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8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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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시는 하나님

우리 고3데이를 위해 열심으로 준비하시는 준비팀 여러분들, 정말 고생이 많습니다. 이제 우리의 사역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가운데 어떤 생각과 감정들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걱정과 염려가 있을 수 있고, 기대와 소망이 있을 수 있고, 여러 복잡한 마음들이 있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시간 모든 것들은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오늘 이시간 여러분에게 어떤 말씀을 주시고자 하시는지 함께 나누면서 내일을 마음으로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위로를 해준적이 있나요? 보통 어떻게 위로를 하시나요? 우리가 보통 이런 이야기들을 할때 떠오르는 알파벳이 있죠. T와 F라는 알파벳입니다.
여기도 T이신 분들과 F이신 분들이 다 있을텐데, 보통 T들은 어떻게 이야기를 하죠? 그 사람의 상황에 맞게 가장 도움이 될만한 행동들을 조언하여줍니다.
F들은 어떻게 이야기를 하죠? 그 사람의 감정상태를 생각하고 공감을 해주죠.
이 두가지 모두 상황과 사람에 따라 필요하고 좋은 위로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렇다는 것은 반대로 상황과 사람에 따라 최악의 방법이 될수도 있다라는 것이겠죠.
우리 하늘고 교사이신 분들은 제가 지난 몇주간 욥기말씀을 나누면서 이 위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계실거에요. 욥기에서 말하고 있는 올바른 위로의 방법이 뭐라고 했었죠?
바로 나의 관점에서 위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에서, 그 사람에게 어떤 것이 가장 좋을지 판단하여 위로를 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내일 고3데이를 하는 것도 큰 틀에서 보면 위로의 차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수능과 입시라는 큰 시험을 넘겨낸 우리 고3학생들에게 고생했다고 함께 위로해주는 것이겠죠.
그러면 준비팀인 우리가 올바른 위로의 모습을 갖춰야겠죠? 그래서 저도 오늘의 본문을 함께 준비하였습니다.
참 신기한 것이, 제가 본문을 준비하는게 순서를 따라서, 그러니까 지난번 우리가 고린도전서 십오장을 나누었으니까 흐름을 따라 고린도후서 일장을 나누는 것인데요, 1장의 시작부분이 바로 위로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더라구요. 어쩌면 지금 시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말씀이겠죠?
그래서 우리가 이시간 함께 이 바울이 이야기하는,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위로하시는지, 우리는 어떻게 위로하여야할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고린도후서, 즉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두번째 편지의 시작부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절과 2절에서 인사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3절에서부터는 감사에 대한 표현을 넣죠.
이것은 바울서신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편지글의 순서방식입니다. 문안인사로 시작하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전한 후에,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담는 전개방식인 것이죠.
그래서 오늘 첫 구절 역시도 하나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어떤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고 있나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가장 먼저 하나님을 그냥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한다는 것을 바울이 나타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지만 하나님께 닿을 수 있기 때문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실수 밖에 없는 것이겠죠.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모든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자비가 많으신 자비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바울은 마지막으로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우리의 주님을 표현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바울이 위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죠.
그리고 4절부터 어떤 위로의 하나님이신지를 이야기합니다.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 우리가 다른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게 하신다라는 것이죠.
사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심으로, 우리도 다른 이들을 함께 위로할 수 있다라는 것이죠.
이것은 무슨 이야기겠어요? 우리가 각자의 한 인생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머리되심으로, 하나된 교회 공동체로 모인 자들이라는 것이겠죠. 그래서 서로서로 연합하고 연결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같은 선상에서 이어지는 5절의 이야기를 합니다.
고린도후서 1:5 NKRV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해 예수님과 어떻게 되었어요? 연합한 상태가 되었죠. 그랬기 때문에 어제 말한 것처럼 우리 죄가 전가되고, 예수님의 의가 전가되었다고 했잖아요.
그렇게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는 한몸된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 속에서 고난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마가복음 13:13 NKRV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는 세상 속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으로 인해 정말로 육체적 핍박을 당하였구요, 우리 한국 교회의 선배들 역시도 동일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러한 육체적인 고난을 없겠지만요, 우리는 어떤 고난을 당하죠? 심적인 고통을 당합니다.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행하는 것과 다르게 행해야 할 때가 있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거리낌없이 하는 것들을 우리는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당연히 우리를 욕하고 비난하겠죠.
혹시 여러분들 옛날 영화인데, 불의 전차라고 아시나요? OST로도 유명한 영화인데, 그 주된 내용이 뭐냐면, 영국의 실력있는 마라토너가 올림픽에 출전하는데, 그가 독실한 크리스챤이었거든요? 그런데 자신의 주종목 경기가 주일에 잡혀버린 거에요. 우리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마음에는 찔리지만, 어떻게 해요? 몇년을 그것때문에 준비했는데, 당연히 죄송하다고 기도한 후에 출전하겠죠.
그런데 주인공은 출전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수많은 비난의 목소리들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대신 주종목이 아닌 다른 경기에 출전하죠. 그리고 당당하게 메달을 따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에요. 세상이 보았을 때에는 왜 저러냐 하면서 이상하게 보겠지만,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가기에 이런 고난을 알아서 겪게 된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바울이 또 이야기하는 것은 뭐에요?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지만, 동일하게 우리가 받는 위로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에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불의 전차의 주인공이 자신의 신앙으로 선택한 길에서 실패하지 않은 것처럼,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 우리가 큰 위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불의전차 주인공의 메달과 같은 세상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에는 그 주인공이 메달을 받았기 때문에 위로를 받았을까요? 아마 아닐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셨고, 함께 달려주셨다는 생각으로 그는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우리 안에 그리스도로 인한 환난이 있지만, 그리스도로 인해 큰 위로도 받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6절에서 자신이 환난을 당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구원을 주기 위함인 것이요, 자신이 위로를 받는 것 또한 자신을 통해 성도들이 위로를 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위로가 성도들의 가운데 역사하여 혹여나 바울이 겪었던 것 같은 고난을 겪게 되더라도 그것을 견딜 수 있게 한다고 말하죠.
그러면서 이어지는 7절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고난에 함께 참여하였기에, 위로에도 함께 참여할 것을 믿고 있고, 그렇기에 성도들을 향한 소망이 있음을 바울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공동체 속에서 위로가 피어나는 방식입니다. 비록 누군가 고난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공동체가 함께 나누고, 그것을 통해 위로를 받고, 또한 누군가 큰 위로를 받게 되면, 그것을 통해 또 모두가 위로를 받게 된다는 것이죠.
예전에 어느 광고에서 사용하는 캐치프레이즈가 있었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 어쩌면 우리 교회공동체에 너무나도 어울리는 말이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함께 나누는 공동체 안에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그랬던 것처럼 소망이 견고하게 자리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어지는 8절에서부터 자신이 경험한 위로의 순간을 나누는데요, 자신이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궁금증은 과연 바울이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 무엇이냐일텐데요, 편지글의 특징 중에 하나이겠지만, 수신자와 발신자가 서로 잘 아는 내용이면 굳이 상세하게 기술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고린도후서에서도 그 이야기가 상세하게 기록되어지지는 않았구요, 우리 역시도 이에 대해 추측만 할 수밖에 없게 되었죠.
학자들에 따르면, 성경에 기록된 많은 이야기들이 이 환난일 것이다라고 등장을 합니다. 그 중 어떤 이야기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이런 것들은 있지만, 제 생각에는 지금 이순간에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왜냐, 바울이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바울은 아시아에서의 환난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다고 말을 하죠.
환난을 하도 많이 당해서 이 환난이 어떤 환난인지도 알지 못하게 하는 어찌 보면 환난 장인인 바울이 그정도로 힘들었다고 하니, 엄청난 환난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죠.
하지만 바울은 그 중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9절 하번절에서 뭐라고 하죠?
이것을 주신 이유는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하늘고 교사분들은 떠오르는 사람이 있죠? 바로 욥이 떠오르겠죠. 그때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무엇이었어요?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도우심을 구하며 그를 의지하는 것일 뿐이라는 거였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큰 고난을 주실 수도 있어요. 오늘 바울이 그랬듯, 또한 욥이 그랬듯, 대체 왜? 라는 질문이 생길 정도로 모든 소망이 끊어지는 것 같은 고난을 주실 때가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고난을 주시는 이유가 뭐라는거에요? 인간적인 소망을 내려놓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워낙 죄성이 많다보니, 어떻게든 자신을 의지하고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적인 소망을 끊어놓으시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죠.
성경에도 이런 경우가 등장합니다. 제가 자주 언급하는 갈멜산 전투 이후 엘리야 선지자의 모습이죠. 갈멜산에서 수많은 바알 선지자들을 무찌르고도 이세벨로 인해 죽음의 고난을 주시고, 그로 인해 엘리야가 할 수 있는 끝까지 도망친 후에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죠. 그리고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그를 위로하십니다.
이처럼 우리 힘으로는, 세상의 방법으로는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게 되고, 주님은 그 순간 우리를 위로하며 도우실 것입니다.
바울은 10절에서 그러한 고백을 하고 있죠. 자신이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에서 건짐을 받은 것처럼, 또 우리를 건지실 것이고, 앞으로도 동일하게 우리 공동체 가운데서 그렇게 일하실 것이다.
그러니 바울은 마지막으로 공동체의 기도를 구합니다. 함께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생각하고 간구하며 나아갈 때, 공동체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클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오늘 이 본문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통해 위로하시고, 위로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늘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에 고난이 있고, 고통이 있고,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죠.
하지만 그 고난이 반드시 있기에, 우리 가운데에는 반드시 위로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로는 교회 공동체를 통해 우리에게 더 크게 전달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교회 공동체가 함께 호흡해야 합니다. 고난이 있다면 그것을 함께 나누고, 즐거움이 있다면 그 또한 기쁨으로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고3데이로 함께하는 것 또한 그것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입시로 힘들었던 시기, 그리고 그 후에 주님께서 주신 위로를 받았기에, 우리가 그것을 지금의 고3친구들에게 나누는 것이구요,
또한 고3을 비롯한 우리 공동체 모두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신, 또한 주실 위로와 은혜를 잘 알고, 믿고 있기 때문에, 연탄을 통해 세상의 이웃들에게 그 위로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모여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위로를 함께 더욱 풍성하게 나눌 수 있을 것이구요, 그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바울이 오늘 말씀 마지막에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준비팀이 그 위로를 바라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운데 함께하셨던, 또한 함께하실 주님을 의지하며, 우리가 믿는 주님, 그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넘치는 은혜가 고3데이의 자리에 함께하는 모든 공동체 가운데 크게 전달 되어질 수 있기를 소망하며 나아가시는 모든 준비팀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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