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내려오신다(소제: 누가 진짜 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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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참된 평화를 내려주시는 왕으로 오셨다.
예수님은 참된 평화를 내려주시는 왕으로 오셨다.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왕이 내려오신다”입니다. 부제는 “누가 진짜 왕인가?”입니다. 왕이 누구냐에 따라서 백성들의 삶이 달라지게 됩니다. 조선시대를 상상해보면, 세종이 왕이었을 때, 나라의 발전과 백성들의 편의를 위해 많은 연구와 정책을 펼쳤습니다. 물시계 자격루, 해시계 앙부일구, 측우기, 농사백과사전 농사직설 등은 백성들이 더욱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했습니다. 반면, 인조가 왕이었을 때 어떤 일이 있었나요? 친명배금으로 인해 후금인 청나라에 의해 병자호란을 맞게 됩니다. 이때 삼전도의 굴욕을 맞이하죠. 그의 무능과 무지, 아집으로 인해 소현세자는 청나라의 볼모가 되어 끌려가고, 약 50만 명의 국민을 노예로 내어줬습니다.
여러분 누가 왕이냐에 따라서 백성들의 삶이 달라지게 됩니다. 황제가 군립하던 로마제국 시대에 예수님이 왕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살펴봄으로 누가 진짜 왕인가? 우리는 누구를 왕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세상의 왕 아우구스투스입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 그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온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 이름의 원래 이름은 옥타비아누스인데 초대 황제가 되면서 원로원에 의해 존귀한 자라는 뜻인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로마제국 역대 가장 위대한 통치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행정이면 행정, 전쟁이면 전쟁, 정치면 정치 모든 부분에서 탁월했습니다. (8월이 영어로 어거스트라고 하는데, 이 어거스트가 바로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소아시아 할리카르나소스에서 나온 비문에 기록을 살펴보면, “땅과 바다가 평화를 누리고, 도시들이 훌륭한 법체계 아래, 주화 가운데, 풍성한 식량과 함께 융성하며, 모든 좋은 것이 풍성하고,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행복한 소망들과 현재의 기쁨으로 충만하다”고 하며 아우구스투스를 온 인류의 구세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통치하던 시대는 (클릭)“팍스 로마나” 곧 로마의 평화 시대라고 불렀습니다. 전쟁이 없고 문화, 경재, 사회 모든 것이 번영하고 발달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정말 세상 왕 아우구스투스가 왕이었던 시대가 평화의 시대였을까요? 타키루스의 작품에서 브리타니아의 장군 칼가쿠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클릭)“그들은 약탈, 도살, 강탈을 제국이라고 잘못 이름을 붙인다. 그들은 황량하게 만들고 나서 그것을 평화라고 부른다. 로마의 평화는 단지 강요된 화해에 불과한, 전쟁을 통해 전쟁의 종식을 가져온 것이었다. 로마는 평화로 유혹하며 복종을 요구했으며 공포, 종살이, 과세를 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을 두려워했다.”
(클릭)로마의 평화는 자기들만 외쳤던 가짜 평화였습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전쟁이 없고, 번영과 발달을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는 식민지를 압제하고, 폭력으로 착취했습니다. 로마 황제는 평화의 왕이 아닌 정복자였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란 자신들의 통치에 복종하면 로마가 선의를 베푸는 것이었고 거부할 시 진멸이었습니다.
세상이 왕이 되었을 때 우리에게 주는 평화는 이런 것 같습니다. 양면성을 가진 평화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왕은 돈입니다. 돈은 우리에게 행복을, 평안을 준다고 말합니다. 돈이 있으면 너가 하고싶은 거 다할 수 있고, 가고 싶은데 다 갈 수 있어. 원하는 거 다 사면서 살 수 있어.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행복할거야. 그러나 그 이면엔 어떤 모습이 있나요? 우리나라에서 많은 돈을 벌려면 경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짓밟고 빼앗고 승리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거죠. 대학만 봐도 그렇잖아요? 내가 좋은 대학을 가려면 누군가는 떨어져야 해요. 내가 그 사람보다 잘해야 올라갈 수 있는 경쟁사회입니다. 남들의 것을 빼앗고 짓밟아서 얻는 돈이 진짜 평화를 줄 수 있을까요? 로마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는 팍스 로마나, 로마의 평화시대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그 평화는 피로물든 정복이었습니다.
누가 진짜 왕인가?
두번째는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이 세상에 참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로마의 황제와 매우 대조적으로 그려집니다. 막강한 힘을 가진 황제보다 예수님이 더 강하고 참된 진짜 왕이다를 보여주려면 예수님이 이땅에 어떻게 오시는게 좋을까요? (클릭)저라면 예수님이 막 토네이도가 일어나고 천둥번개가 치는데, 하늘로부터 불이 떨어지고 거기에서 예수님이 응애하면서 나타나게 했을 것 같아요. 탄생부터 특별하고 강해보이잖아요. 환웅과 사람이 된 곰 밑에서 태어난 단군설화,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와 같은 탄생설화과 왜 있겠어요. 떡잎부터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거죠. 그런데 성경은 제 생각과 다른 것 같습니다.
7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서,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클릭)예수님이 태어날 때 묶을 여관이 없어서 마굿간에 들어가 먹이를 주는 여물통에 아이를 뒀습니다. 특별한 불도, 번개도 없었습니다. (클릭)막강한 보석과 사치를 누리는 황제와 대조적으로 낮고 보잘 것 없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목자들의 환영과 인사를 받았습니다. 당시 목자들은 가장 천한 직업이었습니다. 잦은 도적질로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을 받던 천한 직업이었습니다. 높은 권력자들, 귀족들의 환영과 박수를 받은 황제와 대조적으로 낮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낮고 비천한 자의 모습으로 오신 이유는 (클릭)그분은 세상의 왕, 힘과 폭력으로 지배하는 정복자가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겸손의 왕이시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명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24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밀알이 되어 죽으러 오셨습니다.
천사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14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하나님께는 영광을, 우리에게는 평화를 주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왕이 통치하는 가짜 평화의 시대에서 진정한 평화를 주기 위해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안식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결론입니다.
세상이 주는 가짜 평화와 예수님이 주시는 진짜 평화를 비교해봅시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칼로 무장된 평화입니다. 힘으로 굴복시키는 평화입니다. 전쟁과 피로 얻어진 평화입니다. 이것은 일시적이며 모순적인 평화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의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굴복시키는 평화입니다. 에수님의 피흘림과 죽음으로 얻어진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영원하며 변함이 없고, 값없이 주어진 평화입니다.
우리는 이 평화를 받은 자로서 화평을 이루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