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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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 98:1-9 (시 98:1-3)
제목: 승리하시는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여드리는 행위는 신자에게 있어서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적인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으며, 예배를 하나님께 올려 드릴 때, 하나님을 높여드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연약한 분들의 경우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행위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찬양하니까 아무런 근거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군중심리에 따라서 하나님을 찬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의미와 목적이 없는 행위는, 하나님께 상달될 수 없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여드릴 때, 우리가 그렇게 행동해야만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찬양해야 할까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 시간, 시편 98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찬송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고, 오늘날 우리가 이 말씀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마땅한지 함께 상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오늘 본문 말씀인 시편 98편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시편 98편은 시편 전체를 분류할 때 “즉위시”로 구분됩니다. 왕이시며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시며,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여드리는, 일종의 즉위시로 분류되는 것이죠. 또 시편 98편은 크게 세 개의 연으로 구분됩니다. 1절에서 3절, 4절에서 6절, 7절에서 9절. 이렇게 세 연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눈대중으로 빠르게 읽어보면, 그냥 찬양하라는 명령으로 뒤덮여있는 시편으로 볼 수 있습니다만,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시편 중에서도 여러모로 독특한 시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시편의 경우에는 신학적으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시편이 있습니다. 사본 상의 문제나, 원어 상의 문제, 기록 연대의 문제 등, 다양한 논쟁거리가 있는 시편들이 있는가 하면, 오늘 본문 말씀인 시편 98편 말씀은 다른 시편에 비해 본문 상의 신학적 문제가 없는 굉장히 단순명료한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겠죠.
그렇다면 시편 98편 말씀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98편 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아멘. 1절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며, 거룩한 팔로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분입니다. 이를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죄로 죽어있던 우리를, 구원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내 주셨습니다.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로, 전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는 영적으로 고아와도 같았던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선사해주셨기 때문이죠.
시편 기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을 구약 시대의 맥락에 따라 설명합니다. 2절 말씀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이란 무엇인지를 그분의 자녀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특별한 자녀들에게만 은밀하게 알려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여러 나라들 앞에서 명백하게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시대에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과정만 봐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손길이 어떠한지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열 가지의 재앙과 홍해 바다를 건너는 사건에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이 분명하게 나타나죠. 이뿐만 아니라 사사시대와 통일 이스라엘 시대, 분열된 이스라엘 시대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역사를 그분의 자녀들과,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여러 나라들을 향해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별해서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시편 기자는 2절에서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라고 밝힙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구약 시대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말씀을 통해 알게 되는데요.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로 작용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전지전능한 신이, 한낱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존재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줄 의무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 저자를 사용하셔서 특별계시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고, 기록된 말씀이 필사자들을 통해 보존되게 하셨으며, 기록된 사본들이 비록 완전하진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특별계시의 말씀, 66권의 말씀이 한 권의 성경책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러한 결과물은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로 작용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통해 구원의 도리를 알려주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우리가 감히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특별계시의 말씀이 없이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십자가 대속 사건에 대한 은혜를 깨달을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일반계시인 자연과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그분의 신성을 어렴풋이 인지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것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정도는 인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구원에 대한 지식은 얻을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해야 함이 마땅한 것이지요.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시편 98편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동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신 것이 구원의 동인이 됩니다. 이를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인자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인데요.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언약에 근거한 하나님의 사랑 또는 하나님의 충실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품으셨던 그 충실한 마음, 헤세드와 성실을 기억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거나, 아니면 이스라엘이 마음을 찢으며 하나님께 회개했기 때문에 구원하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 관계를 맺었으나,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언약 관계에 충실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베푸시는 인자와 성실을 단 한 순간도 망각하거나 상실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듯한 태도와 행동을 취해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아 마땅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품으셨던 그 마음을 기억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편에서 그렇게 행동하실 이유가 전혀 없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는 것이 지극히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인자와 성실을 베푸셨던 그 마음을 기억하시고, 전적인 은혜로 구원해 그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만 불충한 백성이며, 이스라엘만 무지하고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죄로 물든 전 인류가 불충하고 무지하고 교만하며 목이 뻣뻣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 언급할 것 없이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극악무도한 죄인이며, 구원받을 자격이 없음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인간적인 기준에서, 윤리적으로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절대적인 거룩함을 지니신 하나님의 관점에 따르면, 인간 중에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만한 자격을 지닌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격없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그리고 오늘날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하며, 오늘도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께 새 노래로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시기 바랍니다. 언약에 근거한 사랑으로, 헤세드와 성실로, 구원받을 자격없는 우리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영원한 생명을 주신 우리 하나님께 진심 어린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가 있어야 찬양하고, 감사의 제목이 생겨나야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 관계없이, 우리의 기도제목의 응답 여부와 관계없이, 매일 매일 눈 뜨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입을 열어 감사를 표하며, 우리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시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아멘.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시고 자격 없는 죄인들에게 전적인 은혜를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악하고 타락한 시대에, 죄인인 우리를 주님의 자녀 삼아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려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 은혜를 다시금 기억하며, 매일 매일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주님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 응답을 받아서가 아니라, 잘돼서가 아니라, 그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구원의 감격을 품고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으로 마친 뒤에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시다가 귀하시면 되겠습니다. 주기도문하시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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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데일 – 트램퍼 롱맨 (pp.486)
〈98:1–3〉 이스라엘이여 과거 승리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시편 기자는 여호와에게 새 노래를 부르라고 이스라엘에게 요청한다. “새 노래”는 전쟁과 관련된 문맥에서 이사야(사 42:10)와 요한계시록(계5:9; 14:3)뿐만 아니라 시편의 다른 곳에서도(시 33:3; 40:3; 96:1; 144:9; 149:1) 나온다. 새 노래는 하나님이 악의 세력을 무찌름으로써 모든 것을 새롭게 한 후에 부르는 승리의 찬송이다. 하나님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은 전형적으로 전투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킨다(출 6:6; 15:16; 신 4:34 등). 그래서 시편 기자가 찬양하는 구원은 전쟁의 구원이다.
인자와 성실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행동하게 됐다. 이 인자(헤세드[ḥesed])는 충실함을 가리키며, 충실함과 성실함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과 맺은 언약 관계에서 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순종하면 대적에게서 구원하겠다고 말했다(예를 들어, 신 28:7). 심지어 이스라엘의 적을 대적하는 나라들도 따라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임을 증거한다.
〈4–6〉 온 땅이여, 현재 너희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이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온 땅에 요청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한 승리자였을지 모르지만, 인정을 받든 그렇지 않든 땅의 모든 거주자들의 왕이다. 대적을 무찌름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므로, 종종 하나님의 승리는 그분의 왕권과 연결된다(예를 들어, 출 15장). 노래는 적절하게 현악기(수금)와 관악기(나팔, 호각)로 구성된 악기가 수반된다. 인간의 목소리만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7–9〉 모든 창조물이여, 미래 너희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나님은 과거의 승리자이며, 현재의 왕이며, 미래의 심판자이다. 심판자로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 그들을 해(harm)하려는 자들을 징벌하기 때문에 다시 전사로서의 출현과 연결된다. 이 경우 시적인 인격화로 모든 창조물(바다, 물, 산악)은 하나님이 죄로 인하여 혼란스러워진 의와 공평을 다시 세울 것을 기대하면서 가담한다.
의미
시편의 원 배경에서 전사인 하나님이 이행한 구원은 전쟁에서의 구원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승리했고,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의 신실한 자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요청한다(1–3절).
둘째 연(4–6절)에서 이 요청은 자신들의 왕인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해 땅의 모든 거주자들에게 확대한다.
마지막으로(7–9절) 시편 기자는 살아 있든 그렇지 않든 모든 창조물에게 하나님을 다가올 심판자로 찬양하도록 권한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전사이지만, “혈과 육”이 아니라 영적인 통치자와 세력에 맞서 싸운다(본서 서론을 보라. p. 67).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영적 구원을 이룬 전사인 예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승리자, 왕(메시아)이며, 또한 모든 창조물을 원래의 조화로 회복시킬 장차 올 심판자이다(롬 8:1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