식하셨다는 표현은 여러가지 의미가 나올 수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더 이상 손쓸게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창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더 이상 할게 없다는 것이죠.
우리는 무엇인가를 만들때, 계속 수정하고 수정하고 수정하지만, 제가 이 설교를 쓰는 것만해도 다쓰고 수정하고 수정하고 수정하고 수정해서 이자리에 서게되는 것 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하나님은 수정이 필요없는 완벽한 상태를 만드시고 안식하셨다고 표현하신 겁니다.
그렇게 완벽하게 창조된 존재가 바로 아담과 하와였다는 것이죠. 근데 그런 아담과 하와가 너무나 쉽게 한방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영향력으로 자라난 열매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족쇄가 되었죠.
대체 뱀은 어떤 전략을 쓴걸까요? 어떻게 구워삶았길래 흠 없이 창조된 인간을 꼬실수 있었을까요? 아담과 하와는 지금의 우리로써는 상상이 안되고 가늠이 되지 않는 상태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동산을 거닐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강웅산 교수는 이것을 인식론적으로 해석했는데요. 뱀이 그 완전하게 창조된 인간을 무너뜨리려는 계획은 철저했고, 위험했고, 대단히 파괴적이었습니다.
두가지였어요. 먼저, 진리를 부정합니다. 그리고 없는 선택지를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무슨소리냐면 뱀이 창세기 3:4 절에서 뱀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3:4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원래 하신 명령, 진리는 뭐였죠?
창세기 2:17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명령과 반대되는 말로 먼저, 아담과 하와를 흔들었습니다. 근데 아담과 하와는 참 이상합니다. 뱀이 말한 것은 그 어떠한 근거도 없는 거짓말일 뿐인데, 아담과 하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거기에 이제 뱀의 2연타가 시작되고, 이 연이은 두번의 공격으로 아담과 하와의 생각하는 체계, 마음의 상태가, 그들이 인식하는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5 입니다 .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이 단어에 주목해주세요. 그것을 먹는 날에는..
이게 얼마나 간교한 전략이냐면, 의롭게 지어진 아담과 하와는 그 완벽한 피조물에게는 선악과를 먹는다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즉, 아담과 하와의 생각에는 선악과를 ‘먹는다’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던 것입니다.
근데 지금 뱀이 쓴 전략은 마치 선택지가 아닌 것을 선택할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이였구요.
아담과 하와는 지금 타락하기 전입니다. 타락하기 전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은 아예 선택지가 아니였습니다. 이것은 억지로 순종하는 상태가 아니라, 선악과가 너무 먹고 싶어 미치겟는데, 먹지 않고 참는 그런 억지로의 개념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기꺼이’라는 상태였습니다. 기꺼이 순종하는 것이 기쁘고, 자유의지는 있지만, 선악과를 선택할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런 상태입니다.
제가 이제 청소년 사역자다보니까, 학생들에게는 이런 비유를 들었습니다. 조금 부족할수 있겠지만, 이런겁니다. 우리가 저녁메뉴로 정말 맛있는 치킨과 피자나 아니면 뷔페를 먹을 수 있고, 다른 한쪽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도록 농약과 락스와 온갖 세제가 있다고 쳐봅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농약과 락스를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먹을 수 있겠지만 사실 선택의 대상으로는 두지 않습니다. 당연히 치킨과 뷔페를 고르게 된다는 것이죠.
락스를 선택하지 말라고 하는 명령이 우리에게 거림낌이 느껴지는, 무엇인가 억지로 해야만하는 그러한 선택으로 느껴지시나요? 절대 아니죠?
아담과 하와도 선악과를 선택할 순 있지만 그들의 선택지에는 넣지 않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기꺼이 기쁨으로 순종하는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근데 이 상황이 다 무너지고 정 반대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에는 이 선악과가 자신이 충분히 선택할수 있는 그런 대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에게 있어서 뱀이 말한 ‘죽지 않는다’를 확인하려면 남은것은 먹어 보는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은 절대적인 진리를 주셨습니다. 먹으면 죽는다. 아주 심플하고 하나님의 권위와 주인되심을 보여주는 말씀이죠.
전능하신 하나님이, 절대자, 초월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에 인간이 할수있는 것은 사실 기꺼이 따르는 것 뿐입니다.
근데 이제 아담과 하와가 하겠다고 결심한것은, 먹어보겠다고 결심한 행동은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을 내가 주인이 되어서 해석하겠다는 겁니다. 한번 먹어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바로 하나님의 자리에서 판단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뱀이 아주 정교하게 짠 전략이었고, 그 전략에 의해서 완벽하게 창조된 최초의 인간이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선악과를 놔두신 하나님의 의도는, 그들을 시험하려고하거나, 선악과를 먹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하나님을 악의 조성자로 보는 것은 우리의 오해에서 나온 것입니다. 선악과의 진정한 의미는 창조주를 잊지 않게하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구분을 정확하게 해주는 은혜의 방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절대자 하나님의 의도대로 우리가 살아가고 존재하려면, 즉, 우리가 가장 기쁜 상태로 살아가려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식하고 나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많은 능력과 권세를 행 할 순있지만, 내가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이 뱀의 가장 강력했던 전략은, 지금도 여전히 가장 강력하게 그리고 가장 많이 사용되고,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스스로 하나님이 되게 하려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한이서 1:6
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정도면 괜찮지’ 하고 타협합니다.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12:27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우리가 맡은 몸의 부분의 역할을 무시하고, 거절하고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우리가 가진 은사로 그리스도가 머리로 계신 교회의 몸된 ‘거룩한 성도’로써 사역을 감당해야 하지만, 그 거룩한 권리를 포기한채 예배 관람자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존재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신 것 이외의 것을 우리의 선택지로 삶으려는 시도를 지양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이 주신 것 안에서 자유한 것입니다. 주시지 않은 것을 찾으려고하고 행동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리를 내가 차지하겠다는 행동이고, 나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두지 않고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선악과를 먹지말라, 정녕 죽으리라는 명령처럼 우리에게도 주어진 명령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6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성자 예수님이 성취하신 그 구원을 우리 삶에 계속해서 기억나게하시고 그렇게 살게 하도록 돕고 계십니다.
그런 성령님을 따라서 행동하라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그럼 오늘 창세기를 통해서 얻은 교훈을 적용하면, 우리는 사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따라 행하지 않는다는 사실 우리가 생각할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고, 지금 타락한 우리는 어렵겠지만, 아담과 하와가 처음 하나님의 명령에 거리낌 없이 기꺼이 따른 것처럼 우리도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 우리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기꺼이 따르는 상태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강조하면, 우리는 흔히 육체를 따르는 것과 성령을 따르는 것이 대립하고 싸워서 이겨야하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그 둘중 꼭 성령을 선택해야 하는 선택의 문제로 이해하지만
이미 그리스도인이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는 육체를 따르는 것은 아예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이 이어 서
성령과 육체를 대적하는 것처럼 설명한 것은, 우리의 삶이 그만큼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타락한 이후에는 얼마나 죄의 본성이 강한지 알기에 이렇게 쓴 것입니다. 우리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죄의 결과는 너무나 참담합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선택한 길은 내가 선택할때는 어떤 심정으로 선택하나요? 나의 계산으로는, 나의 최선입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최선들은 뒤돌아보면 최악으로 얼룩져있습니다.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죄의 결과로 아담과 하와는 즉시 상실감을 느끼게되었습니다. 무엇인가 없어져서 벗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것입니다. 마틴로이드존스는 이 벗은줄 알고 라는 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냥 말그대로 생각하는 것 처럼 원래 벗고있는 상태를 몰랐다가 죄를 지어서 알게되었다고 이해하는데요.
그것을 넘어서 하나님이 만드신 완벽한 존재였던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입히신 영광의 종류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이 입히신 영광을 박탈당했고 벗게되었음을 느끼고 큰 상실을 느끼게 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공허함을 세상의 것으로 채워보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상실감을 나무 잎을 엮은 치마로 채워보고자 했습니다.
타락하여 그 처음 모습을 상실한 인간들은 그것을 전쟁으로, 정치로, 성공으로, 욕심으로, 명예로 채워보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상실된 것을 채우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도합니다.
딱 한가지만 빼고요. 딱 한가지, 유일하신 하나님을 찾는 방법만을 빼 놓은 채 모든 방법을 써보는 것입니다. 유일한 방법을 미련하게 취급하고, 장난으로, 소설로 취급하면서 헛된 방법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곤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의 삶의 모습은 우리것을 꽉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감수하면서 남을 돕는 모습이고 , 그런 삶의 예배는 복음의 강력한 통로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상실은, 이미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로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기때문에 우리 손에 가득 쥐은 것을 놓고, 타인의 성공을 위해서 살아갈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나의 삶에서 너무 힘들고 어려운 선택이기 때문에 그것만을 빼놓고 다른 대안들을 자꾸 하나님께 타협안으로 제시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선택하는 우리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말한 육체와 성령이 대립한다는 것 처럼 굉장한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 오늘 우리가 얻은 창세기의 교훈은, 우리에게는 사실 사랑을 선택하지 않는 선택지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선택하지 않으면, 내가 좀 더 편하게 살수 있을껄? 이라고 속이는 뱀의 고전적이지만 너무나 강력했던 속삭임에 더이상 넘어가지 않고, 사랑을 택하는 우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관계가 힘들다면, 사랑을 택하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힘들다면, 사랑을 택하시면 좋겠습니다.
내 코가 석자여도, 사랑을 택하시면 좋겠습니다.
죄악속에 신음하여도, 다시 사랑을 택하시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의 타락을 반전시킨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명하신 명령입니다.
합심 기도 제목
: 우리 잠깐 같이 기도할때, 먼저 우리가 들은 말씀을 바탕으로 여전히 내 삶에 존재하는 타락한 부분들을 하나님께 고백하시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두지않고 나의 선택을 내 주인으로 삶고 나의 삶을 내 마음대로 휘두르려고하는 죄성이 여전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뱀의 유혹이 여전히 매일매일 넘어가는 약한인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사탄의 치밀한 계획에서 벗어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의 십자가임을 고백하면서 그 십자가의 능력, 은혜를 구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내 삶의 모든 모습이 우리 주님을 닮아 사랑할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겁니다. 우리 주님 이름 한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가 이시간 다시 고백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인입니다. 여전히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서 넘어지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긍휼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이 시간 우리의 맘을 도와주셔서 우리가 그 죄악에서 다시 일어나서 예수님 닮아가는 성화의 삶을 살수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다시 한번 사랑을 택할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소망 없다고 판단해버린 곳에 다시한번 주님의 사랑으로 소망을 두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가 너무 커서 기꺼이, 저절로, 그리고 겸손하게 주변의 이웃을 섬기는 예수님 닮은 거룩한 성도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너무나 부족하지만 앞으로 있을 사역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실천해 보는 우리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 되시고,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