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새벽기도회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4 views
Notes
Transcript

에베소서 5:1–14 NKRV
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을 본받음①(1-2절)] 에베소서는 ‘교회’에 관한 책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예배당을 뜻하는 건물의 교회가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공동체가 되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1-3장은 믿음의 내용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공동체가 된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인지, 어떤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증거하고, 4-6장은 믿음의 실천으로, 그리스도인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특히 4:17-6:20까지가 더욱 그러합니다.
특히 어제 본문 4:25-32에서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살폈는데, 이웃에게 참된 것을 말하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일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어떠해야 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증거합니다.
[(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본받다’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본뜨다’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너희는 하나님의 붕어빵(국화빵)이 되고”입니다.
기독교 고전 중에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본래 수도사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쓰였습니다.
중세에 라틴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책의 영어 번역본 제목이 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라하기만 해도, 흉내만 내어도 삶이 바뀝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으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속에 그 마음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처럼 사랑 가운데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요 13: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제물로 드리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또한 1절과 2절의 말씀은 이렇게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본받으라고 말씀하시고 그 본보기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만큼 자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4:15에서도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닮기를 원하시는데, 그 본보기로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점은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을 본받음②(3-7절)]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우리 성경은 3절 문장 첫머리에 ‘그러나’에 해당하는 역접 접속사를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3-7절은 하나님을 본받고,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행하는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세 가지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음행, 온갖 더러운 것, 탐욕입니다.
‘음행(포르네이아)’은 ‘포르노그래피’의 어원이 되는 말입니다.
에베소의 수호신이 아프로디테(비너스) 여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도 고린도처럼 참 많이 문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갖 더러운 것’은 우상숭배와 같은 잘못된 종교적인 생각과 정욕적인 생각 등을 의미하는 데 정결하지 못한 삶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탐욕’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 이상으로 누리고 싶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성적인 범죄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관행, 일반적인 가치관이었어도 하나님을 본받는 그리스도인은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이 구절은 전부 언어생활과 관련 있습니다.
‘누추함’은 ‘입에 올리기 어려울 정도의 속되고 더러운 말’입니다. 4:25에서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의 생활 중 가장 먼저 나온 것이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였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의 본받으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가 언어생활의 변화입니다.
자신의 삶이 변화되면서 언어가 변하지 않은 사람을 본 일도 없고, 언어가 변화되지 않는데 그 삶이 변화된 사람도 본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에게 언어의 변화는 ‘필요충분조건’이자, ‘당연충분결과’입니다.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음행하는 사람, 더러운 사람, 탐하는 사람은 모두 3절에서 언급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다시 언급하고서 ‘곧 우상 숭배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당시 이방 신전에는 여성 사제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다 매춘을 했습니다.
그래서 신전 안에서 매매춘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행위를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쾌락과 욕망을 하나님보다 더 우위에 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6-7)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사람들에게 사람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지도 말고, 또 그런 사람들과 상종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릇되게 사는 사람들은 자신만 그렇게 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합리화하며,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이 살도록 만듭니다.
욕망과 세속적인 가치관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는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되면 그 삶이 하향평준화가 됩니다. [하나님을 본받음③(8-9절)] 바울은 3-7절에서 하나님을 본받는 구체적인 방법 중에서 부정적인 것을 말했습니다. 8-9절에서는 긍정적인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은 바르지 않은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바른 것을 행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전에는’과 ‘이제는’이 대조됩니다.
우리는 어둠에서 빛으로 넘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둠 속에’ 있었다고 말하지 않고, ‘어둠’이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가 ‘빛’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이미 빛이기 때문에 빛으로 행하고, 영원한 빛이신 주님 속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빛인 것은 틀림없는데, ‘주 안에서 빛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즉 우리가 주님을 떠나면 빛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빛으로 살기 위해 빛이신 주님을 목적 삼고 살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으로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이렇게 증거합니다.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빛의 열매를 세 가지로 말하는데, 착함, 의로움, 진실함입니다. ‘착함’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은혜와 긍휼, 오래 참으심 등으로 대하시는 것처럼, 그 태도를 본받아 자신도 그렇게 사람을 대하는 것입니다.
‘의로움’은 하나님의 성품의 올바름과 행하심의 올바름을 본받아, 자신도 올바른 성품을 갖고, 올바르게 행하는 것입니다.
‘진실함’은 표리부동(表裏不同)하지 않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속이지 않음입니다. 우리가 진실하기 위해서는 항상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본받음④(10-14절)]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의 목표와도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내게 손해가 되는 것처럼 보여도 하는 사람이고,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라면 내게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여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고구마를 찔 때, 익었는지를 확인할 때 젓가락으로 찔러보는 것처럼,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지 자신을 찔러 확인해 보라고 합니다. [(11-12)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열매를 맺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둠의 일은 열매가 없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고 권하는 것은 우리도 어둠의 일에 관심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둠의 일 즉 은밀히 행하는 것의 결과는 언제나 부끄러움입니다. 어둠의 일이 재미있게 보여도, 그 길을 따르는 것보다 빛에 거하는 것이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고 삶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빛에 거하기를 이렇게 촉구합니다. [(13-14)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가로등이 하나도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도로를 자동차 헤드라이트 없이 운전해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헤드라이트가 있으면 잘 갈 수 있습니다. 또 창이 하나도 없는 창고에서 등을 켜지 않으면 물건을 찾는 것 역시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등을 환하게 켜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빛은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인도하는 기능이 있고, 창고에 켠 불처럼 드러내는 기능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인으로 영원한 빛이신 주님의 빛을 받아서 세상의 어둠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어둠은 물러가라고 외친다고 해서 물러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칠흑같이 어두운 곳도 촛불 하나만 켜도 그 주변은 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빛으로 사는 것을 통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삶을 살게 해주시기 위해 빛이신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으며, 우리가 빛으로 살려고 하지 않을 때도 오래 참아 주셨습니다. 오늘이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자녀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맡기신 삶의 포도원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