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4 눅2:8-14, 성탄 설교; 우리가 춤추고 노래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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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낮은 자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시고 평강을 주시는 진정한 왕이시다.
주제: 낮은 자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시고 평강을 주시는 진정한 왕이시다.
1. 존귀한 탄생 예고, 그러나 비천한 출생
1. 존귀한 탄생 예고, 그러나 비천한 출생
1)존귀한 탄생 예언(눅1:31-32)
1)존귀한 탄생 예언(눅1:31-32)
이천년 전 이스라엘에 갈릴리 땅에서 한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납니다. 그는 그녀에게 너가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는 지극히 높은 분의 아들이 될 것이며, 또한 그는 다윗의 왕위를 이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 결혼을 하지 않은 마리아에게 이런 예언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남편도 없는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말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에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을 이어 왕이 될 자가 태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거 구약의 선지자들은 다윗을 이어 통치자가 태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는 예언을 수없이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의 왕위를 이을 존재라고 하면, 그들을 지금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다윗 때처럼 위대한 나라를 만들어줄 구원자를 떠올렸습니다. 마리아 또한 천사의 예언을 듣고 자연스럽게 구원자를 생각했습낟. 그러나 그녀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천사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다시한번더 분명하게 하나님의 아들이 너에게서 태어날 것이라고 말하며, 최근에 아이가 많이 든 친척 엘리사벳이 임신한 것을 예로 들며 너 또한 하나님께서 가능하게 하시리라고 약속합니다.
2)비천한 출생
2)비천한 출생
(1)귀향길에 만삭의 상태에서 걸어감 (눅2:1, 4-5)
(1)귀향길에 만삭의 상태에서 걸어감 (눅2:1, 4-5)
그러고 난 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요셉과 결혼을 합니다. 얼마간의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난 뒤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로마황제 가아사 아구스도,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으로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나라에 있는 인구를 조사하고자 합니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제국의 첫 황제로서 강한 군사력과 재정을 바탕으로 로마 제국의 태평성대를 이룬 황제입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본 단어 중에 ‘팍스 로마나’ 라는 단어가 있죠. 강력한 권력으로 로마 제국의 평화를 이뤄냈었습니다.
그 당시 인구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갈릴리에서 귀향길에 오릅니다. 누가복음 2장 4-5절을 보면 그들이 갈릴리에서 베들레헴으로 갔다고 간단하게 말하지만, 지도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갈릴리에서 베들레헴은 직선거리상 170KM가 넘습니다. 실제 이동 거리로 치면 200KM가 훨씬 넘습니다. 또한 이 거리가 단순한 평지가 아닌 강을 두번이나 건너야 하고, 해발 1000M가 넘는 산을 올라야 했습니다.
(2)양 먹이통에서(눅2:7)
(2)양 먹이통에서(눅2:7)
일반인들도 이런 여행은 일주일이 족히 걸릴텐데 아내 마리아는 배가 불러서 애가 나오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이 멀고도 험한 거리를 이동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했기 때문에 나귀를 탈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지요.
그들이 힘겹게 베들레헴에 도착했지만 가난하고 만삭인 여인을 받아줄 민박집은 어디에도없었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동물 우리에 들어가 출산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예수님의 탄생을 떠올리면 사면이 벽으로 둘러쌓인 아득한 집에서 태어나시는 장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러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난한 집은 자신의 가축과 집안에서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지저분인 상태의 집이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 장소로 보다 설득력 있는 견해는 바로 양 우리가 있는 동굴입니다. 베들레헴은 마을 옆에 유대 광야사막이라서 양을 치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또한 지형이 울퉁불퉁하여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은 양을 먹이고 재우는 우리로 사용하기 좋았습니다.
몇몇의 학자들은 바로 이곳에서 예수님이 나셨다고 밀합니다. 저 또한 이 견해에 동의하는 데요, 만약 예수님이 양우리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당시 계절은 겨울이고 이스라엘의 우기입니다. 춥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 밤, 아직 말리지 않은 털에서 나는 노린내가 가득한 동굴에서 마리아가 산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다 진통이 더 심해지고 긴 진통끝에 아이가 나오지만 불빛 하나 없는 짙은 어둠속에서 아이가 어디로 나왔는지 확인할 수 업어서 요셉은 아이를 바닥에 떨어뜨렸는지도 모릅니다.
요셉은 양수로 인해 미끄러운 아기 예수님을 헝겊으로 급하게 감싸고 양 먹이통인 구유에 눕힙니다. 구유 안에는 양들이 먹다 남은 지푸라기들, 그리고 양의 침들이 흥건하게 남이 있어서 예수님의 몸에 뭍을 겁미다. 참으로 초라하고 더러운 출생입니다.
(3)목자들에게 환영받음(눅2:8)
(3)목자들에게 환영받음(눅2:8)
또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목자들에게 먼저 알려졌습니다. 그들은 과거 이스라엘에서 증인으로서의 능력을 감당할 수 없는 환영받지 못한 비참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자는 얼마나 부끄럽고 초라했을까요?
3)아이러니한 왕적표현들; 좋은 소식&그리스도 주(눅2:10-11)
3)아이러니한 왕적표현들; 좋은 소식&그리스도 주(눅2:10-11)
천사는 이런 그들에게 나타나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말합니다. 이 좋은 소식이란 새로운 왕의 탄생이거나, 나라의 해방을 의미할 떄 주로사용했는데 천사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좋은 소식이라고 말합니다.
이어11절에는 구주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그리스도 주이십니다.
이 표현도 황제에게 쓰는 표현입니다. 누가복음은 의도적으로 로마 황제와 예수님을 오버랩시키시면서 누가 진정한 평화의 왕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누거 진짜 팍스 로마나인가! 누구신가요?
2. 낮은 자로 오신 진정한 왕
2. 낮은 자로 오신 진정한 왕
1)비하하신 주님(요1:3)
1)비하하신 주님(요1:3)
우리 주님의 비하,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비참하고 초라한 양 우리에서 태어나 초라한 존재들에게 환영을 받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이 증언하는 것처럼 참 생명이신 분께서 생명을 잃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무한하신 분께서 유한하신 시간 가운데 육체로 태어나셨습니다. 무한한 영이신 분께서 제한적인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비참하고 저주받은 형벌이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에 매달립니다. 죄는 없으시지만 하나님의 저주를 몸소 감당합니다.
2)자녀로 삼으시는 주님(롬8:15)
2)자녀로 삼으시는 주님(롬8:15)
이를 통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영인 양자의 영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로마서 8장).
그래서 우리 주님의 비하를 통해 우리는 결국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거에요. 우리 주님을 통해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거에요.
3)우리를 체휼하시는 주님(히4:15)
3)우리를 체휼하시는 주님(히4:15)
주님의 성육신부터 시작한 이 땅에 내려오심, 즉 비참해지신 비하의 과정을 통해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할 비참함과 죄, 비난을 경험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 죄와 비참,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를 지고 그 위에서 죽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를 통해 주님은 우리 모두를 동정하십니다. 히브리서4장 15절에서 말하고 있는것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 주님이 우리를 동정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와 똑같이 아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멘탈적인 어려움 또한 겪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어려움을 동정하시는 그분께 다가갈 수있습니다.
이전 버전의 성경에서는 이 동정이라는 표현을 체휼이라는 단어로 사용했습니다. 저는 이 체휼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요, 체휼이 동정과다른 의미가 있다면 체휼은 몸소 직접 경험하고 갖는 긍휼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동정보다 더 깊은 단계의 이해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상황을 체휼하십니다.
성육신하시고,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결국 참 생명이신 분께서 죽음이라는 결코 겪을 수 없는 일을 겪으실 정도로 비참해지신 주님이 이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와 비참을 대신 지셔서 우리를 그것들로부터 회복시키셨습니다.
3. 우리의 처지를 아시는 분께 아뢰자, 감사하자
3. 우리의 처지를 아시는 분께 아뢰자, 감사하자
1)우리의 처지를 아시는 주님께 구하자(히4:16)
1)우리의 처지를 아시는 주님께 구하자(히4:16)
하나님이신 그분꼐서 이런 모진 수고를 하셨습니다. 이 모든 행위는 우리를 사랑하셔서입니다. 이토록 우리는 사랑하시는 그분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먼저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상황을 이해하시고 이미 우리가 겪을 모든 어려움보다 모든 난처하고 비참한 상황들보다 더 심한 상황들을 겪으신 주님을 기억하며 그분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러므로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도우실 은혜를 믿으며 주님께 나아가는 것, 예배하며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자녀의 모든 상황을 이미 아시는 그분께 우리가 담대히 나아가 그분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외면치 않으시고 도우실 것입니다. 자녀가 된 우리들을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위러브의 찬양 중 ‘공감하시네’라는 찬양이 있지요.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모든 상황을 공감하시고 도우실 수 있으신 분께 아룁시다. 그때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2)성탄절 오신 주님을 기뻐하고 감사하자(눅2:14)
2)성탄절 오신 주님을 기뻐하고 감사하자(눅2:14)
또한 우리는 이 성탄절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비참을 없애주시고, 우리를 자녀 삼기 위해서 이 땅에 내려오신, 스스로 비참의 길을 선택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우리가 됩시다.
주님의 낮아지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었고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가능했습니다. 이 성탄절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이땅에 오신 우릴 하나님의 자녀 삼기 위해 내려오신 이 날을 감사하는 우리가 됩시다.
우리가 노엘 노엘 고백하며 기쁨으로 찬양을 하고 춤을 출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 온 세상의 진정한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이 기쁜 성탄절 진정한 평화의 왕으로서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을 기쁘게 찬양하는 우리가 됩시다!
마무리 기도
마무리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천년전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그분을 통해 우리가 진정한 평화를 얻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힘과 권력으로 평화와 기쁨을 얻으려고 하나, 주님께서는 희생과 섬김으로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희생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주님, 먼저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아픔과 슬픔, 고통, 고난, 어려움을 먼저 겪으시고 다 아시는 주님, 체휼하시는 주님께 우리의 모든 상황을 고백하며 도움을 구하기 원합니다. 자녀의 어려움을 외면치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며 아버지께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담대히 나아가게 하소서. 일상 속에서 겪는 많은 문제들을 주님께 가지고 나아가게 하시고, 그리고 해결받게 하소서.
또한 주님,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이 날을 기억하며 감사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자녀 삼기 위해 내려오신 이 날을 기뻐하며 찬양합니다. 다가오는 감사 발표회때 우리가 주님의 낮아지심과 다가오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춤추며 노래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