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토로하는 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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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욥 30:1-15
제목: 고통을 토로하는 욥
욥기 29장에서 31장까지의 말씀은 욥이 세 친구와의 논쟁을 마친 뒤에, 욥 자신이 무죄하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욥기 30장은 어제 살펴본 말씀인 욥기 29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요. 욥기 30장 1절 말씀을 보시면, “그러나”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러나”라는 말을 통해서 욥기 30장이 29장 말씀과 상반되는 내용이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욥은 욥기 30장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욥기 29장에서 욥은 자신이 고난 당하기 이전의 세월이 어떠했는지를 회상합니다.
욥기 말씀을 1장부터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욥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욥기 1장 3절 말씀에 따르면 욥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욥기 1장 말씀을 읽으면서 제한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욥에 대해 파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욥기 1장에서 욥은 7남 3녀를 슬하에 두고 있으며, 양이 칠천 마리, 낙타가 삼천 마리, 소가 오백 겨리, 암나귀가 오백 마리나 있고, 많은 종들을 거느리던 거부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욥의 자산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표면적인 정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어제 본문 말씀인 욥기 29장에 따르면 욥은 어떤 사람으로 나타납니까? 단순하게 재산만 불린 사람이 아니라, 욥이 거리를 지나갈 때, 젊은이들은 숨고, 노인들은 일어나며, 유지들이 말을 삼가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고 합니다. 또한 지도자들은 욥이 지나갈 때, 말소리를 낮춥니다. 젊은 사람들이나 노인들이나 유지들이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욥이 그만큼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며, 덕망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욥은 사회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인물이었습니다. 빈민과 고아를 건져주었으며, 망하게 된 사람도, 과부의 마음도 흡족하게 만드는 훌륭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욥은 맹인의 눈이 되어주었으며, 다리 저는 사람의 발이 되어주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길을 걸어갈 때, 어느 누가 무시하겠습니까? 재미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즐겁게 웃다가도 욥이 지나갈 때 웃음을 그치고, 고개를 숙이며 존경을 표하지 않겠습니까? 욥은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왔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까지,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전까지, 사회에서 존경받고 모든 사람들이 의지하는 사회의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인 욥기 30장 1절 말씀을 보시면, 욥에게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0장 1절 말씀 보세요.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
구약성경의 문화적 배경에 따르면, 개는 비천한 동물로 취급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반려인이 1500만명에 달하기 때문에, 개나 고양이는 단순하게 동물 취급받는 것이 아닌, 가족으로 여겨지는 위치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 개는 상대방을 경멸하거나 모욕할 때 주로 입에 오르내립니다. 예컨대, 신명기 23장 18절 말씀에 따르면,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사무엘상 17장 43절 말씀에서 골리앗은 다윗에게 네가 나를 개로 여기냐고 말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구약성경에서 “개”라는 단어는 굉장히 모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욥기 30장에서 욥은 젊은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는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아버지가 욥의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만하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욥이 비천한 사람들을 개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마치 욥이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볼 수 있겠습니다만, 엄밀히 말하자면, 욥의 말은 객관적인 평가일 수 있습니다. 욥기 30장 3절에서 8절 말씀 보세요. “3그들은 곧 궁핍과 기근으로 인하여 파리하며 캄캄하고 메마른 땅에서 마른 흙을 씹으며 4떨기나무 가운데에서 짠 나물을 꺾으며 대싸리 뿌리로 먹을 거리를 삼느니라 5무리가 그들에게 소리를 지름으로 도둑 같이 사람들 가운데에서 쫓겨나서 6침침한 골짜기와 흙 구덩이와 바위 굴에서 살며 7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부르짖으며 가시나무 아래에 모여 있느니라 8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이름 없는 자들의 자식으로서 고토에서 쫓겨난 자들이니라”
이 말씀에 따라 욥을 비웃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욥을 비웃는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며, 사회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불경건한 사람들로 여겨집니다. 욥이 개라고 표현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미래에 대한 소망을 품고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들을 귀중하게 여기며 하루하루 충성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닌, 불경건하고, 도둑취급을 받으며, 추방당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가치를 낮게 평가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 받으며 살아왔던 욥이 그가 하나님께 고난 받은 이후로 사회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놀림거리로 전락했다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 있었던 욥이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차 무시당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이죠.
이러한 처지에 대해서 욥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오늘 말씀의 핵심적인 구절인데요. 욥기 30장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이는 하나님이 내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시고 나를 곤고하게 하심으로 무리가 내 앞에서 굴레를 벗었음이니라”
새번역본에 따르면 이 구절은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활시위를 풀어 버리시고, 나를 이렇게 무기력하게 하시니, 그들이 고삐 풀린 말처럼 내 앞에서 날뛴다.”
하나님께서 욥의 활시위를 풀어버리셔서 활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드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욥은 무기를 사용해서 적을 상대해야하는 입장인데,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그래서 욥은 자신의 상태가 무기력한 상태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욥은 자신의 찬란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되어버렸으므로, 비천한 사람들이 고삐 풀린 말처럼 욥의 앞에서 날뛰고, 욥을 비웃고 조롱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욥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면서, 욥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밝힙니다. 11절 말씀을 다시 보세요. “이는 하나님이 내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시고 나를 곤고하게 하심으로” 욥의 진단은 굉장히 영적인 진단입니다. 영적인 안목이 없이는 이렇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욥이 고난 당함으로써 건강도 잃고, 자녀도 잃고, 재산도 다 잃어버린 상태가 되었을 때, 그때 사회에서 추방당한 무리,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무리가 욥에게 침을 뱉고, 무시하고, 비웃고, 조롱하는 이런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내가 어떻게든 과거의 힘을 되찾아서 저 못 배워먹은 녀석들을 반드시 혼내줘야겠다. 두고봐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욥의 경우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면서 이를 영적으로 해석합니다.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하나님께 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셨기 때문에, 욥이 무기력해졌다고 해석하는 것이죠.
우리는 이러한 욥의 발언을 주의 깊게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일이 잘 풀렸을 때, 본인이 소망하던 바가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와 반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소망하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실패의 쓴 맛을 보았을 때,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패의 원인을 엄한 곳에서 찾습니다. 물론 실패의 원인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것처럼 볼 수 있겠습니다만, 욥이 자신의 상황을 진단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단한다면, 근본적인 실패의 원인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욥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을 일대일로 치환해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욥처럼 흠이 없는 사람이 아니며,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못하고, 욥처럼 죄악에서 떠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욥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을 똑같이 바라보고 적용할 수 없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우리는 욥의 모습을 통해 두 가지의 영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두 가지의 영적인 유익을 살펴보면서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 현실이 찾아오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상황임을 굳게 믿음으로써,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욥기 30장 1절에서 15절 말씀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욥이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는 듯한 발언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욥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하나님과 긴밀하게 연관되어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욥에게 있어서 그 어떤 일도 우연은 없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모르는 일은 없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욥이 무기력해진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께서 욥의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개보다 못한 사람들이 욥을 조롱하고 무시하고 비아냥거리는 행위를 서슴지 않을 때, 욥은 “그 사람들이 악하기 때문에, 자기들 하고 싶은대로 하는거다. 추방자들이 기득권층의 몰락을 보고 기뻐하는거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욥의 활시위를 풀어버리셨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생긴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욥의 진단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닙니다. 때에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도 하시고 약하게도 하십니다. 또한 창조 섭리에 따라, 우리는 죽음을 향해 달려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그 생명을 지금도 누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언젠가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육신을 벗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 가운데, 우리는 건강의 문제로 낙심할 수 있고, 가족의 문제로 낙담할 수 있으며, 찬란했던 과거와 대조적인 현실을 직면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욥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둘째로, 어떤 종류의 고난이 찾아오든지 간에,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신자에게 고난이 없다면, 신자는 하나님을 램프속의 지니처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생각할 때, 마치 물 떠놓고 기도하는 대상처럼 여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며, 전지전능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지 못하실 일은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에게 다양한 종류의 고난이 찾아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마이클 폭스라는 학자는 고난의 유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고난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차지하는 역할이 있다. 고난은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건함을 체험하게 한다.”
폭스 설명대로 신자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건함을 깨닫게 됩니다.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더욱 깊어지는 일들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브루스 윌트키라는 학자는 고난의 유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한계를 겸손한 마음으로 깨닫고 악을 허용하시는 하나님께 의지할 때, 우리는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극심한 혼돈의 세력에도 불구하고 지혜롭게 인내하며 견딜 수 있다.”
윌트키의 설명대로 우리는 고난을 통해 인내할 수 있습니다. 고난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길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더욱 깊어지고, 인내하며 하나님을 더욱 굳건하게 신뢰하는, 더욱 높은 지경의 성화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인간적인 마음으로 고난을 달게 받아들일 만한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통을 즐기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은 우리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으며, 모든 일들이 우리 뜻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준비하더라도 실패를 맛볼 수 있으며, 자연재해나 불의의 사고를 통해 처절한 고난을 맛볼 수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종류의 고난을 만날 때, 우리는 욥의 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셔서 무기력하게 만드시는데, 그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나의 믿음과 인내와 성화의 경지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품고 계시는지 깊이 묵상하며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함으로써, 고난 가운데에서도 영적인 유익을 얻으시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온우주만물을 통치하시며, 지금도 살아계시어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세심한 개입이 없이는 우리 삶에 그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없음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의 모든 환경과 여건을 조성해주신 주님,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청지기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기 원합니다. 또한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고난당한 후에 하나님의 손길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욥의 모습을 바라보며, 부지중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고난에 당황하며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한분만 의지하며, 믿음으로 인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입술로 범죄하지 않게 하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가운데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으로 마친 뒤에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시다가 귀하시면 되겠습니다. 주기도문하시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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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 욥기 주석(pp.568)
30장은 이전 장의 욥의 발언에 이어짐.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이 번영을 누리고 존중 받았던 좋은 옛 시절을 기억했음. 욥은 옳은 일을 했고 축복 받은 상태로 죽기를 기대했음. 이 장은 욥의 삶이 어떻게 축복에서 저주로 바뀌었는지를 묘사함.
욥은 자신이 이런 변화를 겪을 정도로 잘못하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변화가 전적으로 부당하다고 믿음. 그래서 31장에서 욥은 자신의 온전함을 항변할 것이며, 이런 냉대에 대해 하나님과 변론할 의도를 알린 것.
30장 초반부에서 욥은 자신이 과거처럼 귀하든 천하든 젊은이들과 노인들에게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한탄함(1-10절). 실제로 땅의 하찮은 자들에 대한 묘사가 이 단락의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그들 모두 욥을 비웃음.
11-15절은 욥에게 굴욕감을 준다고 하나님을 고발하며, 욥이 수치를 당하고 약해져 있을 때 군중들은 그를 괴롭히러 옴. 욥은 매우 두려워하고 수치스러워 함. 욥은 마치 자신이 하나님을 습격한 것처럼 느낌(16-19절). 욥은 하나님에게 호소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반응하지 않았음(20-23절). 욥은 하나님이 자기나 자기처럼 고난 당하는 누구라도 도왔어야 했다고 말하며 끝냄(24-31절). 욥 같은 한낮 인간도 도움을 호소하는 자를 도울 것임. 욥의 낙관주의는 이제 염세주의로 변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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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폭스 : “설명할 수 없는 고난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차지하는 역할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건함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욥기가 공헌하는 바는 이런 비극적인 하나님의 간섭들을 더 충분히 탐구하여, 그런 일들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가 깨지지 않고 더욱 깊어지게 하는 것이다.
브루스 윌트키 “우리의 한계를 겸손한 마음으로 깨닫고 악을 허용하시는 하나님께 의지할 때, 우리는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극심한 혼돈의 세력에도 불구하고 지혜롭게 인내하며 견딜 수 있다.”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욥처럼 큰 요인이 연관되어 있다고 해도, 그에 대한 이유를 결코 하나님께 듣지 못할 것임. 독자는 욥보다 욥의 곤경에 대해 더 잘 알고, 만물을 향한 하나님 통치 뒤에 숨겨진 이유도 더 잘 알지만, 그 외에 대해서는 욥과 마찬가지로 알지 못함.
욥기는 정경 중 오직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귀결되는 불필요한 고난을 자세히 탐구하는 유일한 책임.
욥기가 다루는 고통은 이해가 되지도 않고 실질적인 유익도 주지 않는 고통임.
한편으로는 고난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 한분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경배하는 관계, 외부적으로 잃거나 얻는 유익과 상관없이 충직한 마음을 드리는 관계가 확고해질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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