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6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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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랑 (218장)

누가복음 10:25–37 (NKRV)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내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는 고백으로만 끝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속에서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는다고 고백은 하지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가르침 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에수님을 진짜 믿는 삶, 그래서 구원을 얻은 삶은 무엇인지 어떤 삶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나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봅니다. 그런데 이 율법학자는 진리를 알기 위해 예수님께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영생에 대해 질문 한 것입니다. 율법학자는 이런 난해한 질문을 하고 예수님께서 이단적 이야기를 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예수님이 율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율법학자의 모든 마음을 아신 예수님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의 질문을 한 율법학자에게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있는지, 그리고 율법학자는 어떻게 알고 있는지 되묻습니다.
그러자 율법학자는 신명기 6:5, 레위기 19:18 의 말씀을 인용해 이렇게 답합니다.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율법학자는 구원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습니다. 율법을 몰라서 질문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음에도 예수님께 질문을 한 것은 예수님을 난처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튼 이러한 율법학자의 답을 듣고선 예수님께서 아는대로 행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율법학자의 대답이 옳다고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율법을 외우지만 말고 율법에 적힌 대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율법학자에게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율법학자는 한가지 더 질문을 합니다. 그렇다면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유대인을 선택하셨다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서 이웃은 오직 동족인 유대인들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학자가 이웃의 범위에 대해 물어볼때 진짜 이웃의 범위에 대해 궁금한 것이 아니라, 율법학자가 생각하는 이웃인 유대인 동족에 대해서는 사랑을 다 베풀며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예수님과 또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자신의 이웃이 누구인지 묻는 것입니다.
마치 부자 청년이 에수님께 나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을 때,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둑질 하지 말고, 거짓 증언하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당당하게 “내가 이런 것들은 어려서부터 다 잘 지키고 있습니다!” 라고 말한 것 처럼, 이 율법학자도 자신이 율법을 잘 지키고 있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예수님께 드러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와 믿음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만이 자신의 이웃이라고 생각했던 율법학자와 예수님이 생각한 이웃의 범위가 달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거의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가고 있었는데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갔습니다. 조금 있다가 레위 사람도 지나갔는데 그 사람 역시 강도 만나 거의 죽게 된 그 사람을 모른 척 지나갔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누구보다 율법에 대해 잘 알고 그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죽게 되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에 이어 세번째로는 의외의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이 가장 증오하는 그래서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는 그런 존재의 사람들이 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된 사람을 도와 주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 다음날 여관 주인에게 두데나리온을 주면서 혹시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다고 말하며 끝까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게 됩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이 율법학자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의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나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당시 유대인들은 누구나 율법에 기록된 이웃 사랑의 계명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웃의 범위가 한정적인 것이 문제 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사랑해야 할 이웃의 대상에서 이방인은 제외 하였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같은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세리와 창녀와 같은 죄인들은 제외시켰습니다. 그 이유는 비록 유대인의 혈통을 지녔다 할지라도 부정한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조차 부정하다고 여겨 그것을 금하기도 하였습니다.
혹시 우리도 우리의 이웃을 제한시키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을 내 이웃의 범위에서 탈락시키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심지어 종교의 이름으로 옳고 그름만을 따지면서 내가 정한 기준에 따라 이웃이 아닌 정죄의 대상으로만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는지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이 율법학자에게 하신 질문을 잘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학자는 자신을 옳게 보이기 위해 “누가 내 이웃냐고 물었지만” 예수님은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고 되묻고 계십니다. 이것은 이웃의 개념을 바꾸는 질문입니다. 다시말해 이웃은 나에게 호감을 갖고 호의를 베풀어 내게유익이 된느 사람이 아니라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의 이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자리에 계신 성도님들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오늘날에도 나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 나에게 친절한 사람만을 이웃으로 생각하고 살아가 그들만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오늘 본문의 율법학자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웃은 나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 그래서 나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과 어려움으로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우리의 시간과 물질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그곳에 기꺼이 가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싫어해 무시하는 사람 그래서 누군가의 인정이 누군가의 사랑이 우리의 이웃입니다. 그들을 위해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마음과 재정을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늘 하루를 아무런 조건 없이 마치 선물과 같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하루를 정말 소중하게 사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무엇보다도 소중하게 귀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이웃을 사랑으로 돕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 처럼 겉은 누가봐도 믿음좋아 보이고 신실해 보이고 거룩해 보이지만 그들의 삶속에서는 이웃을 사랑하는 삶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그 사람에게 기꺼이 시간과 재정을 사용하며 이웃을 정말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였다는 것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내가 있고 싶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그곳에가 주님이 내게 허락하신 그 이웃을 마음껏 사랑하는 오늘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내게 허락한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통해 오늘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삶속에서 드러나는 복된 하루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 오늘 하루도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내가 이웃을 정하지 않고 이미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저희 되게 하여 주셔셔. 주님을 믿는 것이 고백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삶속에서 증명되고 드러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때로는 감당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친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앞에 엎드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저희 되게 하셔서, 오늘 하루도 주님이 허락하신 우리의 이웃을 온전히 사랑하는 복된 하루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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