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 - 팔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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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읽기

하박국 2:1–4 NKRV
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Intro

이번에 유년부 아이들이 팔복을 암송 발표를 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이번 주를 위해 준비한 설교가 있었지만, 팔복에 대한 설교를 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팔복에 대해 “심령이 가난해야 상으로 천국을 얻는다. 마음이 청결해야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온유해야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하지만 팔복은 율법의의 - 파 말씀이 아니라 위로의 말씀이다.
오늘은 하박국과 팔복을 통해 많은 은혜 받기를 소망한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신다.

하박국을 보면, 하박국이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다 매우 분노하여 하나님을 찾아 질문한다.

하박국 1:1–4 “1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하박국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이스라엘 안에 나쁜 놈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나쁜 사람이 착한 사람 등쳐 먹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 이건 우리의 질문이다. 교회 안에 나쁜 사람이 너무 많다.
지인 중에 한 명이 시장에서 도매로 정육점을 했다. 그런데 그분이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해요.” 목사, 장로, 집사가 더 지독하다는 거다. 어떻게든 손해 안 보려고 하는 게 세상 사람보다 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게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하다. 교회 집사가, 장로가 성도를 사기 쳐먹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겠다고 하신다.

하박국 1:5–8 “5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6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7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당당함과 위엄이 자기들에게서 나오며 8 그들의 군마는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들의 마병은 먼 곳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마병이라 마치 먹이를 움키려 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하박국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시는데, 그 심판의 칼로 사용하신 것이 바로 “이방인”이자 악한 일을 행했던 “갈대아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살지 않을 때 더 악한 사람들, 더 사나운 사람들을 데려다가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지금 교회의 모습이 하박국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과 동일하다. 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심판하고 비판하는 것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인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산에서 한 부목사가 겪었던 이야기이다.
이 부목사가 울산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자기 교단에서 가장 큰 교회를 시무하는 담임 목사가 너무 악했다.
교회의 재산을 자기 마음대로 횡령하고, 부교역자들을 자기 머슴처럼 부려먹었다.
사모 모임까지 만들어서 만삭인 자기 아내가 이리저리 불려 다니다가 유산을 하고 말았다.
이 목사가 결심하여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하나님, 부정의를 위해서라면 나는 교회에서 일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그만두고 세상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 교회 장로에게서 전화가 왔다. 담임 목사가 횡령한 걸 발견하고 조사하고 있는데, 정의를 위해서 알려줄 수 있는 게 있느냐.
이 목사는 자기가 아는 담임 목사의 모든 비리를 장로에게 털어놓았다.
그러자 이 사실을 알게 된 담임 목사가 전화했다. “너, 평생 사역 안 할 거야? 내가 네 앞길 다 막을 수 있어. 너 앞으로 어느 교회도 갈 수 없을 거야.”
이 목사가 대답했다. “저, 사역 안 할 겁니다.”
이런 일들이 한국 교회 안에 비일비재하다. 더 강한 사람이 더 의로운 사람을 핍박하고 괴롭하는 것이다.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에 정화가 필요하다고 말해왔다.

교회 안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없으면, 교회가 스스로 정화하지 않으면 세상이 교회를 심판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계속 있어왔다.
그러나 이 목소리가 무시되어졌다. 교회 안에 유사 기독교가 들어오는데 그것을 전혀 막지 못했다.

오늘날의 교회를 한 번 보자.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닐 때)

출세 지상주의, 번영신학, 기복주의나 적극적 사고방식, 긍정의 힘이 복음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유사 복음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이제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성공하기만 하고 부자가 되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헌금 많이 내고, 부자인 사람들이 인정을 받는다.
그런데 성공주의에 빠진 이 사람들 대다수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고 괴롭히고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하박국에서 말하는 겁탈과 강포가 한국 교회 안에 만연해 있는 것이다.
강포가 가득한 교회에 대해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더 악독한 사람들을 데려다가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겠다고. 코로나 시기, 이보다 더 교회에 대한 핍박이 강한 적이 없었다. 바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 것이다.

둘째, 그러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하박국이 질문한다.

아니, 어떻게 더 악한 사람들을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실 수 있으십니까?
하박국에게는 말이 안 되는 말이었다.
아니, 안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정죄하고 심판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대답하신다.
하박국 2:4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마음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 즉, 유사 그리스도인은 심판을 받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의인, 곧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산다는 것이다.

여기서 의인과 의인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하박국 시대에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지켰던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출애굽기 22:25 “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신명기 23:20 “20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시편 15:5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하나님의 백성들, 곧 형제들에게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 곧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공평과 정의가 있으며, 서로에게 긍휼이 있는 나라로 세워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않으면 쉽게 부자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지키던 사람들을 핍박했다.
느헤미야 5:7–8 “7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8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에스겔 22:12 “12 네 가운데에 피를 흘리려고 뇌물을 받는 자도 있었으며 네가 변돈과 이자를 받았으며 이익을 탐하여 이웃을 속여 빼앗았으며 나를 잊어버렸도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서 중요한 사람들이 바로 이 의인들이다. 이 사람들은 말씀을 조금만 어기면 부자가 될 수 있었는데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지 않았던 의인들이었다.

하박국이 부르짖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주님,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안 지키는 자가 더 부자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핍박을 당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불의가 팽배한 것을 언제까지 두고 보실 겁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답지 않아서)
하박국 1:2–4 “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하박국이 부르짖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의인들이 핍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을 들어”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이 극심한 심판 가운데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은 심판을 견디고 산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았던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것과 섞어서 믿었던 사람들, 조금 편하게 타협하여 믿었던 사람들은 심판을 당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믿은 백성들은 이 심판을 견디고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이다.
하박국 2:3–4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것을 눈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 시기, 한국 교회는 극심한 핍박과 손가락질을 당했다. 코로나 이후 통계를 보면, 한국 교회 성도의 4분의 1이 증발했다.
이런 극심한 심판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구원의 소망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것을 섞었던 사람, 자기 이익을 위해 교회에 나왔던 사람들은 그 겉모습이 얼마나 신실해 보이는지와 상관없이 교회를 떠났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상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살게 된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통해 답을 주신다.

하나님 나라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주어진다. 바로, 예수를 통해 천국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제 드디어 하박국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팔복이다.
마태복음 5:1–12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신약시대에 와서도 이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하박국의 질문은 예수님 앞에 모여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질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살아갔던 사람들은 가난하고 굶주렸다.
지금 예수님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일제 치하의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로마 제국의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민족을 배신하고 로마 사람들에게 아첨하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것이 현실이었다.
이 사람들은 정의로운 나라, 열심히 일한 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나라, 평등한 나라, 하나님의 말씀이 선 나라를 꿈꾸고 기대하고 갈망하였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통해서 이렇게 가르치신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우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느라 힘들었지? 말씀대로 사느라 가난하고, 불평등한 세상 때문에 마음이 찢어질 거 같지?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갈망했지? 괜찮아. 잘 살았어. 고생 많았어. 이제 너희가 그렇게 바라던 그 나라가 너희에게 주어질 거야.
세상에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바보 취급 당하면서 힘들었지? 울기도 많이 울고 애통하기도 많이 애통했지? 고생했어. 앞으로 네가 웃게 될 거야. 하나님의 위로가 있을 거야.
예수님의 이 대답이 놀라운 것은, 이 말씀은 위로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종교들은 이렇게 말한다. “복 받으려면 기도 열심히 해. 일만배 해. 천국 가려면 순교해. 부자가 되려면 헌금 많이 해.”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니가 이 행동을 하면 내가 이거 줄게"가 아니다.
“지금까지 잘 해왔어. 천국이 너희에게 보답이 될 거야.”
“니가 힘들었던 거 내가 다 알고 있어. 이 모든 힘든 거 천국에서 다 보상 받고 위로 받을 거야.”
누가복음 6:20–25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박국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왔던 무리들에게 답을 주신다. 이제 그 나라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노력이, 우리의 고통이, 우리의 어려움이 전혀 헛되지 않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불평등과 불의 속에서)

우리는 팔복을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동일한 대답을 기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는 이 세상의 불의과 불평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우리는 하박국이 경험했던 것을 똑같이 겪는다. 예수님 앞에 모였던 무리들의 경험과 동일한 경험을 겪고 있다.
우리는 양심대로 살려고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한다. 하지만 이 모습이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어수룩하고 멍청해 보인다.
조금만 사람들을 현혹하고 속이면 돈을 버는 게 쉬울 것 같은데, 말씀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전혀 그러지 못하는 것이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다. 같은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히 지키는 것은 바보 같아 보일 때도 있다.
“하나님, 제가 너무 가난합니다. 제가 너무 무능력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조롱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너무도 힘겹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우리가 바라던 그 나라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다 잃어버린 그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을 끝까지 붙잡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소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이 발버둥이 전혀 헛되지 않다.

Outro

지금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통해 하나님의 교회가 핍박받고 조롱받는 욕먹는 것을 보았다. 우리의 죄에 대해 한국 교회가 자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고 계신 것이다.
이 심판으로 많은 사람들, 유사 그리스도인들, 선데이 크리스천들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은 이 나라를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 나라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는데, 예수를 마음속에 품는 자는 그 나라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교회에 허락하신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지 않고, 예수의 구원을 놓지 않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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