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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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입

사람들에게 보통 장래에 꿈꾸는 삶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 바라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평범한 삶’이라는 것이 사실은 아주 ‘평범해 보이지만' 몹시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 또한 잘 알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가장 행복한 상태'를 소망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범한 삶'을 꿈꾸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 아무 탈 없이 ‘평화롭게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평범한, 이상적인, 행복한, 평화로운 삶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가족 모두가 건강해야됩니다. (이미 여기서부터 무언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둘째로 물질적인 걱정이 없어야 합니다. 셋째로 가족모두가 어떠한 불행도 겪지 않은 상태여야 합니다. 나아가서 결핍된 것이 없이 많은 것들이 두루 충족되어있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과연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말입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수 있겠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몹시 많습니다.

2.평화의 조건 언약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성경에 보면 평화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고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Leviticus 26:3–6 NKRV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평화를 준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평화를 위한 조건이 붙습니다. 어떤 조건입니까? 그것은 바로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입니다. 하나님은 평화의 조건으로 자신과 약속을 지킬 것을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너와 나”의 약속으로 당신을 향한 ‘진심'을 확인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진실로 “너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평화를 주기 위해서는 당신 역시도 평화를 위한 행동을 해야합니다.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공평하신 재판장’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판단에 의한 보상과 처벌은 그 누구도, 땅 위의 인간도, 땅 아래의 사탄도, 하늘 위의 천사들도 감히 반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외와 믿음과 공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에 따른 보상과 처벌이 타당한 것인지는 바로 ‘언약'에 의해서 확인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에 의한 언약으로 이 모든 것들이 판별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평화의 조건'으로 가장 타당하며 정당한 조건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평화의 언약’은 시대마다 그 모습은 달랐지만 항상 있어왔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시대 때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때와 같이 율법을 주지 않으시고 ‘선악과'가 그 언약을 대신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언약을 파괴하지 않는 이상 그들에게 ‘평화'는 항상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언약을 파기하였고 그들에게는 더 이상 에덴동산에서 주어졌던 것과 같은 평화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율법의 시대가 도래하고나서부터는 율법이 하나님과 사람간에 ‘언약'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사람이 파기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은 그들에게 평화를 주시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파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은혜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부터 ‘믿음'이 하나님과 사람간에 ‘언약’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하나님과의 평화가 유지되었습니다. 이런식으로 언약은 항상 있어왔고 이 언약은 ‘진심'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며 정확한 방식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을 치졸하다거나 치사하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조건을 내검으로써 평화를 선물해주겠다고 하는 것이 ‘은혜'와 ‘사랑'과 ‘전지전능'하심에 어긋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이런 질문을 하는 우리야말로 교만하며 걍팍하며 불순하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사랑을 믿는다면 그가 우리를 위해서 주신 언약에 대해서 깊이 숙고해보지도 않고 그런말을 하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오히려 그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를 기쁘게해드릴 수 있는 방법이 선함과 순종이며, 이것은 진실로 참되고 좋은 것인데 우리가 이것을 거부한다면 도대체 그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언약'은 ‘문제제기하는 대상’이 아니라 다만 ‘순종할 수 있다는 기쁨'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렇게 언약을 잘 준수했던 사람은 이방인 중에 페르시아 제국의 부흥을 이끌었던 ‘키루스 황제'가 있고, 이스라엘에서는 ‘다윗과 솔로몬'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모범으로 삼아서 이 시대를 ‘태평성대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왕상사장20-34절) 하나님은 진실로 당신이 하신 약속을 지키신 분이시며 우리는 그것을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는 진실로 상급을 주시기도 하시며, 처벌하시기도 하는 공평하신 재판장이십니다.

3.보응의 하나님

우리는 이 ‘평화의 약속’에 대해서 ‘국가적인 일’처럼 크게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이 평화와 언약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항상 있는 것입니다. 보응하시는 하나님은 진실로 그 일을 행하십니다.
Matthew 7:12 NKRV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제가 청년부에 있을 때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습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이렇게 눈이 많이 올 때였습니다. 교회 뒷마당에서 눈을 쓸고 있었는데 제가 한 청년과 잠시 의견차이로 말다툼을 했습니다. 제가 혼자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니까 그 청년이 제가 아주 얄미웠나봅니다. 그래서 그 청년이 저한테 이렇게 외쳤습니다.
“쾅! 넘어져버려라!”
이렇게 말하자마자 그 청년이 아주 요상스러운 각도로 옆으로 발목이 꺾여 넘어졌는데 아주 심하게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에 발에 깁스를 하고 왔습니다. 그리고나서 그 청년이 저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말하는 도중에 그런 일을 겪으니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벌주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일은 아주 많습니다. 칼로 흥하는 자는 칼로 망하며, 속여서 부자가 된 자는 속음으로서 거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가만히 두지 않으십니다. 진실로 이 말씀은 ‘황금률'입니다.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면 안 될 것은 내게 대접해주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대접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대접을 받습니다. 진실로 우리는 이것을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보상을 기대하며 행동합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항상 외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웃의 죄를 용서해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는 이런 기대를 합니다. 사람을 용서할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용서의 긍휼을 입기를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에게 대접하고 사람에게 대접받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주 엄청나게 이득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대접했는데, 우리를 대접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Proverbs 19:17 NKRV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우리가 소망하는 평화가 단순히 세상에서 누리는 안락이라면 우리는 허무한 것들을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영원한 평화를 소망합니다. 그것은 육신의 안락뿐만이 아니라 영혼의 평안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천국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사람을 대접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순종하지만, 우리는 하늘로부터 경험하는 평화와 하나님의 대접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놀라운 하나님의 경제원리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놓쳐서야 되겠습니까!? 진실로 저는 이런 경험을 많이 했었고 또 봐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욕심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서 근신하는데에 힘쓰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대할 때에 하나님의 보응을 생각하고 대합니다. 그 대상이 누구이던간에 내가 그에게 노하면 하나님은 저에게 노하실 것입니다. 제가 누군가를 속이면 정직하신 하나님은 저를 치실 것입니다. 제가 가난한 자를 외면하면 하나님은 저를 가난하게 만드시며 도움을 받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진실로 저는 세상 살아갈 때에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에 있습니다. 깨질것만 같은 빙판위를 걸어가는 것과 같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공의를 사랑하며 그의 보응 믿고 바라기 때문입니다.

4.행위와 믿음 (거듭남)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또한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율법주의나 행위구원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율법을 지켜야 보상을 받는다거나, 선한 행동을 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나 저나 수 많은 사람들은 이 ‘황금률'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도 이 황금률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겉으로 따라할 수도 있습니다만 율법의 요구는 그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지키는 그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의 요구는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아주 숭고하고 거룩한 상태에서 행동되고 지켜지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과 상태없이 행동하는 행위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게 보이겠습니까? 그리고 진실로 그런 마음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단언컨대 독보적으로 빛납니다. 그가 아무런 말도 티도 안내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맛있는 것을 먹는 것과 같이 율법을 그렇게 진심으로 기뻐하며 끝까지 행동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사람은 거듭나지 않는 사람중에서 찾지 못합니다. 성경도 정확히 말합니다.
Psalm 14:2–4 NKRV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그 귀에 대고 소리쳐 외쳐도 귀먹은 벙어리처럼 알아들어먹지를 못합니다. 이렇게 좋은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본체만체 합니다. 그것을 소망하거나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지키는 척 흉내낼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거듭나지 아니하면 이 요구를 충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의 종으로 있기 때문입니다.
Romans 6:6–22 NKRV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제가 다시 말하지만, 율법주의와 행위구원주장은 ‘겉으로 그렇게 행동하기만 해도 된다'라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진심'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진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또 다시 ‘메시야'를 요청합니다. 우리는 오늘도 이렇게 기도해야합니다. “예수님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존재는 우리가 믿기 시작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앞으로도 항상 영원히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기를 바라며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 곧 영생을 얻길 바람"을 구해야합니다. 여러분,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의 참 된 샬롬을 모두다 마음껏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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