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나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Notes
Transcript
[서론]
오늘이 2023년 마지막날입니다.
이제 우리 인생에서 더이상 돌아오지 않는 마지막 날이자 해입니다.
어떤 기분과 생각이 드십니까?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올한해 열심히 살았다고 말씀드릴수 있습니까?
아니면 조금은 아쉽고, 부끄러운 마음이 드십니까?
물론 자신의 일은 열심히 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는지는 다른 이야기일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간단히 두가지로 평가할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올 한해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우리는 얼마나 어떤 결정에 있어 하나님을 의지했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일상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기도했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애를 썼습니까?
이제 이웃사랑에 대해서 말해볼까요?
우리는 얼마나 내 이웃에게 관심을 가졌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내 이웃에게 내 시간과 돈을 사용했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내 이웃을 위해 기도했습니까?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고 새해 새로운 다짐을 할수 있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본론]
오늘 시편은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3절, 그리고 4-5절, 마지막 6-9절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이렇게 나눈 것일까요?
잘 보시면 마지막에 동일하게 나온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은 거룩하시다’ 입니다.
후렴구처럼 반복되어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의 핵심단어는 ‘거룩’입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는 주님의 본질적인 성품입니다.
물론 그 분의 성품을 설명할수 있는 단어들은 많습니다.
사랑, 긍휼, 정의, 생명 여러가지 단어들을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이라는 단어는 그 모든 단어들의 뿌리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사야6장에 보면 천사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이렇게 찬양합니다.
우리는 ‘거룩’하면 무엇을 떠올립니까?
더러운 것과 구별된다는 것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근접하기 힘든 어떤 신성한 힘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성경에서 거룩이라는 단어를 사용할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성막입니다.
성막은 전에 레위기를 했었기 때문에 기억하실 것입니다.
성막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습니다.
성소가 거룩한 곳이라면, 지성소는 가장 거룩한 곳입니다.
그래서 성소도 그렇지만 지성소는 정말 아무나 들어갈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깨끗하게 선별된 사람인 오직 대제사장만 그것도 1년에 한차례 들어갈수 있을 뿐입니다.
더러운 상태로 들어가거나 말씀을 지키지 않고 들어가면 그냥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처럼 거룩은 인간이 가까이할수 없는 하나님의 독특한 성품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거룩은 또한 생명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마치 태양의 속성과도 같습니다.
모든 생명을 탄생케하고 움직이는 힘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위험하지만 가까이 해야하는 역설이 숨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신 책이 바로 레위기입니다.
레위기가 말하는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제사’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제사를 통해 자신에게 가까이 갈수 있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직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만이 백성대표로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게 하셨습니다.
일반 백성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은 목숨을 거는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레위기에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으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사명은 거룩한 삶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도 여기에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내 삶을 통해 온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2023년 우리의 사명이 2024년 우리의 사명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 삶을 통해 그 분의 거룩하심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2024년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에게 각자 2024년을 위한 개인적인 소망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을 모두 무시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것들 조차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새해 통과해야할 시험이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새해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돈을 더 벌고 싶고,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집에 들어가고 싶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낼수 있을까요?
이 시편은 3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배입니다.
1-3절입니다.
주님께서 다스리시니, 뭇 백성아 떨어라.
주님께서 그룹 위에 앉으시니, 온 땅아 흔들려라.
시온에 계시는 주님은 위대하시다.
만백성 위에 우뚝 솟은 분이시다.
만백성아, 그 크고 두려운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주님은 거룩하시다.
1절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오직 그 분의 통치를 통해 드러납니다.
주님께서 다스리시니, 주님께서 통치하시니 그분의 거룩이 세상에 드러납니다.
그러자 온 백성들과 온 땅이 요동하며 크고 두려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은 다른 표현으로는 왕으로 오신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온세상의 왕으로 보좌에 앉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왕을 경험하지 않아서 그 영향력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왕은 쉽게 말하면 구원을 가져올 메시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은 단순히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한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그 분이 이 땅에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는 천국,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왕이 오셨으니 그의 나라, 그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전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입니다.
그럼 그 분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면 우리의 마땅한 반응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우리의 예배를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는 2023년 한해 동안 얼마나 예배에 힘을 기울였습니까?
주일날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합당한 예배를 드렸습니까?
온 땅과 온 백성이 떨며 그 분을 찬양하는데 우리의 예배는 어땠습니까?
2023년 마지막날 우리가 회개할 부분은 예배입니다.
저부터 회개합니다.
때로는 예배 설교에 집중하느라 다른 부분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습니다.
설교 준비에 있어서도 그 과정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가 성도들의 삶에 잘 적용될수 있도록 기도해야하는데 부족했습니다.
2024년에는 우리의 주일 예배가 주님의 거룩하심에 합당한 예배가 되길 소망합니다.
최소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땅에 떨어뜨리는 예배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각자 예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럼 예배말고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낼수 있을까요?
둘째, 정의와 공의입니다.
4-5절입니다.
주님의 능력은 정의를 사랑하심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공평의 기초를 놓으시고, 야곱에게 공의와 정의를 행하셨습니다.
우리의 주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그 분의 발등상 아래 엎드려 절하라.
주님은 거룩하시다.
주님의 거룩하심은 그 분의 정의를 통해 드러납니다.
세상의 정의를 사랑하시고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이 세상에 세워놓으신 공평의 기초입니다.
그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이 우리가 짓는 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해야할 정의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행할 정의는 세상의 정의와 다릅니다.
세상의 정의는 힘있는 자가 더 잘되고 더 누리는 게 정의입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이기면 누리고, 지면 포기하고 물러나는게 정의입니다.
냉혹한 공정과 공평이 세상의 정의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정의는 다릅니다.
히브리어로 ‘째다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의의 바른 관계를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대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억압하고 착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다른 비슷한 단어로 공의를 뜻하는 ‘미슈파트’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힘없는 약자를 돌보는 삶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 실패한 자, 힘없는 자, 소외된 자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돌보는 것이 바로 미슈파트 공의입니다.
성경에서 결국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는 이러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타락하여 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오히려 억압하고 핍박했습니다.
고아, 나그네,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않고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야곱, 즉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입니다.
그럼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앞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일에 있어 주일 예배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주일예배보다 더 중요한 예배가 있습니다.
바로 삶의 예배입니다.
주일예배는 있는데 삶의 예배가 없다면 그것은 정의와 공의가 빠진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훼손하는 예배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삶이 바로 삶의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2023년 우리는 내 이웃과 얼마나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얼마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살았습니까?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어떻게 드러났습니까?
2024년에는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드러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럼 예배, 정의와 공의말고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낼수 있을까요?
셋째, 기도 응답입니다.
6-9절입니다.
그의 제사장 가운데는 모세와 아론이 있으며,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 가운데는 사무엘이 있으니, 그들이 주님께 부르짖을 때마다 그 분은 응답하여 주셨다. 주님께서 구름기둥 속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이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과 율례를 모두 지켰다. 주 우리 하나님, 주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한 대로 갚기는 하셨지만, 주님은 또한 그들을 용서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주 우리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여라. 그 거룩한 산에서 그분을 경배하여라. 주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예배의 삶을 살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바로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에는 그러한 인물 세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모세와 아론, 사무엘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장 깊이 경험한 지도자들입니다.
이 세 사람은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날수 있었던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구름기둥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 받은 계명과 율법을 모두 철저히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보다 더 한 특권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덕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더이상 지성소에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은 지금 이순간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주님께 기도할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2023년 얼마나 이 특권을 누렸습니까?
우리의 기도와 순종을 통해 얼마나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났습니까?
이런 말씀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정죄하라는 게 아닙니다.
2023년을 돌아보고 2024년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입니다.
정말 놀라운 소식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8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심판하시지만 회개할때 언제든 용서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기도는 언제나 응답받는 가장 강력한 기도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지 못할때 그들은 심판받았습니다.
그들의 예배는 형식적이었고, 삶의 예배는 무너졌습니다.
그들의 정의는 무뎌지고 결국 무너져 억압과 착취 소외와 무시만이 난무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나라는 멸망했고, 그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갈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제대로 회개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 절호의 기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이스라엘은 새 이스라엘로 바뀌게 됩니다.
그 새 이스라엘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단순히 냉혹한 힘이 아닙니다.
그 분의 거룩하심에는 그 분의 긍휼과 용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분 앞에 죄를 회개하고 돌이킬때 언제든지 용서해주십니다.
2023년 우리의 불순종을 회개합시다.
이 시간 우리의 마음과 태도를 돌이키면 그 분은 우리를 용서해주십니다.
2024년 새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해주셔서 그 분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내일이면 새해가 밝습니다.
새해 우리는 나름대로 많은 소원들을 가질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제일가는 소원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삶을 살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세가지를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배하는 삶,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삶 그리고 이를 통해 응답받는 삶입니다.
그것이 1절에 나온 주님께서 통치하시는 삶이자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입니다.
주님의 통치를 받아 거룩하신 주님을 드러내는 2024년 새해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