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7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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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38–42 (NKRV)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사랑하십니다. 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니라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한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이시간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함께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한 마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마을에는 마르다라 하는 여인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베다니’ 라는 곳으로 추측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마르다에게는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동생은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일하지 않고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과 함께 온 일행에게 대접할 음식을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마르다 입장에서 마리아가 좋게 보일리 없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께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쉽게 말하면 마리아에게 자신을 도와주도록 말해달라는 것입니다.
이 상황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굳이 예수님께 말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저 마리아에게 살짝가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이야기 했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마르다는 예수님께 이야기 한 것일까?
그 안에는 3가지의 의도가 있습니다. 먼저는 자신이 바쁜 중에도 자신을 돕지 않는 마리아를 공개적으로 비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모든 것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씀 하지 않는 예수님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마리아에 비해 지금 접대를 열심이 준비하고 있는 사진의 행위가 옳다는 것을 예수님을 비롯한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밝히고 싶은 것입니다. 다시말해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마르다의 마음을 다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다를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그의 잘못된 행동은 고쳐 주셨지만 마르다의 상황도 주님은 이해 하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마르다의 이러한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본문 41절에 마르다야 마르다야 라고 하시며 마르다의 이름을 두번 부르십니다. 이것을 학문적 표현으로 이중 호격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신약의 기사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중 호격을 사용하시는 경우가 몇번 나타나는데 이렇게 이중 호격을 사용하실 때마다 예수님은 이름을 부르는 대상에 대해 연민을 품고 깊은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누가 복음 22:31 에는 베드로가 부인 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시몬아, 시몬아’라고 말씀하셨고 사도행전 9:4 에는 다메섹에 가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러 가는 사울에게 나타나 ‘사울아 사울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마르다야 마르다야’부르신 것은 마르다가 식사를 대접하려는 정성스러운 마음을 이미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정어린 마음으로 마르다를 불러 그의 잘못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혹여나 하나님의 뜻을 몰라 잘 못을 저질렀을 때 주님이 우리를 이와같이 애정어린 마음으로 우리를 보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를 향해 무섭게 노려보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감시하듯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라, 늘 애정어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시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대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여러가지 방법으로 분노하시지만 그마저도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예수님은 마리아의 믿음으로 한 행동을 인정해주시고 기억하셨습니다.
당시 문화에서 집은 남성의 공간과 여성의 공간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역할도 엄격하게 구분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거실은 남성들의 만남의 장소 였습니다. 반면에 부엌을 비롯하여 외부인에게 드러나지 않는 다른 구역은 여성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들 사이에 여자가 편안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매우 불미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승의 발치에 앉는 것은 분명히 남성의 역할 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발치에 앉는다”는 말은 스승의 제자가 되겠다는 것을 뜻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마리아가 하는 행동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고백의 행동인 것입니다. 오늘날은 전혀 상관이 없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당시 여자는 누군가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여자는 랍비가 도리 수 없었고, 그러기에 모든 랍비들은 남자였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랍비들은 매일 “불신자나 야만인이나 노예나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할 정도 였습니다. 이렇게 여자들은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마리아가 예수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는것은 엄청나게 용기있는 믿음의 행동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도 지금 마리아가 하는 행동이 잘 못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예수님 발 앞에서 말씀을 듣는 결심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리아의 믿음의 행동을 좋은 편을 택하였고 이것을 빼앗기지 않게 하겠다는 말씀을 하시며 마리아의 믿음의 행동을 인정하시고 지지해주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고백을 하고 믿음대로 행동한다고 이 세상에 다 좋은 일들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믿음을 선택해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사람들은 알아주지 못해도 주님은 우리의 마음과 믿음을 다 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 수아 4장을 보면 요단강을 건넌 후 그것을 기념하여 길갈 이라는 곳에 돌을 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열두 돌을 세우신 이유는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로 요단강을 건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념비를 세웁니다. 바로 요단강 한 가운데 열두 돌을 세웁니다. 기념비를 물 속에다 세우는 경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물 속에 있으면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세운 기념비도 마찬가지 입니다. 강바닥에 세웠기에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볼 수 없는데 어떻게 그것이 기념비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물 속에 있으면 아무도 볼 수 없는 것입니까? 요단강에 잠겨 있는 열두돌은 사람은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니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호수아가 아무도 볼 수 없는 물 속에 기념비를 세운것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한분만을 위해 세운 기념비 입니다.
우리의 어려운 마음 또 상황 환경 심지어 우리의 믿음조차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 믿음의 결심과 믿음의 행동을 주님은 아십니다. 사람들은 모를 수 있지만 주님은 아십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께 이새벽에도 기도하시며 위로를 얻고 기도하시며 소망이 회복되는 은혜가 있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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