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2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2 viewsNotes
Transcript
1.서론 예수님에 대한 예언들
1.서론 예수님에 대한 예언들
2. 새 아담이신 예수그리스도
2. 새 아담이신 예수그리스도
여러분, 예수님은 새 창조의 시작입니다. 새 나라의 시작이며, 새 통치의 시작입니다. 새 사람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거듭납니다. 다시 태어납니다. 우리가 아담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새로운 사람이 되었듯이 이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예수그리스도는 일종의 대조를 이룹니다. 로마서오장12절부터 읽어보지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5:12,14
위의 말씀과 같이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 입니다. 단 한 사람, 아담으로 인해서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죄의 결과인 사망이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우리가 유의해야할 점은 ‘사망'에 관한 유대인의 관점은 단순히 육체적인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고, 일종의 멸망-지옥-심판 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육체와 영혼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했고, 몸의 죽음은 동시에 영혼의 죽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살아있는 사람을 “네페쉬 하야" 즉 살아있는 영으로 말하고, 죽어있는 사람은 “네페쉬 메트" 죽어있는 영으로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인간의 영과 육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사망은 곧 영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영의 죽음은 곧 ‘스올' 이라는 죄의 결과로 들어가게되는 ‘심판'입니다. 그리고 믿는 우리 역시도 죽으면 몸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 몸을 입는 것입니다. 코린도전서15장을 보면 몸이 썩어 없어지고 영혼만 덩그러니 남게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형상을 입게되는 과정은 아주 놀랍게 일어납니다. 그저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중에 ‘홀연히' 하늘의 형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닙니다. “죽어도 영원히 살겠고” 라는 말씀과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바로 이것이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의 죽음, 파멸, 사망을 의미하는 ‘스올'에 내려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즉시 하나님께로 가기 때문입니다.
3. 구약과 신약에서 나타나는 사후묘사
3. 구약과 신약에서 나타나는 사후묘사
구약에서 보면 ‘죽음'과 ‘스올'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한번 보십시오.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스올이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이외에도 스올에 대한 성경의 묘사가 많습니다만, ‘사망'의 상태에 들어가는 ‘스올'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죽음의 스올’에 있는 자는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며 감사와 찬양을 올리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악인들이 스올로가며, 타락한 천사가 스올의 맨 밑에 떨어진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신실한 종들은 스올에서 건져내어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다시 위 5:14절에서 증거하는 ‘사망이 왕노릇' 하였다는 말씀은 단순히 지금 우리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까지 떨어지는 영혼의 사망상태를 말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오시기전까지 인간은 아주 절망적인 상태였습니다. 죽어서 스올에 들어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몹시 죄가 많으며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아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인간들은 두 종류로 나뉘었습니다. 어차피 스올에 들어갈인생 아무렇게 막 사는 부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스올에서 건져주시는 은혜를 구하며 사는 삶으로 말입니다. 예수님 오시기전의 사람들은 천국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고 그 소식을 듣지도 못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소망을 갖기보다, 스올에서 건져지기만을 바랬다는 것을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꼐서 오시기 전에 ‘사망이 왕노릇' 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약에 들어와서는 ‘생명이 왕노릇'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사망, 그러니까 스올보지 않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스올이 아니라, 스올에서 건져지는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으로 인해서 놀랍고도 위대한 천국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더 이상 육신의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봤을 때에 스데반과 제자들과 성도들은 돌에 맞아 죽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은 구약에서 말해왔던 ‘사망'의 ‘스올’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비록 세상의 육신은 죽었지만, 영의 몸으로 새롭게 태어나 영원한 생명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사망과 스올을 보지 않았습니다. 구약에서 계속해서 언급되는 사망과 스올은 이제 신약에 들어와서 생명과 천국으로 변하였습니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죄가 들어와서 사망이 왕노릇 하는데에서, 이제 두번째 아담인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인해서 생명이 왕노릇하는데로 옮겨졌습니다.
이것은 인류역사가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뉜것과 같이 세상이 둘로 나뉘어진 사건입니다. 기원전은 사망이 왕노릇하던 시대이며, 기원후는 생명이 왕노릇하는 시대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죽음을 보지 아니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다 같이 읽어보지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4.세상과 하늘의 분리 ,헤롯과 요셉
4.세상과 하늘의 분리 ,헤롯과 요셉
생명의 역사를 가지고오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환영받지 못하고 받아들여지지 못했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마태복음 2장에보면 헤롯이 나옵니다. 이 헤롯은 세상의 왕-대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세상은 예수가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세상은 예수가 오셨다고하자, 가장먼저 동방박사들을 속이고 그를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죽이고자하는 열정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그 동네에 있던 2살 미만의 아이들을 모두 학살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셨을 때에 배척과 고난과 미움의 대상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하신 그 사건도 배척과 미움의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서 이런 일을 겪으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여러분, 빛은 어떻습니까? 빛은 모든 것들을 환히 드러냅니다. 우리는 무조건적인 법칙으로 빛 앞에서 어둠이 물러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어둠입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꺠닫지 못하더라' 하셨습니다. 어둠인 세상은 빛을 알지도 받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조차도 조용히 등을 돌리고 떠나고자 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예수님은 육신의 아버지였던 요셉에게조차도 외면당하고 버림당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은 그 누구에게도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온통 어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은혜와 사랑 빛 그 자체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둠인 세상에 친히 찾아가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등을 돌린 요셉에게 계시하셔서 예수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하늘에 신비한 별을 띄워서 온천하에 선포하시고,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선포하시고, 예루살렘의 시므온과 안나에게 계시하시고, 세례요한을 미리 보내어 이스라엘에 선포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친히 그 모습을 나타내보이시고, 기적과 지혜와 능력을 나타내보여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친히 확증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의 어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빛이 와도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과 하늘의 분리를 봅니다. 하나님과 세상의 분리를 봅니다. 사람의 본심은 가장 결정적일 떄 드러납니다. 위급할때 가난할 때 혼자있을 때 죽기 직전에 나타납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 인간의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모든것들이 완전히 드러나는 경우는 오직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왔을 때 사람들의 걍팍함이 온전히 드러났습니다. 여기에서 철저하게 드러나고 완전히 판가름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앞에서 빛인지 어둠인지 완전히 판가름납니다. 그리고 여러분, 지금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앞에 서 있습니다. 예수의 말씀과 임재 앞에 서 있습니다.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숨길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여기에서 모든 것들이 판가름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며 나아오는 자는 예수님께 속한자요, 그렇지 아니하고 돌아서는 자들은 어둠에 속한자로서 예수님과 분리된 자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예수님 앞에서 판가름되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궁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판가름이 되는지 말입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는 빛이십니다. 빛과 어둠이 판가름나는 일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빛 앞에서 어둠이 물러나는 그것으로 말입니다. 동일하게 예수님 앞에 선 여러분이 예수님을 등돌리고 떠나는 그것만으로 이미 판가름 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 등돌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기원전 스올에서 건져내어주시기를 간구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야만 합니다. 예수님과 세상은 분리되었으나, 그것이 우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비록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세상과 분리될지라도 예수님과 분리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여러분이 신앙을 가짐으로서 세상과 분리되어지고 또 그것을 느끼게 되었더라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 일은 예수님께서 이미 경험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 앞에 계십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과 분리되었지만, 동시에 우리는 세상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세상으로 나아가 분리되어있는 그들에게 복음전하고 구원하는 일에 쓰임되어야만 합니다.
5. 겸손, 은폐된 메시야
5. 겸손, 은폐된 메시야
예수님은 창조자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놀랍습니다.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아주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는데 세상이 그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겸손'이라는 방식으로 철저하게 ‘은폐'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무언가가 좋다고 설득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가 먼저 그것을 취하여 가지고 있어야만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선함과 아름다움과 좋은 덕들을 기뻐하실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중에는 하나님께서 겸손을 특히 더 기뻐하시는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겸손하십니까? 그 겸손을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는 이 일에 대해서 순간적으로 고민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 용기, 지혜, 능력과 같은 모든 좋은 것들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에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즉시 받아들이지만, 하나님께서 겸손하시며 겸손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을 하기에는 무언가 주저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하십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무언가 하나님을 낮추는 것같아 보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낮아질 수 없으며 낮아져서는 안되는 존재로 우리가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주와 우주밖의 모든 천상존재를 통틀어서 가장 겸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것을 몸소 보이셨고 이것을 크게 기뻐하십니다. 당신은 겸손하시는데에 주저함이 없으시며 가장 큰 사랑과 용기로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인간의 자궁안에 10개월간 계시며 아주 연약하고 부끄러운 인간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것은 천사와 천상의 모든 세계의 시선으로봐서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아주아주 미천하고 하찮은 존재로 완전하게 일종의 추락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이 사건은 천상의 존재들에게 아주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인간이니까 이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지만, 우리가 만약에 바퀴벌레를 살리기 위해서 바퀴벌레모습으로 태어나서 살아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셨음을 의미합니다. 이 하나님의 낮아지심, 즉 ‘겸손'은 사랑의 끝판이며, ‘용기'의 끝판입니다. 이 세상에 이와 같은 사랑과 용기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의 자리에서 좋은 곳을 찾지 않으시고 짐승이 있는 말구유에서 태어났습니다. 심지어 그의 탄생을 보좌하거나 축하하는 사람들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는 완전한 ‘은폐'로 태어나셨습니다. 하지만 천사들은 이 사실을 알기 떄문에 세상에서 은폐되신 하나님을 동방박사에게 알게하시고,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알게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알아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게하셔서 그들이 알게 된것입니다. 하나님의 겸손을 보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겸손'과 완전히 다른 완전한 겸손입니다. 이 겸손은 바로 ‘은폐’ 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존귀하심과 높고 위대하심을 자기 스스로에게조차 은폐하셨습니다. 세상에서도 완전히 은폐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겸손해보이기 위해서 하는 ‘척’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남들에게 겸손하게 보이기 위해서 이런 저런 행동들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서 교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겸손을 꾸며서 보이기 떄문입니다. 겸손은 왜 사람들에게 꾸며서 보이려고 합니까? 그것은 ‘겸손하다는 평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겸손의 명예'를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이것이 진정으로 낮아지는 것입니까? 오히려 이것은 교만이며 아주 가소로운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겸손한 사람은 오히려 그 겸손이 자신과 상대에게 드러나지 않아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겸손은 ‘은폐'되어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태어나심과 역사하심이 은폐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드러나심은 아버지로 인하여서 드러나고, 성령의 역사로 드러났으며, 그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로 인하여서 드러났을 따름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 세상에 와서 외면받았고 숨겨졌습니다. 그가 숨겨진 것은 겸손이 은폐의 방식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고귀하며 아름다운 일인지 아십니까? 진실로 예수님께서 이 방식으로 태어나심으로써 그가 참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숭고하심과 깊은 지혜와 크신 사랑과 한량없는 덕목이 어떠한지 알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여러분들중에 진실로 신적인 사랑을 맛 본 사람이 있다면, 신적인 겸손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그의 지혜와 성령을 체험한 사람이 있다면 이 은폐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의 방식이며 이 은폐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의 명백한 나타내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경험하고 체득한만큼 보며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가치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내가 그정도에 이르러야만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디션의 심사원들이 모두 실력있는 가수들인 것과 같이, 참 된 신앙을 가진 사람만이 성도를 알아보는 것과 같이 오직 성령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겸손과 사랑을 맛본 사람만이 그의 은폐가 그의 빛남이며 가장 확실한 방식의 규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세상에 은폐되어 나타나신 이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에게만큼은 은폐되지 않고 가장 확실하게 규명되어서 계시되신 예수님으로 받아들여지고 그 분은 참 되신 하나님이시며 구원자로서 영접하여서 영원한 새 몸을 입고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에 함께 들어가시를 간절히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