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2 금요기도회: 요일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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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신 하나님.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둠 속에 있던 저희를 꺼내주셔서 빛의 자녀로 삼아주셔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방황해야만 하는 저희였음에도 긍휼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저희를 빛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날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에서 살아갈 때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어 아직까지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이 금요기도회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찬란하신 분이신지를 깨닫길 원합니다. 이 시간도 함께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일서 1:5-10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1서 1:5–10 NKRV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위로와 소망을 얻고 가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일서는 사도 요한이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사도들이 보내는 편지는 보통 교회에 어떤 문제가 발생해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담긴 내용입니다. 이 요한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요한일서를 받는 교회의 문제는 이미 분리되어 나간 거짓 선생들이 문제였습니다. 이 분리주의자들은 구약에서 말하는 메시아가 예수님이심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이 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예수님은 인간이자 하나님이신 분이 아니라 그저 인간이라고 그들이 주장했습니다. 이 분리주의자들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을 부인했습니다. 이런 거짓 가르침으로 신자들을 미혹하였지만, 교회 내의 많은 신자들은 진리를 고수하여 거짓 선생들을 물리쳤고, 거짓 선생들은 교회에서 나가 자신들만이 하나님에 대한 진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분리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스스로 진리를 수호하여 거짓 선생으로부터 교회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요한이 이 편지를 쓴 것은 신자들을 안심시키고 거짓 선생과 진리를 수호한 교회, 이 두 집단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강력하게 말해줌으로써 자신이 열등하며 영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교회에게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이 편지를 작성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특히 이 분리주의자들이 이러한 배경 속에서 말과 행동이 다르는 것이 그들의 문제라는 걸 요한이 지적합니다. 6절부터 보시면 분리주의자들은 하나님과의 사귐, 즉 하나님과 교제를 한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행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행한다’라는 말은 원래 ‘걷는다’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어둠 속에서 걷는다는 뜻이 됩니다. 5절에서 요한은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분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신 분이시라는 걸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빛 속에서 걷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 분리주의자들은 말로는 하나님과 사귄다고 하지만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은 어둠 속에서 걷는 모습이었던 겁니다. 오늘 본문 뒤부분들을 살펴보면 이들이 어둠 속에서 걷고 있다고 말한 이유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아마 형제를 미워하고,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 모습, 크게 이 두 가지가 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걷는 자들이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 분리주의자들의 말과 다른 행동으로 인해 거짓말을 하는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또한 이것은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과 똑같다고 6절 끝에서 말합니다. 진리를 행하는 것은 진리 안에 살면서 죄를 피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진리에 자신을 비춰 죄를 피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이죠. 앞에서 말했듯이 이들의 죄는 형제를 미워하고 계명들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형제와 교제하기보다 미워하고, 진리를 행하기보다 계명들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분리주의자들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죄를 지었음에도 그들이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는 겁니다. 8절을 보시면 이들이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죄는 우리가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안 뒤에는 자신들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10절도 똑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된 이후에도 우리는 충분히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사실을 부인합니다. 요한일서에서 요한이 말하는 것만 봐도 이들이 형제를 미워하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지 않은 죄를 지었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모습을 요한은 8절에서 스스로 속이는 것이며 진리가 그 안에 있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들의 이러한 잘못된 모습은 여기서 끝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겉과 속이 다른 이들의 모습은 더 심각한 죄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10절 중간에서 말하듯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든 죄입니다. 이들은 빛이신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실제 모습은 어둠 속에 있어 거짓말을 했고, 죄를 지었음에도 죄를 짓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함으로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드는 아주 큰 죄를 지었습니다. 이들이 실제로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거짓말을 용인하시는 분처럼 보이게 만든 죄를 지은 것이죠.
여러분 정말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만일 어떤 기업에서 좋은 제품이 있다면서 광고도 하고 선전을 하는데, 정작 제품을 받았을 때 형편이 없다면 광고와 선전이 거짓말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이 제품을 만든 기업의 신빙성도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리를 따른다고 말은 하지만 진리와는 정반대의 죄를 짓게 된다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들게 되는 겁니다. 이 분리주의자들은 이러한 아주 큰 죄를 지은 것이죠.
그렇다면 이 분리주의자들과는 달리 요한이 제시하는 올바른 모습은 무엇일까요? 어떤 모습이 하나님을 믿는 진정한 모습일까요? 먼저는 만일 정말 빛이신 하나님과 교제한다면 그 결과는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모습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7절을 보시면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라고 말합니다. 바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진정 교제하는 사람은 성도와 교제하는 모습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분리주의자들은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출발이 하나님과의 교제라면 그 결과값은 성도의 교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거이 누리는 성도는 형제들과의 즐겁게 교제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결과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신자는 하나님을 믿은 이후에도 죄를 지을 수 있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피는 신자의 삶에 항상 필요합니다. 진정한 빛 가운데 걷는 신자는 그리스도의 피가 항상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분리주의자들처럼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숨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숨기지 않고 서스럼 없이 고백합니다.
죄를 고백하는 것. 인간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어느 누가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싶어하겠습니까? 부모와 자식 사이에라도, 부부 사이에라도, 형제자매 사이에라도, 친구사이에라도 아무리 친하다고 한들 인간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고 싶어하지 않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쟤만 아니었으면 난 먹지 않았다.”였습니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이죠. 이처럼 인간에게 있어서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싶어하지 않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합니다. 빛이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선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합니다. 빛 가운데 걷는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깨끗하게 씻어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교제하게 만들기 위해, 성도들과 교제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이렇게 죄를 고백할 때 1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해서, 우리가 용서받을만한 의를 가지고 있기 떄문이 아니라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이시고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3:8 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레미야 33:8 NKRV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이렇게 약속하셨기 떄문에 믿을만한 분이신 그분은 이 약속에 근거하여 우리가 죄를 고백할 때 우리의 죄를 반드시 사하시고 깨끗하게 만드실 겁니다.
10절 끝에서 말하듯이 분리주의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에 자신의 죄를 고백할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성도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요한이 말하는 이 말씀, 곧 1장 시작부분에서 말하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죄를 자백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분리주의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였기 때문에 그들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게 되었고, 결국 죄를 자백할 수 없고 오히려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하는 상태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최종적으로 정리하자면, 하나님과의 교제와 성도의 교제, 그리고 죄를 고백하게 되는 이 모든 것들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출발합니다. 하나님께서 빛이시니 빛 속에서 걸을 때 하나님과 교제하고 성도들과 교제하게 되고, 그리고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씻어주시게 되는 겁니다. 겉과 속이 다른 분리주의자들과는 달리 겉과 속이 같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니 그리스도인도 빛 속에서 걸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은 교회를 향해 분리주의자들과 같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어진 권면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요한은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고 성도들과 교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혹시 생각하느냐?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너희와 교제하기 위함이다. 삼위 하나님께서 서로 교제하시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교제하게 만드신다. 이 일을 위해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고 부활하게 하셨다. 우리의 죄를 피로 씻어 죄를 고백할 수 있게 만드셨고, 우리를 하나님과 교제하게 만드셨고, 그리고 성도들과 교제하게 만드셨다. 그러니 우리가 교제하자.” 요한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길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과의 교제를 위해 우리 인간 편에서의 어떤 공물, 선물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또 그런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교제를 허락해주실까요? 그런 가치있는 선물이 될만한 것이 우리에게나 있을까요? 그뿐 아닙니다. 죄인인 우리가 나에게 가장 귀한 것을 드려서라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얻으려는 마음을 가지고는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만큼 교제를 갈망하지 않습니다. 교제는 하나님의 간절한 갈망입니다. 인간을 향한 무한한 긍휼이며 자비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자비롭게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찾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것을 위한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교제를 위해 친히 스스로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 길은 불쌍한 우리 인간을 위한 길이기도 하지만, 먼저는 하나님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그 길은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찾아오시기에 합당한 길이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오시도록 우리는 길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만나기에 넉넉한 길을 친히 마련해주셨습니다. 바로 언약의 성취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와 교제하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우리와 교제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은 이 추위와 같이 얼어붙은 우리 마음을 녹이시는 따뜻한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우리와의 교제를 간절히 갈망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겉과 속이 다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빛이신 하나님처럼 빛 속에서 걸어가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오늘 말씀처럼 우리 새순교회, 그리고 새순교회 성도들 모두가 어둠 속에서 걷는 분리주의자들이 아니라 빛 속에서 걷는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빛이시라면 성도도 마땅히 빛 속에서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신데, 어둠 속에서 걷고 있던 겉과 속이 다른 분리주의자들이 아니라 빛 속에서 걸어야 합니다. 빛 속에서 걷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교제하고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제를 위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에게 나타나도록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교제할 수 있도록, 그리고 성도들과 교제할 수 있도록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분은 교제를 갈망하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교제의 힘쓰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이 교제를 위해 우리 교회가 말씀 안에 바로 서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세상 사람들과 우리 성도들의 교제의 차이점은 우리에게는 ‘생명의 말씀’이 있다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술이나 책, 그리고 공통의 관심사로 교제하지만, 성도들의 교제에는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생명의 말씀 안에서 우리가 교제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 이 두 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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