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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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로마나의 아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가져오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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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성탄은 모두에게 축복의 날인가?

주의 영광, 주의 천사

베들레헴 성 외곽 들판에서 양을 지키는 목자들에게 ‘여호와의 천사’가 등장한다. 두려워한다. 당연한 반응이다. 천사들이지만 그들은 기드온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천사)’처럼 사람으로 오지 않았다. 기드온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천사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전형적인 이스라엘 남자의 복장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막대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베들레헴 들판에 나타난 천사는 ‘주의 영광’, 여호와의 영광이 조명된다.

무섭지만 기뻐하라.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목자들이 목도한 영광은 천사를 수식하는 형용사가 아니다. 주께서, 여호와께서 친히 사람으로 오셨다는 사실에 있다. 그 영광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이 목자들도 두고두고 묵상할 중요한 소재였다.

2. 표적, 그 구원 역사의 증표

천사는 갑자기 어마 무시한 소식을 전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구주가 나셨다. 구주, 이 단어는 아우구스투스의 비석에 새겨진 단어이다. 위험에서 건져내 주는 영웅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이 단어가 주인공의 명을 재촉한다. 황제 앞에서 주인공을 구주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여러모로 아우구스투스가 이룬 팍스 로마나를 연상시킨다. 1절에 등장한다는 점만이 아니다. 11절의 ‘좋은 소식’부터 그러하다. 황제의 즉위 소식, 전승 소식 등이 복음이다. 아우구스투스의 생일이 곧 복음이라고 한 신하가 칭송한다. 여러모로 비슷하다.
‘구주’, 이건 다분히 위험할 정도이다.
팡파르 역시도 황제의 즉위식을 연상시킨다. 천사의 찬송, 하나님께서 모습을 드러내실 때 비치는 영광, 얼마나 화려한 조명일까?
결정적으로 평화이다. 땅에서 평화가 있으리라 선언한다. 팍스 로마나를 무색하게 한다.
재밌다. 관중이, 이 즉위식의 참가자가 누구인가? 대통령 취임식에 누가 초대 받았는가가 간간히 뉴스에 오르내린다. 황제의 즉위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그리스도의 탄생에 초대 받은 사람은 누구인가? 역사가적인 태도로 접근하고 취재했던 누가도 이 목자들의 이름은 알아내지 못했다. 첫번째 크리스마스에 초대된 이들의 가난함, 초라함, 무명 등으로 보아 파티의 주인공 역시 초라하다. 틀림없다.
초라함은 계속된다. 천사가 말한다.
누가복음 2:12 NKRV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표적이란 <표+기적>이다. 기적같은 구원이 시작된다는, 시작되었다는 표이다. 포대기에 싸여 말구유에 누인 아기, 그 모습이 기적이다.
황제의 명 한 마디때문에 꼼짝없이 만삭의 여인이 몇백 km를 걸어내려왔다. 사연이 어쨌거나 구유를 첫 침대로 삼아야 하는 이 가난한, 연약한 아기가 하나님의 구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뭐라 이래? 천사의 선언을 되짚어 보자 다윗의 동네에서 나셨다. 다윗의 후손, 메시야이시다. 그가 황제에 비할 구주이시다. 또한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이시다.
이 주님이란 단어를 여호와로 치환해서 읽으면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당신을 낮추셔서 사람으로 오셨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런데, 금수저는 고사하고 너무 가난한 모습으로 오셨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만들어 낼 수 없는 스토리, 하나님을 하신다. 하나님의 가난, 이것이 그분의 참 표징이다.
기적이다. 이를 보고 믿는다면, 그 목자들의 믿음이야말로 또다른 기적이다.
3. 다시 영광으로
갑자기 하늘 군대가 그 천사와 함께 찬송한다. 하늘 군대, 그 군대는 이 땅에 평화를 준다. 평화유지군일까?
하늘에 영광
그리스도의 탄생이 왜 하나님께 영광인가?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은 그 자체로 빛난다. 인간이 감히 보탤 것이 없다.
의인도 아니요, 이쁠 것도 없는 인간들을 위해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 구원을 시작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그분의 존재 자체가 영광일 뿐이다.
평화는 왜 제한 되고 있을까?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은 누구인가?
이 단어는 주님의 세례에서 다시 등장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들, 예수님께 적용된다.
하나님의 아들들, 하니님께 기꺼이 아들로 받아주신 아들들이다.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이,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이

종교에 관계없이 거룩한 날이라는 멘트는 이 계절이면 방송에서 늘 들을 거다. 아마 우리 일생에, 주님 오시는 날까지 반복될 거다. 하지만 우리는 정확히 알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만 평화가 온다. 하나님과 평화가 우선이다. 아니 그것이 전부이다. 죄사함에서 시작되는 평안이다.
이 평안은, 카이사르가 주는 거짓 평화와 다르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흐른 끝에 이루는 평화가 아니다. 그리스도 그분의 피로 이루는 평화이다.
구주께서 주시는 이 평화, 평화의 복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모습이 정상적으로 계시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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