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순결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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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 10:16
제목: 지혜와 순결의 균형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복음 전파자로 파송하시는 것이 양을 이리떼 사이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에 이리로 묘사된 대상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여기서 문제는 양과 이리의 관계입니다. 양은 양이고 이리는 이리이지 않습니까?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에게 보낸다는 것은 뭔가 좀 이상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성격이 괴팍한 양이라고 한들, 가장 싸움을 못하는 이리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겠죠.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매치업인 겁니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님의 제자 파송은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합당하지 않은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매순간 주님의 자녀들을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고, 좋은 꼴을 먹여주시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런 명령을 내리실 수 있을까요?마태복음 10장 16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양으로 비유되는 제자들에게 생존 방식 두 가지를 알려주십니다. 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이 말씀은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 등장하지 않는 마태복음에만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을 전공한 신약신학자들은 이 말씀이 고대 근동 지방에서 유래된 속담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제자들의 생존 방식 두 가지를 나눠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생존 방식은, “뱀처럼 지혜로워지기”입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뱀을 지혜의 상징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근거없이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뱀이 보호색을 가지고 있어서 위험을 피하는 데 있어서 뛰어난 재주가 있기 때문에 뱀이 지혜롭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이렇게 뱀의 실존을 가지고 이해하는 방법이 있고요. 뱀이 지혜롭다는 표현을 가지고 원어로 이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혜롭다는 표현은 헬라어로 “분별력 있는, 현명한”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뱀은 사탄이나 죄악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만, 예수님께서는 뱀의 이미지를 분별력이 있는 이미지, 현명한 이미지로 표현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뱀이 좋냐 나쁘냐. 이런 부분으로 고민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명령, 뱀처럼 지혜로우라는 명령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양으로 비유하시고, 복음 전파받아야 하는 대상을 이리고 표현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자신의 양들이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게 이리 떼 사이로 들어가서 산채로 찢기는 것을 원하십니까? 그렇지 않죠. 예수님은 제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죽임 당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생존 방식에 대해서 알려주시는 겁니다. 제자들은 이리 떼 사이에서 어떻게 생존해야 합니까? 상황에 따라 분별력을 발휘해서 현명하게 대처함으로써 생존해야만 합니다.
이어서 제자들의 생존 방식 두 번째는, “비둘기처럼 순결하기”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자들은 비둘기처럼 순결해야만 합니다. “순결하다”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섞이지 않은”, “순수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순수하고 투명한 것, 본질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죠. 자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순결하다”라는 표현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순결함이라는 것은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 그런 백치미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순결함이란, 이리 떼 사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정직성과 타협하지 않고 섞이지 않는 순결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만 합니다.
자 이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제자들의 생존 방식 두 가지가 삶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볼텐데요. 이를 통칭해서 지혜와 순결의 균형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지혜와 순결 둘 중의 하나만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 말씀을 인용할 때 흔히 하는 실수 중의 하나가, 지혜롭게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할 때, 이 구절을 인용합니다. 물론 그렇게 인용할만 합니다. 왜냐하면 보통 어떤 일을 할 때, 지혜롭게 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해야하는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 뱀처럼 지혜로워야한다. 이렇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 구절에서 지혜만 강조한다면, 예수님께서 동등한 가치로 표현하신 지혜와 순결함의 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지혜와 순결을 시소 위에 올려놓았을 때, 우리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R.T프란스라는 학자는 이 구절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혜와 순결함 사이의 균형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이 세상 속에서 생존할 수 있게 해주고 또한 세상을 향한 그들의 사명을 성취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설명대로 우리는 지혜와 순결함 사이의 균형을 올바르게 지녀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어야만 제자들이 예수님께 보내심 받은 선교지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에 따라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를 향해 적대심이 가득한 이 세상 가운데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온유한 말투와 유순한 태도로 이리와 같은 불신자들의 적개심을 녹여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한 가지 적용점을 나누고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과 목적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시고 실제로 그들을 보내실 때, 이리 떼 사이에서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 알려주신 것이죠. 그러니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말씀은 일차적으로 복음 전파를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적용할 때, 복음 전파에만 국한해서 적용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지는, 양이 이리떼에게 죽임당하지 않으려면, 지혜와 순결함이 이리떼 사이에 있을 때 그 성품이 발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의 본질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인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평소에 지혜롭고 순결한 성품으로 살지 않다가, 복음을 전하는 순간에만 그런 성품이 나올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겠죠. 평소에 분별력 있게 살지 않으면, 평소에 하나님을 향한 순결한 마음과 거룩함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그 어떠한 순간에도 지혜와 순결함은 발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혜와 순결함의 균형을 지키되, 평소에도 분별력 있는 삶, 순결성을 유지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복음전파자로서 상시 준비된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부디 지혜롭고 순결한 마음으로, 복음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며 살아가시는, 전도사역부 가족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함께 나눈 말씀 기억하시면서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를 제자로 부르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우리 화평교회가 복음 전파하는 교회 되도록, 양을 이리떼 사이로 보냄과 같은 이 복음전파 사역을 온전히 감당하는 우리 교회 되도록 기도해 주시고요. 특별히 오늘 나눈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지혜와 순결함을 겸비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 우리 모두의 마음을 주장해주시옵소서. 또 오늘 하루 복음 전파하는 사명 감당할 때,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이어서 우리 전도 사역부 부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제목 보시면서,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합니다.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자격없는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불러주시고, 우리를 주님의 제자 삼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값없이 받은 은혜와 한없는 사랑의 깊이를 온 세상에 전하기를 원합니다.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 지혜와 순결함을 소유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모습으로 인해 믿지 않는 분들이 시험 드는 일이 없도록, 언제나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며,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먼저 세우고 회개하는 전도사역부 가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함께 기도한 기도 제목들 주님 기억하여 주시고, 주님의 뜻에 따라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한주간도 주님 한분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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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pp.356)
제자들은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이 메시지를 가지고 나갈 것. 이리는 신자들의 대적임. 이 문맥에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음. 해결책은 무엇인가?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이 말씀은 고대 근동 지방에서 유래된 속담일 것. ‘뱀같이 지혜롭다’라는 것은 신중함이나 빈틈없음을 말함. 애굽인들의 지혜의 상징이 뱀이었는데, 뱀은 위험을 피하는데 뛰어난 재주가 있음. 제자들은 또한 비둘기같이 순결해야함. 이는 신실함과 순수한 의도를 의미함. 지혜로움이 순결을 통해 균형을 잡지 못하면 간교함에 그칠 수 있음. 또한 순결함이 지혜로움을 통해 균형을 잡지 못하면 고지식함이나 심지어 무지함이 될 수 있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어야 함.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 타인과의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것을 통합적으로 다루어야 함. 예수님께서는 복음이 모든 곳에서 따스한 환영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음.
** 적용 – 분별력 있는 양
제자들의 유일한 소망은 그들의 목자의 보호하심을 바라보는 것이었음.
제자들처럼 우리도 태도에 있어서 경솔하고 준비되지 않은 양과 같아서는 안 되며, 분별력이 있고 신중해야 함. 우리는 잘 속아넘어가는 인질이 되어서는 안 되며, 속임수를 묵인하는 자들이 되어서도 안 됨. 하나님의 일을 위해 우리는 지혜와 순결 사이의 균형을 지켜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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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NT 마태복음 (pp.364)
지혜는 정직을 동반해야 하며, 지적인 특성과 윤리적인 특성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침. 제자들이 이스라엘 안에서만 사역할 때 그들은 이리 가운데 있을 것. 유대인 동포들이 제자들에게 극심한 위협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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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NT 마태복음 (pp.472)
“지혜롭고”는 원어로 “신중한” 또는 “지각있는”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짐.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바울의 가르침은, 이 내용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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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더반 마태복음 (pp.430)
“지혜롭고”는 창세기 3:1에서 다른 동물들보다 뱀이 가장 간교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듯하다. 여기서 이 단어는 면밀하게 계산된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을 의미하며, 화나지 않게 하면서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요구한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부드러운 비둘기와 같은 태도와 함께, 그들의 순결함이 모두에게 알려져야 한다. 윌킨스의 말대로, “순결함이 없으면 뱀의 예리함은 교활한 속임수의 협박이 되고, 예리함이 없으면 비둘기의 순결은 순진하고 무기력하며, 속기 쉬운 사람을 만든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실제적인 지혜와 순전한 행동으로 왕국 진리가 방해받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이 전파되게 해야 한다.
헤르만 리델보스, 제자들은 동기에 있어 순전하며 행위에 있어서 순수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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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데일 (로고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리는 아마도 특별히 바리새파가 세운 것들을 염두에 두셨을테지만, 적대적인 세상에서 살면서 복음을 증언하고 사는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 경고는 적절한 말씀이 된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람들이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태도에 있어서 양과 같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들 앞에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지혜로울 것을 요청한다(프로니모스[phronimos]라는 표현은 ‘분별력 있는’, ‘현명한’으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데, 이 단어는 칠십인역에서 창 3:1의 뱀의 ‘교활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된 단어이다). 누가복음 16:1–8에서 종의 ‘분별력 있음’(프로니모스, phronimos라는 표현이 다시 사용되고 있다)이 칭찬된 것을 보라. 그리스도인들은 속이기 쉬운 얼간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그들은 사기꾼이 되어서도 안된다. ‘순결하다’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는 ‘섞이지 않은’, ‘순수한’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순결하고 투명한 것을 지칭한다. 그것은 천진난만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랄데 없는 정직성을 말하는 것이다. 분별력 있는 것과 순결함 사이의 균형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이 세상 속에서 생존할 수 있게 해주고 또한 세상을 향한 그들의 사명을 성취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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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스윈들 마태복음 (pp.216)
예수님은 제자들이 임무를 수행할 때 지녀야 할 품행과 자세에 대해 조언하셨음. 제자들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했음. 지혜롭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분별 있고, 사려 깊고, 신중하고, 현명한’이라는 뜻. 성경에서 뱀은 주로 악과 결부되지만, 이 맥락에서는 포식자를 슬쩍 피하고, 눈에 띄지 않게 숨으며, 들키지 않고 슬며시 도망치는 뱀의 능력을 긍정적인 특성으로 묘사했음. 한편으로 예수님은 뱀의 이미지를 주로 평화와 순결을 상징하는 순하고 순진한 비둘기의 이미지로 균형을 맞추셨음.
이 둘이 균형을 이루어야만 제자들이 파송된 선교지, 적으로 가득한 선교지에서 보호받을 수 있음. 신랄하고 거칠고 보복적이고 경솔하고 공격적이고 퉁명스러운 것은 용감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음. 언어폭력은 엄연한 학대임. 신자들은 침을 흘리는 늑대들 속에서도 온화한 말투와 유순한 태도, 사람을 이끄는 매력으로 적개심을 녹여야 함.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지는 양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갈갈이 찢기지 않으려면 가장 중요한 가치인 내면의 성품이 늑대들 사이에 있을 때에도 나타나야 한다는 것.
뱀같이 지혜로움과 비둘기같이 순결함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기민하면서도 온화하고, 예리한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순결해야 하며,
요령이 있으면서도 정직해야 하며, 신중하면서도 매력이 있어야 하고
분별력이 있으면서도 평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