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7 설교
Notes
Transcript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여러분~ 다들 한 주 잘 지냈나요? 시험도 잘 끝내고 오늘 이렇게 모일 수 있어너 너무나도 반갑네요.
우리 말씀을 듣기 전에 서로 인사하면서 시작해볼까요? 올 한해동안 수고했어!
여러분 이제 2023년 마지막 예배의 시간입니다. 참 시간이 빠르죠? 12기 친구들은 2학년 이제 좀 즐긴 것 같은데 벌써 일년이 다 갔고, 13기 친구들은 이제 좀 학교 적응한 것 같으니 후배들이 들어오죠.
저도 올 한해 열심히 적응만 했는데 벌써 올해 마지막 예배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래도 돌아봤으니 빨리 간거지, 사실 여러분들 올 한해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여러 큰 고난들을 지나왔음을 기억할 수 있을거에요.
다시한번 올 한해 견뎌내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물론 올해가 끝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들도 많지만, 요 시간만큼이라도 조금은 편하게 올 한해를 추억하면서 마무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 예배를 끝내고 뒤이어 레크도 있고 하니깐요! 말씀을 잘 집중해서 듣고 이후에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도록 합시다.
오늘 말씀으로써 우리가 오래도록 달려왔던 욥기의 마지막을 맺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늘 보던 욥과 친구들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가 등장을 합니다. 바로 하나님이시죠.
욥이 그렇게 찾던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욥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우리가 읽었지만, 하나님은 욥에게 바로 꾸짖음을 시작하십니다.
요즘 유행하는 꾸짖을 갈! 이런 느낌인거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은 38장과 39장까지 길게 이어집니다. 수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욥 너는 내가 세상을 다스리는 이 모든 다스림들을 알고 있느냐? 네가 할 수 있겠느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시고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라고 하면서 세상은 알아서 돌아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신론에 대해서 나누었었죠.
하지만 사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음을 하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거에요. 이 모든 세상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움직이고 계셨음을 이 수많은 구절들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신거에요.
이 내용들을 자세히 보면 이 세상의 기후나 동식물들의 식생 뿐만이 아니라 지구 밖에 우주까지 하나님의 일하심 안에 존재함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욥은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40장에서 하나님께서 대답하라고 명하시니 욥이 뭐라고 하냐면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야말로 입꾹닫이 되어버린 것이죠. 하나님은 더 말씀하십니다. ‘너가 나를 악하다고 했지? 그러면 너가 의롭다고 하니 교만한 악인들을 너가 심판하고 그들을 땅 속으로 묻어버려라 그럼 내가 인정을 해주겠다’
이 말씀은 너가 그렇게 의롭다고 하니 직접 네 손으로 심판을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당연히 욥은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어서 베헤못과 리워야단이라는 강한 생물들을 언급하시며 그렇게 강한 생물도 결국에는 주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임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심을 욥에게 알리신 것이죠.
사실 베헤못과 리워야단이 뭐냐, 하마냐, 공룡이냐 이런 여러가지 이야기가 많지만요, 오늘 말씀에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결국 하나님보다 아래에 있는 피조물임을 이 본문에서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욥기의 마지막 42장에서 욥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죄악을 회개합니다.
‘주님 이제 주님이 정말 불가능이 없으신 분이심을 알겠습니다. 저는 해선 안될, 할수도 없는 일들을 말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주를 귀로 듣기만 했으나 이제는 눈으로 봅니다. 그러니 이제 제가 회개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욥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친구들에게도 꾸짖으십니다.
‘너희도 나에 대해 말한 것이 옳지 않다. 그러니 너희는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해 번제를 드려라 그러면 욥이 너희를 위해 기도할 것이고 내가 그것을 기쁘게 받아 너희의 죄를 갚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친구들 3명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십니다.
모든 것이 끝나고 하나님은 욥에게 이전에 그가 가졌던 모든 것을 회복시키십니다. 심지어 이전보다도 갑절의 것을 허락하시죠.
그러자 이전에 그를 떠났던 이들이 다 돌아옵니다. 그리고 욥은 말년에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겨리와 암나귀 천을 주십니다.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욥이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것보다 정확히 두배의 것이 욥에게 주어졌음을 알 수 있죠.
그리고 욥에게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주십니다.
그리고 욥은 140년을 살면서 자손을 4대를 보고 죽음을 맞게 됩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 2가지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하나님께서 욥의 모든 것을 회복시키신 이유가 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생각할 때, 욥이 잘 견뎌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상으로 주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우리에게 오해를 심어줄 수 있어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동에 따라서만 무엇을 주시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욥에게 다시금 주어진 것이 ‘보상’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보상과 선물의 차이는 뭔가요? 보상은 무언가를 잃게 되었기 때문에 그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이고, 그렇기에 고마움도 없겠죠.
하지만 선물은 뭔가요? 잃은 것이 아님에도 그저 주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감사함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갑절의 물질을 주신 것은 그가 잘 참았기 때문에 보상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저 욥의 존재 자체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기 때문에 그에게 선물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죠.
하나님은 욥 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이렇게 행하십니다. 우리의 존재만으로도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혜에 늘 감사함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자, 우리가 알아야 할 두 번째는 무엇이냐, 바로 욥의 자녀들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보면 알 수 있지만, 가축들은 욥이 배로받았지만, 자녀들은 원래 있던 열명 그대로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 가축과 자녀들은 다르게 주신 것일까요? 자녀들 20명 만들어주셔야 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여기서 가축들과 사람을 하나님께서 다르게 여기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가축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유물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물건과 다르지 않아요. 잃어버려도 다시 주어질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사람의 경우는 다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자구요. 욥이 고난을 겪는 과정에서 죽었던 열명의 자녀들, 다시 회복이 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그대로 살아온 것인가요? 그렇지 않죠.
결과적으로 그때 죽었던 자녀들은 당장 욥에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대로 욥의 기억 속에 아픔으로 남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죽었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잊혀지고 지워질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10명의 자녀들을 새로 허락하시며, 이전에 있던 자녀들까지 포함하여 20명의 자녀를 허락하여 주십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10명은 이미 죽은 사람들인데, 그들까지 포함해서 20명은 좀 무리수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 하나님께는 이미 죽은 10명의 자녀들도 마지막 때에는 모두 하나님 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에서 욥의 자녀들은 20명이 되는 것이죠. 결국 욥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만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부분만 보더라도 하나님의 시선은 이 세상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영원한 그의 나라까지 모든 시선을 두고 그의 계획을 이루어 내십니다.
자 그러면, 이제 욥기를 마무리하면서 욥의 전체 과정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욥기의 시작은 무엇이었나요? 사탄의 사악한 계획에 의해 욥에게 까닭이 없는 고난이 찾아왔죠. 욥은 이 때문에 고통을 받지만 완전히 하나님을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를 보았죠. 우리를 주님께로 더욱 인도하기 위함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욥에게 고난이 계속되고, 욥의 친구들이 위로를 위해 와서 위로는 커녕 공격을 계속하면서 욥에게는 더한 고난들이 계속되고, 그 속에서 욥은 잘못된 생각과 발언들을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 욥과 친구들은 고난에 대해, 악에 대해서 싸우게 됩니다.
고난은 죄로 인해 온다! 너는 악인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나는 의인이다. 하나님이 잘못되었다!
그리고 중간에 엘리후라는 인물이 잠시 등장해서 여러 이야기를 하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정리를 해주시죠.
나는 너희가 생각하는 그러한 모습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욥과 그의 친구들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우리는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자 그러면 이 욥기의 주된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고난이 우리에게 오는 이유, 하나님은 대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내용들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질문들은 사실 인류 전체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질문들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신가?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가.
우리가 오랫동안 보았던 욥과 친구들의 논쟁이 바로 이러한 논쟁이었죠.
하나님은 이에 대해 한 마디로 답을 내려주십니다. 바로 ‘그것은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라고 말이죠.
어쩌면 김이 새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러한 질문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선과 악을 판단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았을 때 이게 옳고 이게 잘못되었는데, 하나님께 이걸 가지고서 따지는거에요.
하지만 여러분,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은 누구에게 주어진 권한인가요? 바로 하나님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동일 수 있는 것이죠.
사실은 이게 바로 인간의 전형적인 죄입니다.
여러분, 인간에게 원죄가 생긴 궁극적인 원인이 무엇이었어요? 선악과를 따먹어서죠.
선악과의 풀네임이 뭐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입니다. 즉 그 나무 열매를 먹음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선악을 알려고, 판단하려고 했다는 거에요.
원래는 그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죠.
하지만 선악과를 통해 우리는 그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죄악이 생겨나게 되었고, 욥기에서의 질문들을 행하게 된 것입니다.
자. 그러면 또 이런 질문이 생겨나겠죠. 그러면 대체 왜 선악과를 만드셔서 이런 힘든일들을 생기게 하셨나요.
어쩌면 당돌한 질문일 수 있지만, 분명히 궁금한 질문입니다. 애초에 없었으면 생기지도 않았을텐데 말이죠.
하지만 이 선악과의 존재 또한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임을 우리는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보면 선악과의 위치는 에덴동산에서 가장 정중앙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산에 있는 수많은 나무들은 먹을 수 있었지만, 선악과만은 예외였죠.
그렇다면 왜 예외를 그렇게 중앙에, 따먹고 싶게 두었느냐는거에요.
이 선악과는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권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지으시고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할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동산 중앙에 하나님의 존재를 상징하는 선악과를 두신 것이죠.
가장 비슷한 예를 들자면 무감독 시험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무감독 시험을 하는 이유가 뭔가요? 대놓고 컨닝하라고 하는 것인가요? 아니죠. 우리를 믿기에 감독이 없어도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믿음인 것이죠.
선악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둠을 통해 그것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바라보고 스스로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기를 바라셨던 것이죠.
하지만 인간이 그것을 지키지 못했고, 죄가 생겨나 지금도 이렇게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욥기를 통해서 어떠한 것을 배울 수 있을까요? 에덴동산의 때처럼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선악의 판단을 맡겨드리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어떤 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뭐가 죄고 뭐가 선이고 알려주실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냐, 그냥 기계적으로 살면 되는 것 아니냐 생각할 수 있죠.
그렇죠.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죄에 대해 말씀하시고, 그것을 보면서 우리 인간 모두가 죄인임을 알게 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알게 하는 것은 다른 이들을 그것으로 판단하게 하고 욕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다는 그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너도 죄인이야! 라고 해서 남을 무너뜨리고, 나도 죄인이야! 라고 해서 나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죄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구원하셨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 모든 친구들이 이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가 죄인임에도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일으키시고, 욥과 같이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면서, 회복시키실 주님을 바라보고,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욥기를 보면서 죄의 판단은 모두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그 사랑에 감사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올 한해를 마치고 새로운 한해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 안에 또 수많은 고난이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찾아올 한 해 가운데 두렵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선악을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 존재만으로도 우리를 기뻐하시며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며 올 한해를 감사하고, 내년 한해를 기대할 수 있는 우리 하늘고 친구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 빛나는 왕의 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