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6. 새벽예배. 하나님이 뜻을 세워 끌고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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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66장 - 사도신경 - 성경봉독

욥기

19 어느 것이 광명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어느 것이 흑암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20 너는 그의 지경으로 그를 데려갈 수 있느냐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느냐

21 네가 아마도 알리라 네가 그 때에 태어났으리니 너의 햇수가 많음이니라

22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23 내가 환난 때와 교전과 전쟁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남겨 두었노라

24 광명이 어느 길로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땅에 흩어지느냐

25 누가 홍수를 위하여 물길을 터 주었으며 우레와 번개 길을 내어 주었느냐

26 누가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며

27 황무하고 황폐한 토지를 흡족하게 하여 연한 풀이 돋아나게 하였느냐

28 비에게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29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30 물은 돌 같이 굳어지고 깊은 바다의 수면은 얼어붙느니라

31 네가 묘성을 매어 묶을 수 있으며 삼성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

32 너는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북두성을 다른 별들에게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33 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하늘로 하여금 그 법칙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34 네가 목소리를 구름에까지 높여 넘치는 물이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

35 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번개가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게 하겠느냐

36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수탉에게 슬기를 준 자가 누구냐

37 누가 지혜로 구름의 수를 세겠느냐 누가 하늘의 물주머니를 기울이겠느냐

38 티끌이 덩어리를 이루며 흙덩이가 서로 붙게 하겠느냐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욥을 어디로 이끌어가시는가?
우리는 다시 한 번 욥의 고난이 왜 시작되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욥기 1:9 NKRV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욥의 고난은 사탄의 이 참소로부터 시작되었다. 사탄이 욥은 절대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할 리가 없다고, 하나님께서 욥을 보호하시고 축복하셨기에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살아가는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설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그리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욥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할 만한 일이다. 욥이 결코 알 수 없는 하늘의 영역에서 지금 이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가? 욥이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한바탕 내기라고 해야할지 싸움이라고 해야할지 둘 다 참 어색한 말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것이 벌어졌기에 욥의 고난이 시작된 것이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하나님도 참 믿음이 좋으신 듯하다. 사탄이 옳은지 하나님이 옳으신지를 증명하는 내기에서 하나님은 욥의 인생에 자신의 모든 명예를 거신다. 누가 승리하게 될 것인지는 최후에 욥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에 달려 있다.
사탄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다. 그것이 그가 열심히 일하는 유일한 보람이며 만족이다. 사탄은 자신의 최선을 다해 하나님과 욥 사이를 떼어놓기 위해 애쓸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자신의 최선을 다해 자신과 욥 사이를 지키시며 오히려 더욱 단단하게 만드시려 애쓰실 것이다. 42장이나 되는 긴 내용이 나오는 동안 욥의 마음 속에는 내내 이 싸움이 있었다. 결국에 누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욥의 고난이 왜 시작되었는지 아는 우리로서는 욥의 말이 진짜임을 안다. 욥은 결코 고난을 당할만한 죄를 지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욥은 억울하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 중에서 그 누가 덤덤할 수 있겠는가? 그러던 차에 욥의 친구들이 그를 위로하러 왔다. 하지만 위로를 한답시고 건내는 욥의 친구들과 엘리후의 말은 한결같이 욥의 속을 뒤집어 놓는 말이었다. 하나님이 괜한 고난을 주실 리가 없으니 어서 회개하라는 것이다. 욥은 이에 어떻게 대꾸하였던가? 욥의 친구들이 전하는 지혜는 자기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 자신의 경우에는 그것으로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대꾸하였다.
욥과 그의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지혜는 이것이다. 하나님께 잘 순종하면 복을 받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고대 근동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진리였고,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율법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어 이 율법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따라 내가 복을 받을지 저주를 받을지가 결정된다. 욥의 친구들은 물론이고 욥도 분명히 이런 율법적인 신앙을 가진 자였다. 하지만 욥은 율법적인 신앙의 체계 안에서는 도저히 자신의 고난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분명히 깨달았다. 하나님은 지금 당장 이해할 수는 없지만 율법의 체계를 넘어서서 일하시는 분이시던지, 자신에게 실수를 하셨던지 둘 중의 하나이다. 욥은 어렴풋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율법의 체계를 아득히 넘어선 것임을 짐작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를 원했다. 비록 극심한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말도 쏟아내고 비난의 말도 쏟아냈지만,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고난에서 벗어나게 하실 하나님을 만나뵙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방금 욥의 친구들과 욥을 구분지은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욥은 옳다고 하시고 욥의 친구들은 틀리다고 하신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온갖 주워담고 싶을 말들을 쏟아내었음에도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들이 아니라 욥의 말이 옳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 외에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것이 진리고, 하나님은 이 진리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공정하게 복과 저주를 내리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문제였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하나님이 정하신 법과 규칙과 질서에 쏙 가두어놓은 것이며, 하나님의 수준을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선을 그어놓은 것이다. 욥은 고난을 통해 그것이 전부일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더 나은 설명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정하신 법과 규칙과 질서를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지혜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욥이 옳았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허락하신 고난을 통해 지금 욥을 어디로 밀어넣고 계시는지 감이 잡히시는가? 하나님은 욥을 율법의 자리에서 복음의 자리로 밀어넣고 계신다. 욥이 하나님의 성품과 일하심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기를 원하시고 더욱 깊은 신뢰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를 바라신다는 뜻이다.
율법은 너무나 이분법적이다. 마치 칼날같다. 법과 규칙과 질서에 따라 순종과 불순종이 명확하게 구별되며, 복과 저주가 정확하게 거기에 메여 있다. 내가 순종하면 복을 받고, 내가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 결국 율법적인 신앙의 체계 속에서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고, 내 인생의 성공은 전적으로 내 하기에 달려 있다. 여기에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율법을 통해 지켜야 할 법과 규칙과 질서를 알게 하신 것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그저 공평한 저울 하나만 잘 가지고 있으면 세상은 알아서 잘 굴러갈 것이다. 여기에는 실수와 실패가 용납될 여지가 없다.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여지도 없다.
하지만 복음은 그렇지 않다. 축복과 저주가 우리의 순종이나 불순종에 메여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인간들을 위해 법과 규칙과 질서를 뛰어넘어서 일하셨고, 이것을 믿으면 복을 받고 믿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 다른 말로 하면 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받아들이면 복을 받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 결국 복음적인 신앙의 체계 속에서 내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것이고, 내 인생의 성공은 전적으로 그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에 달려 있다. 여기에는 온통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들 뿐이다. 실수와 실패를 용납하시고,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끝없이 개입하셔서 이끌어가신다.
율법적인 신앙의 체계에는 주인과 종의 관계만 있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몰라도 되고, 그저 나에게 시킨 일만 잘 하면 된다. 그리고 일한 후에 셈을 잘해서 받을 것을 정확하게 따져 받아가는 것만 중요하다. 주인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복음적인 신앙의 체계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만 있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몰라도 되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알아야 한다. 그저 나에게 시킨 일만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무슨 계획을 가지고 무슨 일을 이뤄가기를 원하시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주인과 종 사이에서는 늘 일한 후에 셈을 해야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는 이런 셈이 필요 없다. 아버지의 것은 다 아들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지금 이리로 이끌고 계신 것이다. 율법의 자리에서 복음의 자리로, 더 깊고 성숙한 하나님과의 관계로 이끌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속 알게 하려 하시는 것이다.
어제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욥에게 창조의 세계를 열어 보여주셨다. 창조의 세계 속에서 하나님은 모든 법과 규칙과 질서를 초월해서 일하신다. 거기에는 피조물이 이해할 수 있는 법과 규칙과 질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피조물이 이해할 수 있는 법과 규칙과 질서가 없으니 우리가 무언가 순종해서 복을 받아낼 수는 없다. 그저 하나님이 일하셔서 만들어내신 결과를 받아 누리는 것 밖에는 없다. 종에게는 허락되지 않지만 아들에게는 이것이 허락된다. 하나님은 욥을 사랑하는 아들로 대하고 계시다.
오늘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욥에게 자연의 세계를 열어 보여주신다. 자연의 세계 속에서도 하나님은 법과 규칙과 질서에 얽매이지 않으신다. 얼핏보면 자연의 세계 속에서 자연현상들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발생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게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욥기 38:22–23 NKRV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내가 환난 때와 교전과 전쟁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남겨 두었노라
여기서 눈과 우박은 전쟁을 위한 하나님의 병기고의 일부로 여겨진다. 눈이 다른 곳에서는 전투와 연결되지 않지만, 우박은 분명히 연결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속박에서 풀어 주기 위하여 이집트 사람들에게 돌림병을 내린 것처럼 그들에게 우박을 무기로 사용했다(출 9:13–35). 하나님은 가나안 왕들의 남부 연합군에 우박을 내려, 이스라엘 사람들이 칼로 죽인 것보다 더 많은 적을 죽였다(수 10:11).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거짓 선지자들을 “분노하여 큰 우박 덩어리로” 심판할 것을 알린다(겔 13:13).
욥기 38:24–25 NKRV
광명이 어느 길로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땅에 흩어지느냐 누가 홍수를 위하여 물길을 터 주었으며 우레와 번개 길을 내어 주었느냐
하나님은 또한 번개와 바람과 홍수를 주관한다. 여기 등장하는 동풍은 굉장히 뜨거운 사막의 바람을 말하며 성경 곳곳에서 파멸 및 심판과 연결된다(겔 17:10; 19:12; 호 13:15). 번개와 홍수 또한 마찬가지다.
욥기 38:26–27 NKRV
누가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며 황무하고 황폐한 토지를 흡족하게 하여 연한 풀이 돋아나게 하였느냐
하나님은 비를 주관한다. 비는 앞의 경우처럼 전쟁과 심판을 위해서 쓰이는 것이 아니라 풀이 돋아나도록 하기 위해서 쓰이고 이 풀은 생태계에 먹이사슬의 순환을 원활하게 만든다.
하나님께서 지금 욥에게 무엇을 설명하고 계신 것인가?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와 자비를 실현하시기 위해 자연 현상을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연에 법과 규칙과 질서를 만드시고 이제 손을 놓고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은 자신의 뜻하신 바를 이루기 위해 개입하시고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시다. 때로는 하나님의 개입이 법과 규칙과 질서를 아득히 뛰어넘기도 한다. 세상은 이러한 일들을 기적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은혜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욥이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깊이 알기를 원하신다. 속속들이 다 파악한다는 의미에서의 앎이 아니라 그분의 일하심에는 한계가 없고 완전하다는 것을 알아 더욱 기대고 의지하고 신뢰하게 되길 바라신다.
로마서 8:38–39 NKRV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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