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고후2:14-17)

고린도후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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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12월 24일 주일 3부
제목 : 향
본문 : 고린도후서 2:14-17
1. 2023년을 채운 향은 무엇인가?
보통 연말이 되면 “올 한 해, 나는 잘 보냈는가?”를 점검하기 마련입니다. 우리 청년들,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의 한 해는 어떠셨습니까? 어떤 향기를 내뿜었던 2023년 이셨습니까?
늘 그랬듯, 올해도 단조로운 한 해는 아니었을 겁니다. 수 많은 사람들과 많은 추억들이, 또 많은 스토리들이 담긴 시간들을 보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향수를 만드는 과정을 보니까요, 하나의 향을 내기 위해 수많은 향 재료들을 조합해 만든다고 합니다.
이처럼 저도, 그리고 우리 청년들, 우리 성도님들의 2023년이 여러 이야기들이 조합되어 만들어진 올 한 해였을 것입니다.
여러 이야기들로 채운 우리의 2023년, 이 연말을 되돌이켜 보며, 저는 이런 점검을 같이 해보았으면 합니다. “나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를 아는 향기’를 흘려 보냈는가?”, “올 한 해 나는 정말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서사를 함께 써내려 갔는가?” 점검 해 보았으면 합니다.
2. 사도 바울의 삶, 그리스도의 향기
1) 고린도전서의 배경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삶으로 표현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표현 아닙니까?
그런데, 고린도후서를 쓰게 된 배경을 보면요 “도대체 사도 바울은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너무 많았습니다. 분열의 문제, 성령에 대한 무지함도 있었고, 율법과 도덕적 측면에 있어서도 부정적이고 태만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배에 대한 영역에 있어서도 소홀했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문제들이 고린도교회에 하나 둘 등장하니, 사도 바울이 가만 두고 볼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이들에게 신앙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쓴 서신이 바로 ‘고린도전서’ 입니다.
2) 고린도후서의 배경, 그리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외친 사도 바울
하지만, 이들은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습니다. 대머리에, 휜다리에, 매부리코에 키 작은 사도 바울보다 말끔하게 생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탁월하다 보았죠. 어쩌면 사도 바울을 보며 ‘왠 거렁뱅이가 떠드는거야?’ 멸시의 눈으로 무시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성도들의 반응에 사도 바울은 ‘근심’이 생겨 쓴 서신이 바로 ‘고린도후서’ 입니다. 이런 배경 가운데 자신의 인생을 ‘그리스도의 향기’라 표현하는 것이 마냥 아름다운 주고 받음의 과정이라 보기보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꽃을 피우길 소망하는 사도 바울의 간절함 같아 보입니다.
정리해보면, 전서의 아픔을 가지고 후서를 기록하는 것이기에 어쩌면 정말 간절한 마음이 이곳에 담겨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간절함을 가지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 날 이 본문을 함께 나누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선포합니까? 15절의 말씀을 함께 볼까요.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우리를 어떤 향기라 표현합니까? ‘그리스도의 향기’로 표현합니다.
3) 그리스도의 향, 그 향에 취해 기쁨으로 날마다 여행하던 사도 바울
향기가 가진 힘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찾아보다 어느 한 작가 겸 조향사로 일하는 분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왜 조향사가 되었는가?’ 라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하더라구요. “향은 잊고 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추억을 간직한 분들과 그 날 각자의 그 기억 속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사도 바울의 삶은 고달팠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한 순간도 편하지 않았습니다. 외로웠고 힘들었습니다. 텐트를 만들며 하루 하루 겨우 생활 할 수 있었고, 많은 이들의 조롱과 비난, 또 각종 고문으로 몸이 성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뻐했습니다. 기뻐하면 안되는 상황과 순간에서도 그는 기뻐했습니다. 왜요? 그리스도로부터 맡았던 그 향이 매일 예수를 떠올리게 했고, 그 향이 예수로 받은 기쁨 속을 여행하는 기분을 들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절,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의 기쁨은요 물질의 풍요함으로부터 오는게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쁨은 권력의 만족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쁨은 그저 오직 예수로 충만한데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이 사도 바울을 통해, 그의 인생을 통해 예수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삶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바라옵기로는 저와 우리 청년 여러분,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 모두 그리스도의 향기를 마음껏 흘리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3.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기 위해서
1) 향기 : 기분을 좋게, 헤어나올 수 없는, 남들에게 흘려보내는
향기와 비교되는 단어가 있다면 아마 냄새일 것입니다. ’향기’와 ‘냄새’의 차이, 다들 잘 아실 것입니다. 향기는 어떻습니까?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죠. 그래서 그 향기를 못맡게 되면 너무 그리워 집니다.
종종 육아 선배님들이 둘째를 갖게 되는 이유 중 하나로 ‘아기 냄새가 그리워 가진다.’고 말씀하신 내용이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아엘이가 4-5개월 지날쯤 신생아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아 이 말에 심히 공감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기 뿐만이겠습니까? 강아지 키우시는 분들, 이들의 꼬순내 맡으려고 얼마나 많이 괴롭힙니까. 한 번도 안맡아볼 수는 있지만, 한 번 맡으면 헤어나오기란 힘든게 ‘향기’ 아닙니까?
향기의 또 다른 특징은, 그 향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한다는 겁니다. 향수를 뿌리고 그 향이 좋으면, 감추지 않습니다. 이곳 저곳에, 마치 향수로 샤워라도 하듯 마음껏 뿌리고 다니지 않습니까?
2) 냄새 : 기분이 나쁜, 두 번 다시는 맡고싶지 않은,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반대로 냄새는 맡으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라 하지, 이를 ‘향기’라 말하는 분 계십니까? 혹시 음식물 쓰레기의 냄새로부터 황홀함을 느끼거나, 행복을 느끼는 분 계십니까? 만약 그런 분이 계시다면 가까운 이비인후과를 꼭 방문해 보셔야 합니다.
냄새는 단 한 번이라도 맡고 싶어지지 않습니다. 두번 다시는 맡고 싶지 않은 것이 냄새 입니다. 생각만 해도 불쾌하고 속이 매스꺼워지죠.
또 그 냄새가 내 몸에서 난다면 들키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냄새를 흘려보내고 싶어하지 않아요. 냄새를 감추려 우리는 향기가 나는 향수를 뿌리곤 하지 않습니까?
3) 냄새보단 향기를 택하는 우리, 하지만 쉽지 않은 길
그래서 우리는 불쾌한 냄새를 내기보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우리의 삶에 뿌려 살고 싶어합니다. 누구에게나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내가 너를 보니, 예수를 보는 것 같아. 너를 보니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져.”라는 말을 너무나 듣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습니다. 예수의 향기를 내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됩니다. 그래서 낙담하고 좌절해 끝내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까? 어쩌면 잘 안 된다기 보다 ‘내가 어떤 향기를 내야 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삶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말이 내심 도전은 되지만, 현실적으로 적용이 안 됩니다.
저는 목회자지만 저 역시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말씀 위에 저를 세우고, 말씀으로 연단하여 거룩한 시야를 얻는 길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4) 사도 바울은 어떻게 향기를 내었는가? 중심에 답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리곤 합니다. “역시 바울! 이정돈 해야 성경에 기록되지!” 그런데, 여러분.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사도 바울의 삶은 절대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단 한 순간도 고요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가 원하던 대로 삶이 흘러가지도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 복음을 너무 전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드로아’를 거쳐 아시아로 전도여행을 떠나려 했었죠. 하지만 왠 걸요? 그의 다음 행선지는 아시아가 아닌 반대편 마게도냐 였습니다.
어쩌다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를 행하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16장 9절과 10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왜 사도 바울이 반대편 마게도냐로 발걸음 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 아닙니까? 그저 그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나아간 것 뿐입니다.
사도 바울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모든 열매가 나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음을 믿고 의지하며,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자신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자신의 약함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들어 쓰신다는 믿음, 그리고 순종으로 나아간 그의 중심이 바로 그가 머금고 있던 그리스도의 향기를 흘려 보내는 재료가 되었습니다.
예수의 향기를 내는건 내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것도 중요한게 아닙니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그 생각에 갇혀 있다면, 그리스도의 향기 내는건 어렵습니다.
예수의 향기를 내는건 ‘내 중심이 어디에 있냐’에 달려 있다는 거에요.
4. 완벽한 향을 내기보다 ‘잔향’부터 시작하라
1) 청년들을 향한 마지막 간증
이제 청년부를 내려놓게 되며 지난 2년간 저의 중심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특히 아쉬움이 남는 것에 대한 이유가 ‘나’인가 또는 ‘하나님’인가를 정말 많이 되새겨 보았던 것 같습니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부족한 점이 차고도 넘치는 자라 어쩌면 아쉬움에 인간적인 마음이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청년부 담당 사역자로써 매순간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 부교역자로써 담임목사님의 목회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해 충성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름받은 종으로서 이어진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아 아내에게 혼나, 혼자 마음 아팠던 적도 여러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지금 느끼는 이 아쉬움은 단순히 ‘목표를 다 이루지 못했다’는 인간적인 아쉬움이 아닌, 청년부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에 제 중심이 흔들리는데서 오는 아쉬움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리 중심이 흔들리는 저의 연약함을 보며 감사했습니다. 중심을 하나님께 100% 두었을 때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기’라 말씀하시고 칭찬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연약함을 보시고도, 겨우 중심을 두는 나를 보시고도 ‘향기’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니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못했는데, 많은 청년들이 아쉬움의 소리를 내어주었습니다. 어느 한 청년이 제게 말했습니다. “헤어짐이나 무언가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마주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쉽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목사님과 한 교회의 지붕 아래 여전히 내년에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지금으로선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바라옵기로는 제가 청년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잔향을 남겼길 소망합니다. 단지 인간적인 아쉬움에 그치기 보다, 제가 남긴 그리스도의 잔향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의 삶 되길 소망합니다.
저는 이제 유치부 담당 사역자 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맡은 사역을 감당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예꼬들에게 그리스도의 잔향을 또 한 번 저는 남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잔향에 우리 예꼬들이 하나님의 향기로 커가길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 청년들도 주어진 자리와 맡겨진 사역 가운데, 그리고 허락된 모든 예배 가운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바라며 매순간 예수로 충만하길,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중심 잃지 않는 자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5. 결단찬양 : 충만 + 하나님의 부르심(후렴)
6. 합심기도
1) 중심을 주께 두어 예수로 충만케 하소서
2)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순종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삶 되게 하소서
7.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연약한 우리를 보시고 여전히 자녀라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날마다 예수로 충만하여 중심 잃지 않도록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감동 감화 역사 임재하심이
그리스도의 향기요 예배자로 살아가겠노라 다짐한 자들과
부르심에 순종으로 감당하겠노라 결단한 자들과 함께 예배한 자들과 그의 가정과
그리고 이어진교회 청년 공동체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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