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8: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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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14–17 (NKRV)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공관복음 대조
마가복음 1:29–34 (NKRV)
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누가복음 4:38–41 (NKRV)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공관복음 대조서 비교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으로 백부장 사건과 동일하게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나타낸다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했다.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사야 52:13-53:12 에 나온다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다. 다른 복음서에는 회당에서 나가서 들어갔다고 되어있다. 아직 가버나움에 계신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가버나움의 안식일에 벌어진 연속적인 사건 중 하나로 나온다.
“베드로의 장모”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 베드로는 결혼한 사람이었다. 자녀에 대한 얘기는 여기서 나오지 않는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갔지만 가정을 버리지는 않았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가정에 소홀했을 가능성은 높지만 극단적으로 가정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를 때 자꾸 극단적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 그것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았는데 장모가 얼마나 아픈지는 정확히 나와있지 않다. 누가복음에는 중한 열병을 앓고 있다고 되어있다.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이 장면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손을 만지시고 치유하신다. 우리가 아픈 부위에 손을 얹고 종종 기도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프지 않은 부위를 만지고 열병을 낫게 하셨다.
그리고 그 장모는 낫고나서 예수님의 수종을 들었다. 사실 자기의 병을 낫게 해주셨다면 거의 당연하게 예수님께 수종을 들지 않았을까?
그렇게 장모의 열병에 대한 예수님의 기적은 여기까지 말씀이 이어진다.
왜 마태는 여기에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기록했을까?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시고 병을 고치신 일들을 허다했을텐데 말이다. 성경에 기록되어진 것들은 대체로 다 의미가 있기에 기록이 되어진다.
아마도 베드로가 가족을 버리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계속해서 계시고 안식일에 벌어진 연속적인 사건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을까?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날이 저물고 저녁이 되었을 때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온다. 예수님께서는 장모를 고친 이후에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데려왔을 것이다.
1세기에 예수님 시대에는 귀신들린 자들이 많았나? 우리도 지금 현재 알지 못하지만 귀신들린자들이 많은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런데 1세기에 예수님께서 사신 그 시대에 귀신들린 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귀신을 내쫓으셨다. 백부장때와 마찬가지로 단지 말씀으로만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예수님의 권능의 권위를 상징한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능과 권위가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귀신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장모가 낫음으로 많은 병든 자들을 예수님께 데려왔다. 이 시대에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겟지만 고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여 고치지 못하고 낫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께 왔을 것이다.
지금 현대에도 의술이 발달했지만 고치기 어려운 질병들로 고통받고 있는 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쩡으로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기적과 이사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저자 마태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했다. 말씀의 성취를 보여준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말씀을 성취하고 이루러 오셨다 함과 같이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께서 기적과 이사를 보이심이 이미 기록되어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짊어지셨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해결되지 않는 연약함과 인간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에서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아픔을 짊어지셨다는 말씀을 이루셨다고 말한다. 메시야는 우리는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삶의 구원이 필요한가?
나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영원한가?” 질문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삶은 신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그렇게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우리의 삶이 끝나고 죽게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오늘 말씀에는 단지 병과 귀신들림에 대해서 나와있고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와 능력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이루러 오신 메시야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 삶의 메시야가 필요한가?
이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삶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삶가운데 구원자 되시고 메시야 되시는 주님이 우리의 삶에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여기에서 우리의 마음과 태도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행동과 여러 문제의 해결 방식과 생각이 변화된다.
주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셔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