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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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7:11–28 NKRV
11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 학자요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의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 12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13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14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하여 왕과 일곱 자문관의 보냄을 받았으니 15 왕과 자문관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이스라엘 하나님께 성심으로 드리는 은금을 가져가고 16 또 네가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을 모든 은금과 및 백성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들의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기쁘게 드릴 예물을 가져다가 17 그들의 돈으로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그 소제와 그 전제의 물품을 신속히 사서 예루살렘 네 하나님의 성전 제단 위에 드리고 18 그 나머지 은금은 너와 너의 형제가 좋게 여기는 일에 너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쓸지며 19 네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네게 준 그릇은 예루살렘 하나님 앞에 드리고 20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성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궁중창고에서 내다가 드릴지니라 21 나 곧 아닥사스다 왕이 유브라데 강 건너편 모든 창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가 무릇 너희에게 구하는 것을 신속히 시행하되 22 은은 백 달란트까지, 밀은 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백 밧까지, 기름도 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량 없이 하라 23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제사장들이나 레위 사람들이나 노래하는 자들이나 문지기들이나 느디님 사람들이나 혹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는 것이 옳지 않으니라 하였노라 25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26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더라 27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28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서론

본론

M.P : 하나님의 은혜는 믿는 자들의 역사 속에 드러난다.
본문은 특이하게도 히브리어로 되어있지 않고 당시 페르시아 언어인 아람어로 되어있습니다.
11절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에스라 7:11 (NKRV)
11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 학자요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의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
왜 아람어로 되어있을까요?
이 조서는 페르시아 황제가 페르시아 전역에 내리는 조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발령되었던 실제 조서의 내용을 그대로 적은 것이죠.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아람어 그대로 옮겨적은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역사적 사건인데, 우리가 오늘 중점적으 봐야할 부분은 무엇이냐면 바로 실제 역사 사건에서 보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 28절을 한번 볼까요?
에스라 7:28 (NKRV)
28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에스라가 이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무엇이라고 평가하냐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삶에서 어떤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자주 얘기하시나요?
우리 삶 속에서 아주 사소한 것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작은 기도제목이 응답받는 것, 삶 속에서 작은 어려움이 생겼을 때 해결되는 것 이러한 모든 것이 우리 삶 속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의 본문은 한 국가를 통해서, 한 제국을 통해서 그리고 그 나라의 왕을 통해서 언약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거대한 역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라는 점입니다.
역사를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나누면서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길 소망합니다.

1. 사람과 물질을 주관하셔서 은혜를 누리게 하심

그렇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누리게 하실까요?
먼저 하나님은 먼저 사람과 물질을 주관하셔서 은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왕의 조서를 보면 사람들을 에스라에게 보
에스라 7:14 (NKRV)
14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하여 왕과 일곱 자문관의 보냄을 받았으니
하나님이 사용하신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먼저 아닥사스다 왕이며, 일곱 자문관입니다.
일곱 자문관은 페르시아라는 대국의 주요한 일을 담당하는 왕의 제도적 최측근들입니다.
왕과 자문관들을 통해서 모든 국가의 결정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들을 어떻게 하십니까? 이들을 보내십니다.
에스라와 이스라엘 언약 백성들의 예루살렘 귀환을 위해서 이들을 보내신다는 거에요.
하나님은 언약 백성에게 은혜를 경험시키기 위해서 역사 속 제국의 왕과 자문관들을 보내십니다.
그들을 주관하시는거죠.
이를 통해서 우리가 누리는 은혜는 무엇인가요?
‘아 하나님이 정말로 이 세상의 주관자시구나’
‘세상의 막강한 권세자들을 주관한다면 그것은 필히 하나님이시구나.’
또한 하나님은 물질도 주관하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경험케 하십니다.
에스라 7:15–17 (NKRV)
15 왕과 자문관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이스라엘 하나님께 성심으로 드리는 은금을 가져가고
16 또 네가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을 모든 은금과 및 백성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들의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기쁘게 드릴 예물을 가져다가
17 그들의 돈으로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그 소제와 그 전제의 물품을 신속히 사서 예루살렘 네 하나님의 성전 제단 위에 드리고
아닥사스다 왕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릴 은금을 허락합니다. 또한 예물로 드릴 수송아지, 숫양, 어린 양을 가져갈 것을 허락합니다.
그런데 제가 허락한다고 표현했지만 이것은 명령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물질을 통해서 누리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속성인지 알 수 있습니다.
18-22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에스라 7:18–22 (NKRV)
18 그 나머지 은금은 너와 너의 형제가 좋게 여기는 일에 너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쓸지며
19 네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네게 준 그릇은 예루살렘 하나님 앞에 드리고
20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성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궁중창고에서 내다가 드릴지니라
21 나 곧 아닥사스다 왕이 유브라데 강 건너편 모든 창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가 무릇 너희에게 구하는 것을 신속히 시행하되
22 은은 백 달란트까지, 밀은 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백 밧까지, 기름도 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량 없이 하라
18절보면 남은 은금을 너와 너의 형제들이 좋을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쓰라고 말하고 있죠.
20절 보면 더 필요한 그릇이 있으면 궁중창고에서 내다가 맘껏 쓰라고 말합니다.
21절, 22절 밑줄친 부분 보면 에스라가 구하는 모든 것들을 신속히 주고, 은은 백 달란트, 밀은 백 고르, 포도주는 백 밧, 기름도 백 밧, 소금은 계속해서 공급해주라라고 말합니다.
당시 무게의 단위의 기준이 자주 바뀌어서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추측하면 은 백 달란트는 3500키로그램, 밀 백 고르는 1만 3600리터, 포도주와 기름 백 밧은 1800리터라고 합니다.
소금은 당시 페르시아가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닥사스다가 계속해서 공급해주라고 말하는 것이죠.
한마디로 얘기해보면 겁나 많이 주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하나님의 은혜의 속성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풍성하며, 차고 넘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은금을 허락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남는 것은 형제들을 위해 나누게 하시는 풍성한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차고 넘쳐서 마치 부족한 그릇이 있으면 궁중창고에서 맘껏 내다 쓸 수 있을 정도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때 차고 넘치는 양으로 부어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물질을 통해서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속성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5:1–3 NKRV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이사야의 말씀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던 시기에 쓰인 말씀인데 하나님이 이 말씀을 거의 백년이 지난 에스라 시기 때 이루어주시는 것 같지 않습니까?
바벨론 포로, 페르시아 포로되었던 언약백성들의 목마름을 가득히 채워주시지 않습니까?
목마른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물로 나아오면 돈도 없이, 값도 없이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그 은혜.
3절을 보면 다윗에게 맺은 그 은혜의 언약, 영원한 언약 안에 있는 확실한 은혜
이것이 바로 지금 에스라에게, 예루살렘으로 복귀하는 언약 백성들에게 풍성하게 부어지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적용)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오늘 역사를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세상의 권세자들을 주관하셔서, 활용하셔서 언약 백성들을 위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물질을 통해서 보여주시길 차고 넘치는 은혜를 언제나 언약 백성들에게 부어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까요?
2023년을 지나 2024년을 향해 나아가는 이 역사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를 보여주시고 경험하게 해주십니다.

2.부르심에 응답한 자들이 역사를 통해 보이시는 은혜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 속에서 은혜를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 속에서 드러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은혜를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 속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는 13절을 통해서 한 가지 힌트를 찾게 됩니다.
에스라 7:13 (NKRV)
13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에스라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 중 오직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가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을 가게 됩니다.
한 가지 힌트를 더 볼까요?
27-28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에스라 7:27–28 (NKRV)
27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28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예루살렘에 올라갈 뜻은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에스라와 함께 누구든지 원하는 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성전 건축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올라가기로 원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요?
바로 그들이 “부르심에 응답한 자들”입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바로 키 포인트입니다.
역사 속에서 지금 아닥사스다 왕을 통해서 선포되는 조서가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에스라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갔던 자들이 그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단계에 바로 그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교회에 나가면, 내가 예배하는 공동체에 속해만 있으면 구원의 은혜를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은혜를 누리게 하는 하나의 보험이 되어서 그래도 교회 나가고, 그래도 예배 공동체에 속해 예배 드리면 구원의 울타리 안에 속하겠지라는 착각이죠.
그러나 정말 명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명만 부르시는 것은 아니죠. 여러 명을 부르시겠죠.
그러나 하나님은 한 명, 한 명 따로 부르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한 명, 한 명의 응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의 은혜는 바로 그 한 명, 한 명의 부르심과 응답으로 시작됩니다.
제가 청년 때 그런 장난을 참 많이 쳤었는데 교회 다니는 제 또래 청년들을 보면 비슷한 이름들이 많이 있는 경우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 남자는 요한 이런 이름이 많고, 여자는 지혜, 지은, 은혜 이런 이름들이 참 많단 말이죠.
그러면 그냥 요한아! 아니면 여자는 지혜야! 지은아! 이렇게 부르는거에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자기를 부르는지 저 다른 요한이를 부르는지 모르잖아요. 그런 장난이 저는 참 재밌었습니다.
신대원에 가면요 참 요한이 많습니다.
부모님들도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이 많으시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아마 신대원에서 요한아! 하면 한 반에서 5명은 쳐다볼거란 말이죠.
얼마나 재밌습니까? 하하하
그런데 제가 왜 이 말을 하느냐면, 이런 장난이 성을 붙여서 부르거나, 설마 성이 똑같을지라도 그 명확한 한 사람의 특징을 붙여서 부른다거나 하면 헷갈리지 않습니다.
예를들어 요한이면 몇살 박요한! 결혼한 박요한아! 이렇게 부르면 그 사람이 자신인지 명확하게 안단말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이 이런 겁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냥 여러명의 성도들에게 성도들아! 내가 너를 불렀다! 라고 하지 않으세요.
많은 사람들 중 ooo 아!
구약에선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야곱아.
모세야 모세야
신약에선 바울아 바울아.
지금 우리에게는 저라면 박대범아 박대범아!
하나님의 부르심은 한 명 한명을 향한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도 바로 그 한 명 한명의 응답인거죠.
절대로 교회에 그냥 나간다고해서, 예배를 같이 드린다고해서 누군가의 응답이 나의 응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바로 하나님과 독대하여 나를 부르실 때 “네 제가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이렇게 응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역사 속에 드러나는 그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금 어떤 자리로 부르시고 계십니까?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을 아름답게 하라고 부르시듯이 우리에게도 교회를 세울 그 자리로 부르시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시는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그 부르심에 응답하십니까?
제가 교회에 몸담고 있다보면 참 안타까운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사역할 사람을 정하거나, 자원을 받거나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역 자리를 완전히 기피하는 거에요. 길벗교회가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때까지 봐왔던 자리들 중 많은 곳이 그랬는데.
그 사역의 자리로 하나님이 항상 부르고 계세요. 여러분들에게 맡겨주실 그 자리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애써 다 피하고, 부정하고, 핑계를 만들고 하는 경우가 있는거에요.
모든 경우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 충실해야할 분도 있고, 혹은 정말 상황과 여건이 안되는 경우 자신의 충실할 자리가 분명히 있을 거에요.
그런데 결국 분명히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것이 확실함이 그 마음에 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정합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가 있냐면, 누군가가 특히 목사님, 전도사님들이 이곳 저곳 다니면서 사정사정하듯이 부탁을 하는 거에요. 이런 표현해서 참 죄송합니다만 마치 그 자리에 구걸하듯이 하는거에요.
이게 참 마음이 아픈거에요.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의 것으로 누리게 되는 그 시작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인데, 사역의 부르심의 그 자리를 회피하고, 거부하고, 부정하고, 핑계대고
여러분 하나님의 사역의 자리가 그 귀한 자리가 피하고 피하다가 사람에 의해서 억지로 앉혀지는 자리여야겠습니까?
역사 속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자는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향하는 곳에 발걸음을 옮기는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 같은 자들입니다.
이후에 에스라서에서 나오겠지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 페르시아에서의 삶이 나름대로 편안해지고, 꽤나 누릴 것들이 많았거든요.
그러나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자들은 부르심에 응답해서 비록 불편해지고, 할 것들도 많아지고, 어려움도 생길지라도 하나님 뜻, 계획 믿고 나갔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부르심의 자리로 나아가십니까? 지금 그 페르시아의 자리에 머물러 계시려고 합니까?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 흘러가는 이 시간.
심지어 아주 큰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향한 부르심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비춰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누리는 방법은 너무나도 확고합니다.
부르심에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는 그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부르심에 응답하고 하나님의 자리로, 그리고 그 부르심의 자리로, 교회 세워나가는 사역의 자리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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