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7 양청] 102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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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소요리문답의 마지막 주제인 기도에 대해 배우고 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3가지 방편, 곧 말씀과 성례와 기도인데, 오늘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 가운데 두 번째 간구에 대해 배워볼 것이다.
102문. 두번째 간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답. “나라가 임하시오며" 라는 두번째 간구에서 우리는 사탄의 왕국이 파괴되고 은혜의 왕국이 진전되며, 우리 자신과 타인이 그곳에 이르고 그 안에서 보존되도록, 그리고 영광의 왕국이 앞당겨지도록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내용은 기도에 대한 내용이지만, 특별히 두번째 간구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심을 볼 수 있다. “나라가 임하옵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나라”가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여러분, 국가의 3요소는 무엇인가? 국민, 영토, 주권이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도 이런 개념으로 생각해 보자. 하나님 나라의 국민은 누구인가? 구원받은 백성들이다. 그 나라의 주권이 있나? 당연히 하나님이 주권자가 되신다. 영토 어디에 있나? 여기서 우리가 혼란스러울 수 있다. 영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질문한다. “주께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시면 이때 입니까?”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이 영토의 개념으로만 생각을 했던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 땅은 로마가 주권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주님 이제 로마를 없에버리고 주님께서 주권을 가지시고 왕으로서 통치하시는 것이 이때 입니까?” 라는 의미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대한민국이나 미국과 같은 오늘날 이 땅의 나라의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을 대한민국이나 중국이나 미국을 없에시고 새로운 단일 나라가 건설되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된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킹덤"이다. 왕국. 헬라어로는 “바실레이아” 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기본적인 의미는 바로 “통치”이다. 통치.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이것이 “그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 보다 중요한 개념이다.
보통 어르신들은 천당 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천당”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보면 “하늘에 있는 궁전”으로,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께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는지 물었을 때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통치의 개념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하나님께서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우리의 왕이시라면, 우리가 곧 하나님 나라이다. 그분의 나라가 내 안에 임한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임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라는 이 개념을 우리가 분명히 이해해야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마13 장은 예수님의 대표적인 천국비유의 장이다. “천국은 이와 같으니...” 그렇기에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나라를 알고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 신앙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생활에서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우선순위이다.
여러분 교재 3번을 보면, “임하는 나라와 쇠하는 나라”라고 했다. 방금 우리가 함께 읽었던 102문을 보면, “나라가 임하시오며” 라는 이 간구는, 사탄의 왕국이 파괴되고 은혜의 왕국이 진전되길 간구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우리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뤄갑시다!” 그러나 여러분, 표현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 나라는 내가 건설하는게 아니라 우리에게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 주시는 것을 내가 받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이런 표현들이 아주 강조되어 있는데, 임하다, 오다, 내려오다, 이어받다, 등등…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내려온다고 말씀한다. 전부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선물로 받는것이다.
마태복음 12:28 찾아보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임한 싸인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이제 지금 임하는 나라와 쇠하는 나라와 관련이 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시절에 몇십년 가량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그런데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함으로서 그 통치가 끝났다. 일본의 통치권이 한국에서 사라졌다. 이 땅의 주권이 회복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한 나라에 두 주권, 두 통치자가 공존할 수는 없다. 만일 한 나라에 두 통치가 존재한다는 것은 내전상황과 다를 바 없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임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너희 어서 회개하고 돌이키라 말씀하신다. 이것은 굉장히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 그러면 회개하라는 건 무엇인가? 지금까지 너희가 충성하던 주권, 너희를 통치하던 통치권, 거기로부터 다시 돌이키라는 것이다. 유턴하라는 것이다. “너희의 왕은 이제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너희를 통치하신다! 하나님께 돌이켜야 생명이 있다!” 라는 것이다.
현대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 하더라도 사자를 풀이나 뜯어먹는 초식동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어린 아이가 독사에 손 집어넣으며 놀고 이러는 것들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샬롬을 주실 거라고 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이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이지 사람이 이루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인류 역사상 이런 유토피아를 건석하려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 모두 실패했을 뿐더러, 아무리 자기가 원하던 이상적인 나라를 세운다 할지라도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는, 완전한 평화가 임하는 나라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신다. 이어서 4번에 하나님 나라가 오는 방식. 예수님이 두 번 오시는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라. 왜 예수님은 한 번에 오시지 않고 2천년 전에 초림하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가 재림하시는가? 왜 초림과 재림이 있는가? 누가복음 4장을 찾아보자. 여러분, 이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알아야 신천지에 안 당한다. 지금 잘 정리해두라.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당신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회당 중앙에 배치된 율법서를 낭독하고 그에 대한 교훈을 짧게 가르칠 수 있었다. 예수님도 이 관습대로 16절부터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안식일에 늘 하시던대로 회당에 가셔서 성경을 읽으려고 서셨는데 누가복음 4:18–19 를 함께 읽어보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때 주변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주목하였고, 이때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이것이 예수님의 설교였다. 이 예언의 말씀이 너희에게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낭독하신 이사야 60장 1-2 절은 무슨 말씀인가? “메시야의 오심”에 관한 예언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주님이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실 때 의도적으로 어떤 단어를 생략하셨다는 것이다. 어떤 부분을 스킵하셨다. 왜?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주님이 인용하셨던 이사야 61:1–2 를 제가 읽어드릴테니 여러분은 눅4:18-19 를 펴두시고 어떤 부분이 스킵되었는지를 찾아보라.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어떤 부분이 빠졌는가? 보복의 날이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은혜의 해를 전파한다는 것만 읽으셨다. 보복의 날, 복수의 날은 읽지 않으셨다. 왜일까?
이사야 61 장은 메시야의 오심을 예언한 장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2천년 전에 이 땅위에 오셨을 때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들에게 보복하셨었나? 그렇지 않다. 예수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에 성육신 하셨을 때에는 이 은혜의 해를 선포하러 오셨다. 은혜의 시대를 열기 위해, 은혜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다. 만일 주님께서 초림하셨을 그 당시에 은혜와 보복을 다 이루셨더라면 그 이후로는 더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 날을 기점으로 믿지 않았던 자들은 다 지옥이다. 그러나 보복, 복수는 예수님의 초림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재림의 날에 이루어질 일이다. 다시 오실 그 날에 믿지 않는 자들을 영벌에 처하실 것이다. 이것이 마24-25 장에 기록된 내용이다.
그래서 4번에 A를 보면 예수님의 초림, 죽으심, 부활, 승천으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재림때 영광 가운데 오셔서 사탄의 나라를 완전히 멸하실 것이며, 초림과 재림 사이에 주님은 주의 몸된 교회와 함께 일하심으로 사탄의 일을 멸하시는 중이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표현이 있는데 이를 잘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왔고, 오고 있으며, 올 것”이라는 것이다. 신학자들은 이를 “Already, Not Yet”, “이미와 아직”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표현이다. 이미 왔다. 언제?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왔다. 통치자가 오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오고 있다. 현재 진행형.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은혜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예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게 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지 않나?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완전하게 임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오는가? 왕이 영광 중에 재림하는 방식으로. 그 날을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다.
몇몇 시한부종말론주의자들, 그리고 그 견해를 거의 대부분 그대로 악용하는 사이비 이단들은 “하나님 나라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측면만 강조해서, 이를 평신도들이 이해할 수 없도록 엄청나게 꼬와대며 우리를 현혹시키려 한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경적 입장, “이미와 아직”의 상태를 잘 이해했다면 여러분 흔들릴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 초림하심으로써 바울 사도가 우리의 시민권 하늘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이 땅의 나라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다. 즉 두 나라에 함께 살고 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두 나라이지만 두 나라 모두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이다. 두 왕국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변함없이 하나님이 다 다스리시는 세계이다.
그럼에도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과거 어떤 부류들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이니 이 땅의 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던 부류들이 있었다. 이런 극단적인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것들 다 이단이었다. 지금 우리는 두 나라에 속해 있다. 두 나라가 엄연히 함께 존재한다. 예수님 초림 이후로부터 모든 신자는 두 왕국 사이에 발을 붙이고 살아간다. 그런데 예수님이 재림하시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주님의 재림하시는 날은 곧 이 세상의 끝이다. 이 시대는 지나간다. 그리고 오는 세상이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의 세상으로 우리에게 펼쳐지게 된다. 이게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완성이 된다고 한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인해 성취된 하나님 나라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된다. 성취는 이제 드디어 그 말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신자는 하나님나라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늘상 자기 왕국을 건설하나 참된 신자는 어디에서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간다. 가인을 보라. 그는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놓고도 뛰처나가 자신의 왕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그 왕국에 진정한 샬롬이 있었던가? 더욱 악랄한 죄악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는 진정한 샬롬이 있다. 왜? 그 나라를 다스리시는 왕께서 평강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나라는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가? 여러분 교재의 5번의 C를 함께 읽어보자. “그 나라에 들어가는 방식은 오직 거듭남이며, 거듭남은 말씀을 통해 일어나기에, 신자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받는다” 여러분은 거듭나셨는가? 거듭남이 무엇인지 헷갈리시는 분들은 31문 정리한 것을 다시 살펴보시기를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오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가? 우리는 두 왕국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모든 세상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키신다. 그 안에서 보존되도록 지키신다. 유다서 24–25 를 찾아보자.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방금 읽은 말씀을 보면,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완전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까지 거침이 없게 하시고, 흠이 없게 하실 것이라 하셨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은혜이지만 그 나라에서 영원히 보존되는 것도 은혜이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깨닫는 자라면 누구든 그 나라가 속히 임하기를, 그 영광의 왕국이 앞당겨지길 기도한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는 신자는 그 나라가 속히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왜냐하면 두 나라 사이에 끼어서 산다는 게 힘드니까. 생각해보라. 이 땅의 나라, 이 세상의 나라에만 그냥 충성하며 살아간다면, 이 세상의 가치에만 충성스럽게 살면 헷갈릴 게 없다. 이 땅의 가치관은 나만 잘먹고 잘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때로는 남도 짓밟아야 한다. 그것이 이 세상의 법칙이니 용인이 된다.
그러나 신자들은 저렇게 사는 것이 답이 아님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 위의 것들을 찾으려 한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다시 막상 돌아보니 나 혼자 뒤처지는 것 같다. 나 혼자만 도태되는 것 같다. 그래서 또 고민이 된다. 이 세상의 법칙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며 살아갈 것인가. 그만큼이나 두 세계 사이에 끼어 사는 것이 참 어렵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끼어 있는 삶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기를, 그래서 이 힘겨운 삶이 속히 끝나기를 간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 만일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 땅을 살아가는 게 너무 재미있고, 너무 행복하고, 너무 편하다면, 과연 그런 태도가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삶인지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여러분, 한번 마음 속으로 생각해보라. 지금 당장 하나님 나라가 온다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그 나라가 완성된다면, 그래서 지금 이 세상이 끝나고 영원한 천국이 시작된다면, 그게 여러분 자신에게 좋은 일인가? 정말 여러분들은 이생의 수고와 고생이 다 끝나고 영원한 천국에서 안식을 누릴 그 날을 고대하며 살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천국에 들어가길 소망하지만, 그 하나님 나라가 지금 당장은 안왔으면 좋겠다. 하나님 나라가 오기 전에 결혼도 좀 해봐야겠고, 하나님 나라가 오기 전에 계약해 둔 새 차도 한번 몰아봐야 하고, 하나님 나라가 오기 전에 넣어둔 주식도 좀 올라서 손맛도 봐야 하지 않겠나? 이런 식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상의 다른 것들에 미뤄두기 시작한다.
초대교회 시절이나 종교개혁시절,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다가 박해와 핍박을 당했던 우리의 선배들은 하나님 나라를 너무나도 기다렸다. 신앙생활하기 어려운 때일수록 그 간절함은 더 깊어졌다. 1세기 초대교회 성도들이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인사할 때 “마라나타” 라고 인사했다.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 그것은 일주일 내내 박해받고 핍박을 받다가 주일에 모였는데, 정말로 이 땅에 주님이 속히 오셨으면 좋겠어서 그렇게 인사했던 것이다. 그만큼 살기 어렵고 괴로울 수록 하나님 나라를 소망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가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6.25를 겪고, 그 이후로 정말 급격한 변화를 겪은 나라이다. 짧은 세월 동안에 그러다 보니까 우리 기독교가 약해진 것도 사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더 잘 사느냐, 이것에 우리의 모든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여러분, 구원받은 신자는 늘 최우선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순간을 고대하며 살아야 한다. 늘 우리의 시선이 하늘 본향에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이 땅을 살아가는동안 우리의 눈과 귀를 현혹시킬만한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최우선적인 소망, 하나님 나라를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필요하다. 왜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로 끝날까? 왜 신약성경이, 왜 성경이 이렇게 끝날까?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게 우리의 소망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땅을 살아가는동안 험난한 환경을 만나기도 하고, 영광의 순간을 만나기도 하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이 땅,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아침 안개와 같이 사라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 그 영광의 나라가 속히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첫째로 승리주의, 행동주의, 사회복음같은 것이다. 우리가 나서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없다. 이 사회 체제를 전복시켜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자! 이런건 이단이다. 또한 패배주의, 내세주의, 이원론적 세계관, 이런 것들이 그간 한국교회를 좌지우지해왔다. 내세주의, 이 세상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니 모든 걸 포기하고 산으로 들어가자!? 아니다. 우리는 두 세상에 걸쳐 살아가는 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르며, 동시에 이 세상에서 세상의 법을 따라 존재하는 자들이다. 이 세상의 법 위에 하나님의 법이 있고, 모든 통치자들 위에 절대왕이신 하나님이 계심을 삶으로 보여주는 자들이다. 물론 때로는 세상법과 하나님의 법이 너무나 극렬하게 모순이 되고 부딪혀서 우리가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용감하게 하나님의 법에 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결론은 이것이다. 큰 그림을 가지고 사는 것. 여러분, 자기의 우물 안에 갇혀서 살아가는 인생, 그 죄인의 인생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심으로써 우리를 사랑하는 존재, 사랑할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하는 존재로 만드셨다. 나, 내 자식, 내 가족, 내 소유, 이것이 일반적인 죄인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넘어서셨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주님 말씀하셨다.경계선을 허무셨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에서 “나라에 임하옵시며”라는 기도는 여러분들의 모든 기도에서 빠지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간절히 구하며 기도하는 사람은 삶에서 그 간절함이 묻어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분, “나라에 임하옵시며” 를 기도로 구하는 자들은, 세상의 그 어떠한 것보다도 하나님 나라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들이다. 세상이 주는 어떠한 기쁨과 만족과 영광보다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기쁨과 만족과 영광을 갈망하는 자들이다. 어느 찬송가 가사의 고백처럼 “내 주여 내 맘 붙드사 그곳에 있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바라옵기는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이 회복되길 바란다. 다른 어떠한 것보다 그 영원하신 나라를 사랑하며, 다른 어떤 것들보다 그 나라를 더욱 소망하는 여러분들 되셔서, 늘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주의 나라를 찾고 구하는 이 자리의 모든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하나님, 두 왕국 사이를 살아가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 재미있는 것 많고, 나에게 만족을 줄 법한 것들도 많고, 기쁨을 주는 것들도 더러 있지만, 그것이 장차 우리 가운데 완전히 주어질 하나님 나라와는 결코 비교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그 나라가 속히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바라는 믿음 가운데 살아가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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