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 입니다.

졸업과 진금 금요철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7 views

졸업과 진금 금요철야

Notes
Transcript

꿈나무 졸업과 진급 금요철야 교사 헌신예배로 231229

고린도전서 9:24–25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제목: 졸업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 입니다.
오늘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생활의 원리를 운동경기에 비유하여 교훈하신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는 바울 사도에 의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데, 바울사도가 생존했던 당시 그리스와 로마에는 여러 가지 운동경기가 성행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쇠로된 장갑을 끼고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시합을 계속하는 복싱경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 대단한 인기를 모았던 경기 가운데 하나가 레슬링입니다. 오늘날 “그레꼬 로망형”(Greco Roman Style)으로 불리는 레슬링이 곧 그리스, 로마시대에 행해지던 경기방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맹수와 싸우는 경기도 있었습니다. 이 경기에 동원되는 사람은 주로 죄수들이었는데, 맹수와의 사투에서 살아남을 경우 죄를 사면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박해 하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같은 경기의 희생물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오늘날 스타디움(Stadium) 즉 경기장으로 불리는 것은, 본래 그리스어로 스타디오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스타디오란 606.75피트, 약 200m의 거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당시 그리스에 있는 경기장들이 한 스타디오(약 200m)로 규격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스타디오라 하면 경기장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스타디움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경기에서 이긴 사람에게는 월계수나 감람나무 잎으로 엮어 만든 면류관을 머리에 씌워줬습니다. 이 승리의 면류관은 곧 시들고 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이를 가리켜 썩을 면류관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운동 경기자의 모습을 비유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1. 최선을 모두 합니다.
고린도전서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본문 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하셨습니다. 육상선수가 사력을 다해 달린 후 우승의 영광을 얻듯, 신앙인도 이렇게 믿음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여 남다른 기량을 지닌 운동선수들의 경우 그들에게는 부와 영광이 주어지게 됩니다. 삶의 승리와 행복을 바라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방법을 말씀하셨는데,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잘 섬기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역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잠언 2:4–5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디모데후서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에베소서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 최선을 모두 합니다. 2. 절제를 모두 합니다.
고린도전서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 음식과 오락, 수면 등에 있어서 자신을 절제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올림픽 경기장에 나가 경기하는 선수들의 경우 어떤 경기는 불과 몇 분밖에 되지 않습니다.
4시간 자면 서울대 ,,5시간 자면 일반대,,, 6시간 자면 지방대 간다
그 몇 분 동안에 승패가 결정됩니다. 이 몇 분밖에 안되는 경기를 위해 몇 년 동안 자기와 싸우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합니다. 그 결과 영광이 있습니다. 이 날이 있기 까지 그 얼마나 많은 것을 참았겠습니까? 젊음의 온갖 욕망을 참으며 그들은 인내했습니다. 영광은 하루아침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와의 싸움인 절제 뒤에 오는 것입니다. 올림픽의 꽃으로 불리는 마라톤 금메달을 딴 황영조 선수의 말을 기억하실 줄 압니다. 연습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이 들었든지 지나가는 차에 뛰어 들어 죽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 승리의 영광이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기도,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살리는 전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웃을 섬기는 봉사 등, 이 모든 것은 안일을 추구하려는 육신의 욕망을 이겨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절제 후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1. 최선을 모두 합니다. 2. 절제를 모두 합니다. 3. 목표가 분명 합니다.
고린도전서 9: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시청자가 보내온 비디오를 보여주며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유치원 어린이들의 운동회였는데, 바턴을 들고 뛰다가 자기편 다음 선수에게 주어 운동장을 한바퀴 도는 이어 달리기였습니다. 한 어린이가 자기에게 바턴을 주려고 힘을 다해 뛰어오는 아이를 향해 서서 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턴을 받아들자 앞을 향해 뛰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달려온 그 방향을 향해 뛰어 갔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렸습니다.
이것이 곧 방향 없이 달리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사야 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사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살아갈 때 보람을 느끼게 되며,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하나님의 은총이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타고난 재능이 다릅니다. 살아가는 방법이 각각 다릅니다. 일하는 직업이 다릅니다. 그러나 목적은 같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를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림 받은 사람이 에녹입니다. 이 에녹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하기를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 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난 두 여인이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마더 테레사와 다이애나가 그 사람들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열 일곱 살에 수녀가 되어 칠십여 년을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갔습니다. 그녀는 숨질 때까지 인도의 가난한 자들, 버려진 이웃들과 함께 살았고 그들을 사랑하며 섬겼습니다. 세계는 그의 사랑에 감동하여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테레사의 장례를 힌두교와 시크교도가 대부분인 인도에서 국장으로 치르면서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하는 마음을 극진히 표현했습니다. 장례식에는 종교는 달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한 여인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기 위하여 수만 명이 줄을 이었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앞서 영국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이애나는 찰스 왕태자와 이혼하면서 수백억의 위자료로 거부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이집트 출신의 최고 갑부와 함께 생활하며,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테레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았고, 다이애나는 자신의 욕구충족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이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에 일생을 바친 슈바이처와 프랑스의 작가 카뮈입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해에 노벨상을 받은 유명인 이었습니다. 슈바이처는 평화상을, 카뮈는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둘은 모두 상금으로 1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카뮈는 그 상금으로 파리 근교에 멋진 별장을 구입했고, 고급승용차를 사서 타고 다녔습니다. 카뮈는 그 차를 타고 별장으로 가든 어느 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슈바이처는 그 상금으로 아프리카 랑바레네 병원을 지었고, 그 병원에서 아프리카의 불쌍한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여생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영원합니다.
갈라디아서 6:7–9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인생을 사노라면 두 가지 길이 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그분을 의지하며 사는 길이 있고,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는 길이 있다. 배는 그 배를 조종하는 선장이 있기에 풍랑 중에도 무사히 항해하여 항구에 들어갈 수가 있다. 인생길도 우리를 조종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광야 길을 무사히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곳에 갈 수가 있다. 사울과 다윗은 둘 다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그들은 전혀 다른 길을 갔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본인뿐만 아니라 자자손손이 은혜를 받았다. 그러나 사울은 불순종하고 자기의 길을 가다가 당대를 넘기지 못하고 비참하게 멸망했다. 근대 역사에도 대조되는 두 사람이 있다. 링컨과 나폴레옹은 거의 동시대를 살았지만 정반대의 길을 갔다. 링컨은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16대 미국 대통령까지 된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가 행한 게티즈버그의 연설을 통해 그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 있음을 보여 주었다. 반면에 나폴레옹은 링컨과 달리 처음에는 잘 나갔다. 16세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26세에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이 되었다. 33세에 종신 대통령이 되었다가 35세에 프랑스 황제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믿었기에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큰소리 쳤다. 그런 나폴레옹에게도 불가능이 찾아왔다.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고 파리까지 적에게 내준 뒤 결국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귀양살이하다 죽었다. 지도자의 방향은 참으로 중요하다. 지도자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 자신을 믿는 자는 망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흥한다.
1. 최선을 모두 합니다. 2. 절제를 모두 합니다. 3. 목표가 분명 합니다. 4. 법대로 경기 합니다. 딤
디모데후서 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육상에서 금메달을 딴 캐나다의 벤존슨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약물복용으로 판명되어 금메달을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대신 미국의 칼루이스 선수에게로 금메달이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의 법을 기록한 책이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중심하여 살아가야 그의 신앙이 인정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기도를 하되 법대로 해야 합니다. 회개하며 하는 기도라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는 기도라야 합니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라야 합니다. 그리고 응답될 때까지 인내하는 기도입니다. 봉사하되 법대로 해야 합니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도록 하는 은밀한 봉사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거나 칭찬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순수하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봉사하되 다른 사람들과 화목을 도모하며 해야 합니다. 교회는 혼자서 생활하는 곳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독불장군식의 봉사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 화평을 깨뜨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봉사하되 겸손하게, 은밀하게 봉사할 때 하나님께서 그 봉사를 인정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되 법대로 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랑의 법칙은 이렇습니다. 되돌려 받기 위한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의 폭을 넓혀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2–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운동선수가 경기 법을 모르고 경기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반칙으로 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법을 알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워야 하겠습니다. 열심이 중요하지만 열심만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열심을 내되 법을 따라 내는 열심이어야만 합니다. 올해도 하나님을 섬기되 운동경기자의 모습처럼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감정이나 유혹에 대해 절제하는 것입니다. 삶의 목표가 분명하야 합니다. 법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경기의 승리자에게 영광이 주어지듯, 신앙의 승리자가 되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웃추가본문 기타 기능
두 가문의 비교 연구 뉴욕 주의 사회학자들이 한 아버지의 인생이 이후 세대들에 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했습니다. 이 연구를 위해 18세기 동시 대에 살았던 두 사람을 조사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불신자로 살았으 며 아내 역시 불신자였던 맥스 쥬크(Max Jukes)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아버지로서 후손들에게 정말 대단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문제는 부정적- 164 - 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공식 확인된 맥스 쥬크의 1,200명의 후손 들 가운데 440명은 방탕한 삶을 전전했고, 310명은 거지와 부랑자였습니 다. 그리고 190명은 창녀,130명은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100명은 알 코올 중독자, 60명은 습관성 절도범이었으며, 55명은 더러운 일의 희생 자, 7명은 살인자였습니다. 이 가문은 문제투성이로 가득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 려 세상에 부담만을 가중시키는 사람들뿐입니다. 그러나 또 한 명의 연구 대상자는 영국 식민지 시대였던 당시의 유명 한 목사이자 위대한 설교자이며, 미국의 영적 부흥을 이끌었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후손을 조사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는 경건한 가문에서 출생했고, 놀라운 믿음의 소유자였던 사라 피에르폰 트(SarahPierrepont)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들 부부는 마음을 같이 하여 후손들에게 믿음의 좋은 유산을 남기고자 했습니다. 그의 남자 후손들 중에는 300명의 성직자, 120명의 대학 교수, 110명의 변호사, 60명이 넘 는 의사, 60명이 넘는 저술가, 30명의 판사, 14명의 대학 총장, 미국 산업 계의 수많은 인물들과 3명의 미국 상원 의원, 그리고 1명의 미국 부통령 이 배출되었습니다. 482 조나단 에드워즈의 후손들이 당대의 미국을 움직 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사회에 긍정적 이며 생산적인 기여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이 두 사 람을 통해 시작부터 다른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두 가문에 아 주 사소해 보이는 것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맥스 쥬크와 같은 가문을 세우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이 우리에게 생긴 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는 조나단 에드워즈와 같은 존경받는 가문을 세우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의 삶은 부족해도 우 리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편 128편의 성경 본문은 그 가능성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된 가능성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럼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졸업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 입니다.
1. 최선을 모두 합니다. 2. 절제를 모두 합니다. 3. 목표가 분명 합니다. 4. 법대로 경기 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