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누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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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는 최근 셀가족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었던 빌립보서와, 현재 Q.T본문인 사도행전에서 빌립보교회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도바울은 복음을 누리는 삶을 살았는지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4장으로 구성된 짧은 편지 안에 ‘기쁨, 기뻐하라’같은 표현들이 무려 18번이나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전체의 핵심 메시지는 ‘주 안에서 기뻐하라’입니다.
1장에서는 복음의 전파됨을 인하여 기뻐하라.
2장에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음으로 기뻐하라.
3장에서는 십자가를 향해, 푯대를 향해 달려감으로 기뻐하라.
마지막 4장에서는 주 안에 굳게 섬으로 기뻐하라 라는 말씀입니다.
이 짧은 빌립보서 편지 안에 바울은 계속해서‘기뻐하라’라고 권면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각 장마다 ‘바울이 기뻐할 수 없었던 기쁨의 방해 요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1장에서는 기쁨의 방해 요소가 ‘매임’입니다.
복음전파라는 사명 때문에 ‘로마의 길’을 택했던 바울은 우상의 도시인 로마에서 마음껏 복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감금된 상태로 매임 가운데 있게 된 것입니다.
2장에서는 기쁨의 방해 요소가 ‘교회의 분열’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은 전도여행 때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방문합니다. 작은로마’라고 불려졌던 빌립보는 2차 전도여행 당시에, 유대인의 회당이 하나도 없었던 ‘복음의 불모지’였습니다. 그곳에서 루디아라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되고,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기도 하면서 정말 많은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힘들게 개척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많은 고난과 능욕을 당했다고 데살로니가전서 2:2 에서 회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워진 작은 빌립보 교회가 1장 1절에서 보니까 어느덧 감독들과 집사들 또 사역자들, 성도들로 이루어진, 제법 틀을 갖춘 교회로 성장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제법 규모와 틀을 갖춘 교회로 성장했다면, 본격적으로 복음전파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도 모자랄 판에 교회가 분열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은 바울에게 분명히 기뻐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성도들이 하나 되고,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합니다.
3장에서 바울이 기뻐할 수 없는 이유는 ‘거짓 교사들이 전하는 거짓 복음’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개들, 행악자들, 할례당’이요, 심지어는 ‘십자가의 원수’라고까지 말하면서 성도들이 거짓 복음에 현혹되지 말 것을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거짓 교사들과 거짓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자신들의 목적과 야망을 위해, 순수한 성도들을 현혹하고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분별하고, 바르게 적용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마지막 4장에서 바울이 기뻐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울 자신이 처한 형편, 바로 부족과 결핍’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족함을 배웠고 그 결과‘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의 고백과 함께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빌립보서 내용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그렇다면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이토록 기뻐하게 하고 또 어떻게 바울은 복음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그것은 그의 삶의 목표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4:1 NKRV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주 안에 굳게 선다는 것은 우리 삶의 방향과 삶의 태도를 말합니다.
삶의 방향과 태도는 올바른 말씀에 대한 이해와 올바른 기도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알고, 복음을 알면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니까 말입니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에게 기도는 무엇일까요?
기도가 단지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고 그것을 얻어내고 응답받는 것만이 기도일까요? 바울에게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믿음과 지식과 경험에서 자라감에 따라 더욱더 우리가 구할 것을 하나님 그분 자체이고 하나님을 축복과 도움의 통로로만 여기거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들에만 관심을 두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4:6–7 NKRV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말씀을 통해 볼 때 올바른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지키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기도를 통해, 어떠한 형편과 환경 가운데서도 자족함을 배웠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믿음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창세기 속의 요셉은, 형제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가고, 자신이 섬기던 주인의 아내를 성폭행하려다가 실패한 강간 미수범 누명까지 쓰면서 감옥에 가게 됩니다. 부자집 막내 도련님에서 노예로, 강간범으로 전락한 요셉은, 아마도 그곳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자신을 그렇게 만든 형들과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면서 증오했을지도 모릅니다.
훗날 하나님의 섭리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온의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게 되고 두 명의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첫째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므낫세가 무슨 뜻입니까? 잊자, 잊어버리자!
창세기 41:51 NKRV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요셉은 자신의 인생 가운데 있었던 많은 고난과 애환들을 잊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그러던 요셉이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족과 히브리 동족들을 구원하기 위한 섭리였음을 깨닫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과 그를 둘러싼 모든 사건들을 해석하게 됩니다. 자신의 사명을 깨닫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평강이 요셉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올바른 기도와 믿음의 해석이 우리를 살리는 것임을 믿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던 예수님께서 갑자기 이런 말씀하십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태 6:22-23)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아마도, 천국 복음을 선포해도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무리들을 향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닫기 위한 통찰력과 지혜를 구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올바른 기도와 믿음의 해석이 우리 영혼을 살리게 됨을 믿습니다.
히브리서 5:7 NKRV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셨습니다. 그 절정이 겟세마네 기도입니다. 아버지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 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누가복음 22:42 NKRV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한 가지 더 나누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말씀과 기도가 충만해도 우리 인생은 쉽게 지치고, 쉽게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사도바울이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인생에 목표가 하나님께 고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많은 것을 받았고 특별한 축복을 받았지만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빌3:10) 그리스도를 더 알기 원합니다. 사도바울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체험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더욱 알기 원했습니다.
사도바울의 관심은 자신의 사역에 필요한 물질이나 환경이 아니었습니다.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도 간단하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들이요?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4:19 NKRV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바울의 관심은 그리스도를 더 알기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 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고 능력과 계시를 받았으며, 삼층천, 셋째하늘, 낙원까지 체험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많은 것을 받았고 그렇게 특별한 경험을 했는데도, 그는 그런 것들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라고 말하면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사도바울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그의 소망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삶은 예수님과 요셉, 사도바울 같은 감히 우리가 범접하기조차 어려운 그런 믿음의 인물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요?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사도바울은“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빌3:17) 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3:17 NKRV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빌립보서 1:8–10 NKRV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그는 자신이 이러한 삶을 살아갈 뿐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주신 성도들 또한 이런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8-10절에 기록된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기도를 보십시오. 그 자체로 감동입니다. 오늘 이 편지는 예수를 믿는 성도들,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할 복음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목표로 삼고, 올바른 말씀의 이해와 올바른 기도를 힘쓸 때 우리도 복음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럴 때 우리 역시 사도바울처럼 어떠한 매임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을 품음으로 기뻐하고, 푯대를 향해 달려감으로 기뻐하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며 주 안에 굳게 설 수 있을 것입니다.
2000년 전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사도바울의 사랑의 권면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삶의 열매로 나타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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