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9 금요기도회: 요한계시록 1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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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년 한 해를 돌아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저희를 불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답게 살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저희를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주시고 그렇게 살게끔 인도하신 은혜를 기억합니다. 이 은혜를 기억하며 내년 2024년에는 더 나은 신앙, 더 나은 순종이라는 믿음의 진보가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내년에도 저희를 거룩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내년에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동행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계시록 18:1-10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2023년 마지막 금요기도회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지난 2023년 동안 금요기도회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제하셨습니다. 지난 한 해동안 우리와 교제하길 기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늘 2023년 마지막 금요기도회에서도 하나님과 풍성한 교제를 누리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어려운 성경이라는 인식으로 다가옵니다. 다른 성경들보다 직관적으로 보고 해석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계시록을 받은 당시 독자들은 이 의미가 무엇인지 바로 알았을 겁니다. 우리는 그 당시 사람들과 같은 시대, 공간, 문화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지, 이 요한계시록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될 때 당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성경들 못지 않게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는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방법 중 건강한 해석은 ‘상징적’ 해석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문자 그대로 보면 안되고, 어떤 것을 상징하는지를 보고 해석하는 것이 건강한 해석 방식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지 함께 살펴보도록하겠습니다.
먼저, 당시 시대적 배경을 소개하겠습니다.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요한계시록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수신 교회, 즉 2-3장에 등장하는 소아시아의 일곱교회는 세계를 제패하고 있던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던 상황입니다. 이 상황 속에서 일곱교회는 타협의 순간 속에 있었습니다. 황제와 우상을 숭배해야 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이 문제는 일곱교회에게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황제와 우상을 숭배하지 않으면 로마제국 정부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고 그 도시가 로마정부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고, 결국 고립 상태로 상업 무역을 할 수 없게 되어 생계가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 때문에 로마 정부의 도시 관리인이나 주변 불신자들로부터 박해를 받아 더욱 타협에 대한 유혹이 찾아왔을 겁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요한은 일곱교회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가 지금은 패배하는 것처럼 보여도 마지막에는 승리하게 된다는 것으로 위로를 전달하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작성한 겁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로마제국, 더 나아가 우상숭배하는 자들의 최후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고 패망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절에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2절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도대체 천사는 바벨론이 왜 무너졌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이 바벨론이 무너진 이유는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 바벨론은 아주 더러움이 가득한 곳이라는 뜻입니다. 역사적으로 바벨론은 아주 화려한 제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벨론의 성은 화려함의 극치에 다다른 성이었습니다. 지금 독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가면 당시 바벨론의 성문을 복원해놓은 것이 있습니다. 이슈타르의 문이라고 하는데, 정말 화려합니다. 이 바벨론의 성문은 튼튼한 성문일뿐만 아니라 훌륭한 예술 작품으로도 평가 받습니다. 이처럼 바벨론 성은 아주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바벨론 성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더러움만이 가득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것들이 넘치는 곳이고 더러운 영이 가득한 곳입니다.
이렇게 더러움이 가득한 바벨론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3절에서 왜 심판받게 되었는지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온 나라와 통치자들이 우상숭배를 하도록 미혹했다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바벨론의 음행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바벨론과 같이 음행했다.”라고 말하는데, 바벨론의 음행의 포도주라는 말의 더 정확한 번역은 “바벨론의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고”입니다. 바로 바벨론의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고, 바벨론과 음행했다는 것이죠.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 음행이 아니라 바벨론의 종교적이며 우상숭배적인 요구를 받아들였음을 비유하는 표현입니다. 바로 앞에서 말했듯이 경제적인 이유로 우상숭배를 하게끔 유혹한 것이 바벨론이 심판받는 이유인 겁니다.
이사야 23:17 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칠십 년이 찬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 그가 다시 값을 받고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
여기서 하나님께서 두로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이유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두로가 경제적인 안전을 이유로 우상숭배를 하게 만든 것이 음행이라는 것이죠.
이처럼 바벨론도 “너희가 경제적인 안전을 보장받고 싶으면 우리가 믿는 신을 너희도 섬겨라.”라는 것으로 온 나라를 우상숭배하게 만든 겁니다. 아마 바벨론에게 종속된 나라나 왕들이 바벨론의 우상숭배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경제적 안전을 박탈당했을 겁니다. 이러한 경제적인 안전에 저항하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포도주를 마셨다”라는 말은 경제적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우상숭배를 하려는 자원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예레미야 51:7 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은 여호와의 손에 잡혀 있어 온 세계가 취하게 하는 금잔이라 뭇 민족이 그 포도주를 마심으로 미쳤도다
바로 일단 바벨론의 포도주를 마시면, 독이 퍼져 바벨론의 파괴적 영향에 저항하려는 모든 저항심은 사라지고, 바벨론이 궁극적으로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과 하나님이 진정한 안전의 근원이심을 보는 눈이 어두워지며, 감각이 무디어져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에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끔찍한 죄를 저지른 바벨론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심판을 내리실지 말씀하십니다. 그 내용이 6-10절입니다.
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이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심판을 주시기 위해 심판의 집행자들을 보내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주라”라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대리인을 보내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6절의 갑절은 2배라는 의미보다는 “반복하다”, “상응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대리인을 보내셔서 바벨론의 행위에 상응하게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바벨론의 죄에 상응하는 심판이 무엇이냐면, 7절에서 자신을 영화롭게하고 사치를 부린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은 영광과 사치를 얻기 위해 우상숭배를 하고 경제적 압박을 한만큼 심판을 받게 됩니다. 바벨론의 죄는 영광을 하나님께만 드려야 하는데,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린 죄입니다. 바로 교만과 자기만족이 바벨론이 저지른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게 이러한 책임을 물으십니다.
또한 바벨론은 자신의 실상은 모든 것을 잃은 과부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양육하는 모든 주민의 어미인 왕비라고 여겼습니다. 바벨론은 영원히 그의 자녀들이 항상 자신을 지지할 것이라는 헛된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8절에서 역사 속에서 바벨론이 그랬듯이, 하나님께서는 하루 동안, 즉 도적같이 갑작스럽게 경제적 안전이 사라지게 될 겁니다. 바벨론이 영원히 자신은 숭배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확신이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되고, 그 확신은 착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바벨론에는 생명과 즐거움과 풍요로움이 아니라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 생기게 되고 불에 살라지게 될 겁니다.
그렇게 강했던 바벨론이 이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8절 끝에서 말하듯이 이 큰 성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분인 주 하나님은 강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 바벨론과 함께했던 나라와 통치자들의 결말은 이 바벨론의 멸망을 보고 울고 가슴을 치게 된다고 9절에서 말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슬퍼하는 이유는 바벨론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경제적 안전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연인인 바벨론이 불타고 연기나게 되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경제적 지위와 손실을 잃은 것에 대해 이들은 슬퍼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이들은 이 바벨론이 심판받은 것처럼 자신들들도 그 심판에 동참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고 10절에서 말합니다. 경제적 안전이라는 이유로 바벨론의 우상숭배에 동참한 이들도 바벨론과 함께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이들도 바벨론처럼 “한 시간”, 즉 도적같이 갑작스레 심판받게 될 겁니다.
이렇게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통해 경제적 안전을 이유로 우상숭배를 하는 자들의 결말은 이 세상에서는 화려하고 큰 성을 지어 살게 되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자들이라는 것을 일곱교회에게 말합니다. 이 환상을 통해 요한이 일곱교회에게 최종적으로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바로 4절입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요한은 일곱교회를 향해 바벨론과 그에 동참한 자들과 같이 우상숭배에 참여하지 말고, 그 결과로 받게 될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말 것을 강력하게 말합니다.
요한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2-3장에서 몇몇 교회에게 책망했듯이 꾸짖기 위함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위로를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요한은 “너네가 지금 현실적인 이유로 우상숭배를 타협하고 하는 마음 잘 안다. 하지만 너희가 현실 앞에 눈이 가려져 화려해 보이는 그 우상의 실상은 사실 더럽고 가증스러우며 그 끝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너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분이시며 언젠가 그것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니 너희의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세상 앞에 담대하여라. 너희는 지금 잘 가고 있다. 보아라. 너희를 박해하고 경제적인 안전을 이유로 유혹하는 자들은 심판받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무섭고 두려운 것이지만, 너희에게는 해방의 날이며 기쁨의 날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곱교회에게 가장 큰 위로는 무엇입니까? 바로 5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바벨론의 죄를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죄를 결코 잊지 않으시고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1,2절에서 천사는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지는 것을 두 번 강조하며 큰 권세와 힘찬 음성으로 외쳤습니다. 이것은 큰 성인 바벨론이 반드시 무너진다는 확실성을 부여합니다. 그것도 “무너질 것이다”라는 미래형이 아니라 “무너졌도다”라는 과거형을 사용하여 말함으로 이미 무너진 것처럼 말입니다. 바벨론의 심판은 이미 이루어졌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심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을 통해 사도 요한이 일곱교회를 향해 주고자 했던 메시지입니다. 로마제국이라는 큰 현실 앞에 무릎꿇지 않고 타협하지 않길 요한은 바랬습니다. 왜냐하면 일곱교회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심판하실 하나님께서 계시기 떄문에 거기에서 위로와 소망을 일곱교회가 가지길 바랬습니다. 더 나아가 요한계시록 전체를 보면 바벨론과 새 예루살렘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은 큰 성이지만, 새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입니다. 바벨론은 화려하고 크지만, 하나님의 성인 새 예루살렘은 구별된 거룩한 성입니다. 다시 말해 큰 성 바벨론에서 나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게 될 그리스도인들은 구별된 거룩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경제생활을 그만두라고 부름받은 것은 아니나, 타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핍박받고 경제 활동에서 외면당할 수는 있습니다. 또한 이 상황 속에서도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남아야 하며, 이 증언으로 인해 고난을 받게 될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물들지 않고 세상에 속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도 여전히 바벨론과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하나님을 예배하기보다 다른 것을 예배하게끔 만드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외모를 숭배하게 만들고, 명예를 숭배하게 만들고, 높은 지위를 숭배하게 만드는 것이 요즘 세상입니다. 우리는 이것들의 유혹을 받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언젠가 이런 것들은 사라지게 되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나, 실상은 더러움과 가증한 것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 우상들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만을 예배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세상에 있으나 세상과는 구별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복음을 증언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쉽게 넘어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고 거룩해야 함에도 우리는 이것들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이 세상에 오셨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거룩함을 온전히 유지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더럽고 가증스럽던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하나님만을 예배할 수 있게 하시고 거룩하게 만드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를 위해 이 일을 행하신 그리스도가 계시기에 우리는 바벨론과 같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거룩한 자로 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오십시오. 바벨론이 우리에게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안전을 주시고, 위로와 소망을 주십니다. 이 그리스도를 따를 때 우리는 세상에서 고난을 받더라도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그 날을 고대하며 위로 가운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새순교회가 이 사실을 기억하며 이 세상 속에서 참된 위로를 받는 새 예루살렘 성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기억하며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은 견고해보이는 큰 성 바벨론은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될 것이니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일곱교회에게 말합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참된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새순교회가 이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교회가 되길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 주변에 현실적인 문제로 괴로워하고 타협하고자 하는 성도가 있다면 우리 교회가 적극적으로 그 성도를 위해 기도하고 도와주는 교회가 되어 같이 손 잡고 새 예루살렘 성으로 가는 교회가 되길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두 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