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교대신 신앙을 선택했다(막12: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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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12월 17일 주일 청소년부
제목 : 나는 종교대신 신앙을 선택했다
본문 : 마가복음 12:41-44
결단 : 나 무엇과도 주님을 + 마음의 예배(후렴)
1. 탑스타, 예수를 향한 열망
여러분들을 ‘잼민이’라고 부르기엔 나이가 좀 있고, 또 그렇다고 MZ라 부르자니 완벽하게 부합하지는 않더군요. 그러던 중 여러분들을 아주 잘 표현한 단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마라탕후루’
잼민이보다 더 킹받는 표현같긴한데, 여하튼, 그간 잘 지내셨나요 여러분? 9월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안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아마 여러분들이 영광으로 여기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뿐만 아니라 저를 보고싶어서 교역자 사무실로 찾아오는 친구들이 지금 제 눈에 여럿 보이는데, 뭐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 탑스타가 있는 공간인데 낸들 안오고 싶겠습니까?
저 역시 꽤나 긴 시간 리버풀 팬으로써 탑스타를 향한 열망이 얼마나 큰지 전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여러분들의 탑스타는 누가 있습니까? 누군가에게는 손흥민이, 누군가에게는 BTS가, 누군가에게는 아이브가 탑스타가 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인생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존재입니까? 탑스타 입니까? 아니면 성인군자와 같은 위인 중 한 사람에 불과합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우리 인생에 있어 진짜 탑스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열망을 내어드리겠노라 다짐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2. 잘파(ZA)세대 이해하기
1) 잘파의 특징 : 이걸요? 제가요? 왜요?
우스겟 소리로 여러분들을 ‘마라탕후루’라 표현했지만, 조금 유식해 보이는 표현으로는 여러분들을 ‘잘파(ZA)세대’라고 말합니다.
잘파세대의 특징을 아십니까? 저는 이들의 특징을 아는 것이 여러분들 스스로 ‘나 자신을 아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고, 또 우리 선생님들에게도 ‘아 얘네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취하는게 이래서 그렇구나’ 수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잘파의 가장 큰 특징은 이 말을 자주 한다는 겁니다. “이걸요? 제가요? 왜요?” 공감이 되십니까? 이런 모습은 MZ에서도 볼 수 있다고는하나 확실히 두드러지게 보이는건 잘파인 것 같습니다.
저는 밀레니엄 세대긴하나 기성세대의 성향이 조금 더 강해서인지, “이걸요? 제가요? 왜요?” 라고 말하는 모습이 썩 달갑지는 않습니다.
2) 잘파의 기준 : 가치
그런데 이들이 ‘도대체 왜?’ 이러는가 ‘이유’를 알면 우리 모두 이해하고 수용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왜 이들은 이런 말들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걸까요? 바로 이들이 중요시 여기는 기준이 ‘가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걸요? 제가요? 왜요?” 라고 말하는 것이 굉장히 방어적 태도로, 일을 안하려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사실 이들은 ‘가치’를 찾는 중 입니다.
이 일들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가치, 내가 성장할 수 있는가? 내가 배울 수 있는가? 를 묻는 태도라 볼 수 있습니다.
‘가치는 어느 시대나 다 중요한 거 아닙니까?’ 물론 어느 세대든 다 중요했을 겁니다. 다만 우선순위에 차이가 있었겠죠.
제가 존경하는 한 목사님께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저는 일적인 부분에 있어서 소위 1세대 목사님들의 선택이 종종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 그런 선택이 저 뿐만 아니라 저와 같은 시대를 사는 자들의 마음을 어렵게 합니다. 해결방안이 없는건가요?”
그러자 목사님께서 답하셨습니다. “네 목사님. 저는 1세대의 목회자와 2세대의 목회자 모두를 겪어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두 세대에는 큰 차이가 있네요. 1세대는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제 제가 무슨 일을 할까요?’ 그리고 2세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제게 롤모델이 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까?’ 1세대는 일에 중점을, 2세대는 가치에 중점을 둔다는 차이가 있겠네요.”
가치가 중요하지 않았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지만, 우선순위에 있어 차이가 있는거죠. 그러니 “이걸요? 제가요? 왜요?”는 방항보단 ‘가치를 찾고 싶어하는 우리 친구들의 발버둥’ 아니겠습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인생 최고의 가치,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또 그를 향해 우리의 열망을 내어드리길 소망하는 마음을 담아 함께 말씀을 나누고 내려가고자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
1)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복음이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를 굳이 논할 필요는 없습니다. 복음, 충분한 가치가 있고 그 어느 것도 넘볼 수 없는 위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이니,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 역시 우리가 감히 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왠걸요? 가치 있다고 여기나 우리의 모습이 가치있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2) 그리고 그 가치를 안다면 소중히 여길 수 밖에 없다
제 삶에 있어서 제 딸은 엄청난 가치를 지닌 친구입니다. 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넘어지거나 찍혀서 상처가 나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공감이 잘 안되십니까? 그럼 여러분, 강아지 좋아하세요? 견주들도 똑같습니다. 우리집 강아지가 눈을 찔려 피가 나고 낑낑 앓는 소리를 낸다 생각해 보세요. 마음이 안 아플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예수는요? 인생 최고의 가치, 예수 그리스도의 아픔을 우리는 방관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앉아 계십니까?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는 인생 최고의 가치,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라며 이 자리에 계십니까? 아니면 부모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이 자리에 계신 겁니까?
4.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선택한 가난한 과부
1)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부자보다 많다?
오늘 본문은 두 그룹을 소개하며, 오늘 날 우리가 어떤 모습을 취해야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되는가를 알게 합니다.
먼저는 부자 그룹이 등장합니다. 또 다른 한 그룹은 가난한 과부의 등장입니다. 그리고 이 두 그룹이 예배로 나아오는 모습을 예수님께서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시죠.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우리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까요? 헌금을 한다면 부자와 가난한 과부 중 누가 더 많은 금액을 헌금으로 준비하겠습니까? 당연히 부자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 말씀하세요? 가난한 과부가 부자들보다 더 많이 넣었다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포인트 아닙니까?
2) 가난한 과부의 전재산? “1,250원!”
또 헌금의 액수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요? 가난한 과부가 넣은 금액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두 렙돈을 넣었습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이를 8만원으로 계산할 때, 두 렙돈은 한 데나리온의 64분의 1밖에 안되는 금액입니다. 즉 1,250원인거죠.
그럼 가난한 과부가 넣은 헌금의 액수는 얼마입니까? 1,250원이고, 또 이를 본 예수님이 어찌 말씀하십니까? 부자들보다 더 많은 헌금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아닙니까?
또 과부가 드린 헌금이 어떤 헌금입니까? 전재산을 내어드린 헌금입니다. 그녀의 입장에 이입되어 생각해 보세요. 1,250원이면 여러분이 사랑하는 마라탕은 고사하고, 탕후루도 건들 수 없는 금액 아닙니까?
근데 그게 또 전재산이니 이를 다 내어드리는 그녀의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여러분, 이런 삶 원하세요? 아니요. 그 누구도 원치 않는 삶 아닙니까?
3) 가난한 과부를 향한 사회의 시선은?
또 과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생각해 볼까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 가진 것이 너무 없어 배부르게 먹어본 적이 언젠지 알 수 없을 겁니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이었겠죠.
씻기라도 제대로 했겠습니까? 온 몸에 냄새가 솔솔 났을 겁니다. 머리도 제대로 관리 하나 되지 않은 상태였을 겁니다. 어쩌면 피부질병도 겪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가난한 과부라 해서 미쳐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을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최악 중의 최악, 절망 중의 절망 아닙니까?
4) 모든 것 견디고 종교인으로 남기보다 신앙인을 선택한 가난한 과부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 사회의 불필요한 시선, 건강의 아픔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중요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그녀의 삶에 있어 우선순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우선순위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가 그녀를 움직인 것 아닙니까?
도대체 예수의 가치가 뭡니까? 나를 다시 살리고 새생명의 은혜를 허락하신, 바로 구원의 은혜 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오는 여러분들을 향한 사회의 시선을 느끼고 계십니까? 아마 못 느끼고 계실지 모릅니다. 옛날이야 “개독교, 개독교!” 하며 욕했지만, 지금은 무관심 아닙니까? 우리가 무엇을 하던 관심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니 욕할 이유도 없지요.
아마 앞으로는 더 심해질 겁니다. 무관심 이상의 고통이 우리를 향해 다가올 것입니다. 그런 이 시대 속, 여러분들은 어떤 길을 선택 하겠습니까?
육체적으로 평안하길 원하고, 정신적으로는 피해 하나 없길 바라며 그저 출석에 만족하는 부자들의 삶입니까? 육체적으로 힘들 수 있고 정신적으로 어려움 중에 있을 수 있으나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과부의 삶입니까?
태초부터 여러분들을 하나님은 자녀로 삼으사 이곳으로 부르셨습니다. 전구의 필요는 빛을 낼 때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빛이 꺼진다 해서 전구가 아닌게 아닙니다. 빛을 내도, 내지 않아도 전구는 전구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방황, 어려움, 고난, 혼란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시선들로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아무리 삶이 힘들어져도, 삶이 흔들려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결단코 바뀌지 않습니다.
바라옵기로는 어떤 순간에도 예수의 가치를 바라보며 종교인에 머물기보다 신앙인으로 살아내길 택한 과부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그러한 가치를 바라보며 전진해 가는 자 되길 소망합니다.
5. 결단찬양 : 나 무엇과도 주님을 + 마음의 예배(후렴)
6. 합심기도 : 말씀을 가지고
1) 나의 예배가 중심잃은 예배가 아닌, 나를 살리사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2) 뿐만 아니라 삶의 예배를 통해서도 주님께 기쁨이 되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자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7. 대표기도
8. 봉헌 및 봉헌기도
9.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우리에게 새생명 허락하시기 위해 독생자의 죽음까지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과
매순간 예수의 가치를 바라보며 은혜로 살게하실 성령 하나님의 감동 감화 역사 임재 충만하심이
종교인이 아닌 신앙인으로 살아가겠노라 다짐한 자들과
중심을 붙들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포기하지 않기로 결단한 자들과
그들의 가정과 학업, 교회와 이 나라와 세계 열방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