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강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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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으신 그리스도의 겸손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선포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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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2:5-11

반갑습니다. 성산교회 청년부 여러분 :) 저는 어제 결혼을 헤서 유부남이 된 이승훈 전도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ㅎㅎ
성산에서 4번째 설교인데, 청년들 앞에 정말 잘 말씀을 잘 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굉장히 많아서 그런지, 엄청 긴장이 되는 것 같습니다. ㅎㅎ 그치만 저의 잘함과 못함보다, 이 시간 크게 일하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기쁨으로 즐겁게 말씀을 한 번 나누길 원합니다.
설교에 앞서서 기도하고 시작하길 원합니다.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모으셔서 함께 예배하게 하시고, 말씀 앞에서 당신을 높이는 자리에 부르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오늘 함께 나눌 말씀속에서 주님의 아름다움을, 높으심을 깊이 깨닫길 원합니다.
부족한 종의 입술을 붙들어 주시고, 듣는 모든 이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예배 되길 원합니다. 이 모든 시간을 주장하여 주십시오.
살아계시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설교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1차 독자에게 권면함으로 시작 합니다. 바울은 우리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합니다.
오늘 말씀본문은 지난주 말씀과 이어지는 말씀으로 볼수 있습니다.
지난 주 설교는 한마음, 한 사랑, 한 뜻 우리 공동체가 하나 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사람들을 돌보고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고 1-4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5절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설명하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어떻게 낮아지심으로 겸손하셨는지 자세히 보여주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우리가 이러한 그리스도의 마음, 즉 남을 낫게 여기도, 한 공동체로 한 사랑으로 여기는 품기위해서는 우리를 먼저 품으시고, 우리같은 낮은곳으로 먼저 오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아보자 라고 정리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설교를 크게 3가지로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번 대지로 “예수님은 얼마나 높으신 분이신가?”, 2번 대지 “예수님은 얼만큼 낮아지셨는가?”, 3번은 “우리 삶에서의 적용” 이렇게 나눠 보겠습니다.
먼저 1번대지 “예수님은 얼마나 높으신 분인가?”에 대해서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서 6절에. 예수님을 표현할 때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 수 있고,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 1이 증거구절로 사용 될 수 있는데요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우리가 이 말씀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같이 계셨고 심지어 태초에 창조하실 때에도 말씀으로 같이 계셨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말씀들을 결국 삼위일체를 이야기 하는 것인데요.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신비이자 가장 핵심적인 교회의 교리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세분이시자 한 분이라는 교리인데, 이는 어떠한 이성적 논리로는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 이자. 우리의 고백입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서 삼위일체에 대해서 깊이 다룰 것은 아니니 이 정도의 설명을 하고 예수님의 높으심에 대해서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나님이심으로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창조의 일에도 함께하신 참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는 종종 예수님을 생각할 때 2000년 전의 유대인으로만 생각하지만, 예수님 즉 성자 하나님은 그 훨씬전에도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역하셨다는 것이죠. 2000년 전에 오신 사건은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 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도 계셨고 영원전부터 계셔서 하나님과 함께 하늘 보좌에 계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분이 낮아지셨습니다. 종의 모습이라 불리는 인간으로 낮아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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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두번째 대지인 예수님의 낮아지심에 대해서 나눠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은 가장 높으신 예수님의 낮아지시심 입니다. 빌립보서 6-11절은 메시아 찬가로 불려지는 단락입니다. 이 부분을 우리에서 우리는 많은 구약 인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오늘 창세기의 아담의 모습과 대조되는 것을 설명하려 합니다. 예수님은 둘째 아담으로 불립니다.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 말씀처럼 예수님과 아담은 대조되어서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모든 것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만 먹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그것을 먹지 않음으로 하나님을 기억하고, 자신이 하나님보다 낮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도구 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아담은 그 선악과를 따먹습니다.
그는 자신이 높아지길 원했고, 자신이 하나님보다 나은 존재가 되길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원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베푸신 것은 보이지 않았던거죠.
그런데 예수님은 다르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과 동일본질이신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은 아담과는 반대로 자신의 높음을 자신의 모든 능력을 하나님과 동등된 지위를 가지셨지만 오히려 그것을 내려놓고 지극히 작은자로서 우리게 오셔습니다. 인간의 몸을 취하심으로 말이죠. 그리고 심지어는 이 땅에 인간으로도 낮아지셨는데 왕으로서 군림하고 자신의 권세를 누리기보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본을 보이십니다. 그리고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가셨습니다.
그 곳은 그저 가난한 자를 섬기는 자리, 혹은 아픈이를 고치는 자리를 넘어서 부정하다고 여김 받는 이들을 구하는 자리로 주님은 향하셨습니다.
마가복음의 수로보니게여자의 딸을 축귀하시는 사건을 보면 그러합니다. 그녀는 이방인으로 부정한 자로 여김 받는 존재인데,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그녀를 구원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낮은자로 여김받는 자를 도와주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는 십자가의 길을 주님은 가셨습니다. 그분은 갖은 고난과 수치를 직접 받으시며 우리를 구하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 많은 종교들은 신자들의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고, 희생 혹은 헌신이 혹은 어떠한 조공이 일정부분 달성되지 않은면 구원은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유일하게 신이라는 절대자가 직접 내려오셔서, 자신을 버리고 신자들을 살리는 종교는 기독교가 유일합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어떠함이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댓가를 치룰 수 있는 무오한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에수님은 죄라고는 모르셨습니다. 자신의 죄악 때문에 죽어야할 자들 심판받을 자들을 위해, 그 모든이들의 심판을 자신에게로 돌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범죄라는 것을 저지른 적이 없으시지만, 성범죄자, 살인자, 강도, 우리가 아는 모든 법법을 저지른 자로 여겨지셨고 수치를 받으시며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왜 이렇게 까지 하셨을까요?
가장 높으신 그분은 왜 이렇게까지 낮아지시면서 수치를 받으셨을까요?
이유는 하나 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요.
그렇게 높으신 분이 왜 그렇게 낮은자로 처참하게 낮아져 수치를 받으셨나요?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참 말로다 할 수 없는 무언가 이며 우리를 진정으로 구해내는 것입니다. 온전한 자의 사랑은 우리를 참으로 살려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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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이제 제가 말씀을 적용하길 원하는데요. 제가 오늘 설교 앞에서 삼위일체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했습니다. “삼위일체” 우리 교회들은 이 삼위일체 때문에 정말 많이 골머리를 앓았는데요 ㅎㅎ 이 삼위일체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이단적 교리로 많이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양태론도 있었고, 예수님의 신성 혹은 인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 삼위일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게 조금 어렵지만, 우리는 삼위일체를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세 위격이신 하나님이 영원한 사랑으로 묶여 한 분이라고 설명 할 수 있습니다. ㅋㅋㅋㅋ 설명이 너무 빈약하죠? ㅎㅎㅇ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겁니다. 우리는 교회가 하나라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리스도로 한 몸된 교회라고 성경은 이야기 하며, 성찬때도 예수님의 몸을 떡을 나누고, 피를 나누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교회로 한 몸을 이루는 것은 삼위의 하나님께서 영원한 사랑으로 하나되신 것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빈약할 수 있지만, 같은 원리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공동체를 주신 것도 우리가 공동체로 모여야 하는 것도 순으로 모여서 함께 교제하고 알아가는 것도 삼위의 하나님이 세분이시자 한 분 이시기에 우리는 그렇게 모이는 것 입니다.
삼위일체라는 교리는 그저 이성적인 것으로만 다 알려하기 보다, 오히려 공동체에서 서로를 더 사랑해보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김으로 그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해서 더욱 잘 알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ㅋㅋㅋ 그래서 저는 적용을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요. 적용은 이겁니다. 삼위의 하나님이 하나로 계셨듯 우리도 하나로 서로를 낫게 여기고, 여기서 낫게가 나도나 낮게가 아닌거 다들 아시죠? .ㅋㅋㅋ 나보다 나은 사람으로 여기고 ㅎㅎ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저의 적용입니다.
그런데 중요한건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 했으면 좋겠습니다. 엥 갑자기? ㅎㅎ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해서 우리가 공동체를 하면서 좋은 일만 혹은 나와 잘 맞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죠? ㅎㅎ 나와 맞지 않은 사람, 나와 다른 사람, 이해 할 수 없는 상황들이 항상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게 말합니다. 그런 그 들 과도 우리와 한 몸이라고요. 정말 내가 이해 할 수 없는 저 사람을 위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리스도이신 우리의 구원자를 의지해야합니다. 구원자로 오신 그 분의 사랑을 누려야 하고, 깨달아야 하며,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어떠한 능력보다 나의 어떠한 생각과 경험 혹은 신앙의 년수 보다 오직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만 의지함으로 우리는 이 사랑을 올바르게 실천할 수 있습니다.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저는 저의 설교가 오직 그리스도를 드러내길 바라는데요. 오늘 그렇게 잘 드러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설교하는 이유는 함께 설교를 듣는 청년들이 주일만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 혹은 큰 것에서 삶의 모든 순간을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하고 고민하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께 영광돌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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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가 좀 짧았지만 이어서 찬양하면 좋겠습니다.
제가 적용에서 이야기 했듯이 우리는 그리스도를 의지 해야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그런 사랑으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만이 우리를 풍족케 하셔서 어떠한 율법에 메이지 않고 진정으로 우리를 구하시며 우리 공동체를 구하셔서 우리를 하나되게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 함께 찬양함으로 예수님을 높이며, 그런 그리스도를 의지 함으로 고백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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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도 합시다. 가장 높은 분이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음을, 나의 죄악의 자리에도 나의 수치의 자리에도 오셨음을 기억하고 우리의 수치 우리의 아픔을 들고 솔직하게 나아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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