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7 계22:1-5, 주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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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론: 요계의 기록 목적; 고난 중 위로와 소망‌

1) 도입;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

‘고무신 거꾸로 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랑하는 남녀 중 한명이 거리상 먼 곳으로 떠나서 못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사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마음의 허전함과 외로움 때문에 다른 이성을 만나는 상황을 가리켜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고 말합니다. 주로 연인이 외국에 나가거나, 또는 군대에 갈 때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합니다. 다시 돌아올 연인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마음을 품어서 바람을 피는 것이지요.
이건 제 13년도 군입대 전 사진인데요, 사진으로만 봐도 아주 순수한 시골 청년의 느낌이 나죠? 딱봐도 여자친구가 없을 것만 같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는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2년이라는 기간동안 군대 안에 몇대 없는 전화기로만 연락이 가능하고, 일년에 몇 차례되지 않는 휴가를 통해서만 밖을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제 주변의 동기들은 고무신 거꾸로 신고 도망간 여자친구 때문에 눈물에 젖은 급식을 먹곤 했습니다.
관계가 멀어지고, 언제 돌아올 지 기약이 없는 그런 막연한 상황에는 사랑하는 관계라 해도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같습니다.
이런 상황은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주님께서 사도행전 1장을 통해 다시 오리라고 약속하셨지만, 10년 20년이 지나도 오시지 않고 요한이 이 계시록 편지를 썼을 때는 이미 주님이 승천하신지 40년 정도 지난 상황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리란 믿음도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한은 이 편지를 통해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분명 다시 오실 것이고 그때 너희들을 구원하시리라는 위로와 소망의 메세지를 전합니다. 그 당시 그들은 로마제국 내에서의 수많은 죄의 유혹들과 모진 박해로 인해 믿음의 도전을 받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이런 그들을 향해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이시며, 세상의 창조주이자 통치자이신 주님이 이제 곧 오셔서 그들을 죄와 고난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을 약속합니다.
이 메세지를 들은 그리스도인들은 현재의 상황이 어렵지만 그 가운데 에베소 교회에게 하셨던 말씀과 같이 주님을 뜨겁게 사랑할 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약속을 붙잡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죄와 고난으로부터 승리하고 사랑하는 주님을 기다릴 수 있었죠.
이제 오늘 본문인 요한 계시록 22장으로 들어가면 22장은 21장부터 시작해서 성도들이 마침내 거주하게 될 하나님 나라; 새 예루살렘의 모습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1-5절은 새 예루살렘에 흐르고 있는 강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요. ‌함께 본문을 보실까요?

본론;주님께서 다시 오셨을 때 회복될 모습들‌

1)생명이 넘치는 새 예루살렘 성

먼저 1-2절을 보면, 어떠한 강이 새 예루살렘의 왕이신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 즉 왕이 앉아 있는 권위있는 의자로부터 시작해서 성 안을 흐릅니다. 이 강은 크리스탈과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입니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는 것처럼 생명을 주는 강입니다. 이 강을 사이에 두고 양옆에는 생명의 나무들이 심겨져 있는데 이 생명나무의 열매는 달마다 끊이지 않고 계속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는 모든 사람을 치유하는 효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 새 예루살렘 성에는 저주란 없고 생명으로 가득찼습니다.‌이곳에 살면서, 하나님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보며 그들의 이마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그곳 예루살렘 성에는 빛이신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더이상 등불이나 햇빛과 같은 발광체는 필요가 없습니다. 더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빛이 그들을 비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사는 그들은 하나님의 종이면서 동시에 왕으로서 살게 될 것입니다. ‌

2)더 나은 에덴 동산인 새 예루살렘

이곳의 모습은 옛적 에덴 동산을 떠올리게 합니다. 생명 나무가 동산 한가운데 있었고 그곳에는 동산 중앙으로부터 강물이 흘러 넘쳤죠. 생명이 시작된, 생명이 약동하는 곳이었습니다. ‌
에덴을 다스리는 아담은 하나님의 종이자 이 땅을 다스리는 권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심으로 죄를 짓게 되었고 그 결과 생명의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에게는 죽음이라는 저주가 임했고, 또한 더이상 거룩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종이 아닌 죄의 종이 되어 살아갔으며 밤이라는 짙은 어두움 속에서 불안해 하며 추위에 떠는 등 고난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
하지만 로마서 5장이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둘째 아담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을 끊어내시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부활의 생명이라는 놀라운 축복과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처럼 영원한 생명이 넘치는 예루살렘을 그들에게 약속하셨지요. 주님의 죽음을 통해 그곳엔 더이상 저주와 어둠은 없습니다. 죄와 고난은 더이상 없고 하나님의 종이자 왕으로서 그곳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죄로 인해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을 이제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이 1세기 당시 죄의 유혹과 로마의 박해를 받고 있던 성도들에게 약속되었습니다. 요한은 이 일이 너희에게 이뤄질 것이며 또한 이미 이뤄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루어지리란 약속은 알겠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이미 이루어졌는지 의문인 친구들이 있을 것입니다. 요한이 증언하는 이 새 예루살렘은 다름 아닌, 주께서 이 땅에 세우신 교회를 가리킵니다.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가 시작되는 21장의 첫부분인 2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Revelation 21:2 NKRV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요한이 천사가 보여주는 환상을 통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예루살렘을 보는데 그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즉 예루살렘은 신부를 가리킵니다.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실 주님이십니다. 신랑인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예루살렘, 즉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9-10절에는 더 분명하게 예루살렘을 신부라고 가리킵니다.
Revelation 21:9–10 NKRV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이 예루살렘은 거룩하고 영광스럽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기록처럼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이 장차 성도들이 가게될 곳이면서 동시에 교회라는 사실은 지금 이 땅에 있는 교회가 거룩하고 영광스럽고 존귀하며, 생명이 차고 넘쳐서 영원한 생명이 그 안에 있음을 의미합니다.‌주께서 십자가 보혈을 흘리셔서 죄의 값을 치르시고 죄에 얽매인 종들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교회로 모으셔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신 주님을 믿게 했습니다.
이로인해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또한 이미 거룩하며 영광스러운 곳으로서 죄의 유혹과 고난이 결코 흘러들어올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건물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교회 자체인 성도들이 거룩하며 영광스러운 새 예루살렘에 이미 거주하게 된 것입니다.

적용;‌

이러한 약속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이뤄졌습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죄와 고난으로부터 믿음을 지킨 성도들에게 새 예루살렘이라는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약속하셨고 그들에게 ‘이미’ 그것들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새음 교회에 속한 우리에게도 영원한 생명과 영광이 주어졌습니다.
이 축복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건물인 교회에 속해 있다고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약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자들만이 그분께서 머리 되시는 교회에 포함되며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영광 거룩이 주어집니다. 이러한 약속과 축복이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A.D 1세기의 성도들처럼 죄와 고난으로부터 견뎌 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질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고 또한 이미 우리 삶에 이뤄진 새 예루살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이뤄진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승리가 우리 안에 이미 이뤄진 것입니다.

2)역사가운데 살아계신 생명의 주를 의지하라!‌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이러한 소망과 믿음으로 그들 앞에 닥친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그들 앞에 닥친 불시험과 칼로 베며, 십자가에 다는 모진 고문을 이겨냈습니다. 또한 수많은 이방 문화와 황제 숭배 등 음란하고 거짓된 우상숭배를 이겨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을 무너뜨린 바벨론이라는 강대국도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바벨론을 무너뜨린 바사; 페르시아도 사라지고, 페르시아를 무너뜨린 알렉산더의 헬라제국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등장한 로마 제국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살아남아서 그들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로마 황제들의 맹렬하고 포악한 박해 속에도 그들은 신앙을 지켰습니다. 수만명이 학살을 당하고, 정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죽어버린 것만 같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놀랍게 역사하셔서 신앙을 가진 로마의 황제를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통해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가 한순간에 기독교 제국이 됩니다. ‌30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다스리면서 부터말입니다.
로마가 기독교 제국이 된 이후에도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흔드는 여러가지 고난들이 생겨났지요. 기독교의 진리를 흔드는 자유로운 사상과 음란한 이방 문화가 그들의 신앙을 흔들어 댔습니다. 또한 교회가 나라와 정치에 긴밀히 붙어 권력을 쥐게 되면서 교회는 부패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되려 신앙을 지키고 있는 자들을 핍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새예루살렘에 대한 소망과 약속을 붙잡으며 그들의 신앙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 뒤 로마 제국은 무너지고, 교황과 주교제도도 무너지고, 이단도 사라지고, 새로운 이방문화도 결국 사라졌습니다. 오직 약속을 붙잡은 교회만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세워져 있습니다. ‌물론 많은 성도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며 죽기도 했지만, 그들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부패한 교회 권력을 비판하며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친 종교개혁시대의 선배들은 산채로 화형을 당하는 고문을 받았지만 그들은 그 순간에 하늘을 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이미 새 예루살렘에 살며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 살았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새 예루살렘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구약의 말씀을 통해서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또한 요한 계시록 22장이 약속하고 있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믿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9-40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Hebrews 11:39–40 NKRV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 땅의 성도들에게 맡겨진 일은 가장 극심한 고난을,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로 바꾸신 예수께서 우리 삶에서 겪는 모든 죄와 고난을 이미 꺾으셨고 이제 곧 오셔서 우리에게 새 예루살렘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을 믿으며 ‘믿음의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이어 12장은 이렇게 말씀을 이어갑니다.‌​
Hebrews 12:1–2 NKRV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 앞에 이런 증인들이 있으니 우리 또한 우리를 얽매는 죄와 고난들을 벗어버리고 다시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고난 그 너머에 있는 영원한 기쁨을 바라보며 십자가를 참으신 주님을 믿고 우리 앞에 놓인 시험을 넘어갑시다. 우리에게 새로운 예루살렘이 약속되었고 이미 우리의 교회를 통해 새 예루살렘이 주어졌습니다.
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며, 또한 내가 하나님의 교회이자 새 예루살렘으로서 삶 속에서 주어지는 죄와 고난들을 이기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이 약속을 굳게 붙잡고, 내 안에 이미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졌음을 굳게 믿으며 살아가는 방법은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신랑이신 그분을 기다리는 신부의 모습와 같이 우리의 모습이 주님을 늘 사랑하며 곧 오실 분을 기다리며 기대하는 그 마음으로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죄와 고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집중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3)시험을 이긴 내 경험‌

저 또한 매번 넘어집니다. 지난주에 나눴던 것처럼 제게 ‘피로’는 정말 큰 숙제입니다. 이번주는 잘 견디고 이기는가 했지만 금요일이 되자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목요일까지 그녀와 함께 집안일을 도와가며, 정말 사이좋게 지냈지만 금요일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일주일간 몰렸던 피곤함이 몰려와서 모든 일을 제쳐두고 쇼파에 누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오늘도 저를 가만 두지 않고 정한이를 돌봐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극심한 피곤함에 귀찮다고 짜증을 내며 집안일은 뒤로하고는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그런 뒤 애석하게도 저는 그다음날 토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눈을 떴습니다. 잠깐만 눈을 붙여야지 하고 쇼파에 누웠는데 하루종일 자버린 것입니다. 그동안 아내는 쉬지도 못하고 밤새도록 아이를 보았습니다. 그 사실을 아침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죠. 저는 뒤늦게 아내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그녀는 이미 마음이 상해버렸습니다. 토라진 그녀의 마음을 돌리느라 어제는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감사하게 아내는 제 용서를 받아주고 화해하였습니다.
우리 앞에 주어지는 죄와 고난은 정말 여러모양으로 옵니다. 우리를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단의 공격은 정말 너무나 치밀하고 놀랍습니다. 피곤함, 거짓말, 음란함, 사치스러움, 게으름 등 우리를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놀라운 전략을 짜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 예루살렘에 살고 있음을 까먹게 만듭니다. 이미 죄와 고난을 완전히 이겨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듭니다.

결론; 신부와 같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죄와 고난을 이겨내자(20)

요한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시며 마무리됩니다.
22장 12절 말씀입니다.
Revelation 22:12 NKRV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이제 곧 속히 올것이며, 내가 너희가 행한대로 갚아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을 행한 자에게는 악을, 그러나 말씀을 따라 선과 의를 행한 자들에게는 그대로 선과 의를, 그리고 거룩을 행한 자들에게는 거룩을 베풀리라 약속하십니다. 죄와 고난 가운데서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며, 또한 그 곳이 나의 삶에, 이 교회 위에 이뤄졌음을 믿으며 사는 자들에게는 주께서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과 늘 함께 사는 그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속히 오겠다는 주님의 말씀에 이렇게 대답하겠지요.
Revelation 22:20 NKRV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주님 어서 오십시오. 사랑하는 주님 어서 속히 오십시오. 너무나 보고싶습니다. 이 땅에서의 고난이 너무나 힘듭니다. 저를 위로하시고 안아주시고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어서 오십시오” 라는 고백이 절로 나오겠지요.
사랑하는 우리 새음교회 고등부 여러분, 우리 함께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이 땅에서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 새 예루살렘을 살아갑시다. 죄와 고난을 이미 승리하시고 우리를 거룩한 성, 영광스러운 성 예루살렘으로 삼아주신 주님을 믿으며, 이미 우리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믿으며 이 땅을 담대히 살아갑시다. 여러분과 제 안에 이미 새 예루살렘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곧 오셔서 우리를 진정한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실 주님을 믿읍시다.
사랑하는 그분을 기다리며, 우리의 고무신을 바르게 고쳐신고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가 됩시다.

마무리 기도

사랑하는 주님, 우리에게 새 예루살렘에 대한 소망과 믿음을 주셔서 이 땅에서 우리에게 닥치는 여러모양의 죄와 고난, 시험들 속에서 승리할 수있게 하신것 감사합니다. 믿음의 선배들처럼 우리가 우리 삶에 이뤄진 새 예루살렘과 다시 오셔서 우리를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실 주님을 소망하며 죄와 고난들을 이기게 하시고, 이 땅에서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로서 날마다 주님을 사랑하며, 기다리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삶속에서 믿음의 경주를 해나가는 예수님의 신부되게 하소서. 그런 우리 교회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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