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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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세기 3:1-8(구약 3쪽)
설교제목 : 죄에 관하여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대부분의 성도님들께서 이 얘기를 잘 아시리라 생각해요. 보통은 유치부나 어린이부와 같은 이른바 주일학교를 거치면서 한번쯤은 들어보는 성경의 이야기이지요. 그리고 주일학교를 거치지 않았어도 성경을 읽어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만나는 이야기고요. 더 나아가서는 성경을 읽지 않았어도, 대중매체 등을 통해서 일종의 교양 또는 상식처럼 알고 있는 성경이야기예요.
그런데 이 성경이야기를 읽으면서 좀 생각해볼 것들이 있어요. 결국은 죄라는 문제가 이 사건 곧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문제로부터 생겨나잖아요. 거꾸로 생각해보면, 아담과 하와가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죄라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가서 생각해보면, 애초에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또는 그 열매 곧 선악과가 없었더라면 아담과 하와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없었겠죠.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다보면, 좀 불경스럽지만 이러한 생각의 결과에 도달할지 모르겠어요. 결국 하나님이 죄를 만드신 것이 아니냐고 말이지요. 왜요? 애초에 하나님이 선악과를 안 만들었으면 죄라는 문제가 전혀 없었을 것이고,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모든 책임은 하나님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칫하면 방금 제가 말한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길 수도 있겠지만요. 차근차근 잘 생각해보면, 진짜 문제는 아담과 하와에게 있었습니다. 만약 방금 제가 말씀드린 방식으로 죄의 문제를 하나님께 전가한다면,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지 않았다면, 또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다면, 모든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입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에서 무려 일곱번이나 등장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좋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7이나 10은 완전수를 가르키는데요. 좋다는 말이 7번 등장하는 것은 완벽하고 더할나위 없이 좋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만든 세상은 본래 선하고 좋은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창조한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습니다. 맞아,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고 그분이 만드신 세계는 완전하였는데, 그 세계에 해악을 끼치고 죄를 가지고 온 존재가 있었어. 그는 오늘 성경말씀에 등장하는 뱀인데, 우리가 알고 있기로 이 뱀은 사실은 사탄이라는 악한 존재가 변신을 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에게 뱀으로 변장한 사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텐데 그 사탄의 등장이 죄를 불러오고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되었다고 다시 모든 책임을 하나님에게서 사탄으로 돌릴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왠지 우리에게도 좋고 하나님에게도 좋은 것 같고요. 죄의 문제에 따른 책임을 우리나 하나님이 지지 않아도 되니 좋은 설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오 우리는 사실 뱀 곧 사탄에게도 죄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결코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탄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러했다면 사탄은 하나님과 승부를 보면되지 뭐하러 번거롭게 아담과 하와를 찾아와서 그들을 유혹하겠습니까?
이는 사탄이 하나님께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벌인 일종의 꾀인데요. 사탄은 하나님을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장 큰 약점을 파고 든 것입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개미가 우리랑 싸우겠다고 나와서 덤비면 우리는 어떤 느낌을 받을까요? 물론 무수한 개미떼를 만나면 두려움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게 작은 생물이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고 느끼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자녀가 부모에게 덤비면 어떨까요? 우리 힘으로 제압할 수 있을 만큼 어린 자녀가 우리에게 덤벼든다고 할지라도 부모는 자녀의 행동으로 적잖은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탄은 직접 하나님과 맞서기 보다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유혹하여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항하는 모습을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보면 우리가 사탄의 전략에 이용당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죄의 문제가 발생한 것은 하나님의 책임도 사탄의 책임도 아니라 사실은 우리의 책임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아무런 흠이 없었습니다. 사탄은 결코 하나님께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우리만이 하나님께 영향을 미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리석게도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또는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됨으로 우리에게 죄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러함 점을 놓칩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를 우리와 무관하거나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탓으로 돌리거나 심지어 그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 돌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죄의 문제 대한 책임이 하나님께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를 유혹한 사탄에게서도 그 문제의 책임을 묻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 문제를 일으킨 주범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사탄에게 이용당한 것일까요? 오늘 성경말씀 창세기 3장 3절과6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창세기 3:3(구약 3쪽)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세기 3:6(구약 3쪽)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여기서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사탄에게 이용당한 두 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무지함입니다. 3절에서 하나님은 말했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 곧 선악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했다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먹지 말라고 했지 만지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선악과를 먹으면 죽을까 하노라’라고 말했지만, 사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확실히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함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지게 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말씀에 바로서지 않으면, 언제나 사탄의 유혹에 넘어질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또 둘째는 욕심입니다. 6절에 보면 ‘그 나무 곧 선악과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이 든 것은 그 다음 구절에서 명확해 집니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 나무의 열매 곧 선악과를 먹으면 지혜를 얻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는 원래는 없던 욕심이 생김으로 비롯된 일입니다. 이렇게 또 인간의 욕심이 우리를 죄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모든 것의 뿌리가 교만에 있다고 봅니다. 곧 인간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또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교만 말입니다. 말씀에 무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까? 말씀을 그렇게 가까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만 우리가 그것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만의 다름이 아닙니다. 또 아담과 하와가 지혜를 얻고자 한 욕심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자신도 하나님처럼 지혜롭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욕심에 따른 것입니다. 이 또한 교만의 다름이 아닌 것입니다. 이처럼 죄의 뿌리는 우리의 교만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만하지 않다고 얘기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보다 나의 판단을 앞세우고 나의 경험에 의지하여 살아갑니까? 그러한 모습이 내가 하나님 보다 위에 서고자하는 교만임을 깨달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로부터 죄가 시작됩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성도님들께서 다시금 깨닫기를 바랍니다. 죄의 문제가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죄가 내가 하나님보다 낫다는 어리석은 생각 즉 교만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바라건대, 저는 우리 성도님들께서 이러한 죄의 길에 들어서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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