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나신 아기(사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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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나신 아기(사 9:6)
INTRODUCTION:
     (Image & Need) 성탄절 설교의 주요 본문이 되곤 하는 이사야 9:6에서 우리는 주로 뒷부분의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에 관한 그 중요하고 위대한 사실 때문에 반복되는 표현 하나를 놓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라는 말씀 속에는 히브리어로 ‘라누’(Wnl'), 영어로 ‘to us’, 한글로 ‘우리에게’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우리에게’라는 말은 간과한 채 주로 메시아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알려주는 뒷부분의 표현에 주목해 왔던 것입니다.
     
     (Subject)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인류의 가장 큰 기적이자 저와 여러분의 가장 큰 선물이 된 이유는 사실 그 탄생이 저와 여러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인 지구가 아니라 태양계 밖의 어떤 행성에서 태어나셨다면 사실 그 예수님은 우리와 별로 상관이 없는 분입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태어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이토록 엄청난 사건이자 엄청난 선물이 된 이유는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태어났고,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Text & Preview) 그렇다면 2000년 전 아기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셨다는 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님이 인간으로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예수님이 우리의 것으로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BODY:
     (Background & Exegesis) 인류의 역사상 특별한 한 남자 아기가 있었습니다.
     그 아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은 권력을 바랐고, 큰 것을 바랐고, 넉넉함을 바랐지만 그 아기는 부모님을 의지해야 하는 연약한 아기로, 아무런 힘도 쓸 줄 모르는 작은 아기로, 가난하기 그지 없는 한 가문의 아기로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세상은 즉각적인 결과를 원했지만 그 아기는 지금 당장 아무것도 만들어 낼 수 없는 그런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아기가 “우리에게” 났습니다.
     그 남자 아기가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눈에 작고, 가난하고, 힘이 없던 이 남자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우리에게 주신 바 된 것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 첫 번째 의미는,
     I. 그 아기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9:6의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라는 말씀의 의미를 곰곰이 살펴 보면 그 아이가 ‘남자 아이’ 곧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통상 ‘역사적’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획기적인’, ‘엄청난’, ‘전무후무한’, ‘역사에 남을’(historic)이라는 의미입니다.
     둘째는 ‘실제로 발생한’, ‘역사상의’(historical)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이전에 전혀 없었던 획기적인(historic) 사건이었습니다.
     전무후무한 사건이며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간이 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탄생은 실제 발생한(historical) 사건이었습니다.
     그저 공상이나 허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그 놀라운 사건, 인간의 이성과 과학으로는 다 설명될 수 없는 그 엄청난 사건이 우리에게 일어났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사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습니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진짜 사람으로 우리 곁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 눈으로 똑똑히 하나님을 보게 되고, 두 귀로 하나님을 듣게 되고, 두 손으로 하나님을 만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큰 축복입니까?
     성탄의 계절이 이 역사적인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한 남자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우리에게 주신 바 된 두 번째 의미는,
     II. 그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사건이 된 한 남자 아기의 탄생은 사실 온 인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를 위해 태어났습니다.
     왜냐하면 그 남자 아기가 예수 곧 우리의 구주가 되셨기 때문입니다(마 1:21, 눅 2:11).
     
     오늘 본문에 따르면,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hr'f.mi, rule, dominion)가 메었다(hy"h', be, rest on, become)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통치권이 그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온 인류의 통치자 곧 왕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온 우주의 통치자가 되시는 그 남자 아기의 별명이 무엇입니까?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별명은 왕으로 오신 그 남자 아기가 저와 여러분을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 성경은 ‘기묘자’와 ‘모사’는 같이 묶어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기묘한 모사’([eAy al,P,, Wonderful Counselor)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조언자’라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적을 이기기 위한 기막힌 전술을 펼치는 왕이라는 것입니다.
     이 남자 아기가 전쟁과도 같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정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 기막힌 상담가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rABGI lae, Almighty God)은 ‘강한 하나님’ 또는 ‘능력의 하나님’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책임져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왕이 진정으로 나라와 백성들을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아기로 태어나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d[;ybia], Everlasting Father)라고 말합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있습니다.
     왕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라는 말입니다.
     전쟁 시에는 왕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평화로울 때는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것이 진정한 왕입니다.
     자기 자식을 책임지고 키우는 분이 아버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영원히 그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시기 위해 아기 예수님이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평화의 왕’(~Alv'-rf;, Prince of Peace)이라는 것입니다.
     왕은 국가의 평화를 책임져야 합니다.
     혼란과 불안이 아니라 평화와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아기 예수님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평화는 물론 우리 각자의 평화를 책임져 주시는 분입니다.
     악한 권세를 제압하고, 진정한 평화를 우리 삶에 주시기 위해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이런 분이 태어났다는 것은 이 남자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를 위해 나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 삶의 평화를 결코 빼앗기지 않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한 남자 아기가 우리에게 나고 우리에게 주신 바 된 마지막 의미는,
     III. 그 아기가 우리의 것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실 자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9절은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라고 말씀합니다.
‘한 명의 아들’(a son)로 이해할 수 있지만 결국 ‘하나 밖에 없는 아들’(the Son)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자신의 전부를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도 같은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너무 사랑해서 독생자 곧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저와 여러분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 아들을 그저 가지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거듭해서 “우리에게” 대제사장 또는 큰 제사장이 “있다”고 말합니다(히 8:1; 10:21).
     여기서 ‘있다’는 말은 그저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졌다’(e;cw, have)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대제사장 또는 큰 제사장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오늘 본문과 연결시키면 저와 여러분이 우리에게 나고 우리에게 주신 아기 예수님을 소유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기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것으로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선물입니까?
     그래서 아기 예수님은 온 인류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가장 소중한 선물 곧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거저 주신 이 구원의 은혜에 깊이 잠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Application) 그렇다면 아기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셨고, 우리를 위해 오셨고, 우리의 것으로 오셨다는 이 사실을 깨달은 우리는 이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먼저, 그 예수님을 나의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중에 선물을 싫어하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가장 위대한 선물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님을 나의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2000년 전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나의 것으로 삼는 쉬운 길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나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오셨고, 나의 것이 되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주신 최고의 선물인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삼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둘째, 나도 이제 다른 사람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늘 ‘부족하다’, ‘없다’고 말해도 사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성실한 아내도 있고, 독립심이 강한 아들도 있고, 천성이 쾌활한 딸도 있습니다.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형제들이 있고, 여전히 저를 좋아하는 선생님과 선배들과 친구들과 후배들과 제자들이 있습니다.
     좀처럼 아프지 않는 육체도 있고, 섬길 수 있는 좋은 교회도 있고, 함께 마음을 다해 동역하는 좋은 성도님들도 있습니다.
     더구나 통장에 잔고도 조금 있고, 아내가 몰고 다니는 작은 차도 한 대 있습니다.
     
     직장 다닐 때보다는 몸이 많이 가벼워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이제 이것들을 점점 더 비우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예 통째로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마음에 남아 있는 이기심의 찌꺼기를 다 비워내고 정말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성탄의 계절에 우리 모두가 이런 삶을 연습하게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CONCLUSION:
     (Closing Image) 미국의 시인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 1879-1967)는 ‘회상 바위’(Rememberanc Rock)라는 자신의 책에서 “아기는 이 세상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아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기를 “큰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소화기관이자 책임 없는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출생에서부터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망각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예외 없이 아기로 태어났고,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았으며, 누군가로부터 지혜와 지식을 배워 오늘 여기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기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Closing Repetitio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도 이 땅에 한 남자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육체의 부모님들을 의지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와 똑 같은 성장의 과정을 겪으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였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저와 여러분을 건져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쩌면 지금도 누군가를 의지해야 설 수 있는 영적인 아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낙심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아기가 있다는 것은 여전히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이 기쁘고 복된 성탄의 계절에 마음껏 아기 예수님을 소유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 모두가 서로 다른 사람의 것이 되도록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연습하게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런 복된 삶을 힘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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