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의와 복음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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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의와 복음의 의

빌립보서 3:1–11 NKRV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제가 최근에 동국대에 갈 일이 있었는데요, 아시다 시피 동국대는 불교재단에서 만들어서 불교의 특징이 곳곳에 많이 녹아있습니다. 그중에 눈에 뛴 것은 바로 108번뇌 계단이었는데요, 아주 높고 거대한 계단이었습니다. 이 높은 계단을 오르 내리며, 고행을 통해 공을 쌓는 불교의 세계관을 옅 볼 수 있었습니다.
알고 보면 모든 종교는 다 어떤 노력을 통해 공로와 업적을 쌓아 의를 이루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힌두교를 보시면 수도승들이 공을 쌓기 위해 금식을 하거나 잠을 자지 않는 다거나 눕지 않는 등의 고행을 통해 자신의 공로와 업적을 쌓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카톨릭은 어떨까요? 카톨릭도 마찬가지입니다. 루터는 구원을 얻기 위해 무릎으로 높은 계단을 오르며 자신의 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루터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는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구절이었습니다. 루터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우리의 의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다는 이신 칭의의 교리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빌립보 교회에도 이처럼 자신의 행위와 공로와 업적을 통해 의를 얻으려는 시도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빌립보 교회에 조심스럽게 들어와서 혼란과 혼동을 주며, 복음을 왜곡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이방인이 구원을 받으려면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 “이방인이 의롭게 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 “유대인이 의롭게 되려면 온갖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서 “개들”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개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비방할 때 쓰는 욕설이었는데, 바울은 그들에게 되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바울은 “몸을 상해 하는 일을 삼가라”라는 말은 그들이 강조하는 할례는 고작 “살점을 떼는 일에 불과하다”라며 희화하는 말입니다.
이 유대인들은 육체를 신뢰하고 육체를 자랑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구원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이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자체로 남들과 구별되었고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키는 갖가지 율법들을 보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나는 남들과 달라. 내가 아니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러나 바울은 그 모든 것들을 해로 여길 뿐만 아니라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얼마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바울에게 중요했는지, 그 것 외에는 배설물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대신 지셨다는 그 복음을 믿는 믿음이 나를 의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태신앙인지 아닌지, 내가 얼마나 종교적인 열심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진정으로 복음을 경험하고 깨달은 사람은 삶과 순종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과 순종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를 의롭게 만들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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