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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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지켜주시고, 은혜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
능력과 믿음의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말씀을 사모하여 주 앞에 나온 우리 영혼을 불쌍히 여기사
성령으로 기름부어 주시고, 내일을 살아갈 새 힘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앞에 나오며,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주실 은혜를 사모하는 심령으로 귀한 예물 드리는 손길들 있습니다.
감사헌금, 일천번제, 00헌금, 00헌금을 올리오니
받으시고, 만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드릴 것이 차고 넘치게 부어 주시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성령의 지혜로 깨닫게하시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믿음도 부어주소서.
부족한 종이 말씀을 대언할 때, 나의 연약함은 감추시고
하나님의 지혜만 나타나게 하옵소서.
그렇게 일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모든 말씀 오늘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욥기 1장 1절 말씀입니다.
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할렐루야~ 우리 앞뒤 옆사람들과 인사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큰 은혜 받으세요.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늘은 욥기 1장 1절 말씀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신앙생활 하면서 인내의 아이콘으로 늘 회자되는,
그러면서 동시에 본이 되지만, 그의 인생처럼은 되고 싶지 않은
가깝지만 먼 당신. 좋지만 부담스러운 인물.
욥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기 원합니다.
욥은 아브라함과 동시대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고난의 스케일,
그리고 천상세계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 사단의 대화를 보며,
마치 신화 속의 이야기처럼, 그리고 성경 속 이야기지만,
실화는 아닌, 교훈을 주기 위해 오래전부터 유대문화에
전해내려오는 구전 이야기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많은 본문 말씀을 통해
그가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며, 성경의 여러 인물과 함께
우리가 본받아야 될 신앙의 선배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성경은 욥을 역사상 실제로 존재했던 노아, 다니엘과
같이 취급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야고보서는 그당시 고난 받았던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을 이긴 모범적인 신앙인물로 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유대 사회에 욥이 단순히 신화적인 인물로 여겨졌다면
실제적 고난에 처해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욥의 사례가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성경으로 전해져 오고 있는 야고보서는
고난을 당하는 자들에게 욥의 인내를 배우라고 권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욥.
그러나 사실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
그리고 성경조차도 사실 맨 앞장과 뒷장만 즐겨 있고,
중간부터는 어렵고 지루한 논박 이야기들 때문에
잘 읽혀지지 않았던 욥의 이야기.
오늘 우리가 욥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세계와
그 세계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함께 살펴보며,
더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귀한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먼저 욥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악을 멀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점을 하나님도 인정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하나님이 욥을 자랑합니다.
욥처럼 악을 멀리한 사람이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악을 가장 멀리 했다는 것은, 반대로 생각하면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가장 하나님 편에 섰던 사람이
욥이라고, 하나님이 사단에게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욥은 많은 부를 소유한 부자였습니다.
3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하나님께서 욥을 정말 아끼고 사랑하셔서 그런지
욥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욥이 이런 많은 부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하나님을 가장 많이 사랑하고,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알다시피, 사단의 말처럼
욥이 하나님께 축복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복을 받은 만큼 하나님을 사랑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많은 부를 가지고 있으면,
재물을 가난한 자들과 나누거나 선한 일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재물에 욕심이 생겨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재물을 빼앗고,
권력을 남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챙기며,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욥은 재물과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경외하며, 악에서 멀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만큼 더 많은 유혹을 이겨내고 하나님을 선택할 만큼
큰 믿음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복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믿었을 것이라는
기복신앙이 아니라, 참 믿음을 소유한 성숙한 신앙인었던 것입니다.
욥은 자신의 자녀들 또한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잘 양육하는 사람이었습니다.
4 그의 아들들이 자기 생일에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누이 세 명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더라
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사실 자녀들이 이렇게 신앙안에서 바르게 성장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일반인의 자녀들도 쉽지 않은데, 특히나 고위층의 자녀,
재벌들의 자녀들이 바르게 자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재벌들은 어려서부터 집에서 일하는 집사, 가정부 등
수많은 종업원들을 상대하며,
늘 사람을 아래 두는 것에 익숙하게 자라옵니다.
그래서 거만함과 교만이 늘 몸에 베어있습니다.
그런데 자녀 교육의 문제가 부자들만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많은 성도들에게 본을 보여야 하는
직분자의 경우 자녀들의 부모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며,
잘못된 가치관으로 인해 방황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래서 장로님, 목사님 가정의 자녀들이
단순히 교회만 안나오는 것이 아니라,
극심한 실망과 배신감으로 인해 일부러 극단적인 방향으로
범죄자가 되거나, 사회의 불편을 주는 부적응자로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욥의 자녀들은 부모가 신앙생활 뿐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존경받는 훌륭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교육을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자녀들이 욥의 성품과 인격을 보고 배웠을 수도 있지만,
부모의 수고가 없이 자녀가 그냥 자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래저래 욥은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칭찬받는
정말 완전한 자였습니다.
이렇게 욥은 현실세계에서 하나님께, 사람에게
복을 받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욥의 이야기는
이 모든 현실의 배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의 영향력이
분명 존재하며, 그 영향력은 작지 않으며,
그 세계에서 결정되는 작은 선택 하나가
우리 인생에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세계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이 질서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육체를 가진 우리가 알기엔
매우 신비롭고, 초월적인 일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가보지 않았지만,
분명 그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의 배경에
하나님과 사단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앞에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닌 사단이 나타났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의 믿음을 칭찬하며, 욥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평가에 대하여 사단은 이렇게 반박합니다.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사단의 생각에는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재물과 복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단이 하나님의 승부욕을 불태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의 신앙을 중심까지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욥을 시험해도 좋다고 허락하십니다.
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어찌보면, 욥의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한 일입니다.
욥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하나님을 잘 믿는 것밖에 없는데,
잘 믿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욥을 너무 신뢰한 나머지
어떤 고난도 다 허용해버리신 것입니다.
차라리 믿음이 조금만 연약했더라면,
하나님이 욥의 중심을 보셨을 때에 뭔가 불안한 요소가
조금만이라도 보였더라면 이런 시련은 당하지 않았을텐데...
우리의 미련한 지혜로는 너무 억울하고
불공평해 보이기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에서
하나님과 사단의 관계 가운데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현상만을 관찰하고
거기에서 원인과 결과를 도출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 너머의
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토록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욥을 자랑함으로 생겨난 결과에 집중합니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곧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의 세계의 관점에서 본다면,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욥을 자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자랑이 잠깐 한 순간이라 생각하지만,
영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인정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길어야 100년입니다.
그런데 그 100년의 인생이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점과 같습니다.
그 영원의 세계에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면
사실 점과 같은 100년의 인생쯤,
전부 드려도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이 상식적인 논리입니다.
이 논리를 알지 못하면, 우리 인생이 죽은 후에
영원한 세계에서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 진리를 알면서도,
지금 당장의 고난을 견디는 것이 쉽지 않아,
끝까지 참고 견디지 못하여 믿음을 놓치는 경우도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에서 우리의 싸움이 현실 세계에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세계,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 진짜 싸움이라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가 싸움을 잘 하려면 사단의 존재를 잘 인식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잘 배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단은 어떤 존재인가?
사단이 하는 주된 일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끊거나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욥의 고난에서도 보면, 사단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오해하도록
욥의 친구들과 여러가지 환경을 통해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사단은 욥의 소유물을 치기 시작합니다.
13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14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15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6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7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8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19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욥의 일꾼들이 들에서 농삿일을 하고 있는데
스바 사람이 전쟁을 일으켜 욥의 소유물들을 약탈해 갔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양과 종을 불살라 버렸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갈대아 사람들이 세 때를 이루어
낙타를 빼앗아 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맏아들이 온 형제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할 때에
갑작스럽게 대풍이 불어와 욥의 모든 자녀들이 죽었습니다.
사단은 무자비하고 잔혹하게 욥의 주변을 쳤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사단이 직접 나타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사단이 나타난 대신,
스바 사람이 그랬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다.
갈대아 사람들이 쳐들어왔다.
대풍이 불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상적으로만 본다면, 분명 사단의 존재가
감지되지도 않고, 알수도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욥과 그 주변 사람들도 이 고난의 배경에서
하나님과 사단의 논의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논의는 둘째 치더라도, 욥이 온전한 사람이란 것을 안다면
한번쯤은 사단의 계획과 의도를 눈치챌만도 한데
그만큼 우리 삶에서 미리 사단의 정체를 인지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정체를 전혀 알아채리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인들에게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배후에 역사하는 사단의 활동을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욥의 세친구와 엘리후는 욥의 고난을
현실세계의 관점에서만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현실만 본다면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욥이 받는 고난은
욥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인생이 항상 인과응보의 법칙을 따르지 않습니다.
악을 행하지만 복을 받고, 선을 행하지만 고난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계획하심이 있음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욥은, 그 당시에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시대였음에도, 모든 재물과 자녀들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은 자신의 고난에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의 말처럼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욥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직한 자였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떳떳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욥은 자신의 고난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은 고난의 배후에 하나님과 사단의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욥은 알수 없는 고난으로 인해서 너무 고통스러워
자신의 옷을 찢으며 괴로워 했습니다.
옷을 찢는 행위는 극한 슬픔의 표시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서는 대개 옷을 찟으면
극도로 화가 난 것으로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서로의 감정이 폭발할 때, 내가 너를 죽일 것이다.
나는 힘이 쎄다. 너를 죽일 힘이 있다.
이런 강함을 드러내기 위해 상의를 찢으며 근육을 자랑하기 때문에
대개 옷을 찟으면 그런 상황에서의 모습을 상상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유대 문화에서 옷을 찟는다는 의미는
부끄러움, 자신을 낮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에서 너무 큰 슬픔을 표현할 때 옷을 찟습니다.
그 당시 유대 사회는 대부분 가난하였고,
옷 한벌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옷은 재산이며,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귀중품이었습니다.
그런 옷을 찟게 되면, 자신의 재산과 신분을 모두 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겸손과 부끄러움, 자신을 낮추는 의미에서
옷을 찢는 것이었습니다.
욥은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며 겸손하게
옷을 찢으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은 결코 자신에게 고난을 안겨준 스바 사람이나
갈대아 사람, 자연 재해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거둬가신 것 뿐이라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렸습니다.
이것을 모두 지켜본 사단은 하나님과 그분의 자랑이었던
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불어, 욥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소유물이나
자녀들과 같은 외적인 복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욥은 그저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견뎠을 뿐인데,
하나님이 그분을 적대하고, 반대하는 사단에게 인정을 받은
역대 최고의 반전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영적인 세계에서 사단이 하나님을 인정한 사건은
온 우주 만물, 모든 세계관을 통틀어서 정말 위대한 사건임에
틀림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인간 세계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전혀 알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의 눈과 귀가 열려서 이 세계의 일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조금이나마 느끼고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의 방향과 목적은 완전히 정 반대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섬기고 있습니까?
혹시 자녀들이나 물질적인 복 때문은 아닙니까?
우리는 외적인 조건이나 상황 때문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욥처럼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신뢰 해야 합니다.
주신이도 여호와, 거두신 이도 여호와.
이 고백이 늘 우리 삶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 속에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며, 그 세계의 영향력이
우리 삶에 가장 큰 변화와 문제의 인과응보과 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우리가 늘 보이지 않는 세계 안에 살고 있음을 생각하고
늘 깨어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며 묻고, 듣고,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사람,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는 놀라운 능력의 사람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제목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영의 눈과 귀를 열어 주시옵소서.
고난에 흔들리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안에 있음을 끝까지 믿고 신뢰할 수 있도록
늘 깨어서 기도하여 성령님께 묻고, 듣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2024년 다음세대에 희망을, 예비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그런 서울제일교회가 되게하여 주소서
우리교회 아픈 사람들, 주변에 믿지 않는 영혼들, 그들의 영과 육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